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바로 지금입니다

글. 김도훈

칼럼니스트.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 패션 잡지 피처 디렉터, <허프포스트 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레전드 농구만화 슬램덩크가 <더 퍼스트 슬램덩크> 라는 이름으로 영화로 돌아왔다. 이른바 30~40대 삼촌, 이모팬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킨 슬램덩크가 10~20대 조카들 사이에서도 열광을 일으키고 있다는데… 슬램덩크의 돌풍 이유를 알아본다.

<슬램덩크> 는 스포츠 만화가 아니었다

나는 토에이(TOEI) <더 퍼스트 슬램덩크> 홍보 담당자를 안다. 토에이는 1949년에 설립된 일본 최고의 영화·애니메이션 제작사 중 하나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가 개봉하기 전에 토에이 사람이 물었다.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흥행할 수 있을까요?”

나는 주저 없이 답했다. “100만은 하겠죠. 아무래도 <슬램덩크> 의 오랜 팬은 X세대, 그러니까 40대와 몇몇 30대 정도일 테니까요.” 사실 그건 내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는 <슬램덩크> 의 오랜 팬이다. X세대다. 199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닌 남자가 <슬램덩크> 를 보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한 친구가 단행본을 구입했다는 소문이 들리면 그 즉시 그 책은 공공재가 되어 각 반을 순례한 뒤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돌아왔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에서 발행하는 매거진에 이런 문장을 쓰다니.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우리 집안은 스포츠를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대대로 허약한 체질을 물려받은 터라 도무지 스포츠와 친해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책만 들여다보는 아이로 자랐는데, 그 재주로 지금도 먹고 사는 중이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나는 스포츠 중계를 그리 즐겨보던 아이도 아니었다. <슬램덩크> 는 달랐다. 나에게 그건 스포츠 만화가 아니었다. 아니다. 물론 스포츠 만화인 건 확실하다. 다만 <슬램덩크> 이전 스포츠 만화들과는 달랐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일 애니 최고 흥행작 등극

뭐가 달랐을까? 거기에는 캐릭터들이 있었다. 살아있는 캐릭터들이 있었다. 주인공은 강백호다. 어딜 봐도 나와 닮은 데가 하나도 없는 캐릭터다. 대신 나에게는 송태섭이 있었다. 160㎝대 작은 키로 코트의 거인들을 제압하는 그 캐릭터는 기가 막히게 근사했고, 나 같았다. 항상 키가 작았던 나는 종종 덩치가 크고 교실에서 큰소리치는 덩치 큰 놈들을 두들겨 패는 다소 폭력적 판타지를 갖곤 했다.

<슬램덩크> 를 읽는 순간 나는 송태섭이 됐다. 그 캐릭터의 활약을 보는 순간 나는 마치 메타버스 속으로 빠진 듯 열광하고 환호하고 감응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슬램덩크> 의 각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해본 40대 이상의 X세대가 있을 것이다. 교실 뒤편에서 잠만 자던 분들은 당연히 서태웅이었을 것이다. 틀림없다.

지루하게 나의 추억을 늘어놓고 말았다. <슬램덩크> 에 대해 글을 쓰면서 살짝 감상적이 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토에이 담당자에게 “100만은 하겠죠”라고 말했다. 세상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100만 정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탓이다. 자,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 는 훨씬 더 늦게 개봉한 마블의 신작 <앤트맨 3> 를 물리치고 다시 박스오피스 1위로 올라섰다. 현재까지 누적 관객 수는 364만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 이 갖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작’ 타이틀은 곧 가져간다.

<너의 이름은> 의 최종 관객 수는 373만이었다.

슬램덩크 ©네이버영화

회고 아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슬램덩크>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내 주변의 30대와 40대 모두가 <더 퍼스트 슬램덩크> 를 보러 가기 시작했다. 많은 내 세대, 그러니까 X세대 부모들은 아이를 데리고 극장에 갔다. 커뮤니티에는 이 영화를 얼마나 많이 재감상했는지를 겨루는 인증샷이 올라왔다. 물결은 어린 시절 <슬램덩크> 를 읽은 기억이 없을 10대와 20대 관객에게 번졌다. 만화책 <슬램덩크> 는 영화가 개봉한 이후 지금까지 10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는다. 이유가 뭘까요? 대체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의 기대치 않았던 놀라운 흥행 돌풍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여기에는 수많은 답변이 있을 수 있다. X세대 구매력이 추억의 상품 앞에서 폭발했다는 답은 어쩐지 지나치게 경제적으로만 들리는 구석이 있다. 물론 일리는 있다. 지난해 <탑건 : 매버릭> 의 놀라운 흥행 역시 X세대 이상 중년층을 중심으로 한 현상이었다. 1세대 걸그룹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새로운 걸그룹 ‘뉴진스’에 처음으로 반응했던 세대도 40대였다. Y2K 패션이 유행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떤 면에서 2020년대의 문화적 중심이 다시 X세대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지경이다. 그러나 <슬램덩크> 가 회고적 열풍이라고 말하는 것은 뭔가 오해를 하는 것이다. 지금 일고 있는 <슬램덩크> 열풍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위대한 원작이 여전히 동시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중년에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깨달았다. 인생은 알고 보니 다 산왕전 같은 것이었다.

영원한 청춘의 순간에 머무른 <슬램덩크>

다들 알다시피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슬램덩크> 의 속편을 만들지 않았다. 몇 번 이벤트성으로 단편을 선보인 적은 있지만 제발 속편을 만들어달라는 팬들의 염원을 30여 년간 배신해왔다. 그래서 <슬램덩크> 는 “나는 천재니까”라고 말하는 강백호의 얼굴에서 영원히 멈췄다. 그걸 읽던 우리의 청춘도 거기서 끝났다. 나는 그것이 천재적인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야기가 그 뒤로 이어졌다면 캐릭터들도 자랐을 것이다. 한 번 연재를 시작하면 20년은 연재하는 일본 만화의 특성으로 보아, 비록 우리보다 천천히 늙긴 하지만 강백호도 서태웅도 송태섭도 다 늙었을 것이다.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거기서 완벽하게 문을 닫음으로써 그들의 청춘과 우리의 청춘을 멈춰 세웠다.

30~40대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에 대한 열광은 그 캐릭터들이 아직도 그 시절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는 청춘의 순간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들을 유독 사랑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재미있게도 <슬램덩크> 는 그 시절에 머물러 버림으로써 오히려 동시대성을 획득했다.

여러분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입니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산왕전을 펼쳐왔다. 나이가 중년에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깨달았다. 인생은 알고 보니 다 산왕전 같은 것이었다. 겨우겨우 경기에서 이겨봐야 다음 경기가 또 시작될 거라는 사실을 마침내 우리는 깨달았다. 각자의 산왕전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크게 몸과 마음이 다치면 밤새 차를 몰고 간 어디 강릉 해변 같은데 앉아서 캔맥주를 까고 속으로만 웃으며 “난 천재니까”를 중얼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라는 유행어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안 그래도 경쟁으로 가득한 시대에 지나치게 최선을 다하라며 사람을 몰아붙이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강백호와 서태웅의 손바닥이 부딪히는 순간을 보며 이 유행어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는 없다.

30년 전 강백호는 안선생님에게 물었다.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난 지금입니다.” 우리는 지금 과거의 영광이 현재의 영광이 되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 사실 강백호는 당신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습니까? 지금 아닙니까?

CONTENTS : CULTURE ANT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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