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분산·이동
공간, 비즈니스를 바꾸다

글. 정희선

일본 트렌드 칼럼니스트이자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생활에 밀접한 소비재와 리테일 산업에 대한 칼럼을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공간, 비즈니스를 바꾸다> <사지 않고 삽니다>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 등의 책을 썼다.

공간의 개념이 무너지고 그 역할이 바뀌자,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행동반경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러한 변화는 소비의 흐름을 바꾸고, 이에 따라 결국 산업의 지형에도 커다란 변혁을 가져왔다.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며 변신하고 있는 오프라인 공간. 어떻게 변신하며, 어떠한 공간을 만들고 있을까.

오프라인 리테일의 변신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모임이 증가하는 등 우리의 일상이 코로나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인류에게 미친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재택근무, 언택트, 워케이션, 홈코노미… 불과 3년 전만 해도 생소하던 단어들이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다. 팬데믹 이후 자주 듣게 되는 이러한 용어를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보인다.

바로 일상의 많은 부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특히 쇼핑의 주 무대가 온라인으로 이전하는 현상은 코로나 전부터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지만 팬데믹은 이러한 트렌드를 단번에 확산시킨 기폭제가 되었다. 2021년 소매 판매액 중 온라인 쇼핑 비중은 28.7%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였다. 디지털 취약계층이라 여겨졌던 고령자들도 코로나 시대에 적응하며 온라인 쇼핑을 시작하였다. 미국, 유럽, 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대형 점포들이 속속 문을 닫으면서 전문가들은 오프라인 리테일의 위기를 논하고 있다.

하지만 오프라인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흥미로운 오프라인 공간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위기에 직면한 오프라인 공간은 자신들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며 변신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읽고 이를 반영하여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은 어떻게 변신하며 어떠한 공간을 만들고 있을까. 크게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체험: 체험을 통해 브랜드의 팬을 만들다

최근 ‘체험형 매장의 전성시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산업에서 체험형 점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원하는 물건이 몇 시간이면 집 앞으로 배달되는 시대에 소비자들은 단지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집을 나서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오프라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오감을 자극하는 체험을 얻기 위해 공간을 방문한다. 브랜드들은 아트, 전시, 디지털 기술, 식음료 등 다양한 장치들로 공간을 꾸미고 자신들의 철학을 알리고 있다.

나이키가 ‘혁신’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걸고 만든 뉴욕의 플래그십스토어 ‘하우스 오브 이노베이션(House of Innovation)’, 그리고 일본의 유니클로가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도쿄의 긴자 거리에 만든 플래그십 점포는 마치 전시관을 방불케 한다. 두 곳 모두 나이키의 운동화와 유니클로의 다운 재킷의 기술력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들을 곳곳에 전시해 놓았다. 또한 개인별 맞춤형 티셔츠와 신발을 만들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하는데 이는 오프라인으로의 방문을 유도하고 있다.

최근 체험형 매장 중에는 F&B를 활용한 곳들도 눈에 띈다. 특히 고가의 명품 브랜드들에서 이러한 트렌드가 포착되는데 구찌가 만든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서울’, 디올이 성수동에 만든 콘셉트 매장 내 카페, 루이비통이 청담동에 낸 팝업 레스토랑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단지 패션을 파는 것을 넘어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점유하고 싶어 하며 이를 실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식음료를 활용하고 있다. 카페나 레스토랑은 고가의 명품 가방에 비해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향과 맛 등으로 오감을 자극할 수 있다. 비록 지금 당장 명품 가방을 구입하지 않는 고객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브랜드를 일상에서 경험하고 브랜드의 팬이 되는 것이다.

나이키의 뉴욕 플래그십스토어 ‘하우스 오브 이노베이션(House of Innovation)’ ©NIKE

구찌의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서울’ ©GUCC

분산: 크기는 줄이고 접점은 늘리다

팬데믹 기간 중 로컬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커머스 플랫폼이 부상하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서 생활 반경이 좁아지고 거주하는 동네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동네 커뮤니티, 지역 중고 거래와 같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의 이용자가 늘었다. ‘슬세권’이라는 단어 또한 사람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에 마련된 대형 매장의 고객 유인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통은 이러한 소비자 행동반경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오프라인 리테일 매장들은 크기를 줄이고 대신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백화점들에서 이러한 트렌드가 명확히 포착된다. 미국을 대표하는 메이시스 백화점은 팬데믹 기간 중 번화가의 대형 매장 일부를 철수하는 대신 소형 포맷 매장인 마켓 바이 메이시스(Market by Macy’s)를 열었다. 마켓 바이 메이시스의 규모는 약 500~600평으로 일반 메이시스 매장의 5분의 1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 블루밍데일스 백화점 또한 기존 매장의 10분의 1 크기인 600평에 불과한 블루미(Bloomie’s)를 오픈하였으며, 노드스트롬은 약 33~84평에 불과한 노드스트롬 로컬(Nordstrom Local)을 오픈하였다.

미국의 백화점들은 점포의 규모를 작게 만들고 분산시키면서 두 가지에 힘을 쏟는다. 첫째는 지역 고객들이 좋아할 만한 상품을 엄선하여 제공하는 큐레이션을 강화하는 것, 둘째는 제품이 아닌 서비스를 확충하는 것이다. 백화점의 소형 포맷 점포에서 소비자들은 스타일링 서비스와 수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레스토랑과 바를 만들어 특별히 살 것이 없는 사람들도 편하게 들러 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온라인에서 구입한 물건을 픽업하거나 반품 가능한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즉, 번화가의 대형 쇼핑몰을 방문하는 것의 매력이 옅어진 지금, 백화점은 편의성을 높이고 소비자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메이시스 백화점의 소형 매장 마켓 바이 메이시스 ©Market by Macy’s

블루밍데일스 백화점의 소형 매장 블루미 ©bloomingdale’s

소비자들이 몰입할 수 있는 체험형 공간,
그리고 소비자의 근처로 한 발 더 다가가려는 시도를 통해 스포츠 팬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이동: 고객이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일부 선진국에서는 재택근무가 새로운 근무 형태로 정착되었다. 집 근처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자 ‘고객이 오지 못하면 우리가 고객이 있는 곳으로 간다’는 역발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바로 최근 일본에서 자주 보이는 이동형 점포이다.

일본 최대의 디벨로퍼인 미쓰이 부동산은 2020년 9월부터 대형 트럭과 밴을 이용해 도쿄와 수도권 지역을 순회하는 매장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식품을 비롯해 잡화, 화장품, 지역 특산물과 같은 제품뿐만 아니라 구두 수선 및 마사지 같은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동형 매장의 커다란 장점은 지역별로 최적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매장을 배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파스타 전문점이라면 평일 낮에는 사무실 근처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영업하고 이들이 퇴근하는 저녁 시간에는 아파트 단지로 이동해 가족 단위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식이다. 같은 아침 시간이라도 주택가에는 베이커리 트럭을 배치하고 사무실 근처에는 카페를 배치하는 등 수요가 높은 장소와 시간에 적합한 맞춤식 리테일 매장을 파견하여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점포가 직접 고객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면 새로운 고객층을 만날 기회를 얻게 된다. 이동형 매장에서 제품을 바로 사지 않더라도 브랜드를 인지한 후 나중에 브랜드의 오프라인 매장 또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즉, 이동형 매장 자체가 브랜드를 홍보하는 채널이 될 수 있다.

미쓰이 부동산의 순회 매장 ©mitsuifudosan

프로스포츠 산업에의 적용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및 오프라인 공간의 변화를 프로스포츠 산업은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위의 세 가지 키워드를 활용하여 팬을 늘리고 경기장으로 더욱 많은 고객을 불러올 방법들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체험’은 스포츠와 궁합이 좋은 키워드이다. 프로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경기를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야구의 룰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게임을 통해 규칙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많은 브랜드가 체험형 공간을 만드는 궁극적인 이유는 브랜드의 팬을 늘리기 위함이다. 프로스포츠를 테마로 한 카페 혹은 체험형 공간은 스포츠 팬을 늘리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분산과 이동이라는 키워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체험형 공간을 꼭 경기장 앞에만 만들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동하는 공간 또한 꼭 물건을 판매하는 점포일 이유도 없다. 일본의 세이부 전철은 2021년 10월, 흥미로운 기획을 진행하였다. 역 앞에 정차하는 전철 차량 내부에 전원과 프린터 등 업무 장비를 설치해 놓아 임시 오피스를 만들었다. 이유는 그날 역 앞의 경기장에서 프로야구 경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야구팬들이 경기장 근처에서 일을 하다가 업무가 끝나면 눈앞의 야구장에서 가서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스포츠 관람이야말로 소비자들이 원하는 색다른 체험이다. 소비자들이 몰입할 수 있는 체험형 공간, 그리고 소비자의 근처로 한 발 더 다가가려는 시도를 통해 프로스포츠 팬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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