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희선
일본 트렌드 칼럼니스트이자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생활에 밀접한 소비재와 리테일 산업에 대한 칼럼을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도쿄 리테일 트렌드>, <공간, 비즈니스를 바꾸다> 등의 책을 썼다.
스타벅스는 ‘스타벅스 로스터리’라는 체험형 점포를 전 세계에 6곳(미국 시애틀·뉴욕·시카고, 중국 상하이, 이탈리아 밀라노, 일본 도쿄)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인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도쿄’가 도쿄의 나카메구로에 있다. 약 900평 규모의 4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커피와 차를 중심으로 다양한 경험을 제안하고 있다.
매장을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붉은 구리색의 대형 로스터리로 그 규모가 압권이다. 로스터리에서 실제로 원두를 볶아 매장 내 투명 관을 통해 커피콩이 매장 안을 이동하는 장면은 다른 곳에서 쉽게 보기 힘든 광경이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인 쿠마 켄고(Kuma Kengo)가 디자인한 로스팅 기계는 16.7m의 크기로 벚꽃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졌는데, 그 이유는 스타벅스 로스터리가 위치한 나카메구로가 벚꽃으로 유명한 동네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커피를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바리스타의 설명과 함께 다양한 생산지의 커피를 비교해서 마실 수 있다. 2층의 티바나(TEAVANA)는 차를 중심으로 한 체험이 가능한 공간이다. 차 바리스타가 상주하여 차를 블렌딩해주거나 찻잎에 대하여 설명을 들으며 체험해 볼 수 있다. 3층에는 스타벅스가 특별히 제작한 칵테일을 마셔볼 수 있는 바가 마련되어 있다.
스타벅스 로스터리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머무는 내내 오감을 자극한다. 커피의 향기, 커피 볶는 소리, 눈앞의 거대한 대형 로스터리, 볶아진 커피가 투명 관을 통해 이동하는 모습, 그리고 바리스타가 추천해 준 커피를 마시는 것까지. 방문객의 상당수가 1층에서 판매하는 나카메구로 한정 굿즈를 구입해 나가는 모습을 통해 이 공간을 즐긴 이들은 스타벅스의 팬이 된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펜더(Fender)는 미국의 기타, 베이스 등 악기를 제조하는 업체이며, 특히 기타의 퀄리티는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펜더가 2023년 6월 브랜드 역사상 처음으로 플래그십 점포를 만들었는데, 흥미롭게도 미국이 아닌 도쿄 하라주쿠에 오픈하였다.
일반 소비자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공간을 목표로 만든 이 공간은 300평이 넘는 규모로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 1층에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벤트를 개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으며, 펜더가 최초로 만든 펜더 카페에서 음료를 즐길 수 있다. 1층은 펜더를 대표하는 제품과 신제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시즌마다 진열되는 아이템이 바뀌기 때문에 자주 방문해도 새로운 제품을 경험할 수 있다. 이곳에는 플래그십 점포 오픈과 동시에 론칭한 펜더 최초의 어패럴 브랜드인 ‘F IS FOR FENDER’의 라이프스타일 굿즈 제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2층은 일렉트릭 기타와 앰프의 성능을 체험해 볼 수 있으며, 3층은 펜더의 최상급 기타를 전시하고 나만을 위한 커스텀 오더도 가능한 곳이다. 각 층을 오가기 위해 이용하는 나선형 계단의 벽에는 지미 핸드릭스 등 펜더 기타를 애용한 세계적인 기타리스트의 사진이 걸려 있어 기타의 역사도 즐길 수 있다.
왜 펜더는 일반인 대상의 체험형 점포를 만들었을까? 펜더는 기타리스트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브랜드이지만, 펜더라는 이름을 일반인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단지 기타가 아니라 음악을 중심에 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포지셔닝하여 점포를 구성하였다.
펜더의 플래그십은 2023년 6월 오픈 이후 약 3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소로 등극하며, 펜더라는 브랜드를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오프라인 공간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 중 하나는 디지털에서 얻기 어려운 감각적이고 생생한 몰입감을 체험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프라인 공간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더 생생한 자극을 제공하기도 한다. 아사히 맥주가 선보인 몰입형 체험 시설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2024년 4월, 아사히 맥주는 도쿄의 긴자에 ‘슈퍼 드라이 이머시브 체험’이라는 이름의 3층에 걸친 공간을 선보였다. 이 중 가장 흥미로운 곳은 몰입형 영상 체험이다. ‘슈퍼 드라이 고라이드’라고 이름 붙은 공간에 설치된 폭 약 11m, 높이 2.3m의 대형 스크린에는 맥주의 제조 공정을 재현한 고화질 4K 영상이 투사된다. 스크린 앞에 마련된 좌석에 앉으면 마치 내가 맥주 캔에 올라타 공장을 견학하는 느낌을 받는다. 제조라인을 빠르게 흘러가는 영상에 맞추어 곳곳에서 바람과 진동도 발생해 놀이기구를 탄 것과 같은 박진감이 느껴진다. 체험을 마치자 자연스럽게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마시고 싶어지는 찰나 영하 3도에서 얼린 잔에 거품 가득한 맥주가 제공된다. 아사히 맥주가 도쿄에서 가장 비싼 땅인 긴자에 이러한 공간을 만든 이유는 브랜드와 접점이 적은 고객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아사히 맥주는 평소 맥주를 마시지 않는 고객, 특히 젊은 층과의 접점을 만들어 이들이 아사히 브랜드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도록 하기 위해 공간을 설계했으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체험의 질을 높이고 있다.
한국의 브랜드들도 오프라인 공간 마련에 큰 힘을 쏟고 있다. 특히 성수동은 인지도를 위해 거쳐 가야만 하는 통과의례 같은 곳이 되고 있지만 동시에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반복되는 팝업스토어가 식상하다는 의견도 있고, 매번 부수고 다시 짓는 팝업스토어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에 대한 욕구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가능한 시대이지만 역설적으로 소비자들은 오감을 자극하는 체험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브랜드 또한 온라인으로 전하기 힘든 브랜드의 스토리와 철학을 알리고 소비자를 팬으로 만들기 위해 오프라인 공간을 적극 활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