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콘텐츠의 힘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오디오 시장

글. 김교석

TV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이며 푸른숲 편집장. 전 ‘필름2.0’ 기자이며 <아무튼, 계속>, <오늘도 계속 삽니다>를 썼다. 온라인 미디어인 ‘엔터미디어’에서 ‘어쩌다 네가’라는 칼럼명으로 여러 방송 프로그램을 분석하고, 그 속에서 읽을 수 있는 문화 현상에 대해 글을 쓴다.

세상일이란 정말 돌고 도는 법인가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유튜브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즐기는 동영상의 시대를 넘어 메타버스라는 인류가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세상의 문 앞에 선 이때, ‘듣는 콘텐츠’가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미래로 부상하고 있다. 1981년 MTV가 내린 ‘비디오가 라디오를 망하게 했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는 선고를 무려 40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오디오북 시장의 비약적 발전

오디오 콘텐츠의 부상을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아마존 도서 검색이다. 꽤 많은 경우, 종이책이나 전자책이 아닌 오디오북이 최상위 목록에 뜨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한 아마존의 오디오북 브랜드 오더블(Audible)이 킨들(Kindle)의 시장점유율을 넘어섰고, 2020년 미국 오디오북 시장 규모는 13억 달러(미국오디오북출판협회)로, 같은 기간 미국출판사협회가 밝힌 전자책 시장 규모(11억 달러)를 추월했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 흐름을 미리 간파한 뉴욕타임스는 2018년부터 오디오북 베스트셀러 차트를 따로 집계해 소개했고, 현재 미국의 공신력 있는 언론매체는 대부분 종이책과 함께 오디오북 베스트셀러 순위를 제공하고 있다.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2020년 미국 인구의 22.9%가, 중국은 24.5%가 오디오북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시장조사 업체 그랜드뷰리서치는 2020년 약 4조 원 규모의 글로벌 오디오북 시장이 2027년 18조 규모로 급속 팽창할 것이라 전망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시각장애인이나 미국의 트럭 운전자를 대상으로 주로 서비스되었던 오디오북이지만, 2007년 종이책의 대안으로 등장해 나름 파이를 키워온 전자책을 단숨에 넘어설 기세다. 우리의 경우 오디오북 시장 규모는 약 300억 원대로 전 세계 오디오북 시장의 1%도 채 안 되고 국내 출판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지만, 윌라, 지니뮤직, 카카오, 네이버, 스토리텔, 스포티파이 등등 국내외 출판, 음원, IT, 플랫폼 기업들이 대거 참전해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달력을 1년 전으로 돌려보면 더욱 극적인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작년 초 우리나라 3050세대를 들뜨게 만들었던 오디오 기반 SNS 클럽하우스 열풍은(비록 순식간에 냉각됐으나) 동영상 플랫폼의 다음 주자가 오디오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확신으로 바꾼 결정적인 계기였다. 클럽하우스는 서비스 시작 전에 이미 100억 원을 투자받았고, 서비스 1년 만에 1,000억 원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유니콘 기업으로 도약했다.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은 무엇을 봤을까? 클럽하우스에 열광적인 관심과 투자가 이어진 이유에는 그동안 조용하지만 꾸준히 성장해온 팟캐스트라는 배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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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경우 10여 년 전 <나는 꼼수다> 신드롬 이후 추억의 매체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지만, 데이터를 보면 세계적으로 팟캐스트 시장의 외연은 비약적으로 확대됐다. 2020년 하반기 기준으로, 미국에서는 12세 이상 인구 중 22%가 매주 팟캐스트를 청취하고 있고, 국내 팟캐스트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팟빵의 전체 콘텐츠 청취 시간은 2017년 4,000만 시간에서 2019년 1억 7,446만 시간으로 4배 넘게 늘어났다. 누적앱 다운로드 수로 따지면 2012년 20만 회에서 2020년 950만 회로 늘어났다.

특히 글로벌 1위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업체 스포티파이가 피워 올린 열기가 대단하다. 2019년부터 팟캐스트 관련 유명 기업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18만 5,000개 팟캐스트로 시작한 서비스가 3년 만에 320만 개로 늘어났다. 특히 2020년, 유명 스포츠 작가 빌 시먼스가 설립한 스포츠·엔터테인먼트 팟캐스트 기업 링어의 인수는 결정적인 움직임이었다. 스포티파이 CEO 다니엘 엑은 “앞으로 수십억 명의 사람이 (스포츠)오디오 방송을 듣기 시작할 것”이라며 “더 링어 인수는 차세대 ESPN을 산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가장 발 빠르고 재밌는’ 소식의 창구

실제로 팟캐스트 생태계에서 e스포츠를 포함한 스포츠 카테고리는 시장 점유율과 성장성 면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다. 중계뿐 아니라 전문적인 분석과 대담이 팬덤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구독형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스포츠팬들의 니즈와 잘 맞아떨어진다. 매체 기사보다 훨씬 자세하고 방대한 자료를 제공하고, 영상 인터뷰보다는 캐주얼하게 취재와 초대가 가능하다. 실제로 EPL과 MLB, NBA 등 대형 리그의 가장 발 빠른 소식과 뒷이야기는 이제 가장 먼저 팟캐스트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고 있다. 지난 1월 <뉴욕타임스>가 인수한 종합 스포츠매체 <디애슬래틱>은 구단별 심층 콘텐츠를 기사와 함께 유료 팟캐스트를 통해 제공하면서 설립된 지 불과 5년 만에 120만 유료 구독자를 돌파했다. 이후 팟캐스트 방송을 넘어 합법 스포츠 베팅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중이다. 우리의 경우도 ‘더 바운스’ 등 스포츠 기자들이 운영하는 팟캐스트와 스포츠 전문 방송 플랫폼 ‘스팟’이 서비스 중에 있다.

스포티파이가 팟캐스트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까지 대부분 다운로드 형태로 소통되면서 광고효과에 대한 측정 모델이 없었다. 그러나 스포티파이는 음원 서비스에 사용하던 스트리밍 방식을 적극 활용하고 광고 측정 모델을 개발하면서 팟캐스트 시장이 갖고 있던 한계를 극복해나갔다. 이에 자극받아 구글,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등의 슈퍼 공룡들이 팟캐스트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대대적인 투자를 벌이고 있다. 그 결과 2021년 미국 팟캐스트 광고 시장은 10억 달러(약 1조 원)을 돌파하는 큰 시장이 됐다.

왜 사람들은 보는 것보다 정보량과 자극이 떨어지는 듣는 콘텐츠에 다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는 것일까? 결정적인 이유는 ‘선’이 사라지고, 시간이 더욱 중해졌기 때문이다. 활자나 영상 매체와 달리 듣는 콘텐츠의 최대 장점은 멀티태스킹이다. 오디오 콘텐츠는 시공간의 제약을 가장 적게 받는 매체다. 일을 하면서, 운전을 하면서, 운동을 하면서 듣고 싶을 때 언제든 들을 수 있다. 국내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가 이용자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1위) 운전할 때(2위) 오디오북을 가장 많이 듣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제·경영서의 경우 전체 이용자의 80%가 사실상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듣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개인화된 매체인 모바일로 대부분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에 무척이나 어울리는 풍경이다.

이런 변화를 급속도로 이끌어낸 것이 바로 에어팟으로 대표되는 무선 이어폰의 보급이다. 애플은 2020년 한 해에만 약 1억 대의 에어팟을 판매했다고 한다. 무선 이어폰, 블루투스 스피커의 비약적 발전으로 ‘선’의 제약에서 몸이 자유로워진 것만큼이나 오디오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는 시간과 상황, 활동반경이 늘어났다. 오디오 플랫폼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측하는 이유 또한 인공지능 스피커, 커넥티드카 등 오디오 관련 하드웨어의 발달이 필연적으로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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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링어

무시할 수 없는 편의성, 남은 숙제는

이런 기술의 진보로 인해 가벼워진 건 손이나 몸뿐 아니다. 예를 들어 오디오북은 일상에서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책을 사거나 빌리러 가고, 그렇게 가져온 책을 책상 앞에서 펼치기까지의 노력과 심리적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한다. 책에 시선을 집중할 필요도 없다. 귀에 꽂고 가볍게 톡 치기만 하면 끝이다. 시간의 효율적인 활용만큼이나 피로와 부담을 덜고 즐길 수 있다는 차원에서 힐링 콘텐츠로도 각광받고 있다. 일상에서 별다른 피로와 부담없이 쉽고 간단하고 편리하게 접근가능하다는 점에서 현대인들이 원하는 콘텐츠 소비 방식과 맞아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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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공룡들이 오디오 콘텐츠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로가 쌓이고, 시간을 들여서 봐야 하는 동영상 콘텐츠의 한계를 넘어선 장점이 명확히 발휘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시간의 모바일 사용 및 영상 노출로 ‘시각 피로화’가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이때 눈을 잠시 쉬게 해주면서도 점점 더 비싼 재화로 인식되는 ‘시간’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다. 특히 오디오 플랫폼은 각자의 귀에다 속삭이는 만큼 무척이나 친근하게 일상의 순간순간을 파고든다. 실제로 눈의 피로를 덜고, 가볍게 독서할 수 있다는 점이 오디오북 이용자들이 꼽는 가장 큰 장점이고, 정서적 유대와 신뢰, 팬덤은 팟캐스트 광고 시장이 급격히 성장한 결정적인 이유다. 이제 남은 유일한 숙제는 오디오 콘텐츠가 ‘쿨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 있다. SNS를 비롯한 인터넷 기반 서비스, 콘텐츠 산업이 성장하고 자리 잡기 위해서는 1020세대가 손을 들어줘야 한다. 클럽하우스는 그 점에서 뼈저린 실패를 맛봤다. 기존 모델과 달리 이들 세대를 위한 콘텐츠 개발과 인플루언서의 등장에 업계가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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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 CONTENTS ISSUE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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