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형찬
에코네트워크 센터장. 환경컨설팅 전문회사 에코네트워크는 국내 선도 기업을 대상으로 기후변화대응, 배출권거래제, 탄소감축 CDM사업, 환경·안전·보건 통합관리시스템,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2023년 7월 미국 국립환경예측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세계 평균온도는 섭씨 17℃로, 장비로 기온을 측정하기 시작한 19세기 말 이후 가장 높았다. 유럽연합과 기후변화감시기구 또한 2023년 7월 중순까지 지구 기온이 역대 최고라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 발표 직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가 아니라 끓어오르는 ‘지구 열대화(boiling)’ 시대가 도래했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이미 지구촌이 기후변화로 인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증거를 심심치 않게 목도하고 있다. 2022년 파키스탄 영토의 1/3이 잠겨 3,0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던 홍수가 대표적이다. 캘리포니아 등 북미 서부지역에서 이전보다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대규모 산불 역시 그중 하나로, 캘리포니아주 최대 손해보험사 스테이트 팜은 주택에 대한 신규 손해보험 인수를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한 연구에 따르면, 79억 명의 전 세계 인구가 평균적인 미국인처럼 소비하기 위해서는 지구가 다섯 개나 필요하다(지구생태발자국네트워크 2022년 발표). 즉, 현재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사회·경제시스템의 근본적인 전환이 불가피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발생할 수 있는 금융 위기를 ‘그린 스완(Green Swan)’이라는 용어로 규정했다. 그린 스완은 ‘블랙 스완 (Black Swan)’에 대비되는 말로, 예측하기 어렵지만 미래에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는 확실성이 있고, 시장에 막대한 충격을 야기하는 사건을 일컫는다. © BIS
기후위기는 곧 경제적 위기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이라고 불리는 국제결제은행은 2020년 팬데믹의 한가운데서 “기후변화로 인한 발생할 수 있는 금융 위기를 ‘그린 스완(Green Swan)’이라는 용어로 규정할 수 있으며, 국제 경제시스템은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욕 시장을 지낸 미국의 기업인 마이클 블룸버그는 기후변화 리스크는 재무적 리스크이며, 이에 대한 대응은 사회 정책이 아니라 현명한 투자라고 주장하였고, 이러한 견해는 최근 자본시장의 투자자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넓혀왔다. 최근 3년 사이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유럽·미국·일본·중국 등 전 세계 주요 나라에서 ‘탄소 중립’ 목표를 천명, 에너지·산업·수송 등 전 부문에 걸쳐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탈탄소사회에서 살아남아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한 글로벌기업들의 전략적 대응도 가속화되고 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shutterstock
기후 환경 위기 대응을 위한 주요 나라에서 확대·강화하고 있는 규제와 정책들은 전통적인 공장 환경 오염 배출 규제를 넘어서, 기업의 생존과 경쟁 우위 확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대두되고 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의 내연기관 판매 금지 선언(2030~2040년 사이)은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의 전기차 출시 경쟁을 가속화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럽연합 역내로 수입되는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에 대해 자국과 동일한 탄소배출권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등장하였다. 환경 배출 규제가 없거나 약한 국가에서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결국 선진국과 동일한 환경 대응 비용을 부담해야 하므로 대응에 실패할 경우, 원가 경쟁력이 약화되고, 판매 기회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플라스틱 폐기물로 인한 생태계 파괴, 자원 고갈 이슈에 대응하기 위한 각종 제품 환경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정부 규제의 강화는 탄소 배출량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이나 탄소배출권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미 다 배출 기업들의 자산가치 하락이나 좌초자산화 현상 등 부정적인 재무 영향을 야기하고 있다. 독일 무어부르크, 1.6GW급 석탄화력발전소는 독일의 탈 석탄 로드맵에 따른 조기 폐쇄(’38)로 10억 유로 손실이 예상되며, 영국 기반의 석유기업 비피(BP)는 2020년 탄소 배출비용 고려한 유가 전망 조정을 반영하여 자산가치를 재평가하라는 투자자 요구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한편, 환경 이슈를 투자 리스크로 인식하기 시작한 투자자 그룹들은 투자한 자산(기업)이 직면한 기후·환경 관련 리스크와 재무적 영향을 평가하여 투자 결정과 포트폴리오 관리를 고려하고 있다. 7조 달러 이상의 자산을 관리하는 자산운용사 블랙 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기후변화 리스크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자본시장은 미래 리스크를 현재 가격에 반영하므로, 기후변화의 속도보다 자본 배분의 변화가 훨씬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최근 5년 동안 다양한 글로벌 주요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 은행들의 연합이 결성되었는데, 이들은 투자한 기업에 리스크 평가를 위한 환경 정보의 공개뿐만 아니라 탄소 감축 목표 공약, 경영진 평가와 성과 보수에 환경 목표 달성 성과를 반영하라는 적극적인 개입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주요 나라의 연기금 연합체인 ‘클라이밋 액션100 플러스(Climate Action 100+)’는 주주로서 쉘(Shell)이나 비피(BP) 등 주요 선도 기업들에 중장기 탄소 감축 목표 설정과 경영진 보수 연계 약속을 받아 냈다.
시티은행, 비앤피 파리바,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주요 은행들이 참여하고 있는 ‘탄소중립 은행연합(Net-zero Banking Alliance)’은 자신들이 지분 투자, 대출, 보증, 보험 등의 금융을 제공한 기업들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목표를 설정하고, 실제 금융 상품에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석탄이나 석유 사업에 대한 금융을 금지하거나, 대출 한도를 축소하고 있으며, 탄소 배출이나 환경 이슈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재무적 리스크를 신용 평가에 반영하여 금리를 책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에 부응하여 미래 비즈니스 경쟁력을 유지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선제적인 대응은 공급망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변화 및 환경 이슈에 따른 공급망 리스크 관리를 위해 공급사 등 협력업체에 환경 정보 공개, 탄소 감축 행동 동참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에 적시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고객과의 지속적인 거래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경쟁사 대비 마케팅 경쟁력이 떨어져 판매 기회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일례로 폭스바겐, BMW, 다임러 등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은 자신의 제조 공장뿐만 아니라 공급망을 포함한 가치사슬 전반의 탄소 제로화를 위해 부품 공급사에 탄소 감축 목표 설정과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폭스바겐이나 다임러는 이러한 요구를 이행하지 않는 기업을 공급사에서 배제할 방침이다.
한편, 글로벌 생활용품 제조사인 유니레버는 모든 납품 청구서에 탄소배출 정보를 함께 제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공급사 간 환경 측면의 성과를 관리하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퓨마는 2024년부터 공식 푸마 축구 레플리카 유니폼(유로 및 코파 아메리카 대회)을 모두 재생 섬유 직물로 만들기 위해 공급사와 공동으로 투자하고 있다.
또한 애플은 공급사 청정에너지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부품 공급기업들에게도 100%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을 요구하고, 공급사와 재생에너지 발전소 공동 투자를 통해 장기 전력 구매 계약 추진을 지원하고 있다.
실제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도 이러한 요구에서 예외가 아니며,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주요 기업들도 글로벌 고객사의 요구를 고려하여 탄소 감축과 재생에너지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클라이밋 액션100 플러스(Climate Action 100+) ©Climate Action 100+
푸마 축구 레플리카 유니폼 ©푸마
이와 같은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기업들이 미래 친환경으로 생존하고,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친환경 경영전략 내재화, 환경경영 거버넌스 정립, 환경성과 측정관리 기반 구축이 필수적이다.
첫째, 글로벌 기후·환경 위기 대응을 위해 최근 이해관계자들은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환경 영향의 감소에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직접 운영하는 공장뿐만 아니라 고객에게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원재료부터 판매 후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환경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이 고객 가치를 창출하고, 기업 운영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제품전략, 경영전략에 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유니레버가 자사의 제품 개발 전략에 지속가능성 요소를 통합하여 소위 서스테이너블 리빙 브랜드(Sustainable Living Brand) 26개를 육성, 그룹 매출 성장의 70%를 이끌어내고, 공급사의 경쟁력 강화와 제조 프로세스의 원가 절감(에너지·원료·용수 등)을 추진한 사례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유니레버 ©shutterstock
둘째, 환경 경영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경영진 수준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고, 동기 부여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최근 국제회계기준재단 등이 신규로 제정한 글로벌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등 다양한 공시 기준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사안이다. 환경 경영이 기업의 전략에 통합되고, 실질적인 이행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최고 경영진, 가치사슬의 각 기능별 최고 책임자의 책임이 부여되어야 하며, 환경 경영 성과가 이들의 평가와 보상 체계에 반영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부정확한 정보로 투자자, 소비자들의 왜곡된 의사 결정을 야기하는 소위 ‘그린워싱’ 행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례로 영국 광고표준심의위원회는 2022년 6월 영국의 유통기업 테스코에 식물성 단백질 원료를 사용한 ‘플랜트 셰프 버거’가 친환경적이라고 전한 TV·라디오·온라인 광고 금지 결정을 내렸다. 그 사유는 테스코는 ‘육류는 지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일반적인 증거만 제시했을 뿐, 원료 재배부터 가공에 이르는 전 생애주기에서 식물성 단백질 원료가 기존 육류보다 어떤 강점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데이터로 입증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린워싱 논란은 기업의 고객 상실이나 기업 가치 하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기업 활동, 제품·서비스의 환경 영향을 데이터에 기반하여 측정하고, 내부 의사결정과 외부 이해관계자 소통에 활용하기 위한 기반 구축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