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마케팅 전공 부교수. <리테일의 미래>, <리:스토어> 저자. 글로벌 마케팅과 비즈니스에 대해 강의하며 국내외 대기업을 대상으로 자문 프로젝트, 세미나 등을 진행했다. 글로벌 유통 트렌드를 주제로 다양한 매체와 인터뷰를 했으며 관련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더현대서울, 이케아 랩, 아모레성수, 하우스도산, 다이슨 데모 스토어 등 체험형 쇼핑 공간이 늘고 있다. 이런 체험형 매장들은 이커머스와 언택트가 대세인 상황에서 오프라인 채널의 새로운 역할인 체험과 가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비대면 시대에도 각광받고 있는 오프라인 매장의 조건과 효용성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프로스포츠 산업에 접목시킬 방안에 대해 고민해본다.
폭발하는 화산을 형상화한 케이크와 아스파라거스를 넣은 디저트…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서브 브랜드인 ‘누데이크’에서 만나볼 수 있는 디저트다. 이외에도 양 모양을 한 양빵이나 손톱만한 크로아상인 마이크로상 등 상상해보지 못한 모티브를 디저트화했다. 누데이크가 있는 곳은 하우스도산. 하우스도산에는 ‘누데이크’ 외에도 낯설고 기묘한 설치 작품, ‘젠틀몬스터’ 매장과 핸드크림 브랜드 ‘탬버린즈’가 모여 있다. 그리고 수많은 소비자들이 찾아가 SNS에 인증샷을 남긴다. 코로나19를 뚫고서라도 갈 만큼 뚜렷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비대면을 의미하는 언택트라는 용어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일반화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줌(Zoom)이나 웹엑스(WebEx) 등으로 열리는 온라인 회의가 대면 회의를 대신하게 되었고, 레스토랑에 가는 대신 배민이나 쿠팡이츠 등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해 타인과의 접촉을 줄여야 했다. 미국의 경우에도 우버이츠(UberEats)나 도어대시(DoorDash) 등 음식 배달 서비스 이용이 폭증했고, 온라인에서 고른 신선식품을 소비자 대신 매장에 방문해 픽업해서 집 앞으로 가져다주는 인스타카트(Instacart) 서비스 이용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미국 스타벅스는 매장들 대부분을 모바일 오더로 주문된 음료를 가져가게 하는 ‘픽업 중심’ 매장으로 바꿀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언택트 라이프스타일과 온라인으로의 이동은 가속화된 반면, 대면을 필요로 하는 외식과 오프라인 기반 리테일 업체들의 위기는 더 심화되었다. ‘리테일 아포칼립스(Retail Apocalypse: 리테일의 종말)’라는 표현도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에 적용되는 표현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보자. 이렇게 언택트·무인·온라인으로 이동하면 오프라인 채널은 사라지는 것일까? 필자의 저서 <리:스토어(Re:Store)>에서 강조한 것처럼 이런 질문을 종종 받을 때마다 ‘오프라인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중요한 채널이다. 다만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대답한다.
그 증거로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수치상으로 보면, 글로벌 리테일에서 오프라인 채널은 전체 리테일 매출의 무려 65~84%를 차지한다. 아마존이 지배할 것 같은 미국 시장에서도, 온라인 채널이 차지하는 매출은 코로나19가 극심했던 2020년 중반 20%를 넘은 정도였다. 2019년까지만 해도 17% 정도만 차지했다. 이커머스 비중이 높은 한국과 중국의 이커머스 매출 비율은 코로나19가 심했던 기간에 잠깐 40~50%를 넘긴 적이 있을 뿐, 평균 24~30% 수준이다. 즉, 수치상으로 오프라인의 영향력이 온라인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 증명된다.
둘째, 인간의 본성을 생각해보자. 영화처럼 모든 것이 온라인·디지털로 된다고 해도 타인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필요하다. 온라인으로 하는 모임도 괜찮지만 실제 만나서 이야기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나누는 직접적인 소통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인간은 긴 역사 속에서 아날로그 감성이 체화된 존재다. 락다운 조치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지인들과 모이지 못해 느꼈던 갑갑함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잘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Z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난 ‘디지털 네이티브’임에도, 오히려 오프라인 공간 경험을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들은 오프라인을 일종의 ‘새로운’ 경험으로 느끼는 한편, 자신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디지털 환경에서 벗어나기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즉, 앞으로도 오프라인 공간 경험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오프라인 경험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 것일까? 앞서 언급한 하우스도산 외에도 ‘체험형 매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례들이 늘어나며, 오프라인 채널에 대한 역할변화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더현대서울, 롯데 동탄점, 시몬스 테라스, 이케아 랩, 다이슨 데모 스토어, 아모레 성수, 신전 뮤지엄 등이 그 예다.
지금까지 매장은 한 기업의 자산이자 상품 판매를 위한 곳으로 여겨진 탓에 매장 수를 얼마나 빨리, 그리고 많이 확장하느냐가 중요했다. 하지만 위에 예를 든 최근 매장들은 앞으로 매장이 상품 경험과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고객이 브랜드를 알아갈 수 있는 교육의 도구로서 브랜드와 상품 접점의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미디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앞으로는 “왜, 굳이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에 찾아와야 하나?”라는 관점에서 매장 공간을 바라보고 기획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매장에서 어떤 콘텐츠를 제공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또한 소비자를 우리 상품을 구매하는 대상이라고 바라보기보다 우리 매장의 콘텐츠를 소비함과 동시에 생산해주는 콘텐츠 생산자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
변화된 오프라인 채널은 프로스포츠에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 요즘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개인 인스타그램에 SSG랜더스 또는 쓱야구단으로 불리는 유니폼과 정용진 부회장을 상징하는 캐릭터, 새롭게 리모델링한 경기장 모습을 포스팅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유통업체인 신세계는 왜 야구 구단을 인수했을까? 기업이 스포츠 구단을 스폰서하는 것은 전통적인 마케팅 방식이다. 이번 경우는 신세계가 그룹 자회사인 SSG을 내세웠다. 온라인 배송과 이커머스에서 선두를 달리는 이미지도 있고, 젊은 소비자들에게 더 친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2030 팬 비중이 60% 정도에 달할 정도로 젊은층이 선호하는 야구와 연계시키기 좋다.
정부회장은 2016년 스타필드 하남점 개점을 앞두고, “유통업의 경쟁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는데, 이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소비자들의 시간을 점령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야구장이라는 공간은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곳이다. 예를 들어 신세계 SSG랜더스가 경기를 하면 수많은 관중이 경기장 안에서 신세계 계열의 각종 음식점이 판매하는 음식을 구입해서 먹고 마실 것이다. 신세계 계열의 다양한 서비스를 ‘경험’하며, 야구 경기를 구경하는가 하면, 유니폼도 구입할 것이다. 이들은 일반 브랜드 상품들이기보다 신세계의 PB(자체 브랜드)일 확률이 높다. 즉, 신세계+SSG+오프라인의 결합의 시너지를 노릴 수 있는 조합이다.
학계에서도 이런 ‘경험’이 의미 있다고 본다. 다양한 소비자 연구 결과들을 보면, 소비자들은 즐겁게 소비하는 상품과 브랜드를 더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더 기억한다. 즉, 야구 경기의 즐거움과 환희 속에서 소비된 브랜드 – 신세계와 노브랜드를 더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더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 야구단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는 홈구장에 ‘스마일 글리코파크’라는 대규모 놀이동산을 지었다. ©위키백과
미국 골프장 사례를 보자. 한국은 골프장을 찾는 인구가 늘어가는 추세인 반면, 미국에서는 골프장을 찾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2003년 3,000만 명에 달하던 골프 인구는 2006년 2,900만 명으로, 2018년 2,400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전 세계 3만 4,000여 개 골프 코스 중 45%가 미국에 있지만, 18~34세 골프 인구는 지난 20년 동안 약 30%나 줄었다. 컨트리클럽 수도 5,000여 개에서 2006년 3,900개 수준으로 약 20% 줄었다. 가장 큰 이유는 한 게임에 4~5시간은 족히 드는 전체 18홀의 골프가 젊은 세대들에겐 지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디지털 세상에 감각적인 볼거리가 넘쳐나다 보니 정적인 스포츠인 골프가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일명 ‘골프=있어빌리티(있어 보인다와 ability를 조합한 신조어)’의 공식이 미국 젊은 세대에겐 별로 유효하지 않다.
젊은 세대를 골프장으로 끌어들일 방법을 고안하던 미국의 골프장들은 젊은이들도 가볍게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심리적 부담감을 낮춘 전략을 시도했다. 예를 들면 18홀 한 게임, 9홀 반 게임이라는 개념을 깨고, 3홀·6홀 코스를 마련해 한두 시간만으로도 골프를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다른 골프장들 역시 이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젊은 세대를 공략했다. 밀레니얼 부모 세대를 겨냥해 베이비시터 서비스도 제공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고충(pain point)’을 잘 공략한 골프장들은 방문 고객이 늘었을 뿐 아니라, 이들이 클럽 멤버십으로 연결되는 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리:스토어(Re:Store) 전략’의 핵심은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경험을 혁신해 그 공간만의 가치(value)를 제공해, 고객이 찾아올 이유를 제시하고 그들의 시간을 ‘점령’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는 이용자들(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해야 파악할 수 있다.
혹시 지금 매장에 유입되는 고객들이 줄어서 고민인가? 그렇다면 다른 매장이나 웹사이트를 참고할 게 아니라 소비자들이 굳이 여러분의 매장에 방문해야 하는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