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SA 한국프로스포츠협회

글. 최호섭

IT칼럼니스트. 월간 <PC 사랑>을 시작으로 IT와 관련된 글쓰기를 시작해 미디어잇, 블로터앤미디어를 거치며 IT 전문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화웨이>, <샤오미>, <손에 잡히는 4차 산업혁명> 등이 있다.

0.005초로 갈린 승부, 그 뒤엔 초고속 카메라와 퀀텀 타이머

1백만분의 1초까지 측정할 수 있는 퀀텀 타이머
©OMEGA

지난 8월 5일, 프랑스 생드니 스타드 프랑스 경기장에서 열린 100m 달리기 결승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렸다. 잠시 후 총성이 울리고 2024년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사람이 결정됐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는 문제가 생겼다. 중계 카메라에 잡힌 화면으로는 우열을 가릴 수 없었고, 3D로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는 촬영 기술로도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두 선수의 결승선 도착은 ‘동시’에 이뤄졌다. 꽤 시간이 흐르고서야 결국 0.005초의 기록 차이로 1, 2위가 갈렸다.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결과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를 내는 것이다.

핵심은 초고속 사진을 통한 계측에 있다. 기록 경기에서는 늘 정확도가 이슈가 됐고, 이를 위해 눈 깜짝할 사이의 시간을 수없이 쪼개는 기술들이 발전해 왔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처음 선보인 초고속 사진 판독은 100분의 1초의 시간을 잴 수 있게 되면서 찰나의 가치를 만들어냈다. 현재 시간 기록은 1,000분의 1초 단위를 재는 것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2012년 이후 1마이크로초, 1백만 분의 1초까지 측정할 수 있는 ‘퀀텀 타이머’가 등장한다.

여기에 고속 카메라를 더해 결승점에 도달하는 시간을 수없이 잘게 쪼개 털끝 하나라도 빨리 도착한 사람을 가려내는 기술들이 쓰인다. 찰나의 순간이 결과를 완전히 갈라내기 때문에 속도가 중심이 되는 기록 경기는 이처럼 최신 기술을 통해 더 정확하게 기록을 뽑아낸다. 기업들에게 올림픽은 기술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기회이고, 협찬사들 역시 다양한 기술로 올림픽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 흐름이다.

파리올림픽 육상 남자 100m 포토피니시 ©OMEGA

100분의 3초의 시차도 잡는 전자식 스타팅 피스톨로
더 공정하게

육상 대회를 조금 더 살펴보자. 과거의 육상 경기는 출발 신호를 선수들에게 알리기 위해 화약총을 이용했다. ‘탕!’하고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출발 신호는 특유의 흥분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자체로 무엇인가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다는 상징성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 따지고 들어가면 문제가 있다. 바로 출발 소리가 모든 선수에게 동시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리는 공기를 타고 이동하는데 보통 1초에 340미터를 움직인다. 소리는 엄청나게 빠르지만 이론적으로 따져보면 동시에 전달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통 달리기 트랙의 폭은 1.2미터인데, 8명의 선수가 함께 달린다고 하면 1번 레인부터 8번 레인까지의 거리는 9.6미터나 된다. 심판이 한쪽 트랙 끝에서 총을 쏘면 가까운 선수와 먼 선수 사이에는 약 0.03초, 즉 100분의 3초의 시차가 생긴다.

이번 100미터 결승전처럼 1,000분의 5초 사이로 승부가 갈리는 상황에서 100분의 3초 차이는 역사적인 기록을 바꾸어 놓을 만큼 큰 시간이다. 파리올림픽 공식 타임키퍼 오메가는 이 시차를 줄이기 위해 전자식 스타팅 피스톨을 이용한다. 전자식 피스톨은 실제 화약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 신호를 이용해 소리를 울린다. 심판이 울린 총성은 모든 선수의 레인의 출발선 뒤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동시에 울리기 때문에 모든 선수가 동시에 출발 신호를 들을 수 있다.

전자식 스타팅 피스톨 ©OMEGA

파리올림픽 공식 타임키퍼 오메가 올림픽 카운트다운 시계 ©OMEGA

전파에서 클라우드로, 인공지능으로 중계 패러다임의 변화

올림픽을 더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중계 기술도 눈에 띈다. 알리바바는 클라우드 기반의 중계 기술을 구축했고, 시합이 열리는 14개 경기장에 인공지능 기반의 증강 기술을 적용해 화면을 다채롭게 꾸몄다.

알리바바의 올림픽 방송 서비스(OBS, Olympic Broadcasting Service) 클라우드는 인터넷과 클라우드를 통해 경기 내용을 전 세계 방송사에 전송하는 기술이다. 국제 경기를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데에는 보통 위성을 이용하는 위성 생중계 기술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위성은 신호가 불안정하고, 많은 정보를 전송하기에도 어렵다.

클라우드를 이용하면 신호의 손실 없이 경기 영상이 전 세계에 실시간 전송된다. 방송사들도 위성 인프라 없이 경기의 내용을 주문형 비디오를 보듯 영상을 선택해서 중계 방송을 제작할 수 있다. 알리바바는 여기에 더해 카메라 여러 대를 설치하고 이를 합성해 입체 화면을 만들어내고, 고속 촬영을 통해 슬로우 모션 영상도 제공한다.

이를 통해서 경기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추가로 제작하거나 방송사 자체적으로 생동감 넘치는 중계 방송을 제작할 수 있게 됐다. 이 카메라 영상은 비디오 판독 등에 쓰일 수 있을 만큼 순간을 높은 해상도로 포착해 낸다.

파리올림픽에서 알리바바 클라우드의 OBS 클라우드 3.0을 사용하는 모습 ©alibaba

알리바바의 올림픽 방송 서비스(OBS, Olympic Broadcasting Service) 클라우드는 인터넷과 클라우드를 통해 경기 내용을 전 세계 방송사에 전송하는 기술이다. ©alibaba

인공지능 기반의 음성 합성 기술로 경기 내용을 자유롭게 재구성

이제까지의 스포츠 관련 기술은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것에 중심이 쏠려 왔다. 하지만 이번 파리올림픽을 기점으로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등 IT 기술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개막식 공연에 증강현실 영상을 더해서 연출자의 상상을 그려내는 것은 이제 새롭지도 않을 지경이다. 특히 우리 일상에서 숨가쁘게 변화를 빚어내는 인공지능 기술이 스포츠에 이전과 전혀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올림픽 중계의 중심을 맡은 미국 NBC는 음성 합성 기술을 중계에 적용해 팬들의 관심을 샀다. 과거 올림픽 중계로 큰 인기를 누렸던 스포츠 캐스터 알 마이클스의 목소리를 인공지능 기반의 음성 합성 기술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NBC는 매일 주요 경기의 브리핑과 하이라이트에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알 마이클스의 목소리를 넣었다.

인공지능 기반의 음성 합성은 아직 실시간 중계를 할 만큼의 수준은 아니다. 여전히 경기의 흐름을 읽고 시청자와 공감하면서 감정을 나누는 것이 중계 방송의 중요한 역할이고 가치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의 소비가 게임 전체 중계 방식에서 유튜브나 틱톡 등 뉴미디어 기반의 짤막한 경기 하이라이트 소비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편집자가 자유롭게 내용을 재구성하는 데에 음성 합성 기술이 더해지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NBC는 과거 스포츠 캐스터 알 마이클스의 목소리를 AI로 복제해 자사 OTT 피콕에서 ‘오늘의 올림픽 요약(Your Daily Olympic Recap on Peacock)’ 서비스로 선보였다. ©NBC

이제까지의 스포츠 관련 기술은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것에 중심이 쏠려 왔다.
하지만 이번 파리올림픽을 기점으로
AI와 가상현실 등 IT 기술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올림픽 무대에서 실험된 인공지능의 가능성
AI 심판 지원 시스템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인공지능이 스포츠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파리올림픽에서는 AI가 판정에 참여하면서 그 가능성을 실험했다.

순간의 동작을 평가하는 체조 경기는 늘 점수 판정이 예민한 종목이다. 후지쯔가 개발한 AI 심판 지원 시스템 JSS(Judging Support System)은 경기장의 모서리마다 설치된 초고속 카메라로 이미지를 촬영하고 이를 합성해 3D 이미지를 만든다.

인공지능은 순간순간의 동작의 정확도를 파악해서 제대로 기술이 이뤄졌는지 판단한다. 이는 게임 개발 등에서 활용되는 3D 모션 캡처 기술을 확장한 것이다. 사람의 눈과 비디오만으로 판독하던 때에는 모든 것을 판정단의 감각에 의존해야 했지만, 동작의 유사성을 판단하는 비전 컴퓨팅 기반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판정의 공신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 모션 인식 기술은 평가뿐 아니라 훈련 과정에서도 활용된다. 국내에서도 초고속 카메라와 컴퓨터 비전 기반으로 체조를 비롯해 사격, 역도 등 자세가 성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종목에 활용된다. 하지만 판정에 참여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야구를 비롯한 프로스포츠에 인공지능 기반의 판정이 더해지면서 적지 않은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정확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인공지능의 판단을 안전하게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들도 서서히 빛을 내고 있다. 늘 점수에 예민한 체조는 이미 2023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인공지능 심판을 적용해 그 가능성을 살폈고, 긍정적인 부분을 바탕으로 올림픽에도 적용했다.

특히 판정에 대한 정확도, 그리고 인공지능의 결과에 심판이 얼마나 가치를 판단할지에 대한 경험이 중요한 요소로 꼽혔다. 또한 인공지능에게 인간의 역할을 빼앗기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체조를 포함해 경기의 많은 부분이 인공지능만으로 대체되지는 않는다. 판정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고, 기계가 판단하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점수에 더하는 것이 경기의 감동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당장은 인공지능을 통해 판정의 당위성을 돕는 것으로 평가의 정확성과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긍정적인 효과로 읽힌다. 체조와 JSS는 실제 중요한 무대에서 이를 검증했고, 기술과 제도를 가다듬으면 다른 종목으로도 확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후지쯔가 개발한 AI 심판 지원 시스템 JSS ©fujitsu

IOC, AI 도구로
선수 보호

소셜미디어
모니터링,
악플 삭제

하지만 기술은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인공지능으로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모니터링한다고 밝혔다. 경기 결과에 대한 소셜미디어를 통한 사이버 폭력이 이어지고, 때로는 스토킹도 이어진다. IOC는 선수들의 동의를 얻어 인공지능 기반으로 악플을 삭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딥페이크 범죄도 모니터링한다. 기술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다시 기술로 풀어내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파리올림픽 무대를 통해 기술은 늘 스포츠와 함께해 왔고, 스포츠를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기술은 곳곳에서 선수들을 도와 무대를 더 빛나게 해 주었다. 물론 모든 것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기술들이 대회를 더 즐겁게 만들어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통해 기술들이 검증받고 다양한 의견을 통해 경기의 일부로 완성되는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특히 비디오 판독이나 드론 촬영 등이 어느새 스포츠의 일부가 된 것처럼 인공지능이 앞으로의 스포츠 환경을 가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