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연승
단국대 경영대학원장, 한국경영학회 수석부회장. 관심분야는 소매유통 전략, 브랜딩 전략, 뉴로 마케팅, 공익 마케팅, 실버 마케팅 등이며 주요 저서로 <2018, 인구변화가 대한민국을 바꾼다>(공저), <한국경제 리포트>(공저), <SERI 전망 2001>(공저) 등이 있다.
최근 전 세계적인 고물가 추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도 물가안정이 중요한 정책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최근 이러한 고물가 지속의 원인은 무엇인가?
먼저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 문제가 발생하며 원자재와 물류비용이 급등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폭등하며 추가적인 비용 상승으로 이어졌다. 환율 상승의 영향도 있다. 원화 약세로 인해 수입 물품 가격이 상승, 국내 소비재와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연결되었다.
이로 인해 국내 물가 상승이 지속되고 있는데, 특히 최근 환율 상승으로 채소, 과일 등 생필품 가격이 폭등하며 소비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유통업계 부담도 가중되고 있는데, 유통업계는 인건비와 부동산 임차료 증가, 그리고 ESG 부담 등으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물가와 함께 초저가 트렌드도 본격화되고 있다. 고물가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가격 대비 품질이 높은 상품을 선호하는 ‘가치 소비’ 선호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는 쿠팡, 마켓컬리 등 온라인 플랫폼과 다이소 같은 초저가 매장의 성장으로 이어졌으며, 유통기업들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유통업체 브랜드인 PB를 강화하고 있다. 이마트의 노브랜드, GS리테일의 유어스 같은 PB 브랜드가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대형마트들은 초저가 상품을 늘리고, 온라인 플랫폼은 정기 배송, 번들 구매 할인 등을 통해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실제 2024년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식료품·생활용품 등의 온라인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라이브 커머스와 구독 서비스의 인기도 상승 중이다.
왼쪽) ©GS리테일, 오른쪽) ©고든램지버거코리아
GS25의 찐오리지널비프버거(4,000원)와
고든램지버거의 최고가 메뉴인 1966버거(14만 원)
초저가와 더불어 최근 소비 트렌드의 가장 대표적 양상은 소비양극화이다. 엔데믹과 함께 시작된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경기불황이 식품·외식업계의 소비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가성비를 뛰어넘은 초저가의 ‘가격 파괴’ 제품과 ‘짠테크(짠돌이+재테크)’가 성행하는가 하면, 평소 접하기 힘든 특별한 한 끼나 프리미엄 제품을 추구하는 ‘작은 사치’ ‘플렉스 소비’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국내 햄버거 시장에서는 3만~4만 원 하는 고든램지버거와 3,000~ 4000원 하는 편의점 햄버거가 동시에 잘 팔리고 있다. 커피 프랜차이즈 시장에서는 빽다방·컴포즈·메가 등 저가 커피업체들이 2년 만에 70%나 성장하는가 하면, 스타벅스·블루보틀·바샤커피 등 고가 커피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최근에는 중고거래 플랫폼(번개장터, 당근마켓)과 리셀 시장(한정판 운동화, 명품)도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고물가·초저가 경제적 압박 속에서 소비자와 기업은 새로운 소비 형태를 만들어내며 적응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소비시장은 기술 혁신과 가치 소비 트렌드가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고물가·초저가 시대를 가속화한 건 차이나 커머스로 불리는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다. 알리 익스프레스와 테무로 대표되는 중국의 이커머스 업체들은 지난 2023년부터 한국 공략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크로스보더 이커머스(CBEC, Cross Border E-Commerce, 국경 간 전자상거래 – 편집자 주) 시장 규모는 약 1,700조 원으로, 전체 전자상거래 시장(약 8,800조 원)의 약 20%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 중국은 약 440조 원의 거래를 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역직구(340조 원)와 직구(100조 원)로 나뉜다.
중국의 B2B 플랫폼(1688.com, Alibaba.com)이 역직구의 약 70%를 점유하는 가운데, 최근 B2C 부문도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2018~ 2023년 기간 동안 중국 빅3 플랫폼(알리바바·테무·징둥)은 연평균 41% 성장하며,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14.6%)을 크게 웃돌았다. 2027년까지 전 세계 유통 1~4위 기업이 모두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알리바바·핀둬둬·징둥 등)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국 주요 플랫폼들의 성장 배경과 특징을 살펴보면, 먼저 알리 익스프레스는 물류 및 판매 프로세스 전반을 직접 관리하며 원가를 절감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테무는 완전위탁방식을 통해 초저가 모델과 빠른 배송으로 시장 점유율을 증대해 가고 있으며, 쉬인은 ZARA 대비 1/5 수준의 가격으로 디지털 네이티브인 젊은 소비자층을 공략하고 있다.
자료: 최근 5년간(2018~2023년)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현황 분석,
한국경제인협회, 2024.06
자료: <2023 온라인 쇼핑 동향>
통계청 2024.02.01
이처럼 중국 플랫폼은 저비용·고속 배송·가성비를 무기로 글로벌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며, 한국 직구 시장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먼저 가격 경쟁의 심화이다. 중국 플랫폼은 저비용 구조와 대규모 생산을 통해 초저가 제품을 국내 시장에 공급함으로써 의류·패션·생활용품 등 주요 카테고리에서 국내 브랜드 및 유통업체와의 가격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가성비를 중시하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 제품으로 관심과 구매가 증대되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들은 중국 플랫폼의 초저가 모델에 대응하기 어려워, 특히 의류 및 생활용품 제조업체가 타격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토종 플랫폼들의 경쟁력 저하로 인한 입지 약화가 문제인데, 실제 티몬과 위메프는 재정 악화와 경쟁력 부족으로 인해 일명 ‘티메프 사태’로 불리는 정산 지연 사태까지 맞게 됐다. 쿠팡, 네이버 등 대형 플랫폼과의 경쟁으로 고전하던 티몬과 위메프는 차이나 커머스의 공격적 확장으로 인해 매출 감소와 자금 부족으로 결국 기업 회생 절차를 밟게 됐다.
자료: 와이즈앱·리테일·굿즈, 모바일인덱스, 언론보도 종합
출처: 최근 5년간(2018~2023년)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현황 분석, 한국경제인협회, 2024.06
차이나 커머스는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가격뿐 아니라 새로운 소비 경험(가성비 높은 제품, 다양한 옵션, 빠른 배송)도 제공하고 있다. ‘틱톡샵’, ‘쉬인’ 등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디지털 플랫폼이 국내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소비 패턴이 더욱 세분화되고 디지털화되고 있다.
소비자 구매 패턴도 변화하고 있다. 중국 직구가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이 국내 플랫폼보다 해외 직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특히, 의류·액세서리·전자제품과 같은 카테고리에서 중국 직구가 성장하고 있다.
2023년 한국의 온라인 해외 직접 구매액은 6조 7,567억 원으로 전년 대비 26.9% 증가하였는데, 중국은 전체 직구 시장의 48.7%를 차지하며, 미국(27.5%)을 제치고 최대 직구국으로 부상하였다. 국내 소비자들은 중국 직구를 통해 의류 및 패션 상품(58.4%, 1조 9,200억 원)을 주로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밖에 가전·통신기기(8.4%, 2,800억 원), 생활·자동차용품(6.5%, 2,100억 원) 순으로 구매했다.
차이나 이커머스 플랫폼은 한국의 주요 플랫폼들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알리 익스프레스의 한국 내 월간 사용자 수는 2024년 5월 기준 약 830만 명으로, 2023년 1월 227만 명에서 크게 증가하며 전체 플랫폼 2위에 올랐다. 지난해 1월 순위에 없었던 중국 테무는 올해 5월 797만 명으로 4위를 기록했다.
한편, 전 세계 주요 국가는 차이나 커머스의 저가 상품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규제와 지원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EU는 디지털 서비스법과 시장법을 통해 대형 플랫폼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불법 상품 유통을 차단하고 있으며, 미국은 면세 기준을 낮추고 관세를 확대 적용해 중국산 저가 상품의 경쟁력을 제한하고 있다. 태국과 호주는 수입세와 부가세를 강화하며, 인도는 외국 플랫폼의 점유율을 제한해 자국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K-브랜드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고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물류 지원과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한편, 직구·역직구 거래 관리와 안전성 검증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향후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먼저 기업은 차별화된 고품질 상품 개발과 경쟁력 있는 물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정부도 K-브랜드의 글로벌 확장 지원 및 중소기업 보호 정책 강화가 필요하다.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을 중소기업은 중국 플랫폼 의존도를 낮추고, 하이엔드 시장(고급 소비자층) 공략을 본격화해야 하며, 디지털 전환 및 기술 혁신을 통한 경쟁력 확보도 필요하다. 정책적으로는 유해 상품 유입 방지와 소비자 정보 보호를 위한 규제 강화가 필요하며, 한국 유통 생태계를 보호하고 육성할 정책 마련도 되어야 한다.
중국 제품은 저렴하지만 품질과 안전성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 식품·건강제품·아동용품 등 민감한 카테고리에서는 소비자들이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소비자의 우려는 국내 브랜드에게 기회로 작용할 수 있지만,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진 않다.
결국 차이나 커머스의 등장으로 소비자들은 더 다양한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국내 플랫폼 및 유통업체들도 가격 인하와 품질 개선을 통해 소비자 혜택을 증대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는 경제적 양면성인데, 소비자들은 저렴한 제품을 얻는 이점을 누리지만, 국내 제조업과 유통업의 생태계가 약화되어 경제적 불균형이 심화될 위험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나 커머스는 국내 소비시장의 가격 경쟁을 강화하고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변화시키며, 국내 유통업과 제조업 생태계에 심각한 도전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소비자 혜택을 증대시키고 국내 기업들에게 디지털 전환 및 차별화된 전략을 추진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향후 정부와 기업이 협력하여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중국 플랫폼의 강점에 맞설 수 있는 차별화된 전략을 모색해야 하겠다.
자료: <2024년 9월 온라인 쇼핑 동향>
통계청 2024.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