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의 공간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가

글. 이승윤

디지털 문화 심리학자, 건국대학교 마케팅 분과 교수. <커뮤니티는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 , <디지털 시대와 노는 법> , <구글처럼 생각하라> , <공간은 경험이다> 외

놀고 싶고, 실제로 보고 싶고, 머물고 싶은 욕구를 채워주는 ‘공간’.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은 브랜드의 가치를 높인다. 언택트 소비가 확산되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도,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국내외 오프라인 공간들은 소비자들이 ‘원하고, 찾고, 머물고 싶어 하는’ 힘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양한 사례 속에서, 프로스포츠만의 새로운 고객경험을 만드는 법을 고민해본다.

‘경험 공간’을 더 확보한 더현대 서울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시대, 오프라인 공간이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체험에 중심을 둔 오프라인의 진화가 있다.

상업적인 오프라인 공간을 대표하는, 백화점도 새로운 소비자인 디지털 네이티브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빠르게 진화해 나가고 있다. 미래형 백화점을 표방하며, 2021년 2월 야심차게 오픈한 더현대 서울은 백화점 최초로 전체의 약 50% 가까운 공간을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닌, 고객들이 먹고 마시고 쉴 수 있는 ‘경험 공간’으로 만들었다. 기존의 백화점이 다양한 상품들을 가능한 많이 배치하는 등 판매 위주의 전략으로 움직였다면, 더현대 서울은 철저하게 고객들이 더 오래 머물고 싶어 하도록, 경험이 주가 되는 형태로 구성된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업계의 예상과 달리 더현대 서울은 오픈 1년 만에 누적 매출 8,000억 원을 돌파했고, 역대 백화점 중 가장 빠르게 매출 1조 원 클럽에 오르는 기록을 달성했다. 판매에 힘을 빼고 경험에 힘을 주니 오히려 고객들이 몰렸고, 이들이 더 오래 머물면서 더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하니, 이것이 매출로 연결된 것이다.

경험이 주가 되는 공간을 확보한 더현대 서울 © 더현대 서울

와인 ‘테이스팅 탭’ 인기 몰이, 보틀벙커

백화점뿐만 아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오프라인 공간들이 경험 중심으로 진화해 나가고 있다.

롯데마트는 2021년 12월 서울 잠실 제타플렉스에 대형 와인매장 보틀벙커 1호점을 오픈했다. 보틀벙커 이전에도 수많은 와인매장들이 존재했기에, 당시 업계에서는 이 새로운 브랜드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관측했다.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오픈 1년 만에 매출이 6배 성장하며, 롯데마트의 대표적인 효자 공간으로 자리잡게 된다.

성공의 주요 포인트 역시, 판매보다는 경험에 방점을 둔 운영 방식에 있다. 보틀벙커에는 수백만 원 가까이 하는 값비싼 고급 빈티지 와인부터, 저렴하지만 트렌디한 와인들까지 총 50~80여 종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테이스팅 탭’이 존재한다. 방문객들은 테이스팅 탭 전용 카드에 금액을 충전한 후, 마시고 싶은 와인을 50ml씩 시음할 수 있다.

그동안 대형 와인 매장에는 와인 종류가 많아도 와인을 다양한 방식으로 직접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면, 보틀벙커에서는 값비싼 와인부터 트렌디한 와인까지 마셔보고, 적절한 안주도 페어링해서 즐길 수 있다.

테마별 와인을 유료로 시음해 볼 수 있는 테이스팅 탭 © 롯데쇼핑

핵심 고객이 원하는 경험을 제공하다

체험을 좀 더 구체화해서 전략적인 차별화 포인트로 사용하는 브랜드들도 늘어나고 있다. 20~30대 디지털 네이티브의 주요한 특성 중 하나는 ‘미센트릭(Me-Centric)’이다. 자신에게 집중하며, 자기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기를 원한다. 이처럼 미센트릭한 소비자들에게 개인화된 경험을 주면서 진화한 브랜드 중 하나가 모나미다.

60년 전통의 한국을 대표하는 문구류 브랜드 모나미는 최근 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스토어들을 오픈하면서, 단순 초·중·고교 학생들을 위한 문구류가 아니라, 성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수집하고 싶어하는 문구류를 파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판매가 아닌 고객 경험은 모나미의 가장 유명한 153 볼펜에서부터 시작된다. 서울 시내 곳곳에 위치한 모나미 스토어에는, 그들의 대표 제품인 153 볼펜을 DIY 할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고객은 이곳에서 단돈 500원으로 자신이 원하는 색상의 볼펜 머리, 스프링, 몸통을 선택해서 직접 조립해보는 개인화된 경험을 해볼 수 있다.

볼펜뿐만 아니라 직접 잉크를 만드는 체험도 해볼 수 있다. 모나미 스토어 가장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잉크 랩(Ink LAB) 세션에서 고객들은 직접 잉크를 만들고, 해당 잉크에 이름을 붙여보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할 수 있다.

인구 절벽 시대, 학령인구가 점차 줄어드는데다가 소비자들은 손에 잡히는 필기구가 아니라 태블릿PC나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기록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모나미는 공간을 이용해, 개인화된 경험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모나미뿐만 아니라, 나이키 등은 ‘커스텀존’을 운영, 고객이 스스로 디자인한 제품을 구입할 수 있게 한다. 또 아모레 퍼시픽이 운영하는 다양한 화장품 숍에 가면 자신만의 피부 색깔에 맞춘 립스틱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이제는 단순한 경험 공간이 아니라, 그들의 핵심 고객이 원하는 경험을 정확하게 정의하고, 그에 따르는 특별한 공간 체험 경험을 주는 브랜드들이 주목받고 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잉크를 만들 수 있는 모나미 스토어 © 모나미

© 모나미

자체 앱 활용해 고객 경험 극대화

스포츠와 관련된 공간들도 디지털 시대, 변화의 흐름 속에 체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가고 있다. 특히 스포츠를 참여해서 직접 즐기는 방식뿐만 아니라 스포츠를 관중으로 즐기는 경험에도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과거의 스포츠 관람이 ‘자신이 응원하는 스포츠 구단의 승리’라는 경기를 단순 관람하는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제는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통해서, 경기를 보는 것 외에도 체험을 다채롭게 전달하려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NBA 올랜도 매직은 2018년부터 자체 개발한 플랫폼을 통해, 경기를 둘러싼 다채로운 고객 경험을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올랜도 매직의 시즌 티켓을 구매한 고객이 차를 몰고, 홈 경기장인 암웨이 센터(Amway Center) 1마일 반경 안에 접근하면, 그들이 개발한 자체 앱을 통해 좌석 번호 정보가 핸드폰으로 전달된다. 주차장에 도착, 차에 내려서 플랫폼 안에 지도를 누르면,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예약된 좌석으로 가장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지도 위에 표시된다.

좌석에 앉으면 경기 시작 15분 전 AI 분석을 기반으로, 오늘 경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분석해주는 정보가 전달되어 고객이 좀 더 경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다. 또한 간단한 먹거리를 앉은 자리에서 주문할 수 있다.

앱을 통해 색다른 고객 경험을 선사하는 올랜도 매직 ©Orlando Magic

과거의 공간이 제품을 판매하거나, 해당 공간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에 초점을 맞췄다면,
직접적인 체험을 중요시하는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새로운 소비 세대가 등장하면서
좀 더 체험에 포커스를 둔 혁신 오프라인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충성팬으로 키우는 다채로운 경험

이처럼 편리한 고객 경험 외에도 고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경기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결혼기념일에 부부가 방문했다면, 앱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담은 메시지를 써서 경기장 내 가장 큰 전광판에 메시지를 노출시킬 수 있다. 경기 중 본인이 응원하는 선수를 위한 노래를 선곡해서 경기장 DJ에게 틀어달라는 요청을 할 수 있고, 선수와 추억을 남기고 싶다면, 경기 후 코트 위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서비스를 구매 예약해서 이용할 수도 있다.

과거의 경기장에 방문한 고객들이 단순하게 수동적인 관객들로 머물렀다면, 올랜도 매직은 손안에 휴대폰의 플랫폼을 통해서, 관객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체험들을 스스로 선택하고, 창출할 수 있도록 했다. 당연히 이 과정 속에서, 단순 관람객은 올랜도 매직의 충성팬으로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될 것이다. 올랜도 매직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2019 시즌, 시즌 티켓 소유자들의 100%가 이 앱을 사용했고, 이 플랫폼 서비스에 대한 고객 만족도가 20% 증가했다.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의 AR 깜짝 이벤트 ©SK텔레콤

체험 프로그램 통한 혁신적인 경험

국내 프로스포츠에도 변화의 흐름이 일어나고 있다. SK와이번스는 2017년 시즌부터, ‘스포테인먼트’라는 이름하에, 다양한 경험을 접목시켜 야구를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시도를 했다. 특히 그들의 당시 홈구장인 인천SK행복드림구장을 단순한 야구 관람을 위한 공간을 뛰어넘어 복합여가공간으로 진화시키려는 시도를 해왔다. 가족 단위의 팬을 양성하기 위해 – 오랜 시간 야구에 집중하지 못하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을 위해 – 유명 애니메이션 ‘타요’와 콜라보로 1루측 외야 후면 등 다양한 곳에 ‘타요 키즈 놀이공간’을 만들었다. 또 VR과 동작인식 센서 등 디지털 기술을 접목, 야구장에 방문한 팬들이 실제 투수가 되어 공을 던져보고, 자신의 운동 능력을 체험해보는 세션도 만들었다.

오프라인에서만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체험형 공간을 만들어오는 데 주력해 온, 신세계그룹의 이마트가 2021년 SK와이번스를 인수해 더 다양한 측면에서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체험형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놀라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 있다.

2022년 한국 갤럽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프로야구의 관심도는 31%에 그쳤다. 젊은 층은 더욱 심각하다. 20대의 프로야구 관심도는 18%에 불과하다. 야구장의 경쟁 상대는 농구장, 배구장과 같은 다른 스포츠 구장이 아니다. 젊은 층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다양한 복합 체험 공간이고, 집안에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넷플릭스와 같은 OTT이거나 손안에 휴대폰으로 언제든 즐길 수 있는 유튜브다.

‘공간은 경험이다’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공간이 제품을 판매하거나, 해당 공간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에 초점을 맞췄다면, 직접적인 체험을 중요시하는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새로운 소비 세대가 등장하면서 이전보다 더 체험에 포커스를 둔 혁신 오프라인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프로스포츠 관련 공간이 살아남기 위해서 집중해야 할 것은,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발굴을 통한 혁신적인 공간 경험이다.

PROSVIEW THEME : EXPERT INSIGHT I

이 페이지 공유하기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