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SA 한국프로스포츠협회

글.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월간<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

포스터
올림픽 역사상 가장 독특한

파리올림픽 포스터는 올림픽 역사상 가장 독특한 이미지를 창조했다. 지금까지 올림픽은 단순했으며 중심 이미지가 있었다. 간결하면서 호소력 있게 디자인하여 한눈에 포스터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해왔다. 하지만 파리올림픽 포스터에는 중심 이미지가 없으며 수많은 요소들로 가득 차 있어서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포스터를 오랫동안 샅샅이 살펴보아야 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파리의 주요 관광지, 각종 종목들,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과 관람객들, 센강과 도시 이미지, 해양 종목이 펼쳐지는 마르세유의 바다까지 하나의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여기에 표현된 두 도시인 파리와 마르세유는 현실적이면서도 초현실주의적이다. 에펠탑이 있는 섬을 중심에 두고 센강이 흐른다. 센강 안에는 서울의 여의도처럼 시테섬이 있지만, 시테섬과 달리 실제 그곳에는 에펠탑과 태권도와 펜싱 경기가 열리는 그랑팔레가 있다. 이렇게 포스터의 지형과 건물은 현실적이면서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다.

또한 그 안에 로고와 경기를 하는 선수들, 관람객들, 저 너머의 바다와 요트들과 파도를 모두 표현해야 하므로 세로형 포스터 두 개를 합친 딥티치(dyptich: 두 쌍을 하나로 합친 평판) 포스터가 되었다. 딥티치 포스터는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채택되었다. 이 포스터를 보는 사람들은 그림책 <월리를 찾아서>를 보듯 그 안에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큰 흥미를 느낀다. 그러면 아주 재미난 것들을 찾을 수 있다.

이 포스터는 올림픽과 장애인 올림픽 포스터를 모두 겸하고 있다. 그래서 포스터 안에는 휠체어 경기에 참여한 장애인 선수도 있다.

이번 포스터의 핵심은 일러스트레이션이다. 이것을 그린 사람은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위고 가토니(Ugo Gattoni)다. 그는 초현실적인 도시 풍경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예술가여서 이번 포스터 디자이너로 선정되었다. 그는 이 복잡하고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데 2,000시간 이상을 사용했다.

세로형 포스터 두 개를 합친 딥티치 포스터로 만들어진 파리올림픽 포스터, 일러스트레이션: 위고 가토니 ©olympics.com

메달
에펠탑에 쓰인
철 조각을 심은

파리올림픽 메달 앞면과 뒷면, 디자인: 쇼메
©olympics.com

선수들에게는 평생의 영광이며 가장 소중한 기억의 저장소가 될 메달은 크기는 작지만 가장 강력한 올림픽의 상징이며, 주최국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조직위원회는 그리하여 에펠탑을 담으려고 했고, 이에 에펠탑에 쓰인 유서 깊은 철 조각을 메달에 삽입했다. 이제껏 모든 올림픽 대회의 메달은 각 메달을 상징하는 색, 즉 금, 은, 동만을 사용해 제작됐다. 하지만 파리올림픽 메달은 처음으로 기존의 메달 색깔 위에 육각형의 철 조각을 부착해 제작됐다. 이 육각형은 프랑스의 국토를 상징한다.

또 하나, 이번 메달의 독특한 점은 표면이 평면이 아니라 요철처럼 골짜기가 만들어져 중심에서 사방으로 선이 퍼져나간다는 점이다. 이렇게 표면을 입체적인 선으로 디자인한 최초의 사례는 사실 평창올림픽 메달이다. 평창올림픽 메달이 한 방향으로 선이 도드라진 반면, 이번 메달은 사방으로 퍼진다. 그리하여 빛을 받으면 하이라이트와 섀도우의 강렬한 대비가 생겨 광채를 더욱 발한다.

이 메달은 프랑스의 명품 보석 브랜드인 쇼메(Chaumet)가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쇼메는 정교한 보석 공예로 특화된 브랜드답게 이번 메달의 작은 부속들(육각형 철의 꼭지점마다 메달과 연결해주는 부속)을 보석처럼 정교하고 아름답게 세공했다.

성화봉
평등의 메시지를 강조하는 대칭

성화봉은 올림픽이 개최되기 이전부터 화젯거리가 되고 주목을 받는 대상이다. 아테네에서 밝힌 성화는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1만 명이 넘는 주자가 참여해 수천 킬로를 이동한다. 따라서 예비 성화도 만들어야 하고, 때로는 성화 주자가 기념으로 소유하려고 해서 수천 개를 만든다고 한다. 많은 수량을 제작해야 하는 만큼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화려해서는 안 된다. 친환경 올림픽을 모토로 한 이번 대회에서는 지난 대회의 1/5에 해당하는 2,000개만을 제작했다.

이번 올림픽은 같은 수의 남녀가 참여한 평등 올림픽으로서 평등의 메시지를 강조한다. 성화봉은 이 평등을 위아래가 정확한 대칭을 이루는 형태로 표현했다. 대칭을 이루다 보니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간결하면서도 개성이 있는 모양이 되었다. 형태는 대칭으로 같지만, 표면의 색과 질감은 다르다. 윗부분은 매끈해서 정적이다. 아랫부분은 센강을 상징하는 물을 표현했다. 물에 돌을 던졌을 때 일어나는 파문을 표현해 흔들리는 것 같아 역동적이며, 표면은 물처럼 반짝거린다.

재료는 강철이지만, 두께가 0.7mm밖에 되지 않아 무게가 1.5kg밖에 나가지 않는다. 주자가 오랫동안 들고 있어도 힘들지 않게 한 것이다. 성화봉을 디자인한 프랑스의 산업 디자이너 마티외 르아뇌르(Mathieu Lehanneur)는 올림픽 마스코트도 디자인했다.

성화봉, 디자인: 마티외 르아뇌르 ©olympics.com

기념주화
파리 문화유산과 역사, 스포츠를 결합한

올림픽 기념주화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수의 승리를 기념하고자 은화가 주조되었다.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뒤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때부터 이 전통이 부활했다.

파리올림픽에서는 공식 기념주화로 2유로, 10유로, 50유로, 250유로 등 다양한 동전을 제작했다. 동전은 파리를 대표하는 문화유적지를 배경으로 한 디자인, 운동선수를 표현한 디자인 등 굉장히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2유로 동전에는 원반 던지는 남자가 새겨져 있고, 배경에는 개선문과 주경기장 트랙이 새겨져 있다. 테두리에는 유로를 상징하는 12개의 별이 둘러싸고 있다.

역대 올림픽 최초로 프랑스 국토를 상징하는 육각형 모양으로 제작된 250유로 동전은 에펠탑을 배경으로 뛰어가고 있는 여성 육상선수의 옆모습 등이 새겨져 있다. 기념주화는 프랑스의 통화 기관인 몽내 드 파리(Monnaie de Paris)가 개발했다.

2유로 기념주화 ©olympics.com

250유로 기념주화의 앞면과 뒷면 ©olympics.com

단복
진정한 프랑스식 우아함

올림픽 개막식 때 선수들이 입장할 때 입는 단복은 흔히 정장으로 디자인된다. 그만큼 공식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을 필요로 한다. 이에 따라 프랑스의 명품 의류 브랜드인 벨루티(Berluti)가 이 작업을 맡았다. 단복은 선수와 코치, 단원 등 1,500여 명에게 지급되는데, 정장 한 벌의 가격이 4,000유로, 한화로 약 600만 원에 이른다.

디자인 디렉팅을 맡은 벨루티의 아그네스 필리유(Agnès Fillioux)는 프랑스 국기의 색에서 디자인의 실마리를 찾았다. 정장은 미드나잇 블루, 칼라는 파란색과 붉은색이 섞여 있고, 셔츠는 흰색으로 전체적인 조합이 프랑스 깃발과 같다. 벨루티는 직물의 표면에 광택 효과를 주는 데 특화된 브랜드다. 단복의 칼라는 은은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빛이 나온다. 여기에 다양한 옵션을 주었다. 여성 선수는 바지를 입을 수 있고 짧은 스커트를 입을 수도 있다. 또한 민소매 재킷을 선택할 수도 있다. 남자 선수들은 재킷 주머니에 광택 나는 칼라와 같은 색의 손수건을 삽입할 수 있다. 여자 선수들은 손수건 대신 같은 재질과 색의 스카프를 두를 수 있다.

벨루티가 단복에 적용한 핵심 키워드는 ‘편안함’과 ‘우아함’이다. 프랑스 단복은 여러 국가의 단복 중에서도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프랑스 국가대표 단복, 디자인: 아그네스 필리유 & 벨루티 ©olympics.com

유니폼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으로 팝하게

유니폼은 종목마다 모양과 재질은 물론, 요구되는 기능이 천차만별이다. 두툼한 유도복과 몸에 붙는 스판덱스 재질의 수영복에서 똑같이 대표팀이라는 통일성을 느껴야 한다. 또한 경기복은 선수촌과 시상식에서 입는 옷과 다르다. 참여 선수와 코치진 등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대상도 수천 명이다. 이에 따라 유니폼은 가장 많은 물량을 차지한다. 선수 560여 명, 장애인 선수 280여 명, 코치진과 기타 스태프가 2,400여 명에게 지급되는 의류가 15만 벌이나 된다. 이 모든 유니폼은 디자이너 스테판 애시풀(Stéphane Ashpool)과 프랑스의 스포츠 의류 브랜드 르꼬끄 스포르티브가 협업하여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선수들은 유니폼이 빛이 나고, 현대적이면서 젊은이다운 팝스러움을 원한다고 밝혀졌다. 여기에 국가적 상징과 전통적 요소가 조화롭게 표현되어야 한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프랑스 국기 색인 파란색, 흰색, 붉은색을 사용하되, 분명한 경계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그라데이션으로 섞이는 디자인을 모든 유니폼에 일관되게 적용했다. 이 삼색의 바탕에는 흰색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너무 깔끔한 흰색에 대해서 선수들은 지루함을 느꼈고 깃발색과 배경 색의 대비가 지나치게 선명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애시풀은 선명한 흰색 대신 따뜻한 톤의 미색으로 대체했다. 다른 제작물들과 마찬가지로 수만 벌의 유니폼 역시 프랑스에서 제작되었다.

프랑스 국가대표 유니폼, 디자인: 스테판 애시풀 & 르꼬끄 스포르티브 ©olympics.com

자원봉사자 유니폼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이 조화를 이룬

자원봉사자들은 보수 없이 일하는 사람들로서 올림픽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간직할 것이다. 자원봉사자 유니폼은 그들이 자원봉사자임을 다른 이들에게 표시해주고, 따라서 유니폼을 입었을 때 자부심을 주어야 하며, 기능적으로는 매우 편안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는 프랑스의 스포츠용품 소매업체인 데카트론(Decathlon)이 맡았다. 자원봉사자 유니폼은 선수 유니폼과는 차별화되어야 한다. 그에 따라 데카트론은 프랑스의 삼색기가 아닌 프랑스 해군의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모티프 삼아 재해석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편안함과 기능성을 고려해 재킷과 바지가 탈부착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는데, 다양한 날씨에 맞춰 긴바지와 반바지로 바꿔 입을 수 있고, 셔츠 소매를 민소매로도 바꿀 수 있다.

자원봉사자 유니폼, 디자인: 데카트론 ©olympics.com

시상대
파리의 상공에 오른다는 상징을 가진

시상대는 메달에 버금갈 정도로 TV에 자주 노출되는 대상이다. 크기는 메달보다 훨씬 커서 TV에 더 크게 잡힌다. 그런 만큼 소홀히 할 수 없는 디자인이다. 파리올림픽 시상대는 글로벌기업 P&G의 후원 아래 총 68개가 제작되었다. 시상대는 대개 금·은·동메달을 딴 세 명의 선수가 올라가지만 단체 종목의 경우 각 메달당 10명 이상이 올라가기도 한다. 이에 따라 다양한 경우에 맞게 크기를 조정할 수 있도록 모듈 방식으로 디자인되었다.

표면 디자인은 메달 디자인과 같은 DNA를 갖고 있다. 즉 에펠탑의 아치 형태를 가져온 것이다. 시상대 위에 칠한 회색은 파리의 유명한 망사르 지붕 색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시상대 위로 올라가는 선수들은 파리의 상공으로 올라간다는 상징을 갖게 된다.

시상대를 이렇게 앞의 흰색, 그 윗면의 회색처럼 무채색으로 택한 것은 또한 그 위에 올라가는 선수들이 입은 화려한 색과 조화를 이루도록 배려한 것이다.

시상대, 디자인: P&G ©olympics.com

비주얼 아이덴티티
파리올림픽을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하게 하는

비주얼 아이덴티티, 디자인: 콘란 디자인 그룹
©olympics.com

그밖에 올림픽을 치르는 데 필요한 디자인으로 모든 경기장의 시설과 장비를 통일시키는 브랜딩 작업이 있다. 마치 기업 브랜딩에서 건물이나 차량, 간판, 명함, 각종 서식류를 통일시키는 것과 같은 목적을 갖는다. 전 세계 시청자들이 어떤 경기장의 어떤 경기를 관람하든 파리올림픽이라는 것을 통일된 디자인으로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발한 비주얼 아이덴티티는 세로와 가로로 구성된 줄무늬, 아치의 선이 핵심 형태이고, 색상으로는 보라색과 녹색, 남색, 그리고 핑크색 계열이 지배적이다. 이 색채와 구성은 종목이 다른 모든 경기장의 벽면은 물론 주 경기장의 트랙, 관중석의 경계, 경기장 바닥에 일관되게 적용했다.

장비와 시설이 무려 120만 개에 달하는데, 여기에도 일관된 디자인을 적용했다. 이로써 파리올림픽 현장의 어떤 종목으로 화면이 이동하든 시청자들은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하게 했다.

파리올림픽은 프랑스의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패션 디자이너,
명품 브랜드들이 주요 디자인을 맡아
탁월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역대급 스포츠와 스타일의 만남
IOC가 선정한 파리올림픽 최고의 올림픽 단복 베스트 10

자료 출처. olympics.com

개최국이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프랑스여서일까. 파리올림픽에서 공개된 각국의 단복은 수많은 패션 브랜드와 유명 디자이너가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각국의 자부심과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긴 단복. IOC가 선정한 최고의 단복들을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