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삼성경제연구소 리서치애널리스트, 서울대 소비자학과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2010년부터 매년 <트렌드코리아>를 공저하며 한국의 10대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다.
*초개인화 서비스 : Hyper-Personalization Service 개인의 상황과 필요에 맞게 기업이 개별적인 맞춤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을 중시하는 젊은 소비자들을 겨냥한 마케팅 방법이다. 개인화 서비스가 이용자들의 일반적인 정보, 온라인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비스 경험을 최적화하는 것이라면, 초개인화 서비스는 이에 더해 사람의 실제 생활 패턴과 취향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코로나19가 이어지면서 사회는 점점 더 파편화되었다. 이에 사회 공동체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으며,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쪼개지고 파편화된 나노사회를 겪고 있다. 그렇다면 이 나노사회는 어떤 배경에서 등장하게 되었고, 왜 중요하며, 나노사회 트렌드에 프로스포츠 산업이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무엇일까.
2021년 한 해 동안 국내 유튜브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시청한 뮤직비디오는 무엇일까? 전체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가수는 임영웅으로, 노래 제목은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였다. 임영웅이 워낙 멋지고 훌륭한 가수이므로 일견 당연한 결과로 보이기도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의외로 임영웅의 노래 제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많아 이런 뉴스가 다소 신기하게 들린다.
‘빌보드 핫100’ 1위를 기록하며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한국의 방탄소년단(BTS)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의 글로벌 인기가 무색하리만큼 요즘 BTS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것은 과거 H.O.T와 나훈아가 공존하던 시기와는 사뭇 다른 현상이다. 이전에도 세대의 차이는 언제나 존재했지만, ‘금주의 가요톱텐’에 드는 노래의 제목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특정 가수가 아무리 유명해도 전 국민이 해당 노래를 대략이라도 따라 부를 수 있는 ‘국민가요’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다.
전 국민이 열광하는 ‘국민유행어’도 사라졌다. ‘따봉’, ‘대략난감’, ‘헐’ 등과 같이 과거 유행했던 신조어들은 한 번 확산되면 전 국민이 따라하며 큰 흐름을 형성했다. 하지만 최근 유행어들은 생성과 사멸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의미를 아는 단어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코난테크놀로지가 온라인 소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2019년과 2020년의 10대 유행어·신조어 중 1년 새 서로 겹치는 유행어가 단 한 개도 없다.
더구나 ‘톡디’, ‘알잘딱깔센’, ‘임구’ 같은 신조어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2020년 가장 많이 사용된 3대 키워드라는데,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그 의미를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이처럼 대한민국 시장은 이제 전 국민을 하나로 묶는 ‘국민가요’, ‘국민유행어’, ‘국민히트상품’이 존재하기 어려운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다른 소비자가 좋아하는 선택지를 무작정 따라하지 않는다. 내가 관심 있는 트렌드를 가장 친한 친구가 몰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처럼, “나의 트렌드를 당신이 모르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라는 문장으로 정의되는 현상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는 ‘나노사회’ 트렌드로 명명한다.
▶ TOP10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
출처: 유튜브, 2021년 국내 최고 인기 동영상 톱10 공개, 데일리안, 2021.12.2.
▶ ‘유행어/신조어 모음’ 관련 연관어 비교
출처: 코난테크놀로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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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nano)는 10억분의 1을 뜻하는 접두사로, 보통 원자나 분자 단위를 측정할 때 쓰는 단위다. 사회가 공동체적 유대를 유지하지 못하고 유기체의 기본단위인 분자 혹은 원자, 즉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쪼개졌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독립적인 개인인 나만의 트렌드를 갖는 것이 트렌드가 되었고, 이는 관심의 주체는 ‘나’이고, 나의 선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코로나19는 사람들이 더 이상 하나의 집단으로 묶이지 않고 각자의 취향을 중시하는 나노사회의 등장을 앞당겼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고자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면서,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어떤 취향이 뜨는지, 내 동료가 최근 어떤 영화를 봤는지 서로 공유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점심시간에도, 엘리베이터 안에도 붙어 있던 ‘서로 대화하지 마시오’의 경고문처럼, 사람들 사이의 취향 간극도 점차 벌어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코로나19가 아니었더라도 ‘나노사회’ 트렌드는 기술발전과 함께 성장해 왔다는 점이다. 나노사회를 부추기는 대표적인 기술은 단연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문자·SNS·영상통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게 지원한다. 편리성이 큰 만큼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도 크다. 예컨대, 요즘은 가족들이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TV 드라마와 뉴스를 다함께 시청하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힘들다. 모두가 각자의 공간에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영상을 시청할 뿐이다. 거실 TV 앞의 ‘우리’는 이제 각자의 스마트폰 속으로 흩어진 것이다. 어제 재미있게 본 프로그램 이야기도 굳이 친구들과 나눌 필요가 없다. SNS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댓글을 주고받으며 감상을 나누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스마트폰에 몰입하면 할수록, 사람들 사이의 교류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개인의 취향에 기반한 추천 알고리즘의 고도화도 나노사회 트렌드의 등장배경이 된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하나 검색해 시청하고 나면, 내 취향을 저격하는 유사한 영상이 줄줄이 추천된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을 시청하다보면 어느새 해당 주제에 대해서 거의 준전문가가 된다. 온라인 쇼핑몰 역시 내가 언제, 어떤 물건을 필요로 하는지 귀신같이 알고 최적의 추천 제품을 보여준다. 데이터 기반의 추천 알고리즘이 정교화되면 될수록, 역설적이게도 내가 새로운 취향을 갖게 될 가능성이 낮아진다. 내가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것만 더욱 더 좋아하게 되는, 취향의 강직화가 더욱 더 강화되는 것이다.
나노사회의 등장은 집단주의적 성향이 다소 강했던 한국 소비시장에서 개인의 다양성 가치가 존중받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특정 유행이 빠르게 확산되고 또 빠르게 식어버리던 과거의 트렌드와 비교해 볼 때, 나만의 취향을 오롯이 존중받고, 그것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디깅(digging) 트렌드와도 일맥상통한다.
다만, 나노사회의 장점이 크다고 해서 단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가운데,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는 편견에 기반한 소모성 분쟁이 덩달아 커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나와 취향을 공유하는 집단과의 소통에만 몰두하다 보면, 해당 집단의 의견을 마치 진실인 양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생각이나 신념, 혹은 정치적 견해가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 정보나 뉴스를 공유함으로써 기존의 신념이나 견해에 대한 확신이 더욱 강화되고 또 증폭되는 ‘에코 체임버 효과(echo chamber effect; 반향실 효과)’가 나노사회의 또 다른 부작용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shutterstock *태그니티 마케팅이란 해시태그를 통해 같은 관심사와 취향을 공유하는 MZ세대를 대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개하는 마케팅을 일컫는다. 태그니티란 해시태그의 ‘태그(TAG)’와 공동체를 의미하는 ‘커뮤니티(Community)’를 합성한 말로 SNS의 영향력이 부상하면서 생겨난 취향 공동체를 뜻한다.
트렌드가 미세화하고 파편화하는 나노사회 트렌드에서 프로스포츠 산업은 어떤 새로운 기회 요인을 찾아야 할까? 첫째,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개인적 욕구가 공동체의 결속력보다 중요해진 세상에서 집단적 정체성보다 개인적 취향이 더욱 중시된다. 이러한 현상은 소속보다 선호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다시 말해서 전통사회의 개인은 자신이 속한 준거집단 내에서 정체성을 찾았지만, 이제 나노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내면지향적인 취향을 기준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스포츠 산업은 우리 브랜드의 ‘태그니티’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태그니티’는 해시태그(hashtag)의 태그와 커뮤니티(community)의 합성어로 요즘 MZ세대가 자신이 선호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혹은 자신을 소개하는 단어로 취향을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음악 취향을 장르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유튜브에서 ‘네고막을책임져도될까’라는 채널을 즐겨듣는다는 표현이 나의 음악적 취향을 더욱 잘 묘사하는 것과 같다. 대중(mass)을 타깃으로 성공을 거두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더욱 작고 세밀해진 나노집단 사이에서 우리 브랜드를 좋아하는 유일무이한 커뮤니티를 정의해 나가야 한다.
둘째, ‘우연한 발견(serendipity)’의 재미 역시 강조되어야 한다.사람들의 선호는 때로 급진적으로 변한다.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의 옷이라 할지라도 친구가 멋지게 소화한 모습을 보면, 따라 구매하고픈 생각이 드는 것과 같다. 전술한 취향 기반의 추천 알고리즘은 이런 취향 변화의 변곡점을 없앤다. AI와 빅데이터를 동원한 막강한 추천 기능은 우리를 알고리즘의 반향실 안에 가두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알고리즘에 의해 취향이 결정되는 시대에, 자기도 몰랐던 새로운 선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라도 자기취향을 무작위로 섞을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나노사회에서 기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휴머니즘이다. 내가 속한 작은 집단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큰 단위로 사고할 것이 필요하다. 우리 지역의 관점, 국가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공동체의 ‘공공선’을 고려해야 한다.
나아가 더 큰 곳으로 눈을 돌릴 필요도 있다. 이른바 ‘지구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절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와 각종 기상이변은 우리가 더 이상 특정 위도와 경도에 위치한 민족만이 아님을 뜻한다.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과 사회적 연대에 입각한 정체성의 재인식이 필요하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구성원 서로와 환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기에 힘쓸 때, 나노사회의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