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쓴다!
욕망을 현명하게 관리하는 체리슈머

글. 전미영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2009년부터 <트렌드코리아> 시리즈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트렌드차이나> , <나를 돌파하는 힘> 을 공저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다수 기업과 소비트렌드 기반 신제품 개발 및 미래전략 발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정형화된 시간, 공간, 단위에 굴복하지 않고 때로는 본인 스스로, 때로는 타인과 함께 창의적인 방식을 도출해내며 자신의 욕망을 현명하게 관리해나가는 ‘체리슈머’. 젊은 층의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실속 소비’를 행하고 있는 체리슈머 트렌드에 대해 짚어본다.

똑똑하고 알뜰한 소비자, 체리슈머의 등장

경기침체가 심상치 않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가 ‘팬데믹’과 ‘엔데믹’이었다면, 2023년은 ‘경제’의 영향을 오롯이 받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가 동반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컸던 2008년 금융위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들린다. 소비 심리도 급속히 악화되며 시장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러한 악재 속에 실속 소비자의 등장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욕망은 넘쳐나는데 자원은 제한적인 여건 속에서 보릿고개를 슬기롭게 넘어가기 위해 절약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본인의 돈을 아끼고자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는 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쏙쏙 챙겨가는 사람을 흔히 ‘체리피커(Cherry Picker)’라 부른다. 케이크 위에 올라간 달콤한 체리만 쏙 빼먹듯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챙긴다는 비유에서다. 이들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똑똑한 소비행위라고 볼 수 있으나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아 다소 달갑지 않은 존재일 수 있다.

다소 부정적인 느낌이 강한 ‘체리피커’와 달리, 최근 대한민국 소비시장에 등장하는 알뜰한 소비자를 ‘체리슈머(Cherry-Sumer)’라 부른다. 실속만 챙기는 체리피커에는 소위 ‘먹튀 소비자’란 뉘앙스가 강한 반면, 체리슈머는 한정된 자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알뜰소비 전략을 펼치는 소비자를 뜻한다. 실속소비 경향이 젊은 층의 자연스러운 문화로 형성되면서, 한정된 자원 속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는 똑똑한 소비자인 셈이다. 이들은 정해진 소비 방식을 그대로 쫓기보다는 거리낌 없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며 효용을 극대화한다. 비용 대비 효용을 극도로 추구하는 체리슈머들, 이들의 소비특성을 하나씩 살펴보자.

체리슈머의 소비 특징 조각, 반반, 말랑 …

똑똑하게 알뜰함을 챙기는 체리슈머는 어떻게 소비할까.

첫째, ‘조각소비’를 즐긴다. 조각소비란 정형화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소비량을 쪼개 구매하여 비용을 줄이는 소비행태를 뜻한다. 가령 오십만 원짜리 와인을 마시고 싶다고 가정해보자. 비싼 가격이 부담스러워 이 제품과 가장 유사한 맛이 난다고 알려진 저렴한 와인을 찾아나서는 방식은 예전의 가성비 전략이다. 체리슈머는 본래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십만 원짜리 와인 같이 마실 분’을 다섯 명 정도 찾아 각자 한 잔씩 마셔보는 경험을 누린다면 이것이 바로 요즘 사람들의 가성비 전략이다. 자원이 부족하다고 해서 무조건 포기하거나 줄이기보다는 나름대로의 방안을 찾아내 ‘비용 대비 효용’을 극대화한다.

두 번째 특징은 ‘반반소비’다. 팀구매나 공동구매를 적극 활용하여 합리적 소비를 실천한다. ‘피클플러스’ 앱은 ‘파티매칭’ 기능을 통해 넷플릭스나 왓챠와 같은 OTT 동시시청 요금제를 함께 볼 사용자를 찾아준다. 이탈자가 발생하면 신규 멤버를 자동으로 재매칭해주는 기능도 제공하는데, 가입자가 2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두잇’은 배달비 없는 배달음식 서비스를 표방하는 ‘배달공구 애플리케이션’이다. 자장면 한 그릇이 먹고 싶을 때, 앱을 켜서 ‘팀주문’을 열고 근처에 사는 다른 사람 세 명을 더 모으면 배달비가 공짜다. 이웃의 배달음식 수요를 실시간으로 묶어 배달비를 없애는 형태다. 지역기반 공동구매 플랫폼 ‘우동공구’는 혼자 구매하기에 부담스러운 물건을 이웃들과 나눠 살 수 있도록 지원한다. 최근에는 동네 사람들끼리 소 한 마리를 도축 후 나눠 갖는 ‘우리동네 소한마리’ 서비스도 선보였다.

마지막 특징은 ‘말랑소비 전략’이다. 장기 계약에 얽매이지 않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유연한 소비를 추구한다. 요즘 같은 불황기엔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장기간 꾸준히 내는 보험료도 부담스럽다. 이에 보험업계에서도 필요한 때마다 단기간 가입하고 사용한 만큼만 합리적으로 비용을 지불하는 ‘미니보험’ 상품을 내놓고 있다. 캐롯손해보험은 자동차를 운행한 주행거리만큼만 보험료를 납부하는 ‘퍼마일 자동차보험’을 출시했는데, 업계 최초로 후불 산정제를 도입하였다. 일반적인 자동차보험은 많이 타든 적게 타든 1년을 주기로 정해진 금액을 납입해야 하는데, 캐롯은 보험료를 낭비라 생각하는 2030 소비자를 겨냥해 매월 운행한 거리만큼만 계산되는 방식의 후불 산정 보험을 선보인 것이다.

©우동공구

©피클 플러스

다소 부정적인 느낌이 강한 ‘체리피커’와 달리, 최근 대한민국 소비시장에 등장하는
알뜰한 소비자를 ‘체리슈머(Cherry-Sumer)’라 부른다.

부모보다 가난한, 똑똑하고 창의적인 세대

본인이 소유한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체리슈머가 등장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무엇보다도 경기 악화다. ‘욜로’와 ‘플렉스’를 외치던 젊은이들이 하루아침에 ‘실속소비’에 눈을 뜬 것은 전례 없는 인플레이션과 경기불안에 대한 실제적 위협 때문이다.

2021년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세대별 체감경제고통지수’ 분석에 따르면, 15~29세 청년들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지수는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체감경제고통지수는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고안한 지표로,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을 합해 계산하는데, 이번 15~29세 체감경제고통지수는 국내 집계 이후 최고치였다. 우리나라 15~29세 청년들의 실업률이 치솟고, 소비자 물가가 급등함에 따라 이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고통이 심화된 것이다. 청년층이 이러한 난관을 타개할 방법은 체리슈머가 되어 한정된 자원을 극대화하여 200% 활용하는 방법뿐이다.

한편, 체리슈머의 주된 세대인 MZ세대는 저성장시대에 태어나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로 알려져 있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다지만, 정작 성인이 되어보니 내 집 한 칸 마련하기도 벅차다. 반면, 어릴 적부터 고급 경험을 많이 했던 터라 취향의 수준은 높다. 이처럼 욕망은 넘치지만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 삶을 사는 이들에게 치밀한 재무관리는 당연한 귀결이다.

체리슈머는 자본이 부족하다고 해서 무조건 포기하거나 무조건 줄이는 수동적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정형화된 시간·공간·단위에 굴복하지 않고 때로는 본인 스스로, 때로는 타인과 함께 적극적으로 창의적인 방식을 도출해내 자신의 욕망을 현명하게 관리해 나간다. 구독하는 OTT의 계정을 타인과 공유하여 비용을 나누는 등의 소비 방식들이 모두 이러한 지혜의 결과라 할 수 있다.

2021년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세대별 체감경제고통지수’ 분석에 따르면, 15~29세 청년들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지수는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기업은 체리슈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렇다면 기업은 체리슈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체리슈머를 불황 속 꼼수를 부리는 소수의 특이한 소비자로만 바라보았다면, 이제 그 생각을 바꿔야 한다. 공짜만 바라는 블랙컨슈머로 오인하거나 싸게 사기에 급급한 체리피커 소비자라고 간과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퍼주기식 할인도 해답은 아니다. 작고 유연한 소비를 원하는 체리슈머들이 증가함에 따라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똑똑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심리학에서는 ‘문간에 발 들여놓기 전략(Foot-in-the-door Technique)’이라는 재미있는 용어가 있다. 큰 부탁을 해야 할 때 마치 문간에 발만 먼저 들여놓듯이 작은 부탁을 먼저 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큰 부탁을 더 쉽게 들어준다는 일종의 설득기법이다. 이런 식의 기법을 체리슈머에게 대입하면 어떨까? 작은 샘플로 특정 제품을 경험하거나 초단기간 특정 서비스를 잠깐이라도 경험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한 번 경험한 체리슈머는 브랜드의 문간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이는 브랜드의 친숙도를 높이고 곧 또 다른 상품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될 수 있다. 작은 경험이 일종의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어 이후 더 큰 상품의 구매라는 성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프리미엄 향기 브랜드로 알려져 있는 ‘탬버린즈’는 실속소비를 중시하는 체리슈머의 등장을 기회로 삼았다. 이들은 3,000원에서 5,000원 상당의 샘플키트를 카테고리화하여 상시 판매하였다. 당시 코로나19 사태와 경기불안정으로 기업들도 고민이 많았던 시기라 사람들은 “누가 샘플을 돈 주고 사는가?”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샘플에 대한 기존 고정관념을 깼다. 찢어서 한 번 쓰고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샘플이 아닌, 틴케이스에 고이 담긴 감각적인 패키지로 구성하여 판매를 시작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SNS에 후기를 올리며 “샘플키트도 이렇게 감성적으로 만들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취향저격이다” 등의 뜨거운 반응을 보였고, 새 상품 론칭 3일 만에 완판 행진을 이어나갔다. 작은 샘플이 주는 감각적인 브랜드 경험으로 본 제품까지 봉인된 체리슈머의 지갑을 연달아 열게 만든 것이다.

프로스포츠 시장이 체리슈머를 대하는 방법

한국 프로스포츠 시장도 유사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경기가 불황이라고 해서 가격 이벤트를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 시기를 새로운 관중을 우리의 팬으로 끌어들이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체리슈머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미끼 이벤트로 새로운 관계를 확보하는 것도 좋다. 구단에게 이득이 되는 프리미엄 좌석을 현명하게 구매할 수 있는 노하우 등을 소비자에게 소구하며 마케팅을 확대할 수 있다. 값비싼 구단 굿즈를 여러 팬들이 공동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더 큰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체리슈머 트렌드의 등장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기업이라면 변화 속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무조건 값싼 가격으로 승부를 걸기보다는, 소비자 스스로 가치 있는 제품을 합리적으로 구매하는 방안을 찾도록 유인하는 전략이 유효할 수도 있다. 성능을 낮추고 가격을 조절하기보다는 비싼 제품은 비싼 대로, 값싼 제품은 값싼 대로 각자의 구매 이유를 분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체리슈머의 등장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본래의 욕망에 충실하라’는 주문인 셈이다.

©탬버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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