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와의 강한 유대감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다,
프로세스 이코노미 마케팅

글. 김규연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브랜드 디자이너. 브랜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가치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전략과 아이덴티티를 기획 및 개발한다.

시장의 제품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이제 아웃풋보다는 브랜드가 가진 가치와 스토리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해졌다. 바야흐로 소비자가 브랜드를 통해 자아를 표현하는 시대, 이제 브랜드는 프로세스를 팔아야 한다. ‘프로세스 이코노미’ 마케팅이 적용된 브랜드 사례를 살펴본다.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등장

소비자는 더 이상 성능 좋은 제품을 찾지 않는다. 고성능의 카메라가 탑재된 스마트폰도, 실제와 다름없는 화면을 보여주는 TV도 모두 마음만 먹으면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며 많은 브랜드의 기술력이 상향평준화되었고, 제품의 성능은 더 이상 ‘선택의 기준’이 아닌 ‘기본’이 되었다. 이제 우리의 경쟁력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작년 한 해 마케팅 업계에서 큰 주목을 받은 책, <프로세스 이코노미> 의 저자 오바라 가즈히로는 그에 대한 답이 ‘과정’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제품의 성능이 아닌 브랜드의 이야기와 과정을 강조하여 소비자와의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열쇠라는 것이다.

브랜드로 나를 말하는 시대

SNS를 통해 쉽게 자아를 표현할 수 있는 시대. 소비 방식 또한 자아표현의 수단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소비자는 제품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개성과 가치관을 나타내며, 브랜드와 자아를 동일시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현 세대의 등장으로 인해 브랜드의 윤리적인 측면과 사회적 책임이 소비 결정 요인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책임의 부각은 가치와 과정이 중요한 프로세스 이코노미를 발전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이제 소비자는 제품 그 자체보다 브랜드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 주목한다.

‘과정’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브랜드

나이키는 광고에서 제품의 기능이나 이점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선수들의 열정, 도전, 성취와 같은 ‘가치’를 강조하여 브랜드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은 광고를 통해, 나이키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사람들이 공감하는 가치와 철학을 실현하는 방법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이키는 수년간 일관된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하며, 단순한 스포츠웨어 브랜드가 아닌 소비자들이 공감하는 가치를 실현시키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소비자가 브랜드에 대해 갖는 유대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지속 가능성을 이념으로 꾸준히 강조하며 제품 생산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과감하게 소비자에게 공유하는 파타고니아,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음악은 물론이고 그들의 성장 과정을 적극적으로 팬들에게 공유하는 BTS까지. 이미 프로세스 이코노미를 실천하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는 많다.

그렇다면 국내 기업들은 어떻게 ‘과정’에서 가치를 창출하고 있을까. 여기 과정을 통해 소비자의 마음을 얻은 국내 브랜드들이 있다.

‘Just do it’ 30주년을 기념해 인종차별 반대 시위의 주인공인 풋볼 선수 콜린 캐퍼닉이 등장한 나이키 광고 ©NIKE

브랜드만의 솔직함을 담다: 배달의민족

2021년 배달의민족은 자사 캐릭터인 ‘배달이 친구들’을 활용한 팝업스토어를 오픈했다. 팝업스토어는 큰 인기를 얻었으며, 행사 종료 후 배달의민족은 팝업스토어에서 사용된 로고를 제작한 과정을 블로그에 공개했다.

해당 콘텐츠에서 돋보였던 것은 스토리텔링. 담당자만이 알고 있는 히스토리를 글에 잘 반영하여, 배달의민족이 해당 행사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또한 다른 기업들의 프로젝트 리뷰에서는 찾기 어려운 솔직함도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로고를 탄생시키기까지 만든 100여 개의 시안은 물론, 탈락한 시안들과 그 이유를 공개하여 투명한 과정을 보여주었다.

배달의민족은 로고 제작 과정뿐만 아니라 해당 행사와 관련된 다양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시리즈로 발행하여 지속적으로 친밀감을 높이고자 했다. 배달의민족이 시도한 솔직함을 담은 스토리텔링은 프로젝트가 완료된 이후에도 실행할 수 있어, 프로세스 이코노미를 실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배달의민족의 팝업스토어 전경, 행사 로고 제작 과정을 블로그에 공개했다. ©배민다움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의 아웃풋뿐만 아니라
그 제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과 브랜드의 가치를 경험하고 싶어 한다.

완벽하지 않은 버추얼 휴먼: 솔이는 성장 중

네이버에서 최초로 제작한 리얼타임형 버추얼 휴먼 ‘이솔’은 쇼호스트, 모델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다수의 버추얼 휴먼이 사람에 가까운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만, 이솔은 다르다.

유튜브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이솔은 ‘솔이는 성장 중’이라는 쇼츠 시리즈를 통해 제품으로써의 낮은 완성도를 드러내며, 유행하는 챌린지에 참여하여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없는 표정이나 행동을 과감히 취하거나, 제품과 개발자의 관계성을 부각해 제품의 부족함을 보여준다. 또한, 팬들과 댓글을 통해 친구처럼 소통하며 다른 버추얼 휴먼에게서 볼 수 없는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솔이는 성장 중’은 브랜드가 항상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보여줌으로써, 소비자가 느끼는 버추얼 휴먼에 대한 이질감을 현명하게 극복한 좋은 사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족한 모습에 멈춰있는 게 아닌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콘텐츠로 만들었기에 많은 응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해당 사례처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브랜드라면, 부족함을 드러내보자.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소통한다면, 브랜드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은 물론 탄탄한 팬덤까지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유튜브 이솔




만화로 전하는 브랜드 이야기: 이쁜꽃

다양한 술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양조 브랜드 ‘이쁜꽃’은 인스타툰으로 과정을 공유한다. 제품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 제품이 제작되는 과정, 브랜드의 방향성 등을 이미지로 표현하여 이쁜꽃의 가치관을 소비자에게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이쁜꽃의 인스타툰에서 눈에 띄는 점은 바로 브랜드의 일원을 주인공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덕분에 브랜드의 히스토리를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 만화 속 캐릭터가 되어 브랜드에 대한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때로는 그림이 아닌 인물의 실제 모습을 공개하여 실재하는 느낌을 전달하고, 이를 통해 브랜드 페르소나를 구축하기도 한다. 이쁜꽃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얻은 인기에 힘입어 책 출판 및 부가적인 프로젝트까지 추진할 수 있었다.

브랜드의 일원을 콘텐츠에 활용하는 것은 소비자와의 유대감을 형성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사람 대 사람으로 소비자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은 물론, 더욱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브랜드의 일원을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이쁜꽃과 같이 캐릭터를 활용한 인스타툰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것이다.

©이쁜꽃 인스타그램 @official.epkkot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정석: MoTV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그룹 ‘모빌스 그룹’은 진행 하는 모든 프로젝트를 자신들의 유튜브 채널인 ‘MoTV’에 기록한다. 그들의 채널에서는 회의하는 모습, 회식하는 모습은 물론 대표인 ‘모춘’이 전 회사를 퇴사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까지 볼 수 있다. 모빌스 그룹의 일상을 숨기지 않고 속속들이 공개해서일까. 모빌스 그룹이 지향하는 ‘오래오래 재미있게 일하기’라는 모토를 모든 콘텐츠에서 느낄 수 있다. 더불어 MoTV의 콘텐츠에는 내부 인원 모두가 등장한다. 다양한 직무와 직급을 가진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더 많은 소비자의 공감을 얻었고, 이는 퍼스널 브랜딩으로 이어져 개인과 브랜드 모두 두터운 팬덤을 형성할 수 있었다. 또한 성공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소비자들에게 MoTV는 매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일종의 다큐멘터리로 인식될 수 있었다. 덕분에 ‘일’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MoTV의 콘텐츠는 몇 년째 높은 조회수를 유지하고 있다.

MoTV는 프로세스 이코노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모빌스 그룹은 설립 초반부터 브랜드의 모든 부분을 소비자와 공유함으로써, ‘소비자가 만들어 가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확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모든 프로젝트를 기록하고 공개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브랜드만이 갖는 특별한 문화나 독특한 이벤트부터 공개해 보는 것은 어떨까. 브랜드가 가진 개성 있는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MoTV

프로세스 이코노미, 이제 시작

지난 몇 년 사이 ESG 및 제로 열풍과 같은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트렌드가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러한 트렌드는 제품과 브랜드를 평가할 때, 소비자들이 이야기와 과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프로세스 이코노미는 가치 실현을 위해 투명성을 요구하는 가치 소비 트렌드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프로세스 이코노미는 사용 가치와 의미 가치로 양극화된 제품 시장에서 더욱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의 아웃풋뿐만 아니라 그 제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과 브랜드의 가치를 경험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프로세스 이코노미는 소비자들과 더 깊은 연결을 형성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확장을 돕는다.

우리는 이제 아웃풋 종말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마주한 지금,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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