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니스트. <손에 잡히는 4차 산업혁명> 저자로 2000년부터 IT 미디어 업계에 뛰어들어 월간지와 온라인 미디어를 두루 거치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최근에는 기술 그 자체보다 애플, 구글,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공룡 기업들의 사업 철학과 급변하는 시장에 대응하는 플랫폼 전략에 관심을 갖고 있다.
희망과는 달리 팬데믹이 쉽게 풀리지 않으면서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가 관람객 수 제한 등으로 진행되고 있다. 스포츠 업계와 팬들에게는 답답한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계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경기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 그리고 앞으로의 스포츠 관람 경험의 진화를 마주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기회를 맞았다. 여전히 스포츠를 즐기는 최선의 방법은 현장에 있겠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없애는 기술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현실, 그리고 가상의 경기장에 불러오고 있다.
지난 도쿄 올림픽뿐 아니라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VR, 즉 가상현실을 이용한 중계가 선보이면서 이목을 끌었다. 헤드셋을 쓰고 경기장 관람석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은 시각적 자극을 주는 것이다. 가상현실은 시각을 제어하는 것으로 이용자를 다른 가상의 공간에 참여시키는 효과를 낸다. 게임처럼 1인칭 시점의 게임이 주를 이루는 게 이 가상현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기장에 몰입할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가상현실은 이미 미국에서는 NBA나 NFL에 쓰이고 있는 중계 방식이고, 최근 프리미어 리그 경기도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VR로 중계되고 있다. 가상현실의 관람은 현장 못지않은 생동감을 줄 뿐 아니라, 더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이른바 ‘예매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가장 좋은 자리에서 경기를 볼 수 있고, 전·후반이 바뀌거나 중요한 순간에 따라 자리를 옮기는 것도 자유롭다. 동계올림픽 일부 경기에 쓰였던 것처럼 경기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면 선수의 시선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도 있다.
증강현실(AR) 역시 스포츠를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준다. 가상현실이 이용자를 경기장으로 불러준다면, 증강현실은 경기 중계에 추가적인 정보들을 더해준다. 예를 들면 골프 중계에서 공이 날아가는 궤적을 추적해서 선으로 그어주면 더 편하게 코스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의 머리 위에 이름과 기록들을 보여주고, 경기장 주변에 다양한 정보들을 전광판이 아니라 가상의 디스플레이에 띄워 원하는 정보들을 넘겨볼 수도 있다.
이는 광고 시장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이미 경기장의 펜스 광고판을 중계 시에 가상 콘텐츠로 채우거나 잔디 구장 위에 광고를 채우기도 한다. 도쿄 올림픽에서는 개막식과 폐막식에 증강현실이 더해져서 공연을 더 화려하게 채워주기도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VR 중계 ©shutterstock
스포츠와 IT 기술의 접목은 중계뿐 아니라 운동 그 자체에도 오랫동안 활용되어 왔다. 영화 <머니볼>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야구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실화를 다룬다. 2002년 오클랜드의 단장 빌리 빈이 그 동안의 경험과 감각에 의한 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경영학적인 통계 분석을 통해 선수단을 구성했고, 그 결과 만년 꼴찌였던 팀이 20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데이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흐름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도구다.
특히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등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선수들의 움직임 분석은 더 정밀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데이터 기반의 분석은 프로 선수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관여도가 높은 아마추어 선수나 취미로 즐기는 대중들에게도 퍼지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첼시FC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코칭 프로그램을 현장에 반영하고 있다. 러프버러 대학과 함께 만든 이 솔루션은 각 선수들의 경기중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학습해 각 상황에서 선수들이 어떻게 판단하고 움직이는지를 분석, 예측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첼시FC는 선수들의 습관과 상황에 따른 행동을 예측하고 평소와 다른 움직임을 보였을 때 컨디션을 체크하고, 더 나아가 피로도까지 판단할 수 있는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데이터는 급박한 상황이 이어지는 경기장에서 코치진이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뿐 아니라 각 선수들의 훈련 방법과 전술을 설계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첼시FC 외에도 많은 구단과 기업들이 관련 기술들을 개발, 도입하고 있다. 이 기술들을 통해 스포츠 데이터는 단순한 결과의 기록이 아니라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경험하고 있다. 메타버스, 디지털 트윈 등의 흐름이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데이터 기반의 트레이닝 기술은 프로스포츠뿐 아니라 아마추어와 생활 스포츠로도 확장된다. 스윙비전은 테니스를 분석해주는 앱이다. 경기장 한 편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켜고 카메라를 비추면 경기 내용을 분석할 뿐 아니라 실시간으로 점수를 매겨주는 심판 역할을 해 준다. 음성 안내가 있기 때문에 실제 심판이 함께하는 것 같은 경험을 준다. 이 앱은 점수를 매겨주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예민한 라인 판정도 정확하게 해 주기 때문에 누구나 테니스를 즐겁게 즐길 수 있다.
요즘 불고 있는 골프 열풍에도 컴퓨팅 기술이 활용되는데 마찬가지로 영상을 찍어 스윙 자세를 순간순간 해석하고, 고칠 점을 짚어주는 인공지능 레슨 서비스는 국내만 해도 골프픽스, 나샷, 골프존 등을 통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 1월 5일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도 스포츠 분야의 IT 기술들은 더 흥미로운 미래 스포츠 환경을 제시했다. X센스(Xsens)는 웨어러블 센서 기반의 전신 모션 캡처 시스템을 통해서 여러 운동 활동 중에 일어나는 미세한 움직임을 해석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실제로 이 서비스는 스포츠 클라이밍 분야에 적용돼 선수들의 등반 속도, 움직임 뿐 아니라 선수와 벽 사이의 거리를 측정해서 벽을 오르는 습관을 해석해 냈다. 이 센서 기술은 재활 치료에도 적용돼서 환자가 일상의 움직임 속에서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고, 통증이 행동에 끼치는 영향을 해석해서 적절한 치료가 따르도록 하는 근간이 된다.
장비도 중요한데, 대만의 징글텍(JingleTek)은 야구공에 카메라와 센서를 넣고 분석 기술을 더한 스마트 야구공을 발표했다. 투수의 훈련을 분석하는 것인데, 이 야구공 안에는 두 개의 초고속 카메라가 들어 있어서 슬로우 모션 비디오를 찍어내고, 분석을 통해서 투수가 공을 던지는 릴리즈 포인트부터 공이 날아가는 모든 과정의 속도와 궤적, 회전 등을 분석할 수 있다.
스포츠와 IT의 연결은 여느 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흐름이다. 다양한 센서들은 사람의 움직임을 정확히 읽어내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비롯한 기술들은 그 데이터를 흘려보내지 않고 가치 있는 정보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훈련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명확한 목적을 바탕으로 이뤄지고, 그 효과도 데이터로 즉시 확인된다.
IT 기술은 점차 보편화되고 있고, 어렵지 않게 많은 영역에서 마주할 수 있다. 이 기술들은 인간의 한계를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게 해 주고, 중계기술들은 그 노력들을 더 생동감 있게 담아내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다. 스포츠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고, 그 관심은 다시 일반인들의 스포츠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는 계기로 순환된다.
팬데믹은 위기로 다가왔고,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경험으로 우리는 디지털 기술을 더 가깝게 접하게 됐고, 그동안 고민만 해 왔던 기술들을 통해 많은 답들을 얻어내고 있다. 온라인 기술이 오프라인을 대체하는 것은 아닌 만큼 팬데믹 이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시너지로 더욱 풍성한 스포츠 문화를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해 본다.
©스윙 비전
골프픽스 앱 소개 화면 ©골프픽스
웨어러블 기반 전신 모션 캡처 기술을 선보이는 Xsens ©CES
징글텍의 스마트 야구공 ©JingleT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