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소셜·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컨설팅 컴퍼니 왓이즈넥스트(WHATISNEXT)의 대표. <리뷰 마케팅> <스노우볼 팬더밍> 저자 스노우볼> 리뷰>
소셜미디어에 등장한 ‘사고 싶은 물건’, ‘살 물건’을 보며 소비를 지향하던 이들이 오히려 ‘사지 말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이른바 ‘디인플루언스’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이들 디인플루언서가 주목받는 이유를 알아본다.
“이 화장품 좋긴 해요…. 그런데 이것과 거의 똑같지만 가격은 9달러(약 1만 2,000원)밖에 안 하는 다른 상품도 있거든요.”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 사는 얼리사 크로멜리스(@alyssasteph-anie)는 어느 날 틱톡 앱을 켰다가 한 콘텐츠에 꽂혔다. 한 틱토커(TikToker)가 어떤 상품을 두고 ‘협찬 받은 인플루언서들에 의해 과대평가된 물건’이라고 거침없이 리뷰하는 영상이었다.
이에 영감을 얻은 크로멜리스는 자신도 고가의 헤어·스킨케어 및 메이크업 제품에 대해 여과 없이 평가하는 영상을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는데, 첫 게시물부터 80만 4,000개 이상의 ‘좋아요’와 조회수 약 550만 회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틱톡에서 해시태그 디인플루언싱(#deinfluencing)이 떠오르고 있다. 제품에 실망한 소비자, 요령 있는 뷰티 블로거, 피부 관리에 대한 통념을 없애는 의사, 자주 반품되는 제품을 본 전직 소매 직원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제품을 사지 말라고 설득하는 영상이 영향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틱톡에서 #deinfluencing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은 불과 몇 달 만에 1억 5,000만 회 이상 조회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러한 현상을 “사람들에게 물건을 사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이 요즘 틱톡의 새 트렌드”라 소개하면서 진정성 있는 제품 리뷰로 팔로워를 구축하고, 사람들에게 물건을 사지 말라고 설득하는 사람들 즉, 디인플루언서(De-Influencers)의 등장을 알렸다. 여기서 디인플루언서란 소셜미디어에서 영향력이 큰 콘텐츠 창작자들을 가리키는 ‘인플루언서’의 행태에 반발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 @alyssastephanie
“요즘에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푸드 인플루언서’들끼리 친해요. 그룹이 몇 개가 있대. 그러니까 아는 사람 30명을 쫙 부르면 그 인플루언서들이 포스팅을 쫙 써주는 거야. 그러면 그 집이 쫙 잘되고. 약간 주식으로 치면 작전주랄까? 그 중에 양심적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친하면 아무래도 좋게 써주기도 하고, 심지어 몇 백만 원씩 받는 사람들도 되게 많고, 인스타가 나의 매체인데 여기에 노출되니까 꽤 되면 그렇잖아, 홍보비를 받는 거지.”
가수 성시경 씨가 자신의 유튜브 ‘먹을텐데’에서 공개한 이야기이다. 이른바 ‘뒷광고’ 논란을 기억하는가. 뒷광고는 인플루언서들이 특정 업체로부터 받은 광고나 협찬을 표기하지 않고, 자신의 콘텐츠에 노출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애초에 정확히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규정된 적 없기 때문에 뒷광고에 대해 여러 가지 이견이 있다. 유료 광고임을 제대로 밝히지 않거나, 광고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거나 심한 경우 광고가 아니라고 속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뒷광고가 아니어도 통상 인플루언서는 자신의 인지도를 이용해 상업적 홍보로 수익을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다 보니 콘텐츠도 점점 진정성이 떨어지고 과소비만 조장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디인플루언싱 트렌드는 소셜미디어 채널 상에서 인플루언서가 홍보하는 상품이 너무 많아지고, 인플루언서가 진정성보다 돈을 우선시하고 과소비를 조장하는 것에 대한 Z세대들의 반응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디인플루언싱은 소비자들의 불필요한 소비를 멈추는 데 기여한다. 즉, 소비자들이 인플루언서의 광고나 추천에만 의존하지 않고, 제품의 가격, 품질, 재료, 윤리적인 문제 등을 더욱 신중하게 고려하게 하는 것이다.
이젠 국내에서도 디인플루언싱의 흐름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불공정하거나 가짜홍보를 일삼는 기업을 추적하고 폭로하는 ‘사망여우TV’ 같은 유튜브 채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평가보다 부정적인 평가를 더 믿고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온라인에서 디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고, 이에 기업과 브랜드는 디인플루언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디인플루언서, 크로멜리스(@alyssastephanie)는 최근 한 향수 회사의 광고 게시물을 올렸다. 다만 디인플루언서들은 이전 인플루언서와 같이 무분별한 광고를 찍지 않는다. 그들의 명성과 영향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알기에 광고주들을 신중하게 선정한다.
패스트 패션을 비판하는 패션 관련 콘텐츠를 만들며 약 5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하이디 칼루자(@the_rogue_essentials)는 재활용가능 의류를 만드는 회사와 제휴하면서 ‘슬로 패션 인플루언서’로 변신했다. 팔로워가 약 31만 4,000명에 달하는 틱토커 제시카 클리프턴(@impactforgood_)은 기후 관련 법안 홍보를 위해 비영리단체와 협력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결합한 마케팅을 진행하는 등 진정성 있는 영향력을 얻기 위해 노력 중이다.
디인플루언싱은 고객들이 저렴하면서도 좋은 품질을 가진 대안 제품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디인플루언서들은 특정 제품의 거품을 지적하면서 그 대안으로 더 저렴한 제품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또한 새로운 형태의 인플루언서가 아니냐는 역설적인 비판도 있다. 하지만 포화 수준의 인플루언서들에게 변화와 자정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디인플루언서의 등장과 성장은 환영받고 있다.
결국 디인플루언싱은 소셜미디어 채널에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기업과 인플루언서의 마케팅 협업의 결과물인 추천 및 홍보 콘텐츠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는 위기의 신호이다.
© @the_rogue_essentials
© @impactforgood_
인플루언서와 협업을 해야 한다면 그들의 영향력, 팔로워 숫자 외에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미디어 관점에서 그들의 도달 능력, 즉 확보된 팔로워의 숫자를 ‘영향력’을 본다면, 콘텐츠 측면에서는 ‘연관성(relevance)’을 살펴보아야 한다.
인플루언서들은 그들이 영향력을 얻고 유지하는 자신만의 콘텐츠 차별점이나 세계관이 존재한다. 인플루언서와 협업하는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그들의 콘텐츠적인 특징을 살리지 않고, 영향력에만 의존하여 제품과 서비스의 홍보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인플루언서들의 세계관과 일치하지 않아, 결과적으로는 영향력을 얻을 수 없다. 즉, 그들의 세계관이 기업의 제품 및 서비스와 연관성이 있거나 어우러질 수 있는지 염두해야 한다.
여기에 인플루언서의 평판, 이미지가 우리 기업과 우리 제품에 부합하는지도 중요하다. 아무리 높은 영향력을 보유한 인플루언서라도 우리 제품에 맞지 않는 평판을 갖고 있다면 당연히 협업을 요청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기업과 인플루언서 모두 상생할 수 있는 주제와 진정성을 가지고 협업에 임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비용만 지불하면 쉽게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는 안이함에서 벗어나 사람들에게 우리 기업을 다양한 방식으로 알리고 공감을 얻어내고 고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대화를 나누어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 지지자와 팬덤을 이끄는 영향력을 구축해야 한다. 직접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