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 교수. <스토리 유니버스> 저자. 미디어가 진화하면서 변화하고 있는 스토리텔링 기술에 주목하여 그 속에서 인문학적 가치를 찾는 연구와 교육, 그리고 창작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스토리>
숏폼 콘텐츠는 모바일에 최적화된 직관적인 콘텐츠와 빠른 소통으로써 대중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다. 글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전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이미지와 영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전달 받는 세대가 떠올랐다. 정보 검색, 소통, 기록, 심지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마저 영상으로 제출하는 서비스가 등장했으니 Z세대의 영상 친밀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이러한 숏폼 콘텐츠에는 일정 이상 롱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과제도 있다. 콘텐츠 본분의 한계를 안고 있는 숏폼이 롱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몇 년 전
<방송콘텐츠 기획개론>
이라는 전공 수업을
<유튜브콘텐츠 어드벤처디자인>
이라는 수업으로 변경한 적이 있다. 변경 사유에 이렇게 적었다. ‘기존 교과목은 분명 의미 있는 지식을 학습하는 구성으로 짜여 있지만 적극적·능동적·참여적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방송이라는 것이 다소 구시대적 시스템일 수 있다. 특히나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시스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나 우리 모두가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시대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이에 본 교과목에서는…’이라고 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방송 콘텐츠는 더이상 지상파와 케이블을 통해 유통되지 않는다.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웹 플랫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향유자로 머물던 대중도 이제 크리에이터로 변모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창작하고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방송과 관련된 산업체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상파 방송에서 하지 못했던 수많은 아이템들이 웹을 통해 빠르게 제작되고 유통되고 있다. 수십, 수백 배의 콘텐츠 향유가 일어남에 따라 웹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사들이 다수 생겨났으며 콘텐츠 내용도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사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창작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신입을 요구하고 있다. 아니 꼭 제작사에 들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욕망과 의지, 아이디어와 영상 창작에 대한 실행 능력만 어느 정도 갖춰진다면 1인 미디어로서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있는 것이다.
유튜브콘텐츠>
방송콘텐츠>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새롭게 개설하게 된
<유튜브콘텐츠 어드벤처디자인>
수업은 학생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대학이라는 고지식한 곳에서 유튜브 콘텐츠를 공부한다는 것 자체도 매혹적이었을 뿐더러 자신만의 이야기를 영상 콘텐츠에 담아 대중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해보고 싶은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참여적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세대다. 학생들은 드라마, 광고, 예능, 실험 영상, ASMR, 강연이나 교육 등의 지식 콘텐츠까지 경계가 없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기획하고 제작하였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달랐다. 수업 초반, 어떤 유튜브 채널을 기획할 것인지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발표팀의 학생이 다른 친구들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졌다. “혹시 여러분, 유튜브 많이 보시나요? 유튜브에서 영상 보실 때 영상을 끝까지 다 보시나요? 평균적으로 하나의 영상을 보시는 시간은 얼마나 되시나요? 수많은 영상 콘텐츠들 중에서 끝까지 봐야 하는 영상은 어떤 방식으로 정하시나요?”
50여 명의 학생들은 유튜브를 많이 보기는 하지만 끝까지 영상을 다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얘기를 전했다. 초반 30초, 짧게는 5초에서 10초가량의 앞부분 영상을 보고 다음 영상으로 바로 갈아탄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흥미를 끄는 영상을 마주하게 되면 그때 그 영상을 조금 더 긴 시간 볼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설령 그런 마음이 들어도 1배속으로 끝까지 영상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유튜브라고 다 같은 유튜브가 아니라는 말도 전했다. 유튜브가 아니라 유튜브 쇼츠를 더 많이 본다는 것이다.
유튜브콘텐츠>
가로 본능이라는 단어를 단박에 이해하는 독자는 분명 기성세대다. 2004년 삼성전자에서 새로운 핸드폰을 출시하면서 전화기의 화면이 세로에서 가로로 회전하는 기능을 만들었다. 당시는 핸드폰으로 영상을 볼 수 있는 VOD(Video On Demand,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들이 막 시작될 때였다. 영상은 가로로 긴 화면으로 봐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핸드폰의 화면을 돌리는 기능을 개발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이 기술이 혁신적이었음은 분명하지만 작은 화면에 좋지 않은 화질과 음질 때문에 영상 콘텐츠의 디바이스로 핸드폰이 작동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영상은 여전히 가로 본능에 의존해야 했다.
흥미로운 것은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지금 다시 가로 본능에서 세로 본능으로 영상 콘텐츠가 생성되고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영상은 가로로 긴 스크린을 통해서 봐야 한다는 패러다임을 한 순간에 바꾼 계기는 바로 숏폼의 등장과 흥행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2010년 스냅챗(Snapchat)을 최초의 숏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스냅챗 이후 트위터의 Vine, 버라이즌(Verizon)의 Go90, 페이스북의 Lasso 등 숏폼 콘텐츠를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물론 이때는 숏폼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는 않았다. 그저 짧은 영상을 실어 나를 수 있는 플랫폼으로 등장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서비스들은 성공적으로 안착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10년이 지난 지금 숏폼 콘텐츠의 인기를 생각해보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모비인사이드
©Verizon
숏폼을 이해하고 선호하는 세대는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에 접속하는 것을 선호하는 세대이다. 그들은 24시간 모바일과 함께한다. 도서관이 아닌 모바일로 정보를 나누고 카페 대신 모바일에서 만나 친목을 쌓는다. 극장을 가는 대신 모바일로 영상 콘텐츠를 접하고 수업도 모바일로 듣는다. 우스갯소리이지만 최근 강의실 풍경도 모바일만 들고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들이 등장하고 있으니(심지어 그들은 가방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이미 모바일 속에 전공 서적, 노트, 필기구, 카드 등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모바일의 권력은 이전 어떤 디바이스보다 강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다른 기술보다 모바일 기술의 강력한 지점은 바로 이동성에 있다. 이동성은 우리 모두를 디지털 노마드(nomad), 즉 디지털 유목민으로 만들어준다. 이제 우리는 특정한 지역이나 공간을 지배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모바일만 있으면 어디서든 작업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을 사용하면서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이동하면서 모든 것을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동의 시간에 대한 개념에도 큰 변화가 있다. 과거 이동의 시간은 ‘쓸모없는 시간’이었다. 이동하기 전과 이동한 후의 시간은 유의미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이동의 시간은 버려지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동의 시간은 ‘쓸모 있는 시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동하는 동안 우리들은 많은 콘텐츠를 향유하고 또 생산해낸다.
다만 이동의 시간은 짧기 때문에 짧게 쪼개진 콘텐츠를 선호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논리라 할 수 있다. 짧고 빠르게, 자주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소비 패턴의 변화는 숏폼 콘텐츠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런 특성을 모듈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듈이라는 것은 레고 블록처럼 부분 그 자체로도 독립성을 잃지 않으면서 전체로도 융합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긴 영상 콘텐츠에서 재미있는 부분만 따로 떼어내어 숏폼 플랫폼을 통해 유통하는 양상을 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또한 글보다 이미지와 영상에 익숙한 세대들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이 바로 숏폼 콘텐츠의 유행을 이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글을 통해 나의 일상과 나의 이야기를 전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Z세대는 이미지와 영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전달받는 세대이다. 그들은 정보 검색도 영상으로 한다. 일상에 대한 기록도 영상으로 하고 대화도 영상으로 한다. 얼마 전에는 취업을 위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서류가 아닌 영상으로 제출하는 서비스인 틱톡 레쥬메(Tiktok Resumes) 서비스도 등장했으니 이들이 영상과 얼마나 친숙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15초~3분 내외의 너무나도 짧은 러닝 타임을 지향하는 숏폼 콘텐츠에 담을 수 있는 스토리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이 짧은 시간에 스토리라고 하는 것을 담을 수나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우리는 던지게 된다.
3대 숏폼이라고 말하는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그리고 틱톡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대부분의 숏폼 콘텐츠들은 캐릭터가 중심인 스토리텔링을 구사하고 있다. 모든 이야기는 인물, 사건, 배경이라고 하는 세 가지 구성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 중 가장 핵심이 되는 한 가지 요소만 꼽으라고 한다면 사건을 꼽을 수 있다. 사건에는 이미 배경과 인물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상태의 변화’를 나타내는 사건이 없다면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스토리텔링의 기술이 변화하고 있다. 큰 이야기의 시대는 쇠퇴하고 작은 이야기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겨우 1~2분 내외의 시간에 상태가 변화하는 사건을 담아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물에 대한 배경 설명을 할 시간도 없다. 짧은 시간에는 단편적이면서도 강렬한 캐릭터성을 가진 인물의 이야기가 스토리텔링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챌린지 영상이나 커버 영상이 유행하는 것이 아닐까? 이미 알고 있는 사건들을 새로운 캐릭터가 수행할 때 오는 재미 요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길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 예능 콘텐츠의 특정 시퀀스를 분리시킨 모듈화된 영상 등 또한 이미 알고 있는 스토리의 일부를 다시 반복하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렬한 캐릭터를 내세우고 직관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스토리텔링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구성을 가질 때 숏폼 콘텐츠는 반복적으로 회자되고 향유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전을 재해석,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콘텐츠를 기획한다면 숏폼 콘텐츠로서의 생명력 또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