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을 변화시킨
혁신 드라이버 슈퍼앱
- 동남아 슈퍼앱을 중심으로

글. 고영경

고려대학교 아세안센터 연구교수.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및 썬웨이 대학교 경영대학의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아세안 슈퍼앱 전쟁> , <미래의 성장 시장 아세안> , 역서로는 <유럽 2020 전략보고서> 등이 있다.

슈퍼앱: 송금이나 결제, 음식배달, 차량호출, 장보기, 퀵서비스와 메신저 등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올인원 플랫폼을 뜻한다.

앱 하나로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누리는 ‘슈퍼앱’, 이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 플랫폼 트렌드다. 다양한 앱 서비스들이 슈퍼앱으로 진화하는 이유 및 앞으로의 앱 트렌드를 동남아시아의 슈퍼앱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올인원 플랫폼, 슈퍼앱

팬데믹으로 닫혔던 하늘길이 열리니, 숨죽였던 해외여행과 출장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과 태국,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등의 공항에 도착하면 현지에서 필요한 앱을 설치하고 편리하게 이용한다. 더이상 과거처럼 현지에 도착해 환전과 택시를 타기 위해 줄을 서지 않는다. 한국에서 카카오택시를 부르거나 미국에서 우버를 이용하는 것처럼 동남아에서는 그랩이나 고젝을 이용해서 이동한다. 택시비도 현금으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 결제수단으로 신용카드를 등록하거나 전자지갑에 돈을 넣어두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바로 ‘슈퍼앱’이 등장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슈퍼앱은 송금이나 결제, 음식 배달, 차량 호출, 장보기, 퀵서비스와 메신저 등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올인원(all-in-one) 플랫폼을 뜻한다. 앱 속의 미니앱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 하나의 앱 위에 메뉴를 모두 올려놓는 방식으로 나누어지기는 하지만, 하나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로그인을 하면 생활에 필요한 수십 가지의 서비스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어 슈퍼앱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선 위챗이나 알리페이가 없으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불편한데, 이는 이들 슈퍼앱이 생활 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카카오톡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에는 메신저만 이용할 수 있었던 카카오톡은 이제 메뉴에 카카오페이부터 쇼핑, 선물하기까지 모두 ‘카카오 앱’이라는 한 개의 우산 속에 자리하고 있다. 과거에는 잘 붙이지 않았던 슈퍼앱이라는 개념과 전략을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사용하고 있고, 토스도 야놀자도 각각 금융과 휴일의 슈퍼앱이라는 모델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슈퍼앱은 어쩌다 동남아에서 성공했을까

동남아를 대표하는 슈퍼앱 그랩과 고젝(현재는 이커머스 토코페디아와 합병해 고투그룹)은 라이드헤일링(원하는 위치와 시간에 승차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호출형 승차공유 서비스 – 편집자 주)에서 출발해 유니콘을 거쳐 데카콘으로 성장했다. 동남아 대도시가 가진 문제점, 즉 엄청난 교통체증과 대중교통 인프라의 부족, 제한된 노선 등 이동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시했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이용자가 늘어났다.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처음 시작한 그랩은 택시 예약서비스에서 라이드헤일링과 결제시장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했다. 2010년 인도네시아에서 출발한 고젝은 자카르타의 대중 이동 수단인 오토바이 택시를 전화로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다가 2015년 고젝 앱을 출시하고 재빨리 결제와 배달시장으로 나아갔다. 모빌리티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편리한 결제수단을 제공한 것이 성장의 발판이었다.

두 스타트업이 주목한 두 번째 타깃은 공통적으로 ‘페이(pay)’였다. 그 이유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제외하면 동남아 내에서 신용카드 보급률이 상당히 낮고 은행계좌를 보유하지 않은 성인인구 비율도 높았기 때문에 전자지갑이나 디지털 결제수단의 편리함을 필요로 하는 시장이 대단히 컸기 때문이다. 그랩이 말레이시아를 넘어 아세안 8개 국가로 진출하는 동안 고젝은 인도네시아 내에서 서비스 다양화 전략에 집중했다. 인도네시아 인구가 2억 8,000만 명으로 전체 동남아 인구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니 해외시장보다 국내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사이 태국에서는 라인이, 베트남에서는 잘로(Zalo)가 국민 메신저로 자리를 잡고, 한국의 카카오톡과 같은 위치를 점령하며 슈퍼앱의 자리를 꿰찼다. 게임퍼블리셔로 출발한 씨(SEA)는 동남아 1등 이커머스 선두주자를 밀어내고, 푸드 딜리버리로 확장하며 슈퍼앱 반열에 올랐다. 동남아 슈퍼앱의 등장과 빠른 성장은 현지인들이 생활의 불편함을 개선하는 서비스에 그만큼 목말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버와 왓츠앱은 왜 밀려났을까

그러나 동남아에는 이미 우버가 진출해 있었고, 메신저는 왓츠앱과 카카오톡, 페이스북 메신저 등이 있었다. 이들은 왜 밀려났을까? 동남아 토종 앱이 이들을 이기고 슈퍼앱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현지 이용자들의 니즈를 잘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사업자들이 지나쳤던 지점까지 세심하게 챙겼기 때문이다.

우버는 미국에서 하던 방식 그대로 신용카드 결제를 고집했고 콜센터가 없었다. 신용카드 소지자가 적은 동남아 시장에서 스스로 시장 규모를 줄이는 처사였고, 이메일보다 전화로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우버는 그랩에게 동남아 사업권을 넘기고 철수했다.

베트남어를 타이핑하기 힘든 사람들은 무료 통화가 가능한 잘로를 선호했고, 귀여운 이모티콘과 스티커를 사랑한 태국인들은 다양한 캐릭터로 무장한 라인을 받아들였다. 각각의 시장이 가진 특성과 라이프스타일까지 고려한 철저한 현지화, 하이퍼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이 동남아 슈퍼앱의 무기였다. 물론 페이팔이나 그럽헙과 같이 서비스 분야마다 이미 강점을 가진 사업자들이 시장을 점유한 미국과는 달리 분야별 절대 강자가 없는 디지털 경제 성장의 초기 단계에 놓여있었다는 점도 슈퍼앱 성공에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다.

슈퍼앱 그 이후

동남아에서 슈퍼앱이 성공했다고 해서 어디서나 다른 업종에서도 슈퍼앱이 통한다는 뜻은 아니다. 메뉴가 많아지거나 서비스 성격이 다르다면 기능이나 종류에 따라 다른 앱으로 구분한 멀티앱이 등장하기도 하나 강력한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 이용자들은 한번이라도 더 클릭하고 인증하는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불편한 경험은 고객을 붙잡아두는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브 카테고리의 메뉴가 늘어날 때 중요한 것이 바로 이용자가 따라갈 경로를 쉽고 간편하게 직관적으로 최적화하는 작업이다.

그랩과 고투그룹, 씨, 라인, 그리고 잘로는 모두 계속해서 새로운 서비스 카테고리를 추가하며 확장 전략을 치열하게 펼치고 있다. 디자인과 편의성 다음으로 가장 눈에 띠는 지점은 바로 결제를 넘어 금융서비스 강화 전략이다. 그랩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 디지털 뱅킹 라이선스를 취득했고, 고투그룹과 씨는 라이선스를 가진 은행의 지분을 사들였으며, 라인은 일반 상업은행과 라인뱅크를 운영하고 있다. 슈퍼앱은 관심 없다는 잘로도 잘로페이와 메신저를 통해 은행 대출 연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쟁터가 일상생활 관련 서비스에서 금융으로 이동한 셈이다. 이유는 이들이 가진 막대한 데이터를 이용해 기존 이용자들에게 딱 맞는 개인화된 대출과 보험, 투자상품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커머스나 라이드헤일링이 매출이 늘어나도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운 극한 경쟁에 놓여있는 반면 금융서비스는 수익구조가 명확하다.

동남아 사람들의 생활은 슈퍼앱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 일상생활의 모습을 변화시킨 혁신 드라이버의 자리에 슈퍼앱은 1세대였다면 이제 2세대를 이야기할 때이다. 2021년 25개 그리고 2022년 신규 유니콘 7개를 포함, 아세안 전체 총 50개의 유니콘이 태어났으며, 초기 단계의 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식지 않고 있다. 핀테크를 넘어 헬스케어와 인공지능까지 그 영역도 보다 기술 기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어쩌면 또 다른 슈퍼앱이 나올 수도 있고 새로운 슈퍼스타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혁신은 어디서든 계속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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