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소장. 사람들의 말과 글로 이루어진 빅데이터 분석가. 이야기를 좋아한다. 데이터는 결국 이야기이고, 사람을 이롭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며 데이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2018년부터 저서 <트렌드 노트>를 출간하고 있다.
생활변화관측소에서 의미 있다고 판단하는 데이터는 상승과 역전이다. 당근마켓은 이 두 경우에 모두 해당한다. 당근마켓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해를 거듭하여 지속적으로 상승하였다. 2020년에는 중고나라의 언급량을 역전하였다. 어떤 브랜드가 다른 브랜드보다 더 많이 언급될 때, 특히 기존의 강력한 브랜드를 역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당근마켓이 갖고 있는, 중고나라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비즈니스적 관점과 소비자 편익은 자주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소비자 입장에서 배달의민족의 최대 편익은 배달 가능한 상점을 한데 모아놓았다는 것이 아니라 주문 시 전화를 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마켓컬리는 많은 업계가 바라보는 것처럼 새벽배송이 아니라 우리집 밥상을 예쁘게 차릴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데 편익이 있다.
중고나라와 당근마켓, 두 플랫폼은 비즈니스적 관점에서는 사용하던 물건을 거래하는 같은 산업으로 분류되지만, 소비자 관점에서 전혀 다른 플랫폼이다. 중고나라의 플랫폼 형태는 웹 사이트다. 모바일 앱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PC 기반 네이버 커뮤니티이다. 중고나라의 슬로건은 ‘대한민국 1등 중고거래’이다. 슬로건과 웹사이트의 UI는 중고 물건을 거래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규모가 크다는 것이 장점이다. 반면 당근마켓은 모바일 앱이다. PC로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이다. 당근마켓의 슬로건은 ‘당신 근처의 동네 커뮤니티’이다. 당근은 당신 근처의 줄임말이다. 슬로건 어디에도 중고 거래를 뜻하는 말은 없다. 본 서비스의 지향점이 중고거래가 아니라 동네 기반 커뮤니티임을 강조한다.
두 브랜드의 거래 주체도 다르다. 중고나라는 인터넷 카페의 특성상 회원 대 회원간의 거래이지만, 접속한 사람은 파는 사람이기보다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한 소비자의 위치에 있다. 반면 당근마켓의 거래 주체는 동네 주민과 또 다른 동네 주민이다. 이 앱에서 나의 정체성은 OO동네 주민이다. 나는 파는 사람일 수도 있고 사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 위치는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다. 입금 후 택배를 보내는 거래 방식에서는 거래자의 얼굴을 보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당근마켓은 직거래, 즉 거래자가 직접 만나 얼굴을 보는 것이 기본이다. 택배를 원한다면 특별히 부탁을 해야 한다.
중고나라는 거래를 통해 판매자는 돈을 벌고, 구매자는 싸게 득템했다는 이점을 얻는다. 그래서 중고나라 거래 후 후기는 판매자의 태도가 아니라 구매한 물건의 상태를 중심으로 남겨진다. 반면 당근마켓의 판매자와 구매자는 거래의 재미와 뿌듯함을 얻는다. 구매 후기도 제품이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 그 사람이 약속을 얼마나 잘 지켰고, 어디까지 나왔는지가 중심이다. 판매자는 본인에게는 필요 없어졌지만 여전히 가치가 있는 물건을 정리하고, 구매자는 본인에게 필요한 물건을 얻게 된다. 사고파는 개념보다 불필요한 사람에게서 필요한 사람에게로 물건이 건네지는 개념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당근마켓은 중고거래 플랫폼이 아니라 동네기반 자원 선순환 플랫폼이다.
자료: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관측지 Vol.22 (2021년 11월호)
▶ 중고나라 vs. 당근마켓
당근마켓은 이용자를 물건을 파는 사람이나 싼 물건을 찾아 헤매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당근마켓으로 물건을 판매한 사람에게 날아오는 첫 메시지는 ‘비움을 실천한 당신!’으로 시작한다. 내 거래에 ‘비움의 실천’이라는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이다. 당근마켓의 화자는 ‘당근이’라는 캐릭터이다. 캐릭터를 통한 친근한 화법을 구사한다.
이용자에게는 거래를 얼마나 많이 했고 긍정적 피드백을 받았는가에 따라서 ‘매너온도’가 있다. 매너온도는 일종의 평가 결과이지만 5점 만점의 별점 평가와 다르다. 그 사람이 몇 점을 받았는가가 기준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믿을 만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신뢰의 지표이다.
누구나 옳은 행동을 하고 싶어한다. 당근마켓을 하는 것은 자원의 재활용, 친환경과 연결된 행동이다. 당근마켓에 물건을 올린 사람은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 본인에게는 필요 없어진 물건이지만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유용하게 썼으면 하는 마음, 과소비를 줄이고 환경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 동네 사람들과 나눔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당근마켓은 이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 당근마켓의 언어는 소비자가 당근마켓을 바라보는 시각에 정확히 부합한다. 당근마켓을 이용하면서 어렵지 않게 활동 배지를 획득할 수 있다. 첫 거래 성공하면 ‘거래의 시작’ 배지, 10번 판매글을 올리면 ‘거래하는 기쁨’ 배지, 거래 후기를 남기면 ‘당신의 센스’ 배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좋은 후기를 받으면 ‘따뜻함의 시작’ 배지 등이다. 해당 배지는 당근마켓이 지향하는 바를 싣고 있다. 미니멀리즘, 근처 이웃과 거래하는 재미, 따뜻한 거래문화와 매너 등이다. 이러한 지향점은 이용자가 자신의 행동에 부여하고 싶은 의미이다.
당근마켓을 직접 이용해 본 적이 있는가? 한 번이라도 내가 올린 글에 누군가 반응하고,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동네 어귀에서 사람을 만나고, 거래를 성공시킨 경험이 있는가? 코로나 이후 당근마켓의 상승에 대해서 ‘아끼는 것도 좋지만 경제가 위축될까 우려된다’는 남들보다 빠르고 누구보다 섣부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을 타자적 시각으로 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타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미디어에 비춰진 것보다 사람들의 행동은 깊다.
거래의 시작 : 두근두근 당신의 시작을 응원해요! 당근마켓과 함께 미니멀리즘을 실천해보세요.
거래하는 기쁨 : 벌써 10건의 판매 글을 작성했어요. 근처 이웃과 거래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나요?
당신의 센스 : 거래 후에는 후기를 남겨주는 센스있는 당신! 짧은 후기도 당근마켓의 따뜻한 거래 문화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돼요.
따뜻함의 시작 : 매너 있는 당신 덕분에 당근마켓이 따뜻해지고 있어요. 작은 매너가 누군가에겐 큰 즐거움으로 다가간다는 걸 잊지 마세요.
당근마켓은 동네를 기반으로 한 안전한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시작해서 코로나 시절 집정리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돕는 앱으로 진화하고, 점차 나눔을 실천하는 동네 커뮤니티로 향해 가고 있다. 이웃과 물건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진심이다. 돈을 버는 것도 사실이고 돈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눔이라는 포인트가 없다면 당근마켓의 함의는 반감된다.
우리 모두 휴대폰을 쥐고 있지만 그에 대한 친숙도는 다르다. 업무로 디지털을 배운 사람보다 놀이로 배운 사람, 태어난 순간부터 스크린을 터치하면서 자란 사람이 온라인에 익숙하다. 휴대폰 화면으로 물건을 보고, 채팅으로 말을 건네고,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의 디지털 크레딧(당근마켓에서는 그의 매너 온도)을 믿는 것은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곳간이 그득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텔방처럼 최소한의 물건만 놓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개인의 취향인 것 같지만 시대 정신이다. 미니멀리즘은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탄생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관대함도 학습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가 온라인, 거래, 나눔에 익숙하다. 개인의 경험으로 ‘중고’, ‘거래’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플랫폼, 우리 콘텐츠, 우리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당근마켓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