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에서 파트너로… 진화된 팬덤크리에이터의 등장

글. 박현영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소장. 2018~2022 <트렌드 노트> 저자이자 사람들의 말과 글로 이루어진 빅데이터 분석가. 이야기를 좋아한다. 데이터는 결국 이야기이고, 사람을 이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며 데이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소비자는 어떻게, 그리고 왜 팬이 된 걸까. 이들은 어떻게 브랜드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팬덤을 형성하게 된 걸까. 이젠 팬덤을 넘어 크리에이터로서 브랜드의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는 소비자들. 팬덤과 브랜드의 공생, 프로스포츠 산업은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팬과 소비자가 같은 건가요?

‘팬덤의 진화, 팬덤의 시대, 소비자는 결국 우리 브랜드의 팬이 되어야 한다’는 주제로 강의를 하고 난 후, 조심스럽게 질문하신 분이 계셨다.

“팬과 소비자가 같은 건가요? 팬은 연예인이나 영화나 소설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사는 소비자가 팬과 같은 건가요? 우리 브랜드의 충성 고객을 팬이라 부르시는 건가요?”

아차차. 소비자의 변화를 말하기 전에 상품의 의미가 변화했음을 먼저 설명했었어야 했다. 본 글에서는 소비자가 어떻게 팬이 되었는지를 말하기 전에, 상품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먼 옛날 ‘동동구리무’라는 화장품이 있었다. 동동구리무는 지금 시대로 말하면 올인원 화장품으로 판매자는 이 제품을 바르는 것이 바르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소비자를 설득했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제품이 생겨나고, 이 제품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만이 문제가 된다. 이때 판매자의 과제는 내 제품의 저변을 확대하는 일, 대중화이다. 좀 더 시간이 지나자 화장품 시장에 다양한 제품이 만들어졌다. 많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비슷한 제품이 다른 브랜드를 달고 경쟁을 하게 되었다. 이때 판매자는 내 제품이 다른 제품보다 더 낫다고 소비자를 설득해야 했다. 동동구리무 시절이 OX 문제라면, 이번에는 객관식 문제였다. 이때 판매자의 과제는 내 제품의 선택률을 높이는 일,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USP(unique selling point)를 만들고, 경쟁우위 요인을 갖추고, 경쟁열위 요인을 보완해 나갔다. 더 시간이 지나자 상품과 브랜드가 무수히 쏟아져 나왔고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수준의 선택지를 넘어섰다.

소비자는 브랜드의 팬이자 사랑하는 사람이다

생활변화관측소에서 분석하는 브랜드 개수만 1만 개가 넘는다. 모든 사람이 모든 브랜드를 다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물건은 차고 넘친다. 상품과 브랜드도 차고 넘친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어떤 브랜드가 생겨나고 없어지는지 알 수도 없다. 그 중에서 어떤 브랜드를, 어떤 상품을, 어떤 서비스를 내것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브랜드 가치에 대한 동조이거나, 자신의 취향에 대한 선언이거나, 문화적 자산의 증명이다. 혹은 이 모두이다. 물론 이러한 의미 부여 없이 습관적으로 소비하는 물건이 있다. 이런 습관적 소비에는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브랜드의 영역이 아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 상품과 브랜드가 넘쳐나는 시대, 내가 구매하는 물건이 나를 대변하는 시대에 브랜드를 달고 있는 상품은 소비자에게 의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로 바뀌었다. 소비자는 브랜드를 필요의 대상이 아니라 애정의 대상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소비자는 브랜드의 팬이며, 물건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브랜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뷰티앱 ‘화해’ ©버드뷰

블라인드 테스트 프로그램 ‘겟잇뷰티’ ©CJENM

“상품과 브랜드가 차고 넘치는 시대, 내가 구매하는 물건이 나를 대변한다.
이제 소비자는 브랜드를 필요의 대상이 아니라 애정의 대상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브랜드에서 팬이 필요한 이유

우리 브랜드를 구매하는 사람 모두가 우리 브랜드의 팬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팬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브랜드에서 팬이 필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앞서 설명한 상품의 의미가 달라졌다는 것, 두 번째는 미디어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브랜드 입장에서 미디어는 개수가 많아졌고 컨트롤성은 떨어졌다. 과거의 미디어는 TV 광고다. TV 광고는 돈을 주고 내가 원하는 메시지로 만들 수가 있다. TV라는 매체에 광고를 트는 것은 비싸지만 돈을 주고 살 수 있다. 사람들이 같은 TV 광고를 본다. 사람들이 이 광고를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어쨌든 내가 말하는 메시지를 들을 수밖에 없다. 어느 날 TV 채널이 많아진다. 케이블과 종편, 위성방송까지 100여 개의 채널이 생기고 물건을 팔기만 하는 채널(ex. 홈쇼핑)도 생기고, 제품을 블라인드 테스트하는 프로그램(ex. 겟잇뷰티)도 생긴다. 브랜드의 주도권이 넘어가긴 했지만, 이번에도 돈을 주고 메시지를 전할 수는 있다.

한데, 어느 날 소셜미디어가 생기고 사람들이 각자의 미디어를 갖기 시작하고 각자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각자의 메시지가 공개되고 그 중에는 우리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컨트롤을 완전히 벗어나 있다. 영향력자들이 생기고 그들의 말에 따라 매출이 좌우된다. 브랜드는 다시 돈을 주고 영향력자를 섭외한다. TV 프로그램 개수보다 많아졌지만 열심히 하면 영향력자들을 통해 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사람들이 눈치를 챈다. 영향력자가 광고를 받은 것이고 그의 메시지가 의도된 것임을 간파한다. 이러한 영향력자는 영향력자의 위상을 박탈당하고 다시 브랜드가 컨트롤할 수 없는 또 다른 영향력자가 등장한다.

모두가 같은 것을 보지 않는 시대, 팬이 미디어다

플랫폼은 영향력자의 머릿수를 늘릴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공개한다. 제품에 대한 리뷰를 한데 모아 점수를 매기는 앱이나 프로그램(ex. 화해, 네이버 평점)은 브랜드 입장에서 손 쓸 수 없는 미디어이다. 이 미디어의 주도권은 판매자가 아니라 구매자에게 있다. 팬이 된 소비자는 브랜드 광고를 대신해 준다. 몰랐던 사람에게 브랜드를 널리 알리고, 무엇이 좋은지 USP를 알아서 찾아주고, 어디에 좋고 어떤 효과를 보았는지 간증을 한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상품 후기는 특별한 이유로 불매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부정보다 긍정이 훨씬 많다. 어떤 면에서는 자랑처럼 보이지만, 자랑이라기 보다는 이 좋은 것을 같이 쓰자는 연대의식의 호소에 가깝다. 일종의 포교 활동이다.

광고를 할 수 있는 미디어의 숫자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진 시대, 미디어의 메시지를 브랜드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시대에 자발적으로 브랜드를 광고해 줄 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미디어 변화와 관련하여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모두가 같은 곳을 보지 않는 시대, 브랜드가 돈을 쓰기로 작정을 했어도 내 메시지를 뿌릴 ‘곳’이 없다. TV 지상파 대신 광고가 없는 넷플릭스를 보고, 신문을 보지 않고, 소셜미디어에서 광고는 믿고 거른다.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모여 있지도 않고 조직화 되어 있지도 않다. 그래서 팬이 필요하다. 브랜드가 팬과 팔걸이를 하고 있어야 내 메시지를 점화할 수 있다. 브랜드가 팬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한 줌의 팬에게만 팔기 위해서가 아니다, 팬을 시작점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이다.

▶ 우리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의 진화

“상품의 의미와 미디어가 달라졌다. 미디어는 개수가 많아진 동시에 컨트롤되지 않는다. 때문에 브랜드는 자발적으로 광고해 줄 팬을 미디어로 사용해야 한다.”

팬이 된 소비자와 브랜드의 금전적 관계

자, 그럼 소비자가 팬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해되었다. 그렇다면 팬이 된 소비자와 브랜드는 어떤 금전적 관계를 맺고 있을까? 우선 내 브랜드를 좋아하는 팬은 나에게 돈을 많이 쓴다. 특정 야구단을 좋아하는 팬이 야구 경기 티켓을 사고, 유니폼을 사고, 구단의 한정판 굿즈를 사듯이. 하지만 미디어를 보유한 팬은 돈을 쓰는 데만 머무르지 않는다. 내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제품 사용 후기로 간증을 한다. 나에 대한 평판이 올라가고 결과적으로 나는 돈을 더 많이 벌게 된다. 야구팬이 야구장 직관 후기를 올리고, 구단 경기를 자세히 보도하고, 구단 굿즈 구매 후기를 올리듯이. 만약 이 야구팬이 팔로워가 적지 않은 인플루언서라면 그 영향력은 상당하다. 그로 인해 야구팬들이 결집되고 팬심이 강해진다. 인플루언서를 따라 야구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다시 팬이 되고, 다시 간증하고 팬덤이 형성된다. 브랜드는 그 영향력을 알기 때문에 인플루언서를 찾아가 내 브랜드의 팬이 되어 달라고 한다. 무상은 아니다. 협찬 비용이 지급된다. 팬이 아닌데 팬인 척하는 경우는 보는 이들에 의해서 걸러지고 한 차례 논란이 일어나고 인플루언서의 반열에서 물러난다. 진짜 팬만이 협찬을 받을 수 있다.

협찬의 경우도 선물의 형태를 띤다. 선물을 받은 인플루언서는 고마워서, 내가 평소 좋아하는 브랜드여서, 자발적으로 후기를 남긴다. 브랜드에서 이걸 꼭 전해 달라는 메시지는 없다, 포스팅을 꼭 해야 한다는 의무도 없다. 이때 팬인 인플루언서는 브랜드에 메시지를 더해준다. 인플루언서가 갖고 있던 가치관, 생활 패턴, 라이프 씬 속에 브랜드가 녹아든다. 비건 요리 유튜버가 O그릇 브랜드를 사용하는 순간, O브랜드는 비건 가치관을, 비건 요리를, 그 유튜버의 주방 배경을 획득한다. 등산 좋아하는 인스타그래머가 C화장품을 사용하는 순간, C브랜드는 그 인스타그래머의 활력을, 등산 패션과 조화를, 산 배경을 얻는다. 10대 래퍼가 우리 야구단의 팬임을 밝히는 순간, 우리 야구단은 젊고 힙한 감성과 연결된다.

“소비자를 팬으로, 팬이 된 소비자를 크리에이터로 만든 웹소설 플랫폼은 독자를 왕으로 모시지 않았다, 작가로 만들었다. 소비자를 파트너로 끌어들여야 한다.”

팬의 최종 목적지는 돈을 버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고 싶어도 억지로는 절대로 만들 수 없는, 설령 억지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공감될 수 없는 자산이다. 팬이 있기에, 그 팬이 자발적으로 메시지를 뿌려 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팬은 내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퍼 나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팬은 하나의 인격체다. 팬은 자신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안고 있는데, 그 팬이 나를 전달해 주는 과정에서, 내 브랜드에 그 팬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이 더해진다. 브랜드를 사서 쓰는 사람이 팬인 것처럼, 브랜드에서 돈을 받고 광고 모델을 하는 사람도 팬이어야 한다. 주로 명품에서 불리기 시작했는데 점차 다른 브랜드로 확대되는 ‘앰배서더’라는 말은 광고 모델의 다른 이름이다. 브랜드로부터 돈을 받지만 평소 그 브랜드를 즐겨 사용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평소 샤넬을 즐겨 사용하고, 인간 샤넬로 불린 블랙핑크 제니가 샤넬의 앰배서더가 되는 식이다. 제니가 샤넬을 선택한 것인지, 샤넬이 제니를 선택한 것인지 순서가 헷갈릴 정도다.

팬의 최종 목적지는 돈을 버는 것이다. 덕질의 끝판왕은 소액주주라는 말처럼 팬은 브랜드에 반해서, 브랜드가 잘 되기를 바래서, 브랜드가 잘 될 것으로 믿기에 브랜드의 주주가 된다. 덕업일치, 성덕이라는 말처럼 브랜드의 직원이 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팬들이 브랜드와 협업하는 방식은 브랜드가 펼쳐놓은 판에서 작가,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다.

‘샤넬 앰배서더’ 제니 ©제니 인스타그램

소비자에서 돈을 벌어가는 파트너로의 진화

웹소설 플랫폼은 소비자를 팬으로, 팬이 된 소비자를 작가로 만든 대표적인 케이스다. 사람들은 웹소설 플랫폼에 상품을 사기 위해 가입한 소비자가 아니라 웹소설을 사랑하는 회원이다. 웹소설 플랫폼의 회원은 웹소설을 읽는 대가로 돈을 내지만, 동시에 웹소설을 쓰는 대가로 돈을 받기도 한다. 플랫폼에 돈을 내는 사람과 플랫폼으로부터 돈을 받는 사람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정확히 분리되어 있지도 않다. 웹소설 플랫폼의 현재 독자는 미래 작가를 꿈꾼다. 지금의 작가들도 과거에는 독자였고, 그들도 습작의 과정을 거쳐 작가가 되었고, 작가가 된 뒤 플랫폼으로부터 다운로드와 뷰 수에 따라, 즉 미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산을 받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을 하는 사람은 소비자를 소비하는 사람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 파트너로 끌어들여야 한다. 스포츠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팬들을 우리 스포츠 경기와 굿즈를 사 줄 소비자로 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스포츠 팬은 스포츠라는 콘텐츠를 같이 만들어가는 파트너다. 나를 위해 준비된 것보다 내가 직접 참여한 것에 마음이 가는 법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가 모여 있는 플랫폼의 회원이 되고 싶다. 그곳에 유료 멤버십 회원이 되어 혜택도 누리고, 때로는 콘텐츠 메이커가 되어 돈을 받고 싶다. 돈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하지만 쇼핑몰의 회원이 되고 싶지는 않다. 물건을 파는 마음이 앞서는 플랫폼에는 단 한 푼도 쓰고 싶지 않다.

어디에 어떻게 돈을 쓸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돈을 주고 받는 상대와의 관계이다. 좋은 관계는 나도 돈을 벌고, 상대도 돈을 벌게 만드는 것이다. 웹소설 플랫폼은 독자를 왕으로 모시지 않았다. 대신 독자를 작가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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