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MZ세대를 중심으로 ‘과시적 비소비’가 트렌드로 떠올랐다. 고물가와 한정된 자원을 고려해 선택과 집중을 통한 합리적 소비에 집중하되, 비소비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삼는 것. 이들은 생존에 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한편, 나를 위한 작은 사치만큼은 포기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 분야와 취미활동에는 소비를 지속하는 것이다. 이처럼 효율을 극대화하는 소비 활동을 지향하는 이들이 시장의 주 소비층을 이루는 가운데, 프로스포츠는 어떻게 새로운 소비자를 창출해야 할까.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으로부터 그 해답을 들어본다.
해당 인터뷰는 프로스뷰 인스타그램에서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보러가기]
Q
A
어찌 보면 ‘과시’와 ‘비소비’란 두 단어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소비하지 않는 것을 과시한다는 의미니까요. 과시적 비소비는 소비의 주체에 따라 두 가지 패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갑이 가벼워진 사람들이 무지출을 하는 것인데요. 소비에 사용하는 돈은 줄어들었지만 타인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망을 해소하고자 생긴 것이 바로 ‘거지방’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절약을 독려하고 과시하는 공개 채팅방이지요. 덜 쓰고 아끼는 소비가 새로운 욕망이 된 셈입니다. 두 번째는 경제적 여건과 상관없이 환경보호와 자원 절약, 동물 복지 등을 고려해 소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새 물건을 사지 않고 중고 물건을 사용하거나 비건 제품을 구매하는 식이지요.
Q
A
앞서 말한 두 가지 형태의 과시적 비소비는 비자발적 비소비와 자발적 비소비로 나뉩니다. 전자의 경우, 불황과 고물가 등의 경제적 위기감이 이끈 비자발적 비소비라면, 후자는 삶의 방식과 소비 방향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자발적으로 비소비를 지향하는 것이지요.
Q
A
트렌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체가 바로 기업입니다. 과시적 비소비를 실천하는 고객을 위한 상품을 발굴하고 있어요. 식품 기업을 예로 들자면, 대용량이 아닌 소용량 상품을 내놓는 겁니다. 이전에는 과식이 먹방 트렌드로 떠올랐다면 지금은 소식 먹방이 각광받고 있잖아요? 기업들이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해 작은 사이즈의 컵밥과 와인 등을 출시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또한 중고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통업계나 명품 브랜드에서 중고 사업에 활발하게 뛰어들고 있습니다.
Q
A
전 세계적으로도 프로스포츠 시장에 젊은 소비자의 유입이 적은 실정입니다. 지금의 소비층이 점차 나이 들게 되면, 스포츠를 소비하지 않는 날이 오게 됩니다. 때문에 프로스포츠는 항상 젊은 소비자를 유입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스포츠의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늘 새로운 마케팅 접근이 필요합니다. 2030세대가 프로스포츠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하지요.
지금의 2030세대는 과거의 2030세대와는 다릅니다. 현재 젊은 세대는 누릴 수 있는 콘텐츠가 많습니다. 이에 대응해 기존의 프로스포츠가 얼마나 매력적인 유인책을 만드는지가 관건입니다. 이를테면, 과거에 아트 컬렉팅이 부자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다면, 지금은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작품을 구매하는 게 자연스러워졌어요. 그렇다면, 예술 작품을 소비하는 대신 프로스포츠 시즌 티켓을 구매하게 만드는 전략을 고민해야 합니다.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2030세대는 4050세대와는 다르게 정형화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서둘러 프로스포츠에 빨리 유입시키고, 훗날 4050세대가 되어서도 프로스포츠를 즐기도록 해야 합니다.
Q
A
2030세대에게 가장 외면 받았던 스포츠 중 하나 골프였습니다. 골프 산업이 깊이 고민하던 숙제였지요. 하지만 놀랍게도 팬데믹을 통해 갑자기 젊은 소비자가 대거 유입됐어요. 여행·공연·전시·쇼핑 등 일상을 누리지 못하게 되자, 감염에 안전한 야외활동인 골프에 관심이 높아진 거죠. 무엇보다 골프는 과시의 욕망에 맞닿아 있습니다. 골프 웨어가 나의 ‘스타일’이 되기 때문이죠. 럭셔리한 스포츠와 패션을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게 ‘과시’할 수 있으니까요.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본다면, 2030세대는 자신이 남보다 우위에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스포츠에 흔쾌히 소비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프로스포츠는 운동 그 자체로 어필하기보다 패션이든 경험치든 과시할 수 있는 매력 포인트로 젊은층을 유인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Q
A
과시적 비소비를 선호하는 이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스타일이 가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스포츠 경기를 보는 모습이 ‘타인의 눈에 멋져 보일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요즘 시대 사람들의 욕망은 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SNS를 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우리의 일상을 그대로 생중계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합니다. 평소에 하지 않던 것들, 욕망이 되는 것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프로스포츠도 과시적 요소로 작용해야 합니다. 과시할 요소가 없다면, 그저 TV 중계방송만 보고 말면 되는 거죠. 경기장에도 직접 가고, 관련 아이템을 구입하는 행위 자체가 욕망과 부합해야 합니다. 이 욕망이 곧 스타일이에요. 스타일을 다른 말로 하면 취향이 되어야 합니다.
Q
A
지금 모든 영역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필수로 여겨집니다. 온라인과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소비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또한 데이터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선수는 어떤 기록을 가지고 있는지 등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다면 흥미는 배가 될 것입니다.
스포츠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데이터를 얼마나 잘 가공해서 소비자에게 공개할 수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그리고 가공된 정보를 통해 그동안 파악하지 못했던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데이터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전통적인 소비자가 아닌 새로운 소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Q
A
스포츠 구단 혹은 협회가 가공된 데이터를 공급하면 팬들이 특정 선수의 기록을 살피거나, 연봉 대비 경기력을 체크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팬들이 비시즌에 즐길 수 있는 온라인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을 기용해 게임을 미리 해보면서 시즌 시작 전 기대감을 높일 수 있고요. 이처럼 프로스포츠 업계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습니다.
Q
A
트렌드를 읽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단순히 일회성 팬 미팅을 진행한다고 해서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할 수 없지요. 트렌드를 제대로 읽으려면 투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스포츠 종목이 원하는 타깃 소비자가 누구인지, 마케팅을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플랜을 수립하고 분석해야 하지요. 특히 스포츠의 경우 농구와 야구, 축구, 배구 등 저마다 속성이 다르듯 각 종목의 특성을 잘 반영하길 바랍니다. 경기장이 위치한 지역별로 어떻게 전략을 짜야할지, 경기장에 안 오는 사람들을 공략하기 위해 어떤 걸 어필하면 좋을지 등을 세부적으로 고민하면 좋을 거예요.
시대와 소비자는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이 흐름을 잘 캐치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시대 사람들은 취향도 다양하고 경험치도 많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욕망을 잘 해석해고 그 지점에 가닿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프로스포츠의 주인공이 팬이라는 걸 기억하고, 팬들의 마음속에 어떤 욕망이 자리하는지 지속적으로 살피고 이에 대응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