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연구교수이자 문화재디지털복원가.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선임연구원, 광주과학기술원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20여 년 이상 국내외에서 디지털 헤리티지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했다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을 비롯하여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를 중심으로 자국의 문화유산 고양과 문화산업 활성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문화유산 보존, 관리 및 활용 정책을 추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중에게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관점으로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디지털 문화유산의 구축 과정 등에 대해 소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실감 영상관 풍경 ©연합뉴스
디지털 헤리티지 혹은 디지털 유산복원이라고도 이르는 디지털 문화재 복원 분야는 디지털 영상기술이나 3차원 스캔기술 등의 발전과 문화유산이 결합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문화유산 전문지식과 첨단 ICT 및 융복합콘텐츠 기술 융합을 바탕으로 디지털 문화유산을 생산·관리·보존·보급하고 이를 활용하여 확산, 산업화하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문화유산의 디지털 복원에 관심을 가지면서 국내에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재청 그리고 외교부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문화유산 프로젝트가 공공기관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향후에는 중국, 동남아시아, 중동 등의 문화재 디지털 복원 사업에 기술용역수출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한 준비가 지난 2006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 이후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2000년대 초, 문화유산에 디지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당시 3D 스캔 기술과 GPS기반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s) 인트라넷 등이 도입되어, 위치기반 서비스와 문화재 정밀 실측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드론과 사진측량 기술이 도입되었고, 이제는 가상현실(VR)을 이용하여 석굴암 등의 문화재를 직접 보는 것처럼 현실감 있게 재현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돌풍을 일으킨 포켓몬고 같은 증강현실(AR) 기반의 애플리케이션도 있다. 이것을 이용하면 궁궐 같은 유적지나 박물관에서 안내판이나 해설사 없이도 개인 스마트폰으로 곳곳의 문화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3D 기술을 이용하여 문화재를 가상으로 복원하고, 실제로 복원하기 전 시뮬레이션을 해 보기도 한다.
디지털 헤리티지의 분야는 세분화해 나눌 수 있다. 디지털화(化), 저장·보존, 처리 및 해석, 표현과 보급, 전시 및 사업기획, 연구개발 및 정책제언 등이다.
➊ 디지털화 : 이미지(2D), 고화질 동영상, 입체(3D), 입체동작(4D)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유무형 문화유산을 디지털 기록화하고 훼손·멸실된 문화재를 가상복원 한다. 특히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중요 유물을 아카이빙(3차원 기록) 한다.
➋ 저장·보존 : 문화유산에 대한 기본 정보, 역사 정보 및 디지털로 기록된 빅데이터를 아카이브 및 저장·관리·보존한다.
➌ 처리 및 해석 : 문화유산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해석해 문화유산의 상태를 진단하고 복원 정보를 생산한다.
➍ 현과 보급 : 디지털 데이터를 재가공하여 디지털 에셋 혹은 리소스, 콘텐츠를 제작한다. 가상증강현실, 확장현실, 메타버스 등의 기술을 접목하여 디지털 문화유산을 보급한다.
➎ 전시 사업 : 전시관, 테마파크, 박물관 및 가상박물관 등에서 체험 전시 기획 및 기업,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의 디지털 문화유산 사업을 기획한다.
앞으로는 인공지능, 3D 프린팅 등 더 발전된 기술을 도입하고 전문가를 양성하여 보다 정밀하고 생생하게 문화재를 기록·보존·관리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디지털 문화재 복원 분야는 외국에서도 신개념의 미개척 분야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종사자가 많지 않다. 디지털 문화유산 관련된 선구적인 프로젝트로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미켈란젤로 프로젝트(다비드상의 디지털화 작업), 미국 버지니아 공대의 ‘Rome Reborn(문명의 정점을 이룬 과거의 로마를 디지털로 재구성한 프로젝트)’이 있다.
2009년, 미국 UC Merced 대학에 World Heritage 학과가 개설되었고 2010년에는 영국 레스터 대학에 Digital Heritage 학과가 개설되어 관련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더불어 그리스, 캐나다, 사이프러스, 독일 등을 중심으로 개별 연구자들이 디지털문화재 복원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국내 연구기관으로는 국립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유산전문대학원에서 디지털콘텐츠 기획 및 문화기술전공을 개설하여 디지털 복원 전문가를 전문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 디지털 문화유산의 3단계
디지털 문화유산을 가장 직접적으로 활용하는 장소인 국립중앙박물관은 2019년부터 공공향유형 문화자원 실감형 콘텐츠 제작 사업을 하고 있다. 글로벌 신(新) 한류의 토대를 마련하고 모든 국민에게 문화유산의 디지털 향유 체험을 확산시킨다는 취지와 더불어 문화관광 공공체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주요 문화유산을 주제로 세계적 수준의 실감형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다.
디지털로 재구성된 로마 ©Rome Reborn 홈페이지
디지털로 재구성된 콜로세움 지구 ©Rome Reborn 바로보기
국립중앙박물관은 소장하고 있는 수십만 점 이상의 진품 유물을 실감형 콘텐츠로 제작하고 2020년 5월에 실감형 체험관을 구축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시작으로 지방의 소속 박물관(경주, 익산, 공주, 부여, 대구, 춘천, 광주, 청주) 등이 실감콘텐츠 체험관을 각기 마련하여 고품질 문화유산 실감형 콘텐츠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문화유산과 최신 디지털 미디어를 접합해 박물관 전시의 신기원을 이룩한 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실감 영상관은 총 3개의 체험관과 경천사탑 외벽 영상(미디어 파사드)으로 이루어져 있다. 콘텐츠의 성격 및 공간 특성을 고려하여 프로젝션 매핑,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고해상도 기술을 적용한 실감형 콘텐츠를 상영 중이다.
이러한 디지털 실감 영상관은 일종의 ‘디지털 박물관(Digital Museum)’으로, 한국인 관람객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오는 방문객에게도 새로운 박물관 경험을 제공하고 유물 중심의 정적인 박물관 전시를 디지털적 측면에서 새롭게 조망하는 인식의 전환을 선사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제공하는 실감영상관 안내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국립중앙박물관의 디지털 실감영상관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디지털 실감 영상관1은 반응형 영상관과 파노라마 영상관 두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진다. 3개의 대형 화면으로 이뤄진 파노라마 영상관은 폭 60m, 높이 5m의 초대형 파노라마 스크린에 입체영상을 투사해 관람객이 마치 영상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주위를 감싸는 영상과 어우러진 음악과 음향이 관람객을 압도하는 이곳에서는 전통 회화와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제작된 실감형 콘텐츠 4종이 상영 중이다. 그 안에서 화성행차를 나선 정조 임금의 행렬에 함께 하거나 사계절 속 금강산을 거닐고 불교적 사후 세계를 여행하며 장수를 축원하는 신선들의 잔치에 참여하는 등 휴식과 감동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 밖에도 박물관 역사의 길에 세워져 있는 높이 13.5m의 고려 시대 라마교 계통의 석탑 ‘경천사 십층석탑’ 표면에 조각된 불교의 수많은 상징과 극락정토, 서유기 이야기, 석가모니불의 열반, 대승불교의 진리 등을 정교한 ‘프로젝션 매핑’ 기술로 재구성해 ‘하늘 빛 탑’으로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위프코가 탑 전체에 3D 스캔과 사진측량 등을 실시해 영상이 정교하게 조각 표면에 맺힐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석탑의 층마다 담긴 이야기를 증강현실(AR)로 구현하여 그 의미에 즐겁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경천사지 십층석탑 프로젝션 매핑 모습 바로보기
국립중앙박물관 곳곳에서 만나는 실감형 콘텐츠는 현재의 기술과 과거의 문화유산이 만나 새롭게 창조된 21세기의 문화자산인 동시에, 관람객을 박물관 문화유산 원본으로 이끄는 창 역할을 하고 있다.
디지털로 경험하는 문화유산 ©문화재청 공식 블로그
이것은 디지털 문화유산 복원(디지털 헤리티지) 사업의 의미와 가치를 관람객에게 확인시킨 좋은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박물관 콘텐츠 및 운영의 진보성을 상징하고 이는 곧 야간관람, 야간 콘텐츠, 유물에 직접 프로젝션 매핑 등에 대한 선구적 사례로 각인되었다.
홀로그램에서 구현된 신라의 석굴암 ©위프코
디지털 문화유산은 인공지능, 메타버스, 혼합현실, 증강현실, 가상현실 등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박물관이나 전시관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벽’을 넘어, 관람자 개인이 정보를 자유로이 선택하는 ‘메타버스’ 문화유산을 구상할 수 있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본래 존재했던 장소로부터 이탈되면 역사적 맥락과 장소적 특성을 상실해 앞단의 상황과 스토리를 전혀 알 수 없다. 관람객은 덩그러니 놓인 유물 자체만 보게 된다.
향후 디지털 전시 체험 기술은 과거의 유물이 제작되고 사용되던 본연의 공간을 재현시키는 수준에 도달할 만큼 발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관람객은 이제까지 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환경의 메타버스 공간에서 디지털 헤리티지를 경험하는 순간을 맞이할 것으로 전망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출현은 인류에게는 크나큰 위기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가상공간에서 모든 인류가 공존해 나갈 디지털 문화유산을 만들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 디지털문화유산 구분 단계에서 메타버스형을 이루기 위한 디지털 복원형의 역할 표식
출처 : 박진호, 「디지털 문화유산 유형 연구」, 상명대학교 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글로벌문화콘텐츠 박사학위 논문, 2021년, 2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