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건식
성균관대학교 미디어문화융합대학원 초빙교수. 전 KBS America 대표, 공영미디어연구소장, 드라마국 팀장을 역임했다. <OTT 트렌드 2024> 등 다수의 저술이 있다.
최근 FAST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FAST는 ‘Free Ad-supported Streaming TV’의 약자로,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의미한다. 국내에선 삼성 TV 플러스와 LG 채널이 해당된다.
넷플릭스나 티빙 같은 OTT는 유료TV 셋톱박스 없이 인터넷망을 이용하여 광고 시청 유무에 따른 요금제(AVOD, SVOD, TVOD 등)에 가입하고 콘텐츠를 선택하여 시청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이다. 광고 때문에 시청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사람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여러 OTT를 이용하다 보면 콘텐츠 이용 비용이 증가한다는 단점이 있다.
FAST 역시 유료TV 셋톱박스 없이 인터넷망을 이용한다. 단, 회원 가입 없이 편성된 채널의 콘텐츠와 광고를 시청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다. FAST는 다양한 콘텐츠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최신 콘텐츠를 보기가 어렵고, 편성된 대로만 시청해야 하고, 무조건 광고를 봐야 하는 단점이 있다.
FAST는 ‘차세대 미디어 플랫폼’ 또는 ‘차세대 케이블’로 불리면서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FAST가 급성장하게 된 이유는 OTT 구독 요금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OTT는 저렴한 요금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다가 모든 미디어 기업들이 OTT를 출시하면서 이용자의 구독 채널 역시 늘어나게 됐다.
방송통신위원회의 ‘OTT의 주요 현황과 방송시장에 미치는 영향(2024)’에 따르면 우리나라 유료 OTT 서비스 이용자 중 다중구독은 평균 2.8개에 달한다. 미국의 경우 평균 구독 개수는 4.9개, 평균 구독료는 월 50달러에 달하는데, 이마저도 계속 상승할 전망이다(출처: Castr). 이른바 ‘스트림플레이션(Stream + Inflation)’으로 이용자들은 구독과 해지를 반복하고 있다. 구독료에 부담을 느끼는 OTT 이용자는 광고 기반의 AVOD나 FAST로 갈아타고 있다.
둘째, 코드 커팅(Cord-cutting)이다. 코드 커팅이란 유료방송 시청자가 가입을 해지하고 OTT로 전환하는 것을 말하는데, 해지 후 기존 TV로 인터넷을 이용하여 지상파처럼 콘텐츠를 볼 수 있다.
셋째, 기술의 발전이다.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서 케이블 TV 없이도 고화질의 콘텐츠를 즐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올해 슈퍼볼 중계의 경우 폭스는 플랫폼에 따라 HD와 4K 화질을 제공했는데, FAST 서비스인 투비는 4K로만 중계했다. 4K는 해상도와 화질이 HD보다 훨씬 높고 선명하다.
또한 FAST 서비스별로 200~300개에 달하는 채널을 보유하고 있어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 무료이고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FAST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FOX의 FAST 채널인 투비(Tubi)는 FAST 사상 최초로 ‘2025 슈퍼볼’을 생중계했다. ©Tubi
FAST 시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성장 중이다. 미국의 시청률 조사 기관 ‘닐슨’이 플랫폼별 TV 시청 시간을 조사하는 가우지(Gauge)에 따르면 2024년 12월 말 스트리밍 플랫폼의 비중은 43.3%에 달한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비중이 높은 가운데, FAST 채널인 로쿠 채널과 투비, 플루토 TV가 각각 2.0%, 1.7%, 0.9%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2024년 말 현재 로쿠 채널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8,980만 명으로 전년 대비 12% 증가했으며, 전 분기보다 430만 가구가 증가한 수치다. 투비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도 9,700만 명에 달한다.
비디오 스트리밍 솔루션 회사인 무비(MUVI)에 따르면 글로벌 탑 FAST 서비스와 채널은 플루토 TV, 삼성 TV 플러스, 로쿠 채널, 라쿠텐 TV, LG 채널 순이다. 무비는 2027년까지 플루토 TV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8,900만 명까지, 삼성 TV 플러스는 5,8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통계 전문 회사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FAST 규모는 116.8억 달러(약 16.8조 원)로, 이 중 대부분이 미국에서 발생(57.8억 달러)할 것으로 예상한다. 2029년 가입자 수는 11억 명에 달하며, 수익은 연평균 8.42%가 증가해 161.4억 달러(약 23.2조 원)를 이룰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 FAST 시장은 아직 미국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다. 2011년에 시도되었던 한국형 FAST인 ‘에브리온TV(EveryOn TV)’는 2019년에 서비스를 종료하기도 했다. 그러나 글로벌 FAST 시장의 성장에 따라 국내에서도 점차 FAST에 대한 이해도가 증가하고 활성화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 전문 연구소 다이렉트미디어랩의 ‘무료 광고 기반 스트리밍 TV, FAST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FAST 시장 규모는 올해 4,789만 달러(약 690억 원)에서 2029년에는 1억 6,142억 달러(약 2조 3,268억 원)로 증가할 전망이다. 방송과 디지털 광고 시장 모두를 흡수하면서 매년 평균 25% 이상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한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글로벌 FAST 시장에 일찌감치 진입했다. 삼성 TV 플러스는 전 세계 24개국에서 약 2,500개 채널을 제공 중인데 글로벌 누적 시청 시간은 30억 시간을 돌파했다. LG 채널은 전 세계 28개국에 3,500개 이상의 채널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용자 수는 5,000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K-콘텐츠를 활용한 글로벌 확장 전략을 추진 중이다.
국내 NEW(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의 자회사인 뉴 아이디(NEW ID)는 국내 콘텐츠를 확보하여 국내·외 FAST 플랫폼에 채널을 론칭하여 운영하고 있다. 1,800개의 글로벌 콘텐츠를 글로벌에서 300개 이상의 채널을 운영하며, 80개 이상의 플랫폼과 제휴를 맺고 있다. 대표적인 채널은 ‘빈지 코리아(Binge Korea)’로, 뉴 아이디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세계 최초의 K-콘텐츠 전문 FAST 플랫폼이다.
FAST 플랫폼의 콘텐츠 약 70% 이상이 기존 지상파 및 케이블 TV에서 방송된 콘텐츠이다. 이밖에도 기존의 실시간 채널을 제공하거나 투비의 슈퍼볼 중계처럼 스포츠 콘텐츠나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개하기도 한다. 드라마·영화·스포츠·음악 등 폭넓은 장르와 더불어 잊혀가는 명작 콘텐츠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소비를 창출하여 IP를 재활용하는 생태계를 구축할 수도 있다.
이용자가 FAST로 이동하는 것은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날 수도 있다. 국내 FAST 시장도 시청 시간과 광고 매출 면에서 꾸준히 성장 중인 가운데, 시청자·광고주·콘텐츠 제작자 등 이용자 가치 제공 중심으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