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브컴퍼니. 송길영 부사장 인터뷰
한 줄의 생각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것이 좋아, 출판기획자로 일했다. 이후에는 중앙일보 폴인 에디터로 온라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편집했다. 지금은 프리랜스 인터뷰어이자, 에디터로 살고 있다. 평생 읽고, 쓰고, 만드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꿈이다.
* VAIV Company / vaiv.kr
바이브컴퍼니는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생활변화를 관찰하며, 기업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한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와는 2017~2018년 프로스포츠 소셜빅데이터 분석 사업을 협업했다.
이전의 브랜드들이 다수와의 ‘넓고 얕은 관계’를 추구했다면, 요즘 브랜드는 자신의 가치에 공명하는 소수와 깊이 호흡한다. 소비자가 아닌 ‘팬’과 브랜드의 관계 맺기가 시작된 것이다. 소비자의 어떤 변화가 이런 현상을 불러온 것일까. 브랜드와 팬의 관계에서 프로스포츠가 살펴볼 점은 없을까. 파트너에서 나아가 ‘크리에이터’라 불리는 밀레니얼 세대, Z세대 팬들과 어떻게 하면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데이터에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지난 10월 바이브컴퍼니 송길영 부사장을 만났다.
송 부사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빅데이터 전문가다. 블로그나 커뮤니티, SNS 등의 데이터에서 사람들의 욕망을 읽어낸다. 바이브컴퍼니 회의실에서 만난 그는 트레이드 마크인 가죽재킷 대신 편안한 티셔츠 차림이었다. 뿔테 안경을 끼지 않은 모습이 낯설지만 한결 부드러워 보였다. 송 부사장이 의자에 놓아둔 재킷 안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들며 말했다.
Q
A
‘필요’와 ‘애호’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어요.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좀 더 여유로워지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죠. 필요가 충족되면 애호가 등장하는데요. 애호는 필요를 넘어서는 가치예요. 필요로 이어진 관계는 필요가 사라지는 순간, 빛이 바래고 맙니다. 그런데 애호로 맺어진 관계는 달라요. 애호가 들어가는 순간부터 관계에는 본능적인 애착이 포함돼요. 무조건적인 사랑이죠. 또 하나, 애호로 맺어진 관계에는 역사가 포함됩니다.
Q
A
그와 함께 했던 시절이죠. 좋아하는 대상이 브랜드건, 팝스타건, 스포츠팀이건 관계의 양상은 같습니다. 역사 사이에는 경험이 있어요. 응원하는 스포츠팀을 예로 들면, 그 팀의 경기를 직접 보기도 하고, 멀리서 응원하기도 했겠죠. 팀의 로고를 바라보거나 친구와 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요. 이런 경험들이 모여 ‘팬심(팬의 마음)’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A
이전의 팬들이 수용자였다면, 지금의 팬들은 발신자가 됐어요. 애호를 표현하는 방식이 넓어진 거죠. 이전에는 친구들에게 ‘나 그 경기 직관했어’라든지 ‘그 팀 굿즈 샀어’라고 이야기하는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걸 SNS에 찍어서 올리고, 그 사진이 멋져 보이면 다른 친구들이 퍼 나를 수 있는 구조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발신자로서 확산의 방법이 생긴 거죠.
Q
A
팬들이 스스로를 ‘~빠’라고 일컫는 브랜드들이 있어요. 애플이 대표적이죠. 아이폰 사용자들이 아이폰을 손에 가장 많이 들고 있을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친구한테 아이폰을 자랑할 때래요. (웃음) 그야말로 브랜드를 향한 근원적인 애정의 표현이죠.
Q
A
그건 사람마다 달라요. 누군가는 자유, 누군가는 혁신, 또 다른 누군가는 남다름으로 애플을 바라보기도 하죠. 메시지란 주관적인 형태의 느낌입니다. 흥미로운 건 아이폰이라는 결과물이 그 모든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거예요.
Q
A
하지만 거기엔 통일된 결이 있고,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죠. 그래서 팬들이 그 브랜드에 공명하는 겁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의 결이 있어요.
Q
A
나이키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저희 회사에서 나이키에 관한 데이터를 20년 가까이 봐 왔는데요. 다름에 대한 인정, 차별 반대, 사람들이 움직이고 싶어 하는 동력을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어요. 브랜드에서 세상을 바꾸는 메시지가 보이는 거죠.
Q
A
당위에 해당하는 가치에 기민하게 반응해요. 공존, 지속 가능성, 평등 같은 가치들이죠. 지금까지의 우리 사회는 이런 가치를 배려하고 인정할 만큼의 상호존중이 적었다고 생각해요. 이제 사회가 당연하지만 중요한 가치들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A
열정이 아닐까요. 사람들과 뭉쳐서 좋아하는 팀을 응원할 때의 열정이야말로 정말 근원적인 것이거든요.
Q
A
‘찐(진짜)은 통한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어요.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도 팬과 같이 그 브랜드를 사랑하는 거죠. 야구 스폰서 기업 CEO 중 팬들에게 ‘형’이라고 불리는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이 야구를 진짜로 좋아한다는 걸 팬들도 아는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강한 유대감이 생기죠. 그도 야구를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니까요. 애호인은 ‘나’와 ‘너’를 가리지 않아요. 한 가지 대상을 함께 좋아하는 ‘우리’인 거죠.
Q
A
그것도 조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웃음) 그보다 저는 고객 경험 분야의 전문가를 모셔오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요즘 브랜드의 과제는 ‘고객 경험 극대화’예요. 플래그십 스토어나 팝업 스토어를 열기도 하고, 사이버 공간으로, 메타버스로 고객 경험을 확장하고 있어요. 다른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도 하고, 한정판 굿즈도 만들죠. 심지어 어떤 브랜드의 경우, 브랜드에 관한 본인의 열망을 표현하지 못하면 한정판 굿즈 추첨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어요. 프로스포츠라는 브랜드의 과제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Q
A
아이돌도 공백기에 그저 쉬는 게 아니라 ‘눕방(누워서 하는 방송)’ 등을 하면서 팬들과 소통해요. 정성을 기울여야 활동하지 않는 기간에도 팬들과의 관계가 유지되니까요. 현장에서의 만남은 어렵지만,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통로가 남아 있어요. 그 통로를 모두 동원해서 ‘나는 아직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야 해요. 어떤 메시지를 전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하고요. 사람들의 시간을 점유한다는 점에서 다른 스포츠팀이 아니라, <오징어게임>도 프로스포츠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어요.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의 시간을 두고 쇼핑몰이나 테마파크와도 경쟁해야 하죠. 긴밀한 고객 커뮤니케이션이 브랜드의 생존 조건이 되는 이유입니다.
Q
A
고객 경험의 측면에서 한 나절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면 그게 <오징어 게임>이건, 쇼핑몰이건, 야구장이건 중요하지 않죠. 이렇게 시야를 넓히면 헙업할 수 있는 대상 역시 다양해져요. 신선하고 트렌디한 협업을 통해 젊은 세대를 팬으로 만들 수 있죠. 팬덤이 오래되면 로열티는 높아지지만, 더 이상 새로워지긴 어려워요. 반대로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팬을 확보할 수 있다면, 브랜드의 미래를 보다 명확히 그려볼 수 있죠.
Q
A
태어난 곳은 내가 고를 수가 없잖아요. MZ세대는 나의 귀속과 애호를 스스로 고르고 싶어해요. 그랬을 때는 좀 더 세련되고 멋지게 말 거는 브랜드가 훨씬 더 마음에 남게 되죠.
Q
A
지금부터 탐색해보셔야 하겠죠. 사람마다 라이프스타일은 다 같지 않잖아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탐구하면서 우리 브랜드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거죠. 그게 바로 브랜드의 메시지가 되고요.
Q
A
프로스포츠는 팬들과 공명해 온 시기가 오래 됐기 때문에, 팬덤에 관해서는 제가 더 드릴 말씀이 없을 것 같아요. 다만, 현행화를 하시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요즘은 팬들의 요구가 다양해졌죠. 인스타그램에 선수 사진을 올리고 싶다거나, 선수들 한 명 한 명의 인터뷰를 좀 더 크게 보고 싶다거나, 경기가 끝난 다음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다거나 하는 것처럼요. 변화하는 팬들의 요구에 맞춰 온라인·오프라인에서의 고객 경험을 재설계해보시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송 부사장은 “지금은 프로스포츠 팬들의 열망이 응축된 시기”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억눌려 있던 열망이 터져 나오면서 많은 수의 팬들이 프로스포츠를 찾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지금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시점입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정상화되고, 더 자주 만나게 될 날을 준비해야죠. 나의 관심과 정성을 팬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하는 법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그의 책에는 ‘브랜드는 고민의 총량을 판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프로스포츠가 깊은 고민과 기다림의 시간을 끝내고, 경기장을 꽉 채운 팬들을 다시 만날 날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