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2005년 매일경제에 입사해 경제부, 정치부, 산업부, 국제부, 디지털테크부를 거쳤으며, 액셀러레이터인 미라클랩에서 디렉터와 CES 2023 혁신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미래 10년, 빅테크로 미리보기> 등 8권을 공저했다. 미래>
불과 2년 전만 해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고 있다. 최근 메타, 디즈니, 마이크로소프트(MS)를 비롯한 주요 IT기업들이 경기 침체 우려 속에 비용 절감에 나서며 메타버스 관련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있는데… 메타버스 시장 관련, 세계적인 추세를 짚어보며, 미래를 전망해 본다.
팬데믹 기간 열풍이 불었던 확장가상세계인 메타버스의 토지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대표적인 메타버스 세계인 디센트럴랜드와 샌드박스 내 부동산 가격은 지난 14개월 간 90% 폭락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샌드박스는 2021년만 하더라도 미국의 유명 래퍼인 스눕독이 이곳에 가상의 집을 지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 팬이 45만 달러(약 5억 9,404만 원)를 주고 그의 집 바로 옆 토지를 매입해 화제를 모았다. 가히 현실과 다름없는 부동산 가격이었다. 하지만 위메타에 따르면, 샌드박스의 중위 토지 가격(Median Sale Price)은 2022년 5월 3,583달러에서 1년 만에 741달러로 미끄러졌다.
벤처캐피탈인 비트크래프트벤처스의 니콜라스 베레케 인베스터는 “한때 모든 메타버스 투기꾼들이 이 가상세계의 땅을 사려고 달려들었다”면서도 “하지만 현재는 아무도 그 땅에 아무것도 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들은 그냥 예전처럼 다시 메타버스가 이륙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면서 “외부에서 보기에는 꽤나 끔찍한 투자”라고 일침을 놓았다.
샌드박스는 분산 장부인 블록체인 코인을 기반으로 참여자들이 부동산을 거래한다. 코인 이름은 샌드(Sand)다. 샌드의 2023년 5월 가격은 약 50센트. 작년 2월 이후 80% 폭락한 상태다.
메타버스의 위상 추락은 빅테크 기업에서도 감지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1월 메타버스 핵심 부서를 해체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5년 처음 증강현실 기기인 ‘홀로렌즈’를 런칭했다. 시장에서는 인류가 상상한 증강현실에 가장 근접한 기기로 평가했다.
필자는 직접 홀로렌즈를 착용한 적이 있다. 발표자가 각종 홀로그램 영상을 공중에 떠올리면, 발표자의 실제 모습과 가상 영상이 겹쳐 보이는 방식이다. 운동화를 꺼내 빙글빙글 돌릴 수 있고 그 운동화를 위아래 옆에서 자유자재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알트스페이스VR’이라는 메타버스 프로젝트를 종료했고 관련 인원을 모두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트스페이스는 페이스북 운영사인 메타의 ‘호라이즌 월드’나 ‘로블록스’와 같이 일반 사용자들이 참여해 이벤트를 할 수 있는 커뮤니티형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전체 메타버스 부서 규모를 축소하고 산업용 메타버스만 남기기로 한 것이다.
시스코 임직원이 메타버스 영상회의 솔루션인 ‘웹엑스 홀로그램’을 구동해 생생한 입체감을 구현하며 회의를 하고 있다. ©시스코
미키 마우스로 유명한 월트디즈니컴퍼니 역시 메타버스 담당 인력을 해고했다. 디즈니는 올해 7,000명을 해고하면서 메타버스 전담팀을 거의 모두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디즈니는 메타버스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당시 밥 체이펙 월트디즈니컴퍼니 최고경영자(CEO)는 “메타버스에 뛰어난 스토리텔링, 혁신, 사용자 중심이라는 디즈니 핵심 전략을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디즈니는 메타버스를 통해 테마파크인 디즈니 월드의 고객 몰입도를 높이려는 전략을 구사했다. 소비자들이 디즈니의 지식재산권 기반 캐릭터를 보다 친숙하게 만들게 하려는 의도였다. 실제로 디즈니는 놀이동산에 메타버스 시설을 구축하고자 관련 특허까지 출원한 상태였다.
이같은 빅테크 기업의 움직임에 메타버스의 종주 기업으로 꼽히는 메타마저 부서를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마저 나왔다. 메타의 메타버스 담당 사업부인 리얼리티랩스(Reality Labs)가 2021~2022년 총 240억 달러에 달하는 누적 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창업자 겸 CEO는 “우리가 메타버스에서 손을 떼려고 한다는 분위기가 퍼진 것 같은데, 이는 확실히 틀린 내용”이라면서 “우리는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에 집중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의혹은 더욱 폭증됐다. 투자사인 번스타인은 “메타가 또 다시 사명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메트AI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메타버스 열기가 시들해진 이유는 무엇보다 2022년 11월 등장한 챗GPT 열풍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웹3.0이 인공지능으로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웹1.0이 게시판처럼 단방향 웹이었다면, 웹2.0은 플랫폼을 매개로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웹이고, 웹3.0은 개인화·맞춤화 웹이 작동하는 시대를 뜻한다. 그동안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메타버스가 웹3.0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이 맞춤형 웹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메타버스 인기가 줄어든 것이다.
월드와이드웹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리는 앞서 “체력단련에서 쇼핑까지 모든 데이터를 나만을 위한 스토리지인 팟(Pod)에 저장하고, 나만의 인공지능을 활용해 나만을 위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메타버스가 죽은 산업은 아니다. 메타버스는 다른 영역으로 침투하고 있다. 유니티의 마크 위튼 부사장은 “메타버스라는 이름과 관계없이 그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면서 “유니티는 실시간 기반의 구체화된 3D 콘텐츠가 많아질 것이라 믿고 있고, 그러면 실시간 크리에이티브 콘텐츠도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메타버스를 꼭 가상세계 또는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장비로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특히 그는 3D 엔진을 기반으로 몰입감을 극대화한 콘텐츠들이 향후 메타버스의 대세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유니티는 ‘에너미즈(Enemies)’라는 콘텐츠 영상을 시연했다. 사실적인 눈동자 머리카락 피부 등이 달린 디지털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티저로, 총 830만 개 화소가 있는 해상도인 4K에서 렌더링한 것이 특징이다. 디지털 휴먼은 움직이고 말할 때마다 주름까지 함께 움직였다. 또 주변 조명에 따라 피부톤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이런 디지털 휴먼은 실시간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디지털로 제작했을 경우 사전 제작된 동영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차문을 열고 닫을 수 있고 실시간으로 색깔을 바꿔볼 수 있다.
위튼 부사장은 “산업계를 중심으로 메타버스 전략을 얘기하는데, 바로 메타버스가 디지털로 연결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실시간 디지털 트윈과 디지털 휴먼이 곧 메타버스라는 주장이다. 유니티의 이러한 기술은 현대차의 메타팩토리에 접목됐다. 현대차는 싱가포르에 글로벌 혁신센터(HMGICS)를 짓고 있는데 실물 공장을 메타버스로 구현한다는 방침이다. 소비자들은 메타버스에 접속해 자신이 주문한 차량이 생산되는지 여부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애드버킷그룹(Advokate Group)은 챗GPT를 접목한 다중 플랫폼 메타버스인 메타가이아라는 이벤트를 실시했다. 사용자들은 AI 반려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애드버킷그룹
생성형 인공지능 부상에 한물 간 것처럼 여겨진 메타버스 게임은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변신 중이다. 블록체인 게임 스타트업인 애드버킷그룹은 2023년 3월 챗GPT를 접목한 다중 플랫폼 메타버스인 메타가이아라는 이벤트를 실시했다. 사용자가 가상현실에서 친구를 사귀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3개의 게임을 제공했다. 특히 애드버킷그룹은 챗GPT를 활용해 앙증맞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반려동물을 가상현실에 구현했다. 사용자는 반려동물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모험을 할 수 있다.
이런 게임사는 또 있다. 중국 게임사인 넷이즈는 3D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 챗GPT를 접목했다. 중국 송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MMO 저스티스 온라인’에는 챗GPT를 활용한 인공지능이 탑재돼 있다. 일부 캐릭터가 챗GPT처럼 말을 하는데, 중국 시·노래·소설에 대해 매우 자연스럽게 대화를 건넨다. 넷이즈는 이에 그치지 않고 단조로운 게임 스토리를 벗어나는데 챗GPT를 활용할 계획이다. 게임 사용자마다 다른 퀘스트를 부여하는데 인공지능이 투입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의 만남이다.
애드버킷그룹(Advokate Group)은 챗GPT를 접목한 다중 플랫폼 메타버스인 메타가이아라는 이벤트를 실시했다. 사용자들은 AI 반려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애드버킷그룹
교육 영역에서도 메타버스 도입이 이어지고 있다. 포항공대는 수업 공간을 메타버스로 전환하고 있는데,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서만 연간 30만 달러를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또 한국 정부는 2,237억 원을 투자해 전문가 양성을 위한 ‘메타버스 아카데미’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뿐인가. 일본 미디어 기업 카도카와 드왕고가 설립한 N고등학교는 이미 6,000대에 달하는 VR 헤드셋을 학생들에 배포하고 교육용으로 사용 중이다. 메타버스가 생성형 인공지능 부상과 가상화폐 폭락으로 인기가 시들고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변모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연쇄 창업가인 벤자민 탈린 모어댄디지털 창업자는 “기술이 발전하고 알고리즘이 더 복잡해지면서, 컴퓨팅 성능 발전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일상생활에 완전히 통합되는데 10~20년이 걸릴 수 있겠지만, 메타버스는 여전히 우리의 개인적·직업적·사회적 영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미래를 위한 토대에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