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SA 한국프로스포츠협회

글.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과학부 교수.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서 스포츠 담당 기자로 근무했으며, 영국 레스터 소재의 드몽포트대(DMU)에서 스포츠 문화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스포츠 문화사>, <야구의 나라>가 있다. 최근 아시아에서 올림픽의 가치와 그 유산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가우디의 올림픽’ 바르셀로나를 뛰어넘은 파리의 문화·관광 올림픽 전략

파리는 에펠탑, 콩코르드 광장, 베르사유 궁전과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가 개최됐던 그랑 팔레 등 관광 명소나 문화재에 올림픽 종목의 임시 경기장을 만들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5개 전 종목 석권을 이룬 한국 양궁의 신화도 나폴레옹 무덤이 있는 앵발리드 앞에서 만들어졌다.

임시 경기장을 만드는 것은 비용 감소를 위해 최근 올림픽 개최도시가 적극 추진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파리는 임시 경기장을 관광 명소에 설치하면서 ‘경제 올림픽’과 ‘문화·관광 올림픽’을 조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지금까지 하계 올림픽 개최 도시로 문화와 관광 올림픽이라는 측면에서 모델이 됐던 곳은 바르셀로나였다. 한국인에게는 1992년에 개최된 바르셀로나올림픽이 황영조의 마라톤 금메달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관광산업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바르셀로나올림픽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가우디의 건축’을 전 세계에 널리 소개한 것이었다.

바르셀로나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가족 대성당과 구엘 공원 등의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올림픽 다이빙 경기가 전 세계 TV 화면에 잡힐 때 가족대성당이 항상 배경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한 공간적 배치였다. 자연스레 다이빙 경기 중계에도 가족대성당과 바르셀로나가 낳은 위대한 건축가 가우디와 관련된 코멘트가 많이 나왔다.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스타 만들기’는 성공적이었다. 1990년 한 해 관광객 숫자가 170만 명에 불과했던 바르셀로나는 이제 1,2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됐다. 물론 관광객의 급증은 기본적으로 바르셀로나가 관광지로서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1992년 올림픽의 ‘가우디 효과’와 관련이 깊었다.

파리는 이런 면에서 바르셀로나올림픽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프랑스는 세계 최고의 관광대국이다. 2023년에 프랑스가 벌어들인 관광수입은 650억 유로(약 97조 원)로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약 8%를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파리는 프랑스 관광산업의 중심이라는 점에서 이번 올림픽은 프랑스 경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어쩌면 파리에 있는 문화재와 관광명소를 얼마나 매력적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보여 주느냐가 이번 파리올림픽의 핵심 과제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단순히 관광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프랑스와 파리에 대한 매력도의 증대는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 프랑스에서 확대되고 있는 해외 기업의 투자나 유럽 지사 설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파리올림픽의 진짜 모토는 ‘셀링(Selling) 파리, 셀링(Selling) 프랑스’였다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위해 건립된 그랑팔레에서 펜싱과 태권도 경기가 펼쳐졌다. ©shutterstock

파리는 바르셀로나올림픽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파리에 있는 문화재와 관광명소를
얼마나 매력적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보여 주느냐가
이번 파리올림픽의 핵심 과제였다.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가족대성당이 배경으로 나오는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다이빙 경기 장면 ©shutterstock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명품 브랜드 후원사 LVMH, 파리올림픽의 주연배우

파리올림픽이 기록한 스폰서십 매출은 13억 달러(약 1조 7,368억 원)를 상회한다. 이는 지난 2020 도쿄올림픽의 스폰서십 매출에 비해 무려 60%나 상승한 수준이다. 파리올림픽 기업 후원은 미국·일본·중국이 전체 매출에 약 47%를 담당했다. 특히 이번 파리올림픽에서는 최근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는 알리바바(e-커머스 업체)나 멍니우 데어리(유제품 제조업체)와 같은 중국 기업의 올림픽 스폰서십 기여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파리올림픽 스폰서십의 성공에는 프랑스 기업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그 중심에는 루이뷔통, 디올, 티파니 등 세계적 명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 최대 기업 LVMH(루이뷔통모에헤네시)가 존재했다.

사실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의 최대 고민거리는 ‘프랑스 국내 기업들이 얼마나 올림픽에 투자할 수 있을까’였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프랑스에는 올림픽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 큰 손이 될 수 있는 세계 초일류 기업이 드물다. 대부분 유럽 국가가 그렇듯이 프랑스는 IT와 바이오 산업의 혁명적 변화에 제대로 편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LVMH는 이 같은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의 고민을 완전히 불식시켰다. LVMH가 파리올림픽 스폰서십을 위해 내놓은 비용이 1억 7,500만 달러(약 2,338억 원)나 됐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시가총액 1위 기업이자 프랑스 전체 수출의 4%를 차지하는 LVMH는 파리올림픽을 종횡무진 누볐다. 올림픽 메달은 LVMH의 자회사인 쇼메가 제작했고 프랑스 대표 선수들의 단복도 역시 LVMH의 자회사 베를루티가 만들었다. 메달이 들어 있는 작은 상자와 올림픽 성화를 위한 트렁크도 루이뷔통의 작품이었다.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명품 브랜드 후원사가 된 LVMH는 이런 방식으로 엄청난 브랜드 홍보를 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LVMH는 논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들이 지켜봤던 개막식에서 발생했다. 센강에서 펼쳐진 개막식에 루이뷔통의 여행용 가방이 실려 있는 보트가 등장하는가 하면, TV 화면에는 LVMH가 제작한 옷을 차려 입은 댄서들과 루이뷔통 가방의 제작과정을 담은 영상이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올림픽 개막식에서 후원사 제품의 노출을 최소화시켰던 전례와 비교해 매우 파격적인 LVMH의 접근에 다른 올림픽 후원사는 불만을 토로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올림픽 종목 가운데 관심이 매우 높은 여자 체조 개인종합 부문 시상식에서도 해프닝이 있었다. 1위를 차지한 미국의 시몬 바일스가 시상대 중앙에서 만면의 미소를 머금고 있던 순간, 토마스 바흐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메달이 들어 있던 루이뷔통 상자를 높이 들었다. 그래서 IOC 위원장이 루이뷔통 브랜드를 직접 전 세계에 홍보해 준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마저 나왔다.

올림픽 성화를 위한 트렁크, 메달이 들어 있는 작은 상자 모두 LVMH의 작품이다. ©Louis Vuitton

시상대에서 빛난 삼성의 ‘빅토리 셀피’와 양궁·펜싱 대표팀 후원사의 이미지 제고

경기 장면 이상으로 올림픽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메달 수여식에서는 LVMH말고도 또 하나의 브랜드가 주목받았다. 파리올림픽 참가 선수들에게 약 1만 7,000대의 휴대전화를 배포했던 삼성이다. 삼성은 올림픽 최초로 시상대 위에 오른 선수들이 영광스러운 순간을 직접 촬영하는 ‘빅토리 셀피’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각광을 받았다. 올림픽 TV 중계에서 ‘순간 시청률’이 높은 시상식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삼성의 ‘빅토리 셀피’ 프로그램은 효과적인 브랜드 홍보였다는 평가다.

파리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이 삼성전자의 ‘갤럭시 Z 플립6 올림픽 에디션’으로 ‘빅토리 셀피’를 찍고 있다. ©삼성

비인기 종목이지만 한국의 대표적 올림픽 종목으로 자리매김한 양궁, 펜싱 등에서 메달이 쏟아지면서 이 종목을 후원하는 현대차그룹과 SK텔레콤은 기업 이미지 제고라는 측면에서 큰 효과를 누렸다. 자연스레 스포츠를 통한 기업의 사회적 공헌도 크게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특히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종목 단체들의 거버넌스 운영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된 가운데 현대차그룹과 SK텔레콤의 지속적인 비인기 종목에 대한 후원은 귀감이 됐다.

한편, 올림픽 공식 후원사인 AB인베브의 자회사인 OB맥주는 파리 현지에 마련된 코리아하우스 야외정원에 한국식 포장마차를 테마로 한 ‘카스 포차’를 설치해 운영했다. OB맥주는 CJ제일제당의 글로벌 한식 브랜드 비비고와 협업을 통한 메뉴를 판매하면서 브랜드 홍보 효과를 배가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LG그룹의 통신 계열사 LG유플러스는 국내 지상파 방송 3사에 파리올림픽 단독 중계 회선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성과를 높였다. LG전자도 올레드 TV의 최대 판매시장인 유럽에서 열린 올림픽을 전후해 가격 할인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 적지 않은 올림픽 특수를 누렸다.

전 종목 석권의 대기록을 수립한 양궁 대표팀을 40년 동안 후원한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

올림픽 3연패의 역사를 쓴 펜싱 대표팀을 21년 동안 후원한 SK텔레콤 ©SK텔레콤 뉴스룸

비인기 종목이지만 한국의 대표적
올림픽 종목으로
자리매김한 양궁, 펜싱 등에서
메달이 쏟아지면서
이 종목을 후원하는
현대차그룹과 SK텔레콤은
기업 이미지
제고라는 측면에서 큰 효과를 누렸다.

파리에 한국식 포장마차 ‘카스 포차’를 운영한 OB맥주 ©OB맥주

올림픽 후원사 에어비앤비(Airbnb)와
샌 생드니의 젠트리피케이션

지난 2019년 5억 달러(약 6,685억 원)를 내고, 2028년까지 올림픽 후원사로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에어비앤비(Airbnb)는 파리올림픽에서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올림픽 개최도시에서 관광 특수가 펼쳐진다는 점에서 세계 최대 숙박 공유 서비스 기업 에어비앤비의 올림픽 스폰서십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에어비앤비가 올림픽 개최도시의 임대료를 상승시키는 주범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앤 이달고 파리 사장은 이미 2019년 에어비앤비가 올림픽 후원 기업이 되자마자 이 같은 우려를 표명했다. 올림픽은 시민을 위한 복지 정책에 공헌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임대료 및 집값 상승 문제는 올림픽 개최도시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이에 따라 파리시는 주택의 단기 임대를 일정 부분 제한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파리의 주택 소유자들은 평소 요금의 2배 이상으로 에어비앤비를 통해 올림픽 임대 예약을 받았다. 이 가운데 올림픽 기간에 임대료를 너무 높게 책정해 단기 임대 계약에 실패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가 파리에서 얻은 매출은 대폭 증가했다. 올림픽 기간 파리 시민들이 자택을 임대하도록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에어비앤비의 전략이 먹혀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파리 시내 에어비앤비 등록 숙소는 2024년 첫 분기에 40%나 급증했다.

올림픽 기간 기승을 부렸던 파리의 임대료 상승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이다. 파리올림픽은 저소득층 이민자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파리 외곽의 방리유를 재개발하는 것에 역점을 뒀다. 프랑스는 샌 생드니 지구로 대표되는 파리 외곽 지역을 더 이상 소외된 지역이 아니라 파리와 같은 수준의 공간으로 만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샌 생드니와 파리를 연결하는 지하철과 기차 노선을 확장했고 이 지역의 노후한 지하철 역사도 새롭게 단장했다. 올림픽 선수촌도 이곳에 건설됐다.

하지만 낙후된 지역에서 재개발이 이뤄지면 도시 환경만 바뀌는 게 아니라 거주자도 바뀐다. 이 같은 올림픽을 통한 빈민가 재개발의 어두운 그림자가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샌 생드니에 건설된 올림픽 선수촌을 포함해 새롭게 만들어진 주택의 집값은 이 지역 평균 주택 가격보다 30% 이상 인상됐다. 이 때문에 파리올림픽이 끝난 뒤 선수촌의 3분의 1 정도는 가난한 샌 생드니 원주민들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파리시의 방침은 현실화되기 어렵다.

파리올림픽은 파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을 자연스럽게 홍보한 문화 올림픽의 모범사례였다. 또한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 기업 LVMH와 삼성전자는 올림픽 후원사로서 개회식과 시상식까지 활용하며 브랜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하지만 올림픽 도시 재생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과 올림픽 후원사 에어비앤비의 적극적 마케팅으로 인한 파리 지역의 임대료 상승과 같은 문제는 파리올림픽의 대표적인 어두운 그림자였다.

올림픽 후원사 에어비앤비는 올림픽 개최도시의 임대료를 상승시키는 주범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olympic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