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소비 경계 허문 숏폼을 대하는 자세

글. 이주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편집장이자 대중문화칼럼니스트. 트렌드를 선도하는 매체를 이끌며, MZ세대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문화의 핵심을 파고든다.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세대와 세대를 이해시키고 연결하는 칼럼을 쓰고 있다.

출근길 지하철의 풍경. 모두가 모바일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 중 대부분이 짧은 형식으로 구성된 영상 콘텐츠일 것으로 추측, 아니 확신한다. 그러니 숏폼 콘텐츠가 대세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짜깁기’와 ‘짤’로 이해하는 Z세대

영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출발! 비디오여행> 등과 같은 것들이 인기를 끌었다. 과거에는 그랬다. 여전히 <출발! 비디오여행>은 존재하지만, 최근 <방구석 1열>과 같은 콘텐츠가 시청자의 인기를 끌며 경쟁구도를 형성했다. 후자의 프로그램은 널리 알려진 영화 유튜버들을 기용해 한 편의 영화에 대해 영화 유튜브 콘텐츠처럼 이야기해준다.

대략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해당 유튜버는 한 편의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종의 해설서처럼 읽어준다. 여기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유튜버의 설명으로 영화의 ‘짜깁기’ 영상을 본, 특히 Z세대들은 과연 그 영화를 봤다고 생각할까?”라는 것.

필자는 전통적 미디어 범주에 있는 패션 매거진을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종종 야근을 많이 하는 편이다. 어느 마감 기간의 저녁 식사에서 편집부 막내격인 Z세대 후배에게 질문해보았다. 물론 그도 이런 유튜버의 영화 해설 영상을 많이 본다고 했다. 인지론적 관점에서 그는 가끔 그 영화를 본 것으로 인식한단다. 때로는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 영화를 본 것처럼 이야기한다고도.

비단 영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뉴트로’ 트렌드에 의거하여 Z세대들은 과거의 TV프로그램, 예를 들어 <거침없이 하이킥>과 같은 시트콤도 열광적으로 좋아한다. 대략 20분짜리 167부 분량이다. 이걸 다 보기에는 여력이 없다. 유튜브 등에 떠다니는 편집 영상 또는 ‘짤’이라 불리는 굉장히 짧은 콘텐츠로 이걸 본 것처럼 이해한다.

출발! 비디오여행 ©MBC

방구석1열 ©JTBC

5초 안에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

동시대를 견인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콘텐츠를 소화함에 있어 무조건 짧아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이는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지 않고, 넷플릭스 등과 같은 OTT를 통해 시리즈 등을 보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는 건 결코 아니다. 단지 그들의 인지 체계는 어린 시절부터 모바일 혹은 온라인 환경에 친숙해져 있기에 그렇다. 동시에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중 하나인 ‘멀티 페르소나’, 그러니까 SNS에서는 SNS용 ‘나’를 내비치고, 인간관계에서는 또 다른 캐릭터를 지니고, 직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양 지내는 삶의 방식처럼 몸이 하나라도 모자랄 판인 세상에서 진득하게 뭔가를 탐독, 탐닉할 시간이 없어졌기에 더 그렇다.

더욱이 콘텐츠라 불리는 것들의 정량적 수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짧은 것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자라온 삶의 환경이 새로운 세대에게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리고 그 환경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큰 변화를 일으켰다. 그 결과가 바로 ‘숏폼 콘텐츠’ 대세론이다. 이 트렌드에 의거하여 디지털 콘텐츠도 생산하고 있는 필자의 조직은 브랜드 관계자들과 항상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무조건 5초 안에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그 콘텐츠가 성공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굳이 숏폼 콘텐츠라는 용어에 대한 정의를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 쉽게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냥 말 그대로 짧은 형식의 콘텐츠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숏폼 콘텐츠가 대세로 자리한 건 불과 2~3년 사이의 일이다. 가장 먼저 영상 플랫폼이었던 유튜브가 MZ세대 중심의 영상 소비 근간이 되면서 성행하기 시작했다. 또 SNS 플랫폼들이 짧은 영상을 담아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숏폼 콘텐츠의 영역은 그야말로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카카오TV vs. 틱톡, 릴스, 쇼츠

이렇게 확장된 시장을 대형기업들이 그대로 놔둘 리가 없다. 네이버, 카카오 등의 포털 사이트 및 메신저 기반 회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숏폼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었다. 유명 연예인을 기용해, 숏폼 콘텐츠의 트렌드에 맞게 세로 화면 비율의 짧은 예능, 드라마 등을 선보였다. 카카오TV의 출범이 가장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성공이라 부르기엔 그 결과가 좀 미미하다. 이들이 선보인 콘텐츠들이 굉장히 어중간한 지점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숏폼이라고 하여 1분짜리도 만들고, 5분짜리도 제작하고, 10분짜리도 생산했다. 하지만 기존 TV에서 선보였던 콘텐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숏폼을 소비하는 MZ세대에게 이미 잘 알려진 연예인이 등장해, 유사 형식의 콘텐츠를 보여주는 게 그리 ‘신박’하게 다가가진 않았기 때문이다.

Z세대 후배들에게 “너희는 어떤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보고 있냐”라고 다시 한 번 질문했다. 특히 숏폼 콘텐츠를 공유하는 플랫폼이 어디냐고 말이다. 즉각적 대답이 돌아왔다.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숏츠. 대부분 이렇게 답했다. 틱톡은 기존 SNS와 달리 15초짜리 세로형 영상을 자신들이 제공하는 필터를 통해 제작하면 더 많은 이들에게 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헨리, 이시영 등의 셀러브리티들도 그 플랫폼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활용해 단박에 유명한 틱톡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지난 몇 년간, 아니 현재까지도 SNS 플랫폼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역시 틱톡의 대항마로 릴스를 내놓았다. 틱톡에서 유명했어도 인스타그램에서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지 못한 크리에이터들이 릴스까지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MZ세대들의 대표적 놀이 공간인 유튜브 역시 세로형의 1분 이내 영상을 업로드하면 머신러닝 기능에 의해 자동으로 쇼츠에 올려지는 플랫폼을 열었다.

©카카오TV,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틱톡

©카카오TV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틱톡

창작자와 수용자의 개념이 뒤틀리다

기존 제작 방식의 틀을 완전히 깨트리는 형식의 콘텐츠들은 도리어 새로운 세대에게 각광받으며, 창작자와 수용자의 개념이 완전 뒤틀리는 변화가 초래되었다. 틱톡, 릴스, 쇼츠에는 수용자 쪽에 가까운 창작자들이 또 다른 수용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그 어떤 셀러브리티의 콘텐츠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파급력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숏폼 콘텐츠의 대세론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크리에이터와 오디언스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진, 그래서 그 누구도 창작자로서 자신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수용자를 거느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창작자와 수용자는 엄연히 구분된, 그래서 예술적 측면에서의 경계선이 확실하게 그어져 있었다. 하지만 숏폼 콘텐츠의 대중화는 그 선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굳이 숏폼이 아니어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들만 봐도 그 사실은 명징하다. 연예인보다 훨씬 더 많은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들이 즐비하니까.

숏폼 콘텐츠 대세론이 점차 확장된다고 하여 기존 콘텐츠들이 그 힘을 잃어가는 건 결코 아니다. 근래 OTT를 통해 한국 시리즈인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음을 봐도 그렇다. 이 팬데믹 상황에서 류승완 감독의 영화 <모가디슈>가 극장 관객 360만 명 이상을 동원한 것 역시 그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숏폼 콘텐츠는 현재 대부분의 소비를 주도하는 MZ세대, 또는 그 이하 새로운 세대들에게까지 지속가능성을 보유한 현재 진행형의 트렌드로 꽤 오래 유지될 것 같다. 우리네 사회가 느림의 철학을 받아들이고, 어떤 사유의 느슨한 시간을 보장하지 않는 한에서 숏폼 콘텐츠는 꽤 오랫동안 대세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의견이 큰 지지를 얻고 있는 실정이다.

오래 지속될 트렌드, 숏폼 활용하려면

숏폼 콘텐츠가 새로운 세대의 콘텐츠 소비 방식이라는 걸 쉬이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그것을 활용한 다양한 방식의 또 다른 영역 확장 역시 가능해진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영화를 다 본 것도 아니면서 다 봤다고 말하는 논리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가진다면, 숏폼의 활용에 한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단순하게 압축해보자면, 새로운 세대들의 콘텐츠 인지 영역은 수많은 정보의 틈새 속, 단 5초 안에 모든 것을 판단함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5초가 길다고 말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그러니 TV에서 방송되는 30초 분량의 CF마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오죽하면 유튜브 콘텐츠 중간 중간의 광고를 보지 않기 위해 프리미엄 결제를 하는 구독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을까.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연 숏폼 시장. 이 시장을 잘 살펴보면 특출난 창작자들이 눈에 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패션 산업뿐만 아니라 수많은 산업 분야는 이들과의 협업을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의 콘텐츠에 자사 브랜드 또는 제품을 어떤 형식으로 노출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는 꽤 일차원적 접근일 수도 있다. 그러니 창작자와 수용자의 경계 속에서 또 다른 방식의 접점을 발견해야만 한다. 그것이 어쩌면 산업 분야 마케팅 담당자들의 숙제일 것이다. 이 숙제를 풀어내는 이라면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마케팅의 기본 원칙을 완벽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숏폼 콘텐츠는 오래 지속될 콘텐츠 트렌드이며, 플랫폼이 어떤 형식으로 변화하든 그에 맞춰 지속될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취향이 아니어도 더 많은 콘텐츠를 섭렵해야만 한다. 물론 이 역시 엄청난 과제이며, 노동이겠지만 말이다.

CONTENTS : CONTENTS ISSUE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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