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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

국가적 자부심을 표현한
로고와 마스코트

1964년 도쿄 올림픽은 최초로 사람이 들어간 픽토그램을 개발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은 최초로 마스코트를 발표한 올림픽이다. 뮌헨 올림픽은 텐트 구조의 지붕이 대단히 혁신적인 메인 스타디움으로도 유명하다. 1984년 LA 올림픽은 포스트모더니즘 양식을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전반에 적용한 최초의 올림픽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로고와 마스코트를 기하학적 스타일에서 벗어나 최초로 프리 핸드 스타일 디자인을 선보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세계적인 건축가 헤르초크 & 드 뫼롱이 디자인한 새 둥지 모양의 주경기장이 큰 화제였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로고는 국가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패션성이 강하고 불협화음적이고 파격적 디자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파리 올림픽 마스코트 ‘프리주’ ©Paris2024.org

메인 스타디움, 스타드 드 프랑스(Stade de France) ©Paris2024.org

올림픽 로고는 대개 국가적인 이미지를 모티프로 만들려는 경향이 강하다. 지난 도쿄 올림픽 로고는 에도 시대 전통적인 체크무늬로 디자인되었다. 이번 로고는 프랑스 하면 혁명의 국가 이미지를 가진 만큼 군주제에 저항하고 억압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옹호를 상징하는 마리안느(Marianne)를 모티프로 했다. 자유의 여신이자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인물이 여성이라는 점에 착안해 로고의 마리안느는 또한 여성 운동선수에 대한 오마주이자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이룬 역사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고 있다. 마리안느는 동시에 올림픽의 성화 불꽃 모양으로도 해석된다. 따라서 이 로고는 올림픽 성화라는 보편성과 마리안느라는 프랑스의 민족적 정체성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다.

마스코트 디자인에서도 프랑스의 혁명 정신이 표현되었다. 대부분의 올림픽 로고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동물로 표현되어 왔다. 하지만 파리 올림픽의 마스코트는 모자를 의인화했다. 이 모자는 ‘프리기아 모자(Phrygian cap)’라고 하는데,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혁명을 지지하는 민중들이 썼던 모자로 혁명과 자유를 상징한다. 마리안느도 이 모자를 쓴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프리주(Phryges)’라는 이름을 가진 마스코트는 올림픽 마스코트와 패럴림픽 마스코트 둘이 함께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둘로 묘사된 마스코트는 “혼자는 더 빨리 가지만, 함께라면 더 멀리 간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두 프리주 중에서 패럴림픽 프리주는 한쪽 다리가 의족으로 장애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최초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논란의 중심이 된
파리 올림픽 픽토그램

이번 올림픽 디자인에서 가장 파격적인 것은 픽토그램이다. 픽토그램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최초로 등장했지만 그 뒤로 쓰이지 않다가 1964년 도쿄 올림픽 때 다시 등장했다. 최초로 아시아에서 열리는 만큼 언어가 완전히 다른 외국인들에게 더 쉽게 종목을 알려주기 위해서 개발한 것이다. 그리고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가장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픽토그램이 완성되었고, 한동안 픽토그램은 국가적 이미지의 표현 영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부터 기하학적 형태의 보편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픽토그램 역시 국가적 이미지의 투영 대상이자 강렬한 개성과 창의성의 표현 대상이 되었다.

가독성과 함께 개성의 표현이 중요해지면서 픽토그램은 로고나 마스코트의 지위를 넘볼 정도로 중요해졌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서는 그 개성이 폭발해 논란이 대상이 된 것이다. 일단 이번 픽토그램에서는 늘 등장하는 사람이 사라졌고, 종목을 상징하는 도구만이 표현되었다. 즉 축구공이나 권투 글러브, 자전거, 도복 따위로 종목을 상징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면 역시 사람이 등장해서 해당 종목의 가장 결정적인 포즈로 표현한 픽토그램보다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게다가 데칼코마니처럼 중복해서 표현함으로써 픽토그램이 아주 복잡해졌다. 이것이 더욱 종목의 가독성을 저하시킨다.

조직위원회는 이 픽토그램이 종목뿐만 아니라 가족, 자부심, 가치관, 공동체를 상징하는 명예 배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직위는 이번 올림픽이 픽토그램 디자인의 이정표를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기능성을 넘어 친밀감을 나타내는 감성적인 상징을 지향했다는 그들의 말처럼 다른 많은 것을 담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픽토그램의 가장 중요한 기능, 즉 의사소통력이 떨어진 것이다. 과연 파리 올림픽 픽토그램의 혁신적 시도가 그 뒤의 올림픽에도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프랑스 스포츠의 전설,
스타드 드 프랑스

주경기장은 올림픽 기간 중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장소다. 개막식과 폐막식, 수많은 종목과 경기가 열리는 육상 경기가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경기장은 올림픽이 끝나면 사용빈도가 떨어져 적자의 주요 원인 제공자가 되곤 했다. 그리하여 파리 올림픽은 LA 올림픽의 메모리얼 콜리세움처럼 기존의 경기장을 고쳐 쓰는 전략을 따르기로 한다.

파리 올림픽의 개막식은 파격적으로 경기장이 아니라 센 강변에서 펼쳐질 계획이어서 주경기장에선 폐막식과 육상경기가 열린다. 주경기장으로 선정된 스타드 드 프랑스(Stade de France)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위해 건설되었다.

월드컵 예선경기와 준결승전, 그리고 프랑스가 브라질을 3대0으로 꺾고 최초로 월드컵을 우승한 역사적인 경기가 열린 장소다. 그밖에 2003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비롯한 2007년과 2023년 럭비 월드컵, 2016년 UEFA 유로 축구선수권대회, 2022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프랑스 국내 컵 대회 결승전과 럭비 챔피언십 경기 등을 개최했다. 주요 축구와 럭비대회는 물론 BTS와 블랙핑크 공연을 개최하는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다목적 경기장이자 문화시설로서 그 위상이 높다. 건설될 때부터 다목적 구장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되었다.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구장은 축구 경기나 콘서트 홀을 위해서는 육상 트랙으로 좌석을 확장해 관객이 선수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무려 2만 5,000석의 좌석이 이동하는데, 이는 이동식 좌석을 운영하는 경기장 중 가장 큰 규모다. 돔 구장은 아니지만 지붕은 비가 올 때 관중석을 모두 가릴 수 있을 정도로 길다. 지붕이 있을 경우 그늘과 볕이 드는 곳의 밝기 대비가 커지는데, 착색 유리를 설치해 이 대비를 줄이고 자연광을 분산시킨다.

이 경기장의 자랑은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활용도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현재 올림픽을 위한 스타드 드 프랑스의 개보수 비용은 아직 정산되지 않았다. 하지만 14억 달러(약 2조 원)를 들여 새로 마련한 2020년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의 건설 비용에는 크게 미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파리의 관광 자원을
활용한 경기장들

역사적인 유산을 가진 올림픽 개최 도시들은 대개 그 지역의 관광 자원을 활용하곤 했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때는 고대 로마의 유적지인 포럼의 막센티우스 바실리카에서 레슬링 경기가 열렸고 콘스탄틴 개선문에서 마라톤 선수들이 출발했다. 로마만큼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자원이 풍부한 파리 역시 이를 충분히 활용하려고 한다.

그랑 팔레(Grand Palais)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설했다. 19세기 말 철골과 유리, 철근 콘크리트 등 당시로는 혁신적인 재료와 기술로 완공되었고,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펜싱과 태권도 경기가 열린다.

펜싱 경기장으로 개조된 그랑 팔레(Grand Palais) ©Paris2024.org

앵발리드(Les Invalides)는 은퇴 군인과 장애(invalide) 군인을 위한 주거지와 병원으로 건립했으며, 지금은 군사와 관련된 박물관이다. 앵발리드는 돔이 아름다운 파리의 유서 깊은 바로크 양식 건축물이다. 이 건물 앞마당에서는 양궁 경기가 열린다. 선수들은 앵발리드를 등지고 과녁을 향해 활을 쏘게 된다.

이번 올림픽 경기장 중에서 3대3 농구와 사이클 BMX 프리스타일, 스케이트보드, 브레이킹(비보잉) 경기가 열리는 콩코드 광장은 가장 개방적인 장소다. 도시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을 제외하면 이 경기들만큼 개방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올림픽 경기는 없을 것이다. 브레이킹은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에 채택되었고, 나머지 3종목은 2020년 도쿄 올림픽 때 정식 종목이 되었다. 이 스포츠들의 공통점은 거리 스포츠라는 점이다. 그런 성격을 살려 콩코드 광장에서 개최하게 된 것이다. 파리에서 규모가 가장 큰 광장인 콩코드 광장은 루이15세 때 완공되었고,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루이16세, 마리 앙투아네트, 로베스 피에르 등의 유명 인사들이 공개 처형된 역사 장소로 유명하다. 혁명의 피바람이 불던 이곳이 평화로운 거리 스포츠의 경연장이 된다는 것은 무척 뜻깊다.

3대3 농구와 사이클 BMX 프리스타일, 스케이트보드, 브레이킹(비보잉) 경기가 열리게 될 콩코드 광장의 그래픽 ©Paris2024.org

한편 파리 교외에 루이14세가 건설한 베르사유 궁 산책로에서는 마장마술 경기가 열린다. 절대왕정 시절의 화려한 프랑스 왕실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된 장소와 잘 어울린다. 또한 근처 운하에서도 크로스컨트리와 근대 5종 경기도 개최된다.

파리 올림픽의 가장 멋진 경관을 선사할 경기장은 샹 드 마스(Champ de Mars)의 에펠 타워 스타디움일 것이다. 샹 드 마스는 에펠탑 뒤쪽으로 넓게 펼쳐진 녹지 공원이다. 프랑스 혁명 때는 공개 처형이 벌어진 장소이고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다섯 번의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었는데, 프랑스 혁명 100주년이 되는 1889년 박람회 때 에펠탑이 세워졌다. 그 뒤 수많은 전시회가 개최되었고, 수많은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이곳에서는 비치 발리볼과 패럴올림픽의 시각장애인 축구 경기가 열린다. 에펠 타워 스타디움은 사진 찍기 가장 좋은 장소로 평가 받는다.

비치 발리볼이 열리고 있는 샹 드 마스(Champ de Mars)의 에펠 타워 스타디움 ©Paris2024.org

이들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유산을 적극 활용한 경기장 중에서 그랑 팔레를 제외하면 모두 임시 경기장이고 지붕이 없는 개방 경기장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청량감을 제공하고 경기장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도 함성 소리를 전달해 흥분을 자아낼 것이다. 올림픽이 끝나면 모두 철거되는 임시 경기장들은 기후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자 목재와 저탄소 자재를 사용했다. 철거 뒤에도 다른 건축물이나 구조물에 재활용할 예정이다.

21C 지구 현실을 반영한
파리 올림픽

지금까지 올림픽은 일종의 허세에 가까운 돈잔치를 벌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자국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대국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선포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이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은 이런 관행에 변화를 주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국가와 도시의 국제적 위상 제고라는 허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대회는 짧지만 관리비가 많이 들고 쓸모는 적은 경기장은 영원하다. 둘째, 지역주민을 위한 생활체육의 인프라가 될 수 있는 방안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 경기장을 충분히 활용할 정도로 자국의 스포츠 리그와 대회가 활성화되지 못하다면 임시 경기장으로 대체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도시의 기존 문화적 유산과 자원을 활용한다면 임시 경기장도 충분히 멋질 수 있다. 셋째, 증가하고 있는 기후위기를 고려해서 경기장 설계를 해야 할 것이다. 자원의 재활용, 에너지 절약형 건축이 절실하다.

아직 개최되지는 않았지만, 파리 올림픽의 준비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덜 짓고, 더 낫게, 유용하게’라는 경기장 활용 모토는 21세기의 지구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미적인 것보다 기능적인 것의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파리 올림픽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바로
‘덜 짓고, 더 낫게, 유용하게’가
아닐까 싶다.
파리 올림픽의 경기장 활용 모토는
21세기의 지구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