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과 ‘머드맥스’가 보여준 K-컬처의 길

글. 김교석

TV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이며 푸른숲 편집장. 전 ‘필름2.0’ 기자이며 <아무튼, 계속>, <오늘도 계속 삽니다>를 썼다. 온라인 미디어인 ‘엔터미디어’에서 ‘어쩌다 네가’라는 칼럼명으로 여러 방송 프로그램을 분석하고, 그 속에서 읽을 수 있는 문화 현상에 대해 글을 쓴다.

그야말로 <오징어 게임>의 광풍이다. 전 세계 넷플릭스 TV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더니, 넷플릭스 역대 최고 시청 신기록까지 달성했다. BTS와 <기생충>에 이어 <오징어 게임>까지… 과연 K-컬처의 힘은 무엇일까. <오징어 게임>과 더불어 유튜브를 뜨겁게 달군 한국관광공사의 서산 갯벌 홍보 영상, 일명 ‘머드맥스’로 K-컬처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본다.

당대의 아이콘이 된 <오징어 게임>

요즘, 가슴 웅장해질 일이 많다. BTS는 당대 팝음악 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UN에서 초국적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를 석권했다. 여기에 지난 9월 넷플릭스의 신작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불과 한 달여 만에 전 세계적인 광풍을 만들어냈다. 가입자가 2억 명이 넘는 넷플릭스에서 관객 평점 1위를 차지했으며, 서비스국가 83개국 전체 1위 등 매일매일 신기록을 갱신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임에도 미국의 대표적 전국구 TV쇼인 <지미 팰런 쇼>, <굿모닝 아메리카>, <투데이쇼>에서 배우들을 초청해 특집으로 다뤘고, 넷플릭스 주가는 대형 기술주들이 급락한 시장에서 <오징어 게임>을 발판 삼아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블룸버그의 분석을 그대로 옮기자면, <오징어 게임>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넘어서 사회경제적 변화의 흐름을 상징하는 당대의 아이콘이 됐다.

단순한 유행은 아닌 듯하다. 11월 현재 구글에서 두 번째로 많이 검색된 통화는 원화이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CEO는 <오징어 게임>의 녹색 추리닝을 입고 다니고 있고, 관련 유니폼은 올해의 할로윈 코스튬으로 각광받고 있다. SNS상에선 ‘Dalgona Challenge’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연일 올라오고 있으며, 뉴욕 양키스, 샌안토니오 스퍼스 등 미국 유명 프로스포츠 구단들도 홍보의 일환으로 <오징어 게임> 관련 패러디에 동참했다. 유명 NBA 선수들은 자신의 SNS에서 인증을 하는가 하면, NFL 선수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즐기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모델 출신으로 첫 연기 도전에 나선 강새벽 역의 신인 배우 정호연은 단숨에 국내 여배우 중 SNS 팔로워 수가 가장 많아졌고, 루이비통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뽑혔다.

이런 흥행을 점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넷플릭스조차 북미와 유럽지역에선 최소의 홍보만 집행했다. 현재 <오징어 게임>의 성공 사례를 다양한 각도와 차원에서 분석하고 있지만 종합하자면 한국적인 정서·서사·게임·미술의 힘이 만든 ‘신선함’으로 귀결된다.

©shutterstock

오징어 게임 틱톡 챌린지 화면 ©틱톡

달고나 챌린지 ©인스타그램

오징어 게임 포스터 ©넷플릭스

한국의 ‘클리셰’가 만든 ‘신선한 데스게임’

<오징어 게임>은 사회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456명의 참가자들이 상금 456억 원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전투구다. 데스게임이란 보편적인 장르에 자본주의의 불합리와 사회적 계급론을 얹어 비틀었다. <기생충>의 반지하 무대와 오버랩된다. 누구 하나 정 주기 어려운 등장인물들이지만, 한국 드라마 특유의 신파가 각자의 사연을 만들며 나름의 연민을 주입한다. 그런데 이 무대 뭔가 익숙하다. 강렬한 원색의 ‘팝’한 색감과 화려한 조명이 수놓은 게임판 위에서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대형을 갖춰 선 다음 한방의 인생역전을 꿈꾸며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경쟁 속에서 노골적인 갈등과 욕망이 표출되고, 지켜보는 우리는 이 모든 순간과 감정을 즐긴다. 즉, 아이돌 오디션 예능 <프로듀스101>의 데스게임 버전인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해외 반응이 터지기 전 <오징어 게임>에 대한 국내 여론은 대체로 혹평에 가까웠다. 우리가 늘 우리 대중문화의 병폐로 지적해온 신파라는 클리셰, 혐오를 그리는 방식과 캐릭터의 성장 과정이 다소 게으르게 느껴지고 시대착오적이라는 불편함을 자아내는 측면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험의 차이일까. 처음 접하는 특이한 게임, 독창적인 세계관, 신파를 강조하는 독특한 서사들이 우리네 드라마와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간 듯하다. 결과적으로 이런 우리나라 특유의 클리셰가 특정 장르물의 설정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화학 반응이 오늘날 <오징어 게임>이라는 글로벌 문화현상을 만들어냈다.

<오징어 게임> 등장인물들의 관계망과 그 사이 깔린 정서는 데스게임 장르의 본고장인 미국과 일본에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설정이다. 동네에서 함께 자란 동생 상우(박해수)에게 ‘우리’라는 의식을 느끼는 기훈(이정재), 노인 공경, 타인에 대한 연민 등 공동체적인 감성으로 채워져 있는 한국적인 ‘정’이 극도로 단순한 게임을 비트는 변칙으로 작용한다. 우리의 클리셰가 데스게임이란 장르의 클리셰를 비트는 지렛대가 된 셈이다. 이는 더 이상 문화권에 맞는 로컬라이징, 포맷 판매 등이 무의미해진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디지털 플랫폼 시대에서는 하나의 IP가 승부를 좌우한다. <오징어 게임>은 특정 문화권에 맞춤한 전략이나 웰메이드라는 기준 대신, 독창적인 세계관을 가진 콘텐츠라면 보편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넷플릭스

‘범 내려온다’는 되고, 시즌2는 안 된 이유

우린 작년에도 비슷한 사례를 경험한 바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만든 ‘Feel the Rhythm of Korea’ 캠페인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이날치 밴드의 소리 위에 특이한 한복을 입은 앰비규어스가 춤사위를 얹은 ‘범 내려온다’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면서 국악이 새롭게 조명 받는 계기가 됐다. 대부분의 대중이 듣도 보도 못한 젊은 소리꾼들이 만든 국악과 세련된 비주얼과 춤사위는 우리 눈과 귀에도 ‘힙’하고 새로웠다. 특히나 해외에서 신선하다는 반응과 관심의 폭발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리액션이 다시 폭발했다. 그 영향으로 현재 MBN <조선판스타>, JTBC <풍류대장> 등 국악 오디션 예능이 한창이다.

그 여세를 몰아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9월 초, 서산, 경주·안동, 대구, 순천, 부산·통영, 양양·강릉, 서울 등 모두 10개 도시를 테마로 한 8편의 곡과 영상을 만들어 ‘Feel the Rhythm of Korea’ 시즌2로 내놓았다. 국내 유명 힙합 뮤지션들과 협업을 통해 음악으로 지역을 연상시키는 ‘소닉 브랜딩’이라 하여, ‘옹헤야’, ‘아리랑’, ‘늴리리야’, ‘강강술래’, ‘새타령’, ‘사랑가’, ‘쾌지나칭칭나네’, ‘뱃노래’ 등 민요를 힙합으로 재해석해 각 지역별로 매칭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안팎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패러디한 서산 ‘머드맥스’ 편만이 입소문이 났다. 서산 오지리 주민 80명이 경운기 30대에 나눠 타고, 갯벌을 질주하는 영상은 ‘바지락의 도로’라는 패러디, 재치 있는 자막 붙인 영상 등 인터넷 밈이 되면서 공개 후 3주 만에 조회수 21,00만회를 넘겼다. 그러나 다른 영상은 그에 반해 적은 관심을 받았고, ‘범 내려온다’와 달리 8편의 곡 모두 어디서도 들려오지도 않는다.

세련된 영상과 높은 음악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힙합과 민요, 어르신들의 전형적인 시골 풍경과 개성 강한 트렌디한 젊은이들을 믹스한 뮤직비디오는 시즌1의 성공 공식 안에 머물러 있다. 신선함은 ‘루키’의 특권이다. 한 번 통했다고 두 번 통하지 않는다. 이는 ‘강남스타일’로 미국을 석권한 싸이가 이후 미국 시장을 본격 겨냥하면서 원히트원더로 세계 음악시장에서 사라진 이유다.

Feel the Rhythm of Korea ©유튜브

머드맥스 서산편 ©유튜브

‘가장 한국적인 것’의 정의

요즘 K-컬처가 전 세계를 호령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는 캐치프레이즈가 오해를 받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이번 홍보영상은 시즌1보다도 웰메이드하지만, 열광했던 그림을 염두에 두고 계산된 탓에 신선함이 반감됐다.

반면 <오징어 게임>은 분명 드라마의 설정과 전개상의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볼거리로 다가와 세계적인 콘텐츠로 우뚝 섰다.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링크된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 시대에 ‘가장 한국적인 것’의 정의는 한국인이니까 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완성도나, 전통을 비롯해 한국적인 요소가 얼마나 제대로 들어갔는가가 아니라 이 모든 걸 녹여내 얼마나 새롭고 독창적인 세계관을 만들어냈는가가 핵심이다.

한국적이란 것은 우리에게도 새롭고 신선하고 놀랍지 않다면, 밖의 반응도 별다르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CONTENTS : CONTENTS ISSUE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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