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볼 팬더밍> 저자. 컨설팅 컴퍼니 왓이즈넥스트(WHATISNEXT) 대표. 소셜미디어 마케팅의 최전선에서 굵직한 성과를 내는 현업 실무자이자 오랜 경험과 혁신적인 이론을 토대로 브랜딩솔루션을 제언하는 유명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팬덤은 이제 새로운 ‘콘텐츠 생산자’이자 ‘문화 창조자’로서 트렌드를 주도하고, 기업 평판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존재로 부상했다. 이미 자발적인 팬덤을 갖고 있는 프로스포츠, 과연 충성도 높은 ‘슈퍼 팬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2018년 여러 소속사의 연습생이 Mnet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48>을 통해 그룹 아이즈원으로 데뷔했다. 2021년 이들은 예정된 2년 반의 활동을 마치고 해체 수순을 밟았는데, 팬들은 활동 연장을 소속사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팬들은 아이즈원의 재결합을 위해 직접 ‘평행우주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진행했다. 빠른 펀딩으로 의미 있는 모금액을 모아 개별 소속사를 설득하고 활동을 재개한다는 계획이었던 것. 실제 40여일 만에 약 2만 명의 참여로 32억 원 지원금을 모았고, 국내 리워드형 크라우드 펀딩의 최고 모금액 기록을 경신했다. 이는 요즘 팬덤의 영향력과 위상을 대변한다.
소위 ‘빠순이’로 비하되고, 비이성적이니 맹목적이니 하며 평가절하되었던 팬덤이 최근에는 망해가는 영화를 다시 살려내는가 하면, 전 세계에 한류를 알리고 케이팝(K-POP)의 인기를 만들어 내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의 영향력은 음악·영화·연예·스포츠 부문을 넘어 그들이 지지하는 가치와 취향에 따라 다양한 범주로 확장하고 있다. 나아가 이제는 사회적·정치적 운동에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자로서, 그들의 영향력은 이제 상상하기 힘든 일을 이루어내는 데 이르렀다. 연예든 스포츠든 정치든 팬덤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되는 세상인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기업이나 브랜드들은 그들의 팬덤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하지만 팬덤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팬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팬들은 ‘입덕’(어떤 분야나 사람에 푹 빠져 열성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함)의 과정을 거친다. 팬들에게 입덕의 계기를 물으면 흔히 ‘덕통사고’ 때문이라고 답한다. ‘덕후’와 ‘교통사고’의 합성어로 갑자기 훅 들어오는 교통사고와 같은 순간적이고 강렬한 경험으로 인해 팬, 즉 덕후가 되는 것을 이른다.
그렇다면 기업이나 브랜드가 과연 교통사고처럼 강렬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
“총탄이 분명 가슴에 맞았는데…” 베트남 전쟁 당시 미 육군 소속의 안드레즈 중사는 자신의 가슴팍에 넣어둔 지포라이터가 총알을 막아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정도의 경험쯤 되어야 지포라이터에 입덕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이 전시도 아니고 이 정도의 강렬한 경험을 제공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한 번의 강렬한 경험보다는 지속적으로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좋은 경험은 고객이 스스로 참여해 그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필자는 필자의 저서 <스노우볼 팬더밍>에서 브랜드 팬덤을 구축하는 프로세스를 5가지 단계로 제안했다.
브랜드의 참여와 경험을 통해 지지자들이 활동할 저변을 만드는 기본 단계인 ‘저변 만들기(Basing)’를 시작으로, 브랜드나 제품에 대한 지지자들을 찾아내는 ‘지지자 발굴(Digging)’ 단계, 발굴한 지지자들과 브랜드, 그리고 지지자와 지지자를 서로 연결하는 ‘지지자 연결(Connecting)’ 단계, 연결된 지지 세력을 팬으로 육성하는 ‘육성(Nurturing)’ 단계, 마지막으로 육성을 통해 새로운 등급을 부여받는 ‘승급과 보상(Promoting)’ 단계다. 승급 단계에서 다시 육성 단계를 거치면 다음 지위를 얻게 되는 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이렇게 전체 서클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그들만의 팬덤 문화가 다른 고객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저변을 확장하는 순환 서클이 형성된다. 즉, 큰 서클이 순환할수록 브랜드 팬덤은 저변이 넓어지고, 육성과 승급의 작은 서클이 순환할수록 브랜드 팬덤의 깊이가 깊어진다.
01 | 저변 만들기 Basing 팬덤 구축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막연할 때에는 ‘우리 브랜드의 팬덤이 생기면 팬덤이 어떤 일을 해주었으면 하는지, 아니면 어떤 일을 함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라. 많은 브랜드들이 ‘팬덤이 생겨 아낌없는 응원과 지지를 받기’와 같이 막연한 목표를 갖는 경우가 많다. 브랜드의 팬덤과 대중의 팬덤은 같을 수가 없다. 대중의 팬덤은 브랜드의 팬덤 구축 경험이 미비하기 때문에 벤치마킹하는 것이지,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지지 않음을 인지해야 한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구체적인 팬덤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다.
02 | 지지자 발굴 Digging, 03 | 지지자 연결 Connecting 이미 브랜드에 호감을 갖고 있거나 제품과 서비스에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지지하는 지지자들을 찾아내어 그들을 연결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이는 이벤트를 통한 지지자의 모집보다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관심을 보여주고 연결 짓는 ‘발굴’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오디오북 서비스 ‘윌라’는 그들의 서비스를 경험한 후 소셜 웹 상에 자발적으로 리뷰를 남긴 고객들을 찾아 ‘윌라 굿 리스너’라 소속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으로 구분 지어주고 연결하고 있다.
04 | 팬으로 육성 Nurturing 이렇게 연결된 지지자 그룹은 학습과 협업을 통해 팬덤으로 육성될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이 그들의 지지자를 기업을 대변해서 제품과 서비스의 장점을 다른 고객들에게 전달하는 아바타 수준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팬덤으로의 육성은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더 잘 알 수 있게,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게 지원해주어’ 자발적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알리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많은 정보, 정확한 정보, 숨겨진 정보를 독점적 또는 우선적으로 제공하여 더 잘 알게 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며, 집단적 논의를 진행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어야 하는 게 중요하다.
05 | 승급과 보상 Promoting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등산이 ‘가취관(가벼운 취향 위주의 관계)’과 같은 트렌드와 맞물려, 젊은 세대의 각광을 받고 있다. ‘산린이’라 불리는 이들은 산 정상에서 찍은 인증사진을 SNS에 올려 공유하는 것을 즐긴다. 블랙야크는 ‘블랙야크 알파인클럽’ 앱에 인증샷을 남기면, 그 산의 해발고도만큼 포인트를 적립해 준다. 매장에서 현금처럼 사용이 가능한 포인트로, ‘산린이’들이 좋아하는 산행을 더욱 더 좋아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다.
그간 기업이나 브랜드도 그들의 팬덤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노력에도 대다수 기업들이 팬덤을 얻지 못했다. 이유는 기업의 팬덤에 대한 생각이 좀처럼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1세대 팬덤에 대한 환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국내의 팬덤 문화는 이미 2세대를 거쳐 3세대까지 진화해 왔다. 팬덤의 대상에 맹목적으로 복종했던 1세대 팬덤은 이제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아이돌그룹의 센터를 정하고 멤버를 재구성하여 유닛을 결정하는 기획자이며 적극적인 관여자가 3세대 팬덤이다. 대충 ‘서포터즈’란 이름으로 선발하여 간단한 교육을 거치고 그들에게 제품 홍보 콘텐츠 제작을 의뢰하는 것은 지금의 팬덤 활동과는 거리가 있다. 효과를 거둘 수도 없고 그들의 콘텐츠도 영향력을 얻을 수 없다.
팬덤 구축은 장기적인 관점으로 진행해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한 나머지 짧게는 1개월에서 보통 6개월 정도의 활동을 단편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 참여자의 경험을 연결하여 쌓일 수 있도록, 그래서 그들만의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장기적인 계획으로 시작해야 한다.
프로스포츠는 이미 구단별로 여러 개의 팬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구단이 지지자를 발굴하여 더욱 충성스런 팬덤을 만들 수 있을까?
‘FC서울의 기성용이 데뷔 2년차인 2007년 구단 인터뷰에서 불렀던 노래는?’ K리그 팬들을 위한 온라인 퀴즈 이벤트, ‘K리그 덕력시험’ 문제 중 하나다. K리그 소속 22개 구단의 홈페이지, SNS 채널, 관련 기사를 토대로 출제된 문제를 푸는 것으로, 각 구단의 팬들이 참여해서 열띤 경쟁을 펼치게 만들었다. 이는 팬들이 각자 좋아하는 구단을 더 알게 되고, 더 좋아하게 만드는 이벤트이다. 이런 이벤트를 활용하여, 기존의 팬덤과 관계를 보다 단단하게 만들고, 팬덤을 활성화할 수 있다. 덕력 시험의 상위 득점자들만 연결하여 ‘K리그 덕력시험 고득점자’의 팬덤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 자발적인 팬덤을 연합하는 더 큰 팬덤을 만드는 식으로 말이다.
“내가 경기를 직관하면 항상 지는 것 같아.” 팬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다. 한화이글스는 이런 팬들을 위해 ‘이글콕’ 앱을 통해 직관 승률을 계산해 주는 서비스를 지원한다. 팬들이 좀 더 재미있게 직관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지자들은 이처럼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게 지원받으면 충성스런 팬으로 진화하게 된다.
▶ 팬들을 위한 프로스포츠 이벤트
프로스포츠의 팬덤은 이미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이들 팬덤을 더욱 충성스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지지자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게 지원받으면, 충성스런 팬으로 진화하게 된다.
한화 이글콕 ©한화이글스
케이리그 덕력시험 ©K리그
크보 포스트시즌 이벤트 ©KBO
최근 라면값 인상 결정을 내린 오뚜기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 소비자단체의 홈페이지 게시판을 오뚜기 팬덤이 몰려가 공격하는 일이 있었다. 이들은 ‘갓뚜기’ ‘오뚜기만세’ 등의 익명으로 ‘오뚜기가 13년 만에 라면 값을 올렸는데 이를 지적하는 것은 과도하다’, ‘농심의 사주를 받은 것이냐’는 등 대략 2가지 유형의 게시물을 남겼다.
브랜드 팬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그들이 영향력을 갖게 된다. 익명으로, 그리고 논쟁보다는 비난, 조롱에 가까운 오뚜기 팬들의 게시물을 본 대중이 오뚜기 팬덤을 선망의 대상으로 보고 본인도 그 팬덤에 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까?
오뚜기가 팬들을 구분 지어 소속감을 주는 팬덤의 이름을 지어 불러주고, 13년 만에 라면값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팬들에게 이해시키고 공감하게 하는 소통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팬덤’이 아닌 기업이나 브랜드가 적극적으로 진행형으로 움직여야 하는 ‘팬더밍’의 시대임을 상기해야 한다. 결국 기업이나 브랜드의 긍정적인 경험을 지속적으로 쌓아주고 협업의 파트너로 팬덤을 참여하게 하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이어가고, 이를 문화로 안착시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팬덤을 계획하는 것이 충성도 높은 ‘슈퍼 팬덤’을 얻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