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SA 한국프로스포츠협회

글, 사진. 류청

축구 전문 미디어 ‘히든K’ 편집장 겸 네이버 스포츠 공식 스토리텔러, 스포츠LAB 운영자.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 프랑스 리그앙을 비롯해 프랑스 축구 전문기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축구는 사람을 공부하게 만든다>, <유럽 축구 엠블럼 사전>, <프리미어리그 가이드북> 저자

경기장 바깥에서 완성된 문화 올림픽

“올림픽이 아닌 전시회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2024 파리올림픽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협업했던 한 관계자가 한 말이다. 환경과 문화올림픽을 표방한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경기장 중 93%를 기존 시설에서 펼치도록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존 시설은 58.5%였고, 나머지 34.5%는 특정한 장소에 임시 구조물을 설치해 경기장으로 활용했다.

이 특정한 장소는 올림픽이 아닌 전시회 혹은 영화를 본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8개 종목 경기를 했고,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준비하며 건설한 그랑 팔레에서는 한국이 금메달을 딴 펜싱과 태권도를 했다. 나폴레옹 무덤이 있고 황금 돔으로 유명한 앵발리드에서는 한국 양궁 선수들이 금빛 찬가를 불렀고, 에펠탑의 정원(샹 드 마르스, Champs de mars)에서는 비치 발리볼 경기가 열렸다. 에펠탑과 루브르의 피라미드 앞에는 오륜기를 설치하기도 했다.

기존 시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올림픽 선수촌과 셔틀버스에서도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거 대회와는 다른 환경친화적 요소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유명한 장소에서 경기해서 이목을 사로잡고 근사한 중계 화면을 만들었다고 해서 문화 올림픽은 아니다. 프랑스는 경기장 바깥에서 문화 올림픽을 완성했다. 이번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의미 있고 특색 넘치는 전시회와 문화 행사를 준비했다.

확인한 바도 그랬다. 나는 올림픽 폐막식이 끝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2024년 8월 12일 오후 7시 30분에 파리에 도착했다. 일하거나 관람하려고 파리를 찾았던 이들은 한결같이 “왜 올림픽이 끝났을 때 오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경기는 패럴림픽(8월 29일 개막)까지 잠시 멈췄지만, 다양한 문화 행사는 끝나지 않았다는 걸 몰랐던 것 같다. 파리에서 머무는 48시간으로는 파리와 일 드 프랑스(파리를 둘러싼 지역.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 격)도 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는 것도 말이다.

오르세 미술관 옆 센강 부두 ©shutterstock

루브르의
<올림피즘: 현대의 발명, 고대의 유산> 특별전

아침에 루브르 박물관과 튈를리 정원을 뛰는데 사람들이 한 곳에 몰려 있었다. 피라미드 근처에 오륜기가 설치돼 있는데 거기서 사진을 촬영하려고 줄을 선 것이었다.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면 더 멋진 게 준비돼 있었다. <올림피즘: 근대의 발명, 고대의 유산(L’OLYMPISME : Une invention moderne, un héritage antique, 4.24~9.16)>이라는 특별 전시회였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체육 강국은 아니지만, 현대 스포츠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을 듣는다. 고대에 묻힌 올림픽을 복원해 현대 올림픽을 발명한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Baron Pierre de Coubertin, 1863~1937)은 프랑스인이다. 그는 프로이센과 전쟁에서 진 조국을 보면서 자신이 공부했던 영국을 떠올렸다. 영국은 당시에 공립학교를 중심으로 스포츠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이 전시는 쿠베르탱 남작뿐 아니라 초대 올림픽인 ‘1896 아테네 올림픽’과 ‘1906 메솔림픽(중간 올림픽)’ 예술감독을 역임한 스위스 출신 에밀 질리에롱(Émile Gilliéron, 1850~1924)을 집중 조명했다. 두 사람은 올림픽 정신과 의미 그리고 예술을 엮어 근대 올림픽을 발명했다는 걸 보여준다. 여기에 프랑스 철학자인 미셸 브레알이 마라톤 전투에서 착안해 마라톤 종목을 만든 과정도 볼 수 있었다.

전시장 자체는 크지 않지만, 고대의 유산을 관찰하고 분석해 근대 올림픽으로 만드는 과정을 자세하게 다뤄 인상적이었다. 질리에롱이 만든 우표와 포스터는 지금 봐도 상징과 미적인 요소를 다 잡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미셸 브레알이 직접 초대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주려고 만든 ‘브레알의 컵’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오는 길에 루브르 서점에 들렀을 때는 올림픽에 관련된 수많은 책을 만났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린 특별 전시회 <올림피즘: 근대의 발명, 고대의 유산전> ©류청

오르세의 <스포츠와 이상: 1900년 올림픽 즈음에>

루브르에서 센강을 건너면 갈 수 있는 오르세 미술관은 언제나처럼 붐볐다. 오르세 미술관에는 올림픽 외에도 인상주의(impressionism) 탄생 150주년이라는 이슈가 있다. 오르세 미술관은 인상주의 회화를 많이 품은 미술관이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기차역으로 태어난 오르세 미술관은 같은 해 열린 ‘1900 파리올림픽’과 당시 사회상을 특별전으로 엮었다.

<스포츠와 이상: 1900년 올림픽 즈음에(SPORT ET IDEAL, autour des jeux olympiques de 1900)> 전시가 2층 60번 전시실에 펼쳐졌다. 입구에서부터 ‘1900 파리올림픽’과 펜싱 경기 포스터가 반겼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전시회를 여는 글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이 파리 만국 박람회를 앞두고 태어났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당시 올림픽에 경의를 표하며 사회상을 둘러보겠다고 되어 있었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앞두고 태어난 오르세 미술관의 <스포츠와 이상> 포스터 ©류청

여성들이 배드민턴을 치는 회화와 함께 여성들이 스포츠를 하는 당시의 사진을 배치해 눈길을 끌었다. ©류청

당시 스포츠는 인간의 몸이 갖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개념(백인 남성)에 집중했으며,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의 몸을 이상향으로 꼽았다. 전시회장 앞에 있는 활 쏘는 헤라클레스(에밀 앙투안 부르델 작)상이 있는 것은 의도적인 배치였다. 오르세 미술관은 1900년 올림픽에 거의 초대받지 못했지만, 스포츠를 즐겼던 여성들도 놓치지 않았다. 알다시피 골프와 테니스 그리고 배드민턴은 여성들이 선구자 역할을 한 스포츠다. 오르세 미술관은 여성들이 배드민턴을 치는 회화(배드민턴, Jeu de volant. Maurice Denis 작)와 함께 여성들이 앞서 언급한 스포츠를 하는 당시의 사진을 배치해 눈길을 끌었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기차역으로 태어난 오르세 미술관은
같은 해 열린 ‘1900 파리올림픽’과 당시
사회상을 특별전으로 엮어 개최했다.

부르봉 궁전 앞과 팔레 갈리에라

이번 전시 여행 동반자는 지하철이 아니라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이 사랑하는 공유자전거 벨리브(Velib)였다. 벨리브를 타고 패션 박물관인 팔레 갈리에라로 가는 길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하원 의사당인 아상블레 나시오날: 부르봉 궁전(Assemblée nationale - Palais Bourbon) 앞에 특이한 비너스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가 로랑 페르보스가 디자인한 작품으로 이름은 ‘미와 몸짓’이다. 밀로의 비너스상이 농구, 복싱, 창던지기, 장애인 양궁, 서핑, 테니스를 하는 모습을 평등의 의미로 무지개색으로 형상화했다.

프랑스 하원 의사당인 아상블레 나시오날: 부르봉 궁전 앞에 전시된 비너스 상 ©류청

팔레 갈리에라는 올림픽을 의복으로 표현했다. 근대 올림픽이 태동한 1800년대 후반은 사람들이 신체 기능과 움직임에 관심을 보인 시기와 일치한다. 대중의 생각과 취미가 바뀌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게 의복이다. 귀족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스포츠와 여가 활동 그리고 해수욕에 관심을 보이면서 패션계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그 당시 운동복(수영복을 포함해서!)은 지금 보면 너무 불편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최첨단 운동복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체감했다. 가장 많이 변화 혹은 진보한 것은 여성 운동복이다. 여성 운동복은 처음에는 신체를 감추는 부분에 더 역점을 뒀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이제는 여성들 신체를 더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기능성까지 갖췄다. 평상복으로 입어도 될 정도로 말이다. 1800년대 후반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식과 문화 그리고 위상이 변화했다는 걸 자세한 설명으로 알 수 있었다.

©팔레 갈리에라

부르봉 궁전 길거리에 있는 전시 ©류청

전국이
스포츠 박물관

프랑스는 문화부에서 문화 올림피아드 페이지(https://olympiade-culturelle.paris2024.org/)를 따로 만들 정도로 이 부분에 신경을 썼다. 파리에서 여는 큰 행사는 물론이고 전국에서 어떤 올림픽 관련 문화 행사가 열리는지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을 올림픽 개막 전부터 이어왔다. 파리에 있는 장식 미술 박물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은 2023년 9월 20일부터 2024년 4월 7일까지 ‘패션과 스포츠, 또 다른 시상대(Mode et sport, d’un podium à l’autre)’라는 전시를 열었다. 앵발리드에 있는 국립 군사 박물관(Musee de l’Armee)에서는 올림픽 기간 동안 올림픽에 관련된 전시회를 세 개나 준비했다.

개인적으로 시간이 더 있었다면 꼭 가고 싶었던 전시가 있다. 바로 니스 국립스포츠박물관(Musée national du sport de Nice)에서 진행한 <여성의 올림픽(Les Elles des Jeux, 2023.11.8~2024.9.22)>이다.

초대 올림픽은 물론이고 파리에서 열린 지난 두 차례 올림픽(1900, 1924)에서 배제됐던 여성이 올림픽에서 어떻게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었는지 보여준다. 130년에 걸친 투쟁과 주도적인 인물 그리고 역사적인 순간이 올림픽 애호가를 기다린다. 주제만 봐도 이 전시가 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그들은 환영받지 못한다’ ‘자신의 운명을 책임지다’ ‘영원히 최초’ ‘자신의 선택을 강요받다’ ‘신체의 한계에 직면하다’ ‘그들은 2024년 올림픽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종목별 전시도 있다. 파리에 있는 낭만주의 시립박물관(Musée de la Vie Romantique)에서는 ‘메두사호의 뗏목(Le Radeau de la Méduse)’ 으로 유명한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를 내세워 <제리코의 말(Les Chevaux de Géricault)>이라는 주제로 승마를 잡았다. 부르델 박물관(Musée Bourdelle)은 전투 장면을 표현한 다양한 드로잉과 구아슈 작품을 모아 ‘양궁’, 대문호를 기리는 빅토르 위고의 집(Maison de Victor Hugo)은 <빅토르 위고의 검술(Victor Hugo s’escrime)>전으로 ‘펜싱’을 주목한다.

프랑스 문화부에서 만든 문화 올림피아드 페이지 ©https://olympiade-culturelle.paris2024.org/

파리에서 문화는
공기, 그것

쿠베르탱 남작이 아마추어리즘을 숭배하며 만든 올림픽은 그 모습을 감췄다. 중계권, 광고, 관광 등 자본주의가 올림픽을 감싸고 있다. 문화적인 측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많은 이가 스포츠는 문화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문화 올림픽을 표방한 2024 파리올림픽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 부분을 구현했다. 감각도 하나가 아닌 공감각일 때 더 오랫동안 기억과 의식에 남는다. 이번 올림픽은 올림픽 경기가 벌어지는 무대를 선정하고 꾸미는 데부터, 그 주위를 스포츠의 문화적인 측면을 다루는 각종 전시와 설치 예술로 채워서 효과를 극대화했다. 완벽하다고 표현하기는 어렵겠지만, 표방했던 것에 도달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잘 보고 느낄 수 있으며 그 수준도 상당했다.

무엇보다 나라와 도시 전체가 큰 박물관이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굳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느낄 게 많았다. 길을 걷다가 한적한 공원에서 체육과 올림픽 관련 사진전을 만나고, 고서점에는 역대 올림픽 포스터와 서적이 기다렸다. 문화는 공기와 같아야 한다고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