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차경진
데이터로 고객 경험을 디자인하는 DCX 전문가.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경영정보시스템 전공 주임교수이며, 비즈니스인포메틱스학과 교수이다.
<데이터로 경험을 디자인하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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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소비자는 더 이상 단순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취향, 감정,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진 ‘맞춤형 경험’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 기대를 현실로 만드는 것이 바로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다. 초개인화는 기존의 개인화(personalization)를 넘어, 사용자의 행동 패턴, 실시간 상황, 감정 상태 등을 분석해 능동적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념이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의 발전이 초개인화를 뒷받침해왔지만, 최근 생성형 AI(Generative AI)의 등장으로 초개인화의 혁신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개인화된 콘텐츠나 맞춤형 마케팅 메시지를 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초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도, 고객마다 다른 맥락을 고려한 콘텐츠와 시나리오를 사람이 직접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스포츠 산업에서도 이러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스포츠 팬들은 이제 단순히 경기를 관람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과 선수에 대한 맞춤형 정보와 콘텐츠,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 이에 스포츠 구단과 리그는 팬들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초개인화 마케팅은 단순히 고객의 이름을 메시지에 넣거나 과거 구매 이력을 바탕으로 상품을 추천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고객의 실시간 상황, 감정 상태, 위치, 날씨, 주변 환경 등 다양한 맥락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가장 적절한 순간에 가장 관련성 높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초개인화 마케팅에서는 고객을 단순한 세그먼트(segment)나 그룹의 일부가 아닌, 고유한 선호도와 필요를 가진 개인으로 보는데, 고객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하여 개별 고객의 여정에서 가장 효과적인 접점을 찾아내고, 그 순간에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스포츠 마케팅에서의 초개인화는 팬들의 응원 팀, 좋아하는 선수, 경기 관람 패턴, 굿즈 구매 이력, 소셜 미디어 활동 등 다양한 데이터를 통합하여 각 팬에게 맞춤형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예를 들어, 특정 선수의 팬은 그 선수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한 하이라이트 영상을 받고, 전술에 관심이 많은 팬은 경기 분석 중심의 콘텐츠를 제공받는 식이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초개인화 마케팅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까지는 맞춤형 콘텐츠를 대규모로 생성하는 것이 기술적, 리소스적 제약으로 인해 어려웠지만, 생성형 AI는 이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었다. 이제 AI는 개인의 선호도, 행동 패턴, 상황적 맥락을 고려한 맞춤형 텍스트, 이미지, 음성, 영상 등을 실시간으로 생성할 수 있게 되었다.
멀티모달 AI의 발전도 초개인화 마케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텍스트, 이미지, 음성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동시에 분석하고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은 보다 풍부하고 입체적인 맞춤형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스포츠 산업에서는 경기 영상에서 특정 선수나 장면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이를 팬의 선호도에 맞게 편집하여 제공하는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최근에는 단일 AI 시스템이 아닌, 여러 AI 에이전트가 협업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각각의 AI 에이전트가 특정 역할(고객 분석, 콘텐츠 생성, 채널 최적화 등)을 담당하고, 이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전체 마케팅 프로세스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AI 에이전트 협업 시스템은 마케팅의 복잡성과 규모에 관계없이 초개인화된 경험을 일관되게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다.
또한, AI는 실시간으로 고객의 반응을 분석하고 학습하면서 지속적으로 마케팅 전략을 최적화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는 A/B 테스팅이나 멀티변량 테스트 등 기존의 최적화 방식을 넘어, 개별 고객 수준에서 실시간으로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작년에 필자가 산학협력 프로젝트로 진행했었던 아모레퍼시픽 사례는 초개인화 마케팅이 기업 환경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아모레퍼시픽과의 산학협력 프로젝트에서 우리 팀은 퍼포먼스 마케팅의 응답률을 높이기 위한 초개인화 전략을 개발했다. 프로젝트 시작 전, 기존 마케팅의 응답률은 1%에 불과했고, 초개인화된 마케팅을 시도하고 싶어도 자원의 한계가 분명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마케팅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6개의 AI 에이전트 시스템을 개발했다. 먼저, 타겟팅 AI 에이전트는 고객 데이터를 분석하여 누구에게 어떤 상품을 추천하는 것이 적합한지 결정하고, 그 추천의 신뢰도까지 제공했다. 소구점 AI 에이전트는 타깃 고객의 페르소나를 분석하여 어떤 핵심 메시지가 가장 효과적일지 제안했다.
프로모션 전략 AI 에이전트는 다양한 프로모션 전략(제품 중심, 고객 맥락 중심 등)을 신뢰도와 함께 제시하며, 최적의 캠페인 방향을 설정했다. 문구 생성 AI 에이전트는 이 전략을 바탕으로 실제 마케팅 메시지를 작성했고, AI 디스크리미네이터(Discriminator; 판별자 – 편집자 주)는 생성된 문구가 실제로 고객에게 보내기에 적합한지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응답 예측 AI는 해당 메시지에 대한 고객의 반응률을 예측했다.
이 6개의 AI 에이전트가 유기적으로 협업하면서, 전체 퍼포먼스 마케팅 프로세스가 자동화되었고, 초개인화된 마케팅이 실현되었다. 그 결과, 마케팅 응답률이 기존 대비 몇 배로 증가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CES 2025에서 최초의 AI 기반 음성 인식 챗봇을 선보인 아모레퍼시픽. 고객 개개인에게 맞춤형 메이크업을 제공하기 위해 개발된 특허 솔루션이다. ©아모레퍼시픽
초개인화 마케팅은 앞으로 더욱 발전하여 마케팅 분야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특히 스포츠 마케팅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AI 에이전트 생태계가 더욱 확장될 것이다. 필자가 아모레퍼시픽 사례에서 언급한 6개의 AI 에이전트는 앞으로 더 다양하고 전문화된 형태로 발전하며, 이들 간의 협업도 더욱 고도화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마케터의 역할도 변화시킬 것이다. 마케터는 더 이상 반복적인 실행 업무에 시간을 쏟는 것이 아니라, AI 시스템을 관리하고 창의적인 전략 방향을 설정하는 고차원적인 역할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또한, 고객의 맥락과 상황을 더욱 세밀하게 이해하고 대응하는 초맥락화(Hyper-contextualization) 마케팅이 보편화될 것이다. 스포츠 팬의 경우 경기장에 있을 때, 집에서 TV로 경기를 시청할 때, 이동 중에 하이라이트를 볼 때 등 상황별로 완전히 다른 경험을 제공받게 될 것이다. AI는 이러한 상황적 맥락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가장 적절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디지털 트윈과 메타버스 기술의 발전도 초개인화 마케팅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스포츠 팬의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구축하여 가상 환경에서 다양한 마케팅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고, 최적의 전략을 도출하는 접근법이 확산될 수 있다. 또한 메타버스 환경에서 팬들이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가상 경기장을 방문하고, 다른 팬들과 교류하며, 선수들과 가상 만남을 갖는 등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초개인화된 경험을 제공받게 될 것이다.
앞으로 더 다양한 AI 에이전트들 간의 협업이 현실화되면, 기업에서는 AI 에이전트와 인간 직원이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 직원 간의 새로운 역할 분담과 직무 정의가 필요하며, 이러한 변화에 발맞춘 조직문화 설계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스포츠 산업에서 초개인화 마케팅은 팬 경험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미국프로농구(NBA)는 팬들의 취향과 행동 패턴을 분석하여 맞춤형 하이라이트 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AI가 경기 영상을 자동으로 분석하고, 각 팬이 좋아하는 선수나 플레이 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클립을 생성하여 제공한다. 이를 통해 팬들의 앱 사용 시간과 참여도가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미국프로야구(MLB)는 팬들의 실시간 위치와 경기 상황을 연동한 맞춤형 알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좋아하는 선수가 타석에 들어설 때나 팬이 응원하는 팀이 역전승을 할 가능성이 높은 중요한 상황에서 맞춤형 알림을 보내, 팬들이 주요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돕고 있다.
프리미어리그(PL)의 구단들 또한 티켓 판매에 초개인화 전략을 적용하고 있다. 팬들의 경기 관람 패턴, 소셜 미디어 활동, 위치 정보 등을 분석하여, 특정 팬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경기를 예측하고 맞춤형 티켓 프로모션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티켓 판매율을 높이고, 경기장 방문 경험을 개선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초개인화 마케팅이 고도화될수록 고객 데이터 활용에 대한 프라이버시 이슈와 윤리적 고려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스포츠 산업에서도 팬들의 데이터를 어떻게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수집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책과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것이다. 팬들의 신뢰를 얻고 유지하는 것이 초개인화 마케팅의 지속가능한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될 것이다.
스포츠 산업은 팬들의 감정적 유대감과 참여도가 높은 특성상, 초개인화 마케팅을 통해 가장 큰 혁신과 성과를 이룰 수 있는 분야다. 각 팬의 선호도와 행동 패턴을 깊이 이해하고, 이에 기반한 맞춤형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팬 충성도 강화와 새로운 수익 창출 기회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초개인화 마케팅은 스포츠 비즈니스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잡을 것이며,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구단과 연맹이 미래 스포츠 산업의 주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