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이종철
IT 전문 미디어 바이라인네트워크 전 기자, 수종철의 뉴스레터 발행 중
CES 2025 개최 이전부터 엔비디아(NVIDIA) 젠슨 황 CEO가 키노트(keynote)를 진행한다는 사실이 크게 화제가 됐다. AI 학습과 추론에 필수인 GPU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엔비디아의 CES 참석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황 CEO의 키노트는 차세대 AI 가속기인 ‘블랙웰’의 양산 상태나 AI 트렌드 정도를 공유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물리 AI(Physical AI)’라는 개념을 들고 나오며 CES 2025 스타디움을 불태웠다. 이날 키노트 현장에는 1만 2,000여 명이 참석했고, 마치 록스타의 콘서트와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황 CEO가 선보인 ‘물리 AI’는 기존의 디지털 트윈에 생성형 AI를 접목한 개념이다. 디지털 트윈은 물리 세계의 디지털 복사본을 말한다. 주로 1:1 스케일 3D로 제작되나, 다쏘시스템 같은 업체에서는 신약 개발 등에 쓰이는 확대 스케일로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도시, 공장, 도로 등의 디지털 복사본을 만들어 그 위에서 스스로 판단하는 자율주행차와 로봇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엔비디아는 물리 AI를 엔비디아 GPU 위에서 구동되도록 개발 툴과 학습 모델 등을 제공한다고 황 CEO는 밝혔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키노트 전경 ©이종철
삼성과 LG도 비슷한 개념의 키노트를 진행했는데, 삼성전자는 ‘비스포크 홈 AI’를, LG는 ‘공감 AI’를 선보였다. 삼성과 LG의 가전 대부분에는 사람의 환경을 바로 이해하는 생성형 AI가 탑재되며, 가정 단위의 디지털 트윈을 만들어 사용자들이 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가전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삼성과 LG는 전시도 같은 콘셉트로 진행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B2B용 디지털 트윈 솔루션인 ‘스마트싱스 프로(SmartThings Pro)’를 주력으로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
몇 년간 CES의 주인공이던 토요타는 제로 에미션(유해 물질 무배출 시스템) 달성을 목표로 하는 친환경 도시 ‘우븐 시티(woven city)’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우븐 시티는 후지산 기슭에 건설될 예정으로, 토요타 임직원 가정을 시작으로 학교, 공원, 직장 등을 조성해 친환경 도시를 건설한다는 대담한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종합해 보면 대다수 기술 기업들은 AI를 제반 기술에 놓고, 디지털 트윈을 결합해 에너지 효율, 친환경, 안전 등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AI가 두 번째 국면에 접어들며 더욱 안전한 AI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삼성 부스의 ‘스마트싱스 프로’ 전경 ©이종철
젠슨 황 CEO의 등장으로 CES에 대한 관심이 키노트로 쏠렸지만 CES는 여전히 전시회가 핵심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15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아 ‘여전히 CES’라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전 CES들과 다르게 CES 2025에서는 약간의 지각변동이 눈에 띄었다. CES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전시관은 LG전자의 휘황찬란한 OLED 월인데, 이제는 삼성과 LG 모두 화려함보다는 내실을 택하고 있다. 두 기업은 특히 ‘스마트싱스 프로’, ‘LG DOOH Ads’ 같은 B2B 솔루션을 선보이며, 앞으로의 사업 방향이 B2B로 일부 전환될 것임을 선보인 바 있다. CES 측에서의 공식 입장도 마찬가지였는데, 미디어 간담회 자리에서 전 CTA 회장이자 현 CEO인 게리 샤피로 역시 “올해는 CES가 B2B 행사로 전환되는 첫 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과 LG 외에도 친환경 솔루션을 선보이는 파나소닉, 지능형 소프트웨어를 선보인 보쉬 등 대부분의 기업들이 B2B 사업에 매진함으로써 ‘소비자 가전전시회’라는 이름이 무색해졌다. TV, 게이밍 기기 등을 만드는 중국 업체 몇 개와 소니만이 소비자용 제품을 선보였을 뿐이다.
LG 부스의 ‘LG DOOH Ads’ 솔루션 전경 ©이종철
미래 기술을 미리 선보이는 CES 특성상 실제로 구현되지 않은 콘셉트 기술들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모빌리티관은 대부분 실제 구동이나 판매가 가능한 차량들을 들고 나왔다.
특히 첨단 농기구를 만드는 존 디어(JOHNDEERE)는 자율주행 2세대 플랫폼을 탑재한 과수원용 트랙터, 덤프트럭, 전동 잔디깎이를 선보여 빽빽한 견과류 나무 사이에서도 무리 없이 주행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건설 현장 차량을 만드는 캐터필러(Caterpillar)는 건축 사이트를 완전히 자동화 및 전동화하는 플랫폼을 선보였다.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 등의 기술을 동원해, 건축 차량이 사이트 내를 자율주행하며 충전까지 자동화하는 전시를 진행했다.
건설 현장 차량을 만드는 캐터필러가 선보인 전동화 건축 장비 플랫폼 ©이종철
존 디어가 선보인 자율주행 플랫폼을 탑재한 과수원용 트랙터, 전동 잔디깎이 ©이종철
이 외에도 일본 업체들인 쿠보타(KUBOTA), 오시코시(Oshkosh) 등도 자율주행 및 자동화 차량들을 선보였는데, 해당 제품들 역시 콘셉트 제품이 아닌 실제 작업 현장에 투입 중인 제품들이다.
모빌리티관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기업은 전기 수직 이착륙 항공기(eVoTL)를 만드는 중국의 엑스펭 에어로트(Xpeng Aeroht)와 전기차 브랜드 지커(Zeekr)를 선보인 중국의 지리자동차(Geely Automobile)였다.
엑스펭 에어로트는 eVoTL을 모듈식으로 접어 차에 수납할 수 있는 플라잉 카를 선보였는데, 이 제품 역시 양산을 앞두고 있으며 곧 프리세일을 시작할 예정이다.
지리자동차의 지커는 저렴한 가격에 고급 트림 전기차를 선보이는 브랜드로, SUV 제품인 믹스, 대형 차량인 009 그랜드 등을 들고 나왔다. 해당 차량들은 자율주행 시대를 대비해 앞자리 두 의자를 원터치로 회전시켜 앞뒤 좌석이 서로 마주 보게 만들 수 있다.
국내 업체의 경우 충전 플랫폼인 채비, 엠비언트 라이팅과 홀로그래픽 윈드실드를 선보인 현대모비스, 체인 없는 전기자전거 시스템을 들고나온 HL 만도, 무선 배터리 시스템(WBMS)을 선보인 LG이노텍 등이 훌륭하게 전시를 마쳤다.
오시코시의 쓰레기 처리 트럭. 자동으로 쓰레기통을 트럭에 비워주는 제품으로, 이미 미국 몇 개 주에 출하됐다. ©이종철
지커의 전기차인 대형 차량 009 그랜드는 자율주행 시대를 대비해 앞뒤 좌석이 마주 보게 만들었다. ©이종철
유레카 파크는 CES 내 스타트업 전시 공간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들이 집중적으로 소개되는 곳이다. 이번 CES 2025에서 유레카 파크는 ‘인간 중심적 기술’이라는 키워드 아래 다양한 솔루션들이 등장했다. 특히 소규모 기업들 역시 AI를 적극 도입하며, 장애인과 노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첨단 제품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올해 CES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제품은 rPPG(원격 광혈류 측정)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미러였다. 페이스하트 카디오미러(FaceHeart CardioMirror)는 거울을 보는 것만으로 심혈관 질환을 측정할 수 있는 제품으로, 사용자의 얼굴색 변화를 분석, 90% 정확도로 심방세동(AFib), 심부전(HF), 심박수(HR), 혈압(BP), 호흡수(RR), 산소 포화도(SpO2), 심박수 변이도(HRV),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한다. rPPG는 스마트 워치에서 건강 이상 징후를 파악하는 기술인데, 기기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발생하는 오류를 AI가 줄이는 역할을 한다. 이는 착용형 기기 없이도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어 사용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한 기술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비침습식 혈당 관리기도 많이 등장했다. 국내 업체 아폴론 등이 선보인 비침습식 혈당 측정 기기는 광학 센서를 활용해 피부 아래 혈액 속 포도당 수치를 감지한다.
이 외에도 시각을 보조하는 제품도 많이 등장했다. 메이크센스(Makesense)의 햅틱 내비게이션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 도구다. 아이폰의 카메라와 가속도계 센서를 활용해 사용자가 몸을 돌리면 반대로 손잡이가 돌아가 길을 안내한다.
장애물을 감지하고 우회하도록 설계되어 실제 환경에서의 이동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비디 랩스(Vidi Labs)의 시커(Seekr) AI는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바디캠이다. 카메라가 보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설명해주어 시각장애인이 주변 환경을 인식할 수 있게 도와준다.
페이스하트 카디오미러의 거울을 보는 것만으로 심혈관 질환을 측정할 수 있는 제품 ©이종철
아폴론의 침습식 혈당 관리기 ©이종철
판타시아XR(FantasiaXR)의 AI 기반 스마트 글래스 룩테크(LookTech)는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인식해 레시피를 추천하거나 음식의 칼로리를 계산해준다. 챗GPT, 퍼플렉시티 등 다양한 생성형 AI를 탑재할 수 있으며, 이를 활용해 AI 비서처럼 일정을 관리하고 음악을 재생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로보틱스에도 빠르게 AI가 도입되고 있다. 일본 기업 카일라스 로보틱스(KAILAS ROBOTICS)는 로봇팔에 카메라를 장착해 섬세한 작업이 가능하도록 하였으며, ROMS의 물류창고 로봇은 저렴한 가격과 작은 크기로 중소기업에게 적합한 물류 자동화 솔루션을 제공한다.
오픈드로이드(OPEN DROIDS)의 R2D3는 저렴한 가격에 집안일을 대신해주는 로봇으로, 세탁물 접기, 설거지 등 다양한 작업을 자동화하며 현재 재활 센터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특히 중국에서 생산해 800달러에 불과한 가격 경쟁력으로 주목받았다. 또한 현장에서 가장 인기를 끈 중국 기업인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는 2,000만원 대에 불과하다. 유니트리의 사족보행 로봇인 Go2-W는 약 300만원 대에 구매할 수 있어 다양한 산업 현장이나 보안 현장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이 하는 일 대부분을 할 수 있는 로봇 R2D3 ©이종철
메이크센스의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 도구 ©이종철
CES 2025는 기술이 인간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음을 보여준 행사였다. 특히 유레카 파크에서 선보인 스타트업들의 제품들은 ‘기술은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철학을 실현한 사례였다. AI와 헬스케어의 결합, 접근성을 높인 사용자 경험,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로봇 기술 등은 모두 인간 중심적 기술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종합해 보면 CES 2025의 핵심은 결국 ‘인간을 위한 AI, 휴먼 센트릭 AI’로 정리할 수 있다. 기술이 인간의 세상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하느냐에 따라, 기존의 불편을 해소하고 더 건강한 방식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아직까지 생성형 AI는 초기로 분류하는 편인데, AI 발전에 따라 앞으로 인간이 얼마나 더 즐겁고 편안할지의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미래의 CES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물류 자동화 솔루션을 제공하는 ROS의 물류창고 로봇 ©이종철
판타시아XR의 AI 기반 스마트 글래스 ©이종철
스포츠 분야에도 AI 도입이 활발하다. CES 혁신상을 수상한 바 있는 알파 비츠(Alpha Beats)는 운동선수용 멘탈 트레이닝 솔루션을 선보였다. 음악과 뇌파 감지(뉴로피드백)를 결합한 멘탈 트레이닝 솔루션으로, 신경 과학과 엔터테인먼트를 완벽하게 통합해 선수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전반적인 웰빙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최고의 정신적 성과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알파 비츠의 기술은 특히 '인간 중심적 기술' 트렌드와 맞물려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보드롭(Boardrop)의 스마트 보드는 게임과 스포츠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집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 보드는 어떤 액세서리를 붙이냐에 따라 스노보드, 스케이트보드 등의 연습에 사용 가능하다. 사용자는 보드 액세서리를 연결하고 태블릿 등을 보며 트레이닝을 한다. AI 기반 스마트보드 기술을 통해 초보자는 안전하게 실력을 키울 수 있고, 전문가들은 한층 더 높은 수준의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사용자의 나이, 몸무게, 키 등을 반영해 개인화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코어 보드 가격은 398달러부터 시작하며, 스노보드나 스케이트보드 같은 추가 액세서리는 별매다.
훕(huupe)은 자율주행차에 준하는 기술을 탑재한 농구 림을 선보였다. 훕 미니(huupe mini)는 레이더와 라이다(LiDAR) 기술을 사용하여 슈팅 정확도와 거리 추적을 카메라 없이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이 스마트 림은 인터랙티브 게이밍 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원격으로 친구들과 슈팅 게임을 즐기거나. 훕 시티 로얄(huupe City Royale), 훕 DPC(Daily Prize Challenge) 등의 게임 모드를 제공해 원격으로 상대와 경쟁하거나 개인 기록을 측정 가능하다. 이외에도 훕 미니는 내장 스크린에서 유튜브, 훌루, NBA 리그 패스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소비할 수도 있다.
©Boardrop
훕 미니는 벽에 거는 제품으로, TV와 유사한 월 마운트 킷으로 설치해 사용할 수 있다. 훕은 훕 미니 외에도 정규 농구 림 사이즈의 훕 프로 역시 판매 중이다.
훕이 농구를 온라인 게임으로 만들었다면, 너자(Neoja)는 농구장 전체를 게임으로 만든다. 프로젝터, 각종 센서, 카메라를 농구 코트에 탑재해 실시간 통계, 매력적인 비주얼 등을 제시한다. 플레이어는 실시간으로 자신의 기록을 측정하고, 기술 강화 트레이닝에 참여할 수 있다. 스포츠는 현재도 가장 뛰어난 엔터테인먼트지만, 기술과 AI를 도입해 훈련 및 성과 추적을 더욱 높이겠다는 포부가 돋보인다.
©huupe
©위로보틱스
휴로틱스와 위로보틱스 등이 선보인 외골격 로봇은 주행 보조, 재활, 달리기 보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바지와 발목에 기기를 간단히 걸치면, 로봇이 사용자의 보행이나 달리기에 맞춰 힘을 실어주는 형태다. 위로보틱스의 윔(WIM)은 1.6kg의 초경량 로봇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손쉽게 착용할 수 있다. 또한, AI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모바일 앱과 연동해 사용자 보행 데이터를 분석하고, 개인화된 보행 솔루션을 제공한다. 보조 모드, 운동 모드, 등산 모드 등 다양한 모드 역시 제공한다.
©Neo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