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 마케팅 분야 전문지 더피알(Then PR) 기자. ‘어렵게 접근해 쉽게 다가가겠다’라는 모토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소비스타일에 가장 맞닿아있는 각종 브랜드, 홍보 트렌드, 마케팅 이슈 등 커뮤니케이션 영역을 취재하고 글을 쓴다.
모든 만물에 중간은 있다. 우리가 흔히 나누는 세대에도 중간이 있다. ‘X세대’라 일컬어지는 이들이다. 기성세대와 밀레니얼세대라는 양극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낀 이들은 그동안 다양한 무대에서 애매한 존재감을 보여 왔다. 거의 모든 기업의 마케팅이 밀레니얼세대를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주목을 받는 건 그 대척점에 있는 시니어들을 위한 마케팅이다. 최근까지도 X세대를 위한 마케팅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조직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항상 기성세대와 밀레니얼세대 직원 관련된 이야기만 회자될 뿐,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고 있는 X세대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있다고 해도 X세대는 언제나 이 두 집단을 모두 이해하고 갈등 관계를 조정하는 ‘가교’ 역할로만 비칠 뿐이다. 주인공도, 그렇다고 빌런도 되지 못하는 삶이 계속해서 이들에게 부여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애매한 중간이 양극단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사회는 X세대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일까.
좀 더 세부적인 구분도 가능하지만, 통상적으로 1965년부터 1979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X세대라고 칭한다.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의미의 미지수 X를 붙인 이 세대는 향후 Y, Z, α(알파)로 이어지는 알파벳 놀음의 시초가 된다. 그만큼 이들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살며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한다. 놀기도 정말 화끈하게 잘 놀았다. 유독 진보적이고 자유분방한 성향을 가진,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유형의 세대기에 다양한 연구가 쏟아졌고, 미디어에서도 집중적으로 이들을 다뤘다.
세대 자체에 대한 호불호 역시 강하게 나뉘었다. 남들의 시선 따윈 중요하지 않고 자유로운 나를 추구하며 문화를 선도했다. 그때는 남과 같은 게 촌스러운 느낌이었다.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입든,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던 시기였다.
한국 역사상 유례없는 호황, 앞선 세대들의 희생으로 일궈낸 민주화 등으로 인해 경제적·정치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가 하나도 없던 1990년대에 X세대가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 이들의 자유를 가로막았다. 1997년, 아마도 X세대에게 가장 큰 트라우마를 남겼을 IMF 외환위기가 터진 것이다. 최고의 호황이 최악의 경제 위기로 바뀐 순간이었다. 취업 걱정 없던 X세대들은 갑자기 닥친 막막한 미래에 첫 절망을 경험했고,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입사하게 되더라도 해고당할까 전전긍긍했다. 그 누구보다 자유롭던 이들은 곧바로 사회와 조직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됐다. 죽어라 일하고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살아오던 X세대. 이들은 그런 고단한 과정 끝에 차장, 부장이라는 직함을 얻은 채 현재를 살고 있다.
이렇듯 한때 문화를 호령했던 이들이지만 그 날갯짓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신없이 일하고 사회에 적응하는 사이 사회·문화의 주도권은 밀레니얼세대에게 넘어갔다. 다신 오지 않을 것 같던 그들의 전성기. 하지만 사회는 X세대에게 지금이 ‘제2의 전성기’라 말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가장 큰 이유는 현재 그들의 ‘경제력’에 기인한다. 어쨌든 열심히 일한 대가로 그만큼의 보수를 받았고, 소비할 시간도 없이 점점 쌓여 큰돈이 되었다. 그리고 이만큼 일했으면 ‘난 나야’라고 외치던 그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좀 더 자유롭게 나를 위한 삶을 살아도 될 것 같다. 이왕 소비할 거면 더 좋은 것으로, 내 수준에 맞게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추구한다. 그래서 소비의 큰 손으로 X세대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비혼이라는 사회적 현상과 맞물려 더 큰 시너지를 낸다. 결혼을 하지 않으니 가족들에게 쓸 돈을 온전히 자신에게만 쓰는 것이다. 더 좋은 차를 사고, 더 맛있는 걸 먹고, 애인과 더 좋은 곳을 다니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것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결혼을 한 X세대는 주목받기 어려운 것일까. 물론 아니다. 이들의 삶의 방식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다. 나를 위한 소비를 경험한 세대기에, 이는 가족과의 소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좀 더 개인에 치중된 소비를 하고, 가족과 함께 소비를 하더라도 나도 즐겁고 가족도 즐거운 소비를 꿈꾼다.
트윈X광고 ©구글이미지
그리고 이들은 Z세대라는, 요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세대를 자녀로 두고 있다. 자녀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많은 트렌드를 체득하고 실행해본다. 자녀와 함께 틱톡 영상을 만들기도 하고, 자녀가 사용하는 앱을 함께 즐긴다. 젊은 세대의 트렌드를 누구보다 빠르게 습득하고, Z세대가 만들어 놓은 트렌드를 지지하고 확장한다는 관점에서 X세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X세대를 이해하는 데 가장 적합한 키워드는 ‘애증’이 아닐까. X세대는 전과 후를 모두 경험했다. 호황기와 IMF를 거치고, 민주사회와 소비사회를 경험 중이다. 아날로그를 경험한 한편 디지털에도 익숙하다. 대중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서, 대중문화의 폭발적 확산도 느꼈다. 격렬한 변화의 시기를 지났기에 과거에 대한 그리움도, 현재를 더 알고 싶은 열망도 존재한다. 즉, 모든 현상에 애와 증을 동시에 갖는 모습을 보인다.
우선 나이에 대한 애증이 존재한다. 기성세대라고 불리는 시기에 진입했고 그에 대한 처우나 대우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만은 더 젊은 사람이고 싶다. 비슷한 맥락으로 꼰대에 대해서도 애증이란 감정을 느낀다. 꼰대가 되긴 싫지만 본인 역시 일정 부분 꼰대 기질을 갖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브랜드를 바라보는 관점도 애증이다. X세대는 특정 브랜드에 대한 선호를 거의 처음 드러낸 세대다. 나의 철학을 브랜드로 대변하곤 했던 것이다. 이런 경향을 지녀왔기에, 한번 나와 핏(fit)한 브랜드를 찾으면 그 브랜드와의 관계를 오래 유지한다. 해당 브랜드가 자잘한 논란이 있다고 하더라도 웬만큼 심하지 않으면 이탈하지 않는다. 다양한 이유와 호불호를 이야기하며 브랜드를 이탈하는 밀레니얼세대와 달리, X세대는 브랜드를 웬만하면 평생 가는 애증의 친구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의 ‘애증’이 제일 잘 드러나는 것은 트렌드와 기술이다. 워낙 다양한 변화를 경험했기에 지속적으로 새롭게 바뀌는 환경이 두렵고, 또 지겹기도 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수용해야 살아남는 문화도 경험했다. 따라서 어떤 변화든 받아들이려 한다. 중간관리자 입장에서 부하 직원들을 이해하고 윗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트렌드나 기술을 익혀야 하는 부분이 있다.
가구주 연령별 소비지출 금액
연령대별 전년 동기 대비 온라인 소비 증감액
출처: 통계청, <2019년 연간 지출 가계동향조사 결과>, 2020.05 서울연구원, <코로나19가 바꾼 서울시민의 소비(2020 상반기)>, 2020.09
이렇듯 애증을 디폴트값으로 갖게 된 X세대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 지금까지 살펴본 특성들이 어느 정도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앞서 말했듯 이들은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젊은 마음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노골적으로 이들을 위한 마케팅을 펼치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가령 ‘중년을 위한 OO’이라는 마케팅을 펼친다고 해보자.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에 반감을 살 수 있다. 따라서 범용적인, 아니면 늘 해오던 대로 MZ를 위한 마케팅을 펼치되, X세대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살짝 보여주면 금상첨화다. 이들을 위한 제품을 따로 만드는 것 역시 거부감을 줄 수 있다. X세대는 기성세대가 사용하는 럭셔리한 제품도, 밀레니얼세대가 사용하는 힙한 제품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애니콜 광고 ©유튜브
웬만한 기술은 수용하는 세대라 SNS 활동도 활발하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다양한 SNS를 활용하기에 SNS로 광고나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은 필수다. 여기서 한 가지 더해지면 좋은 것이 있다. 이들은 텍스트나 지류 광고에 대한 경험도 있는 세대이기에 이런 형식의 광고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면 좋은 반응을 얻을 수도 있다.
몇 년 전부터 ‘뉴트로’ 트렌드가 자리하고 있는데, 많은 마케팅들이 ‘뉴’에 초점을 맞춰 올드 브랜드와의 컬래버를 통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과거를 접하지 않은 밀레니얼세대에겐 새롭게 느껴져 좋은 마케팅일 순 있지만 이는 X세대에겐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들을 타깃으로 한다면, ‘레트로’에 좀 더 초점을 맞춰 원형을 살리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 이런 전략으로 X세대의 환호를 받은 브랜드가 삼성전자다. 갤럭시Z플립3와 갤럭시Z폴드3 등을 출시하며 과거 유행했던 애니콜 CF를 오마주해 주목받았다. 애니콜 시절의 원형을 살린 갤럭시 버즈 케이스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애니콜 광고를 오마주한 삼성갤럭시Z폴드 광고 ©유튜브
지금의 X세대는 1990년대 이후로 유례없는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을 ‘영포티’라 칭하며 분석하는 책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고,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가 매년 펴내는 <트렌드 코리아>에서도 ‘엑스틴 이즈 백’이란 키워드를 통해 2022년에는 X세대를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변화를 보여준 X세대. 이들이 지금의 관심을 동력으로 또 어떤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나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