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산업연구센터장. 숭실대학교 융합기술원 전임연구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산업포럼 문화콘텐츠분과위원 등을 역임했다. 콘텐츠 산업의 현황을 파악하고 앞날을 전망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변혁의 흐름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언택트와 콘텐츠> 공저자
* 실감형 콘텐츠: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인간의 오감을 극대화하여 실제와 유사한 경험을 제공하는 차세대 콘텐츠
새로운 비즈니스 트렌드로 손꼽히는 실감형 콘텐츠.게임, 영화를 넘어 교육·의료·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 발전될 것으로 보이는 실감형 콘텐츠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해 본다.
메타버스(Metaverse)의 개념이 아직 완전히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2022년 1월 관계부처합동으로 발표된 <메타버스 신산업 선도전략>에 의하면 메타버스는 ➊가상과 현실이 융합된 공간에서 ➋사람·사물이 상호작용하며 ➌경제·사회·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세계(플랫폼)로 상당히 폭넓은 개념으로 이해된다. 실감형 콘텐츠는 이러한 메타버스를 구성하는 핵심이 될 전망이다. 실감형 콘텐츠는 게임, 영화, 교육, 의료,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흔히 말하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섞은 혼합현실(Mixed Reality)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들이 대표적인 실감형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실감형 콘텐츠에 이용되는 기술들은 신기술이라기보다 개발되었지만 활발하게 활용되지 못했던 기술들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도 ‘4차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가 새롭게 부각되었던 2016년 즈음 개발 붐이 일어났으나 높은 장비 비용과 관련 콘텐츠 부족 등으로 소비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여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하여 비대면경제가 부각되고, 온라인에서의 실재감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면서 다시 관련 산업이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정부는 2019년 9월 <콘텐츠산업 3대 혁신전략>, 10월 <실감콘텐츠산업 활성화전략> 발표 등을 통해 적극적인 지원을 시작하였고 2020년 9월에 있었던 <디지털뉴딜문화콘텐츠산업 전략보고회>에서 2025년까지 실감형 콘텐츠에 3,300억 투자를 선언한 바 있다.
최근에 주목할 만한 실감형 콘텐츠의 개발 방향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소통 강화. 코로나19로 인하여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약화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도구로써 실감형 콘텐츠들이 활용되고 있기에 발생하는 흐름이다. 가령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은 게임성보다는 게임을 활용한 소통의 도구로 기능이 부각되었고, 대중공연 분야에서는 실제 공간이 연동되는 AR 합성기술을 도입시켜 무대를 더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세계 최초 온라인 맞춤형 유료 콘서트가 개최됐다. 비대면 회의 분야에서도 단순히 영상을 전송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실재감을 주기 위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AR·VR 기반 원거리 회의·협업 플랫폼 ‘스페이셜’은 3D 홀로그램 이미지를 활용, 같은 공간에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환경을 구현하였다.
둘째, 장소의 경험을 바꾸어주기. 서울 코엑스에 마련된 디지털 사이니지의 사례는 실감형 콘텐츠의 구현을 머리 착용 디스플레이(Head Mounted Display, HMD) 중심으로만 접근하는 기존의 방식을 벗어던진 사례라고 하겠다. 그 외에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도 미디어 파사드 형식의 실감형 콘텐츠가 다수 제작되어 방문자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고 있다.
셋째, 집-모바일-모빌리티 등을 연계하는 경험을 강화하기.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홈코노미’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집’의 의미가 달라졌다. 이에 따라 집이라는 공간과모바일 기기의 연결, 그리고 이동수단과의 연계 등이 새로운 화두로 주어졌다.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신 모델에는 자율주행 차에 쓰이는 라이다(LiDAR)센서 기술이 포함되었으며 자연스럽게 ‘홈미디어’와 연결되도록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것은 차후 모빌리티와 연결될 것이며 자율주행의 수준이 더 올라감에 따라 이동 수단에서의 콘텐츠 이용 경험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동물의 숲 ©shutterstock
홈코노미 ©shutterstock
향후 완전 자율주행이 이루어질 경우 인간은 운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므로 이동 중에 할 수 있는 활동이 더욱 다양해질 수 있다. 또한 내연기관 자동차가 전기자동차로 대체되면서 차량 내부공간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카오디오는 기존에도 좋은 품질을 보여주고 있으나 청각 및 촉각 분야의 실감기술과 접목되면 더 큰 시너지를 보일 것이다. 한때 ‘따뜻한 기술’로 소개되기도 했던 현대자동차의 터처블 뮤직 시트 기술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이 자동차 시트의 진동을 통하여 소리의 파동을 촉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지금은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서, 혹은 졸음을 깨우기 위한 기술로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나 R&D를 통하여 더욱 폭넓게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기반을 두고 독일 등지에서 활동하는 4DSOUND는 몰입 음향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지금은 특정한 공간에서 몰입된 음향을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나 향후 카오디오 부문과 연계되어 확장된 음향을 제공한다면 차 안에서도 콘서트장과 같은 청각적 효과를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2022년 CES에서는 전자잉크 기술을 활용하여 차량의 색상이 수시로 바뀌는 자동차가 화제가 되었다. 자동차의 겉면은 평평하지 않지만 미디어 파사드에 사용되는 기술은 이미 평평하지 않은 화면에도 다양한 표현을 가능하게 해 주고 있다. 이러한 기술이 조금 더 응용된다면 이제 자동차 겉면을 활용하여 이용자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일도 가능해질 것이고, 향후 움직이는 영상 광고판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밖에 의료 영역에서는 익히 알려진 바대로 실감기술을 활용한 의료진 훈련이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뇌과학 영역에서는 ‘드림 레코드 머신(Dream RecordMachine)’이 개발 중인데, 이 기술이 현실화되면 사람들의 생각이나 꿈을 영화로 변환 및 저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라이다(LiDAR)센서 기술 ©shutterstock
우리나라에서 실감형 콘텐츠 산업을 육성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있다면 바로 규제문제이다. 우리나라 법제는 포지티브(Positive) 방식이어서 새로운 실감형 콘텐츠가 나타나면 그때마다 관련 법령들을 일일이 수정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고자 정부는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주요 골자는 기존의 입법 기술방식을 유연하게전환하는 것과 규제 샌드박스(Sandbox)를 적용해 기존규제를 유예·면제함으로써 신산업·신기술이 신속하게 시장에 출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의 두 가지 방향이다. 입법방식 유연화는 법률 상 허용되었던 범위 및 대상을 건별로 더 넓게 포함시켜주는 형식으로 추진되는 중이고, 규제 샌드박스 역시 심사를 통해 선정된 업체에 대해서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규제 완화를 제공한다.
다음으로 생각보다 더딘 5G의 확산은 실감형 콘텐츠의 발목을 잡는 요소이다. 5G 통신망은 화상회의, 원진료, 소비활동 등의 다양한 분야에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원하는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받으려면 아직까지는 제한된 조건에서 가능하다. 현재 수준에서 5G는 개인과 개인 간보다는 거점과 거점을 잇는 수준에서의 현실화가 이루어진 상황이다. 그러나 어떤 기술이건 과도기를 거치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원활한 통신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실감형 콘텐츠의 부족한 실재감 역시 극복해야 할 요인이다. 실감형 콘텐츠의 생성, 가시화, 인터렉션, 플랫폼 등과 관련된 우리나라의 디지털 콘텐츠 기술 수준은 최고 수준 국가 대비 86.8% 수준(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2022)으로 평가된다. VR기기의 불편한 착용감, 어지러움 등은 장비 착용을 기피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인간의 오감 중 시각, 청각을 제외한 감각인 후각, 촉각 등에 대한 기술 수준과 콘텐츠는 아직까지 현저하게 부족하다. 특히 문화·체육·관광 영역은 온라인 서비스가 오프라인 서비스를 대체하는 수준에 이르려면 상당한 실재감(Presence)을 주는 기술적 성숙이 뒤따라야 하는데 아직은 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실감형 콘텐츠를 특정 기술 및 범위로 한정하기보다 문화관광의 경험 확장 관점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