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선수 은퇴 그 후, 제2의 필드

글. 김주희 사진. 전재천

모든 선수는 언젠가 은퇴 선수가 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프로선수도 예외는 아니다. 치열한 승부사의 여정을 마무리한 은퇴 선수들은 커리어 ‘리셋’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일구고 있다. 필드 위에서 쌓은 생생한 경험과 노하우로 삶의 반경을 확장하며 제2의 필드에 뛰어든 이들을 만났다.

전문성을 극대화한 ‘진로 변경’

인생은 장기전이라고 하던가.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무색한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은퇴 이후에 제2의 인생에 대한 고민이 많을 터. 프로선수도 마찬가지다. 은퇴하면 흔히 중장년층을 떠올리는데 선수들 대부분은 20~30대에 은퇴를 한다. 에이징 커브(노쇠화로 인한 기량 저하)가 오면서 자연스레 은퇴 수순을 밟게 된다. 은퇴 선수들은 저마다 ‘진로 변경’을 통해 제2의 필드를 누비고 있다.

은퇴 선수 대부분은 자신이 몸담았던 분야의 관련 활동을 잇는다. 선수 시절 차곡차곡 쌓은 경험과 전문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 안정적으로 커리어를 구축한 선수들은 감독이나 코치, 전력분석관 등의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가진 노하우와 재능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인재 선수를 양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프로스포츠 구단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도 눈에 띈다. 경기장 밖에서 이루어지는 사무, 행정, 개발, 교육 등 다양한 업무를 도맡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량을 발휘한다. 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선수 입장에서 필요한 지원을 고민하고 수행한다.

자신의 이름과 커리어를 내걸고 스포츠 교육 기관 창업에 도전하는 이들도 있다. 숙련된 훈련 노하우를 특정 종목 기술 훈련에 접목시켜 유망주를 육성하는 스킬 트레이닝 아카데미도 그중 하나. 프로선수 출신이라는 신뢰와 인지도를 바탕으로 자신을 브랜드화하며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발휘한다.

대중에 가까이, 더 가까이

방송과 매체 등 미디어를 통해 경기 해설자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대중 앞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하기도 한다. 한국 프로야구의 산 증인이라 불리는 허구연 해설위원을 필두로 이종범, 최원호, 정민철, 송진우가 마이크를 잡았고, 축구 선수 출신 차범근, 안정환, 이영표, 현영민 등도 선수 출신 해설위원의 계보를 이었다. 이들은 폭넓은 식견과 세밀한 분석력 외 특유의 해설 스타일과 캐스터와의 유쾌한 만담 ‘케미’를 선보이며 자신만의 색깔을 구축해갔다.

익숙한 길을 벗어난 새로운 길에 대한 확신을 갖기란 쉽지 않다. 공식이 잘 깨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많은 인내심과 불굴의 의지로 새로운 커리어에 도전하고 기꺼이 제2의 인생을 누리는 은퇴 선수들. 선수 시절 숱한 어려움을 뛰어넘은 경험을 밑거름 삼은 이들의 도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Profile. 현영민 JTBC 해설위원 2001 유니버시아드 축구 국가대표
2002.1~2006.1 울산 현대 호랑이
2002 제17회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2004 제13회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6.7~2010.1 울산 현대 축구단
2010.1~2013.3 FC서울
2013.3~2014.1 성남 일화 천마
2014.1~2018.3 전남 드래곤즈
2018.3 SPOTV 축구 해설위원
2019.2 JTBC 축구 해설위원

#1 INTERVIEW

현장에서 들려주는 생생한 명승부


현영민 JTBC 해설위원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중 가장 마지막까지 그라운드를 누빈 선수가 바로 현영민 해설위원이다. 16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며 ‘그라운드’에서 ‘중계석’으로, 인생 무대를 옮긴 지 어느덧 4년째다. 축구공 대신 마이크를 잡고 치열한 명승부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은퇴 후 방송국으로부터 해설 제안을 받았어요. 선수 생활만 오래 해서 그런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 차례 리허설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해설위원이 되었습니다. K리그부터 러시아 월드컵까지 다양한 현장의 소식을 전하며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현영민 해설위원의 궁극적인 역할은 대중에게 정보를 쉽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 그는 해설위원의 역량은 ‘준비’와 비례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각 팀의 전력과 이적 및 신인선수의 기량 등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를 수집한 후 면밀히 체크한다. 시즌 중에는 모든 경기를 하이라이트라도 꼭 챙겨보기 위해 노력한다. 눈으로 한 번, 머릿속으로 한 번 정리한 것들이 다음 해설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고. “사전에 열심히 준비한 이야기가 경기 내용과 딱 맞아떨어질 때의 느끼는 희열은 아주 짜릿하죠.”

월드컵부터 K리그까지, 다양한 무대를 종횡무진 누빈 시간은 해설위원이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자양분 그 자체다.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체득한 경험들은 상황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순발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으로 치환되었다. 해설을 거듭할수록 안정적인 전달력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그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해설을 지향한다. 기본에 충실하되 자신만의 색깔을 녹인 해설은 누구나 믿고 들을 수 있도록 이끈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는 해설’이랄까요. 그 누구보다 선수의 마음을 잘 헤아립니다. 2시간 안에 승부를 결정하는 단 하나의 경기를 위해 숱한 나날을 훈련에 매진한 선수들의 노고를 존중합니다. 질책보다 칭찬을 많이 하는 해설이 저만의 스타일인 것 같아요.”

현영민 해설위원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는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감독으로 활약하며 축구를 대중들에게 더욱 친숙하고 흥미롭게 알리고 있다. 올 연말까지 시즌 K리그 중계를 계속 이어가고, 2022년에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유소년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며 또 다른 삶의 지층을 쌓아갈 계획.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는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Profile. 박대남 스킬팩토리 대표 2009~2012 서울 삼성 썬더스
2012~2013 서울 SK 나이츠
2013 스킬팩토리 설립

#2 INTERVIEW

농구 유망주의 성장을 이끄는 ‘GPS’


박대남 스킬팩토리 대표

“은퇴 직후 맞이한 첫째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막막했어요. ‘나 이제 뭐하지?’ 과거를 벗어나 한 걸음 떼기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4년째 프로 농구 선수 생활을 잇던 당시, 박대남 대표는 부상과 군대 문제로 은퇴를 결심했다. 고향인 부산에 돌아가 창업 관련 교육을 수료하면서 경영과 운영 노하우를 배우게 되었고, 이를 자신이 가장 잘하는 농구에 적용하기로 했다. 시장과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지인의 체육관을 대여해 교육을 진행하는 등 준비 과정을 거쳐 2013년 대한민국 1호 농구 스킬 트레이닝 아카데미 ‘스킬팩토리’를 오픈하기에 이르렀다.

“선수 시절부터 스킬 트레이닝을 공부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프로 구단에서 신인선수를 육성하는 외국 출신 트레이너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동안 훈련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느꼈거든요. 운동할 때 누군가 가슴에 손가락 두 개만 얹어줘도 효과가 달라진다고 하잖아요. 스킬 트레이닝 또한 선수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훈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선수보다 스킬이 부족한 선수가 훨씬 많고, 이들을 성장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농구 교육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목표로 스킬팩토리의 문을 열었습니다.”

스킬팩토리 교육 과정은 세 가지 파트로 나뉜다. 프로 무대를 꿈꾸는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엘리트 트레이닝’을 중심으로 유소년반, 성인반을 운영한다. 전문적인 기술뿐만 아니라 체력 훈련, 부상 방지 노하우까지 총체적인 훈련을 진행한다. 박대남 대표는 엘리트 트레이닝을 도맡고 있다. 단순히 기술을 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선수가 꾸준히 성장할 수 있도록 정신적인 멘토링까지 담당한다. 무엇보다 개개인마다 다른 신체 조건이나 기량을 기반으로 맞춤 트레이닝을 선보이며 회원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다.

박대남 대표는 꾸준히 ‘공부’하는 트레이너다. 농구는 끊임없이 변하므로 흐름을 재빨리 읽고 가장 효과적인 훈련법과 커리큘럼을 적용해야 하는 터. 해외를 직접 찾아 선진 시스템을 익히는가 하면 코칭 스텝과 더욱 정교하고 완성도 높은 트레이닝 역량을 키운다. 경기장과 똑같은 규격과 높은 층고의 시설을 갖춘 것도 이 때문이다.

“누군가 막힌 길을 달릴 때 더 빠른 길, 좋은 길을 안내하는 GPS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선수로 뛸 때 못지않게 선수 곁에서 지도하면서 느끼는 행복감도 큽니다. 부모의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어요. 부족했던 선수들이 경기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관심 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이 밀려듭니다.”

박대남 대표는 앞으로 선진 농구 교육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단단한 각오를 밝혔다. 지속적으로 좋은 코치를 육성하고, 엘리트 트레이닝을 널리 확장할 계획이다. 특히 위축된 지방 농구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1호’라는 과감한 출발이 유의미한 여정으로 이어지길 응원한다.

  • Profile.

    신영수 대한항공 스포츠단 사무국 과장


  • 2005~2011

    대한항공 점보스

  • 2010.8

    제2회 AVC컵 남자배구대회 국가대표

  • 2010

    제16회 광저우 아시안 게임 배구 국가대표

  • 2013~2018

    대한항공 점보스

#3 INTERVIEW

코트 밖에서 배구를 빛내는 힘


신영수 대한항공 스포츠단 사무국 과장

무려 14년 동안 대한항공 토종 거포로 코트를 누비던 신영수 선수가 은퇴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팬들은 아쉬워하면서도 그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했다. 지난 2018년, 그는 구단으로부터 제안을 받아 선수 대신 ‘과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대한항공 스포츠단 사무국으로 첫 출근을 했다. 코트 밖에서 구단 운영 및 선수단 지원 업무를 맡게 된 것. 직장인이 된 그는 첫 업무로 대한항공 리틀점보스 배구클럽 운영을 도맡았다.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며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강의를 진행했다. 현재는 선수 선발 지원 업무를 주로 담당하며 구단 전력 구성에 힘을 보태는 중이다.

“선수 선발에 도움이 되도록 정보를 수집하고 영상을 분석한 것을 토대로 의견을 전달합니다. 선수 선발 시 구단과 코칭 스텝 각각의 관점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있어요. 구단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코칭 스텝은 즉각적으로 성적을 견인해줄 선수를 원할 때가 있거든요. 구단과 코칭 스텝 사이에서 원활한 가교 역할을 한다는 책임감으로 임합니다.”

신영수 과장은 코트 밖에서 배구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졌노라 고백한다. 새로운 시각과 다양한 관점으로 배구를 연구하면서 또 다른 매력을 알아가는 중이다. 코트 안에서는 승부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임했다면 지금은 배구 자체의 즐거움을 매료되어 더 알고 싶은 분야가 되었다고.

선수들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사무국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선수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신영수 과장은 자신의 과거를 거울삼아 선수의 니즈를 세심하게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업의 보람과 자부심 또한 선수와 맞닿아 있다.

“현장을 뛰는 선수나 코칭 스텝뿐만 아니라 구단 사무국 직원들 또한 원 팀으로 움직입니다. 서로가 맞물리면서 시너지를 발휘해야 하지요. 제가 업무를 통해 얻는 성과보다 선수들을 통해 이루는 성과가 훨씬 값지다고 생각해요. 선수들이 건강하게 훈련하고, 최상의 경기력으로 팬들 앞에서 뛰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습니다.”

지금 한창 시즌이 진행되면서 신영수 과장 또한 분주하게 움직인다. 매 경기 선수들이 빛날 수 있도록 현장에 동행하며 맡은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제2의 필드가 가져다준 새로운 일상은 은퇴 후의 삶을 풍성하게 이끌어준다. 신영수 과장은 후배 선수들을 위한 도움말도 잊지 않았다.

“흔히 사람들은 선수들이 운동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생각해요. 선입견 때문에 은퇴 후를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수로서 최선을 다해서 업적을 쌓으면 제2의 필드를 일구는 탄탄한 기반이 될 거예요.”

CONTENTS : PLAYER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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