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럽지만 왠지 끌리는
Y2K의 완전한 귀환

글. 이주영

남성패션매거진 <아레나옴므플러스> 편집장. 영화를 공부하고, 스트리트 컬처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현재는 남성패션매거진 <아레나옴므플러스> 를 통해 동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을 탐구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Y2K’ 패션과 문화가 돌아왔다! ‘촌스럽지만 왠지 끌리는’ 그 시대의 문화적 요소들이 현재의 Z세대들에 의해 다시금 향유되고 있다. 시쳇말로 ‘촌빨’ 날렸던 Y2K 시대의 유산들이 Z세대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이걸 여전히 촌스럽게 볼 것인가? 아니면 그 속에 스스로를 융화시킬 것인가?

‘가장 흉측스러운’ Y2K 스타일, Z세대에게 유통되고 활용되다

21세기가 도래하면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했다. 수학적으로 1999에서 2000으로 전환되는 순간 대재앙이 몰려오고, 인류는 더이상 존속하지 못할 거란 비관적 세계관이 팽배했다. 마침 전 세계적으로 흥행몰이를 했던 영화 <매트릭스> 가 1999년에 개봉되었다. 이진법적 숫자 0과 1만이 존재하는 세계 속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영화였다. 그래서 Y2K(Year 2000)는 마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으로 예측되는, 불투명한 내일이었다. 정작 별일 없었다. 우리네 삶은 20세기나 21세기나 별반 다를 바 없이 지속되었다. 모든 전산망이 일시에 셧다운될 것이라는 예측, 인류가 사라지는 휴거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언 등은 결코 현실화되지 않았다. 세기가 변환되는 해프닝을 겪은 지 어느덧 2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그러니 2000년이라는 연도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어렴풋한 과거가 되었다는 뜻이다.

과거를 다시금 펼쳐보니 참 요상하고 해괴한 라이프스타일 속에 있었다. 그때 우리는 급변하는 테크놀로지의 진화를 경험하고 있었으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야릇한 경계 위에서 흥미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급진적으로 아날로그가 디지털화되어 가는 세상이었으며, 패션을 위시한 라이프스타일 전반에도 그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의 변화가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옷들은 헐렁해졌고, 현란해졌다. 때로는 짧아졌고, 타이트해졌다. 굳이 음악적 장르로 따지자면 힙합과 로큰롤 스타일이 공존하는 혼돈의 시기였다고 할까? 덧붙여 이 당시 음악 장르 대부분에 ‘인더스트리얼’적 무드들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패션에도 휘황찬란한 그래픽, 패턴, 장식 등이 첨가되기도 했다. 혹자는 이때의 패션 스타일을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야 할 가장 흉측스러운 것들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그런데 돌아왔다. 그것도 완전히 새로운 인류라 지칭해도 좋을 MZ, 아니 특히 Z세대를 중심으로 Y2K 스타일이 흥미로운 문화로 재조명되면서 당시의 모든 것들이 재유통되고, 재소비되고, 재활용되고 있다.

매트릭스 ©네이버영화

누구보다 먼저 트렌드를 추구하면 현 시대의 ‘힙스터’

이 같은 촌스러움의 재유통은 몇 가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와 맞물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힙스터’ 문화다. 애초 힙스터는 마이너리티 범주에 있는 것이었다. 수염을 기르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며, 빈티지 패션을 선호하고, 인디 문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힙스터 컬처는 시대적 전복을 꾀하고 있다. 바로 현대의 ‘아싸’와 ‘인싸’에서 도리어 후자 쪽 개념으로 말이다. 새로운 세대는 취향을 강력하게 존중한다. 물론 취향이 다르다고 편협한 시각으로 상대를 탓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싸는 동일 취향의 범주에서 다양하게 분류된다. 소수의 취향에서도 인싸가 존재하고, 다수의 취향에서도 인싸가 등장한다. 각설하고 Z세대에게 힙스터는 동일 취향 카테고리 속에서 누구보다 먼저 트렌드를 추구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힙한 공간이 있다면 ‘먼저’ 가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면 된다. 생소한 음식이라도 요게 취향에 맞으면 ‘먼저’ 먹고 SNS에 올리면 된다. 떠오르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이 있다면 ‘먼저’ 입고 업로드하면 된다. 그럼 현 시대의 힙스터가 된다.

기성세대의 복고는 MZ세대에겐 완전히 새로운 것

두 번째는 ‘뉴트로’다. 2~3년 전부터 뉴트로는 MZ세대를 전제로 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익히 알고 있듯 뉴트로는 일종의 복고다. 하지만 필자와 같은 기성세대에게 그 시대의 것들이 복고이자 레트로이지만, MZ세대에게 그것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들이다. 나고 자라면서 디지털 디바이스에 친숙한 이들에게 음골을 통해 소리를 내는 바이닐 레코드는 더이상 부모 세대의 것이 아닌 자신 세대의 신문물이다. CD라는 번쩍거리는 플라스틱 원반 역시 그렇다. 카세트테이프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음반 시장에서 피지컬 앨범(물리적으로 생산한 CD·LP·카세트를 총칭)으로 팔리는 것들은 CD가 아니라 바이닐 레코드라는 점만 봐도 뉴트로가 확실히 트렌드임을 확인할 수 있다.

“기성세대는 Y2K의 재림이 재앙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현 세대에게 Y2K는 그 어떤 시대의 스타일보다 신선하다.”

이 같은 뉴트로 트렌드는 비단 음악 산업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속에 굉장히 넓게 포진된다. Z세대가 과거의 디지털 카메라 또는 캠코더를 웃돈 주고 구입하는 것 역시 그런 예다. 작금의 모바일 카메라는 해를 거듭할수록 고해상·고화질을 자랑한다. 과거의 빛바랜, 낡은, 노이즈 가득한 화질을 위해서 굳이 20년 전의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 등을 구입하는 행위 역시 Y2K 트렌드의 또 다른 반증이 된다. 패션에서도 마찬가지다. 거리를 청소할 만큼 질질 끌리는 통 넓은 청바지의 유행이 돌아왔고, 해외 유명 대학 로고가 떡 하니 프린트된 스웨트셔츠가 불티나게 팔린다. 다시금 탱크톱이 돌아왔다. 20년 전의 기성세대가 ‘쯧쯧’ 하며 기가 차서 혀를 차던 그때 그 패션이 완벽하게 회귀했다.

더 새로운 것을 찾아 발견한 K-팝스타의 영향력

마지막으로 힙스터, 뉴트로 트렌드 바통을 이어받아 Y2K 문화의 유행을 선도하는 최전선은 다름 아닌 ‘K-팝스타’의 영향력이다. 한국산 콘텐츠가 어느 순간 세계의 중심 콘텐츠가 되면서 이들이 Z세대 라이프스타일에 끼치는 영향은 실로 말할 수 없이 거대해졌다. 더욱이 K-콘텐츠를 통해 글로벌 진출에 성공한 아이돌 그룹, 뮤지션, 배우 등은 이제 과거 할리우드의 횃불처럼 밝게 타오르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각종 명품 브랜드의 앰배서더로 활약하면서 그 위상을 전 세계에 떨친다. 이쯤 되면 그들이 새로운 세대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쉬이 이해되리라 믿는다. 그런 스타들의 뮤직 비디오, 브이로그, 유튜브, SNS 콘텐츠에 노출된 아이템들은 ‘완판’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불티나듯 팔려나간다.

Y2K 스타일 트렌드를 완벽하게 전파한 것 역시 Z세대 스타들이다. 일상 속 흔해 빠진 테크놀로지보다 더 새로운 것을 찾는 이들이 발견한 건 다름 아닌 20여 년 전의 어떤 것들이었다. 고화질의 사진에서 레트로한 분위기를 내는 사진으로 다시 보정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때의 카메라로 찍어 뉴트로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쉽다. 그러니 현재에는 디지털 카메라라고 말할 수도 없는 카메라들이 팔리기 시작한다. 스트리밍으로 음악 듣는 게 가장 쉽지만, 굳이 포터블 CD 플레이어로, 또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는 스타들이 많아졌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음식도 오래된 음식점(노포) 만을 찾아다니는 이들도 있다.

SNS 통해 쿨하고 힙한 스타일로 부상하고 순환하는 Y2K 트렌드

기성세대는 Y2K의 재림이 재앙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패션 산업에서, 라이프스타일 측면에서 눈꼴사나운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세대에게 Y2K는 그 어떤 시대의 스타일보다 신선하다.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하우스 브랜드들의 이번 가을 겨울 시즌 그리고 내년 봄 여름 시즌 룩북을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느슨하고, 헐렁하고, 화려하며, 현란하다. 당시에는 ‘사이버틱’하다며 미래적인 것으로 치부했던 것들이 작금에 들어 예쁘고 멋있는 유행 상품이 되었다. 심지어 이때의 것들이 ‘쿨하고’ ‘힙한’ 것들로 재조명 받고 있다. 힙스터로서의, 뉴트로적인, K-콘텐츠다운 것들이 융합되어 온라인상 플랫폼에 재집결된다. Z세대가 이것들을 소비하고, 활용하는 목적 자체가 SNS 업로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현대의 SNS는 일종의 순환 알고리즘을 생성하는 듯하다. 그 최초가 어떤 인물인지는 명확하진 않지만, 셀러브리티, 인플루언서, 인싸 등의 인물들에 의해 업로드된 콘텐츠가 대중에게 전파된다. 그걸 확인한, 특히 Z세대의 대중은 그들이 입고, 먹고, 찍은 것들 자체에 관심을 가진다. 그렇게 다시 범대중적 소비가 시작된다. 결과는 또 다시 SNS로 환원되어 업로드된다. Y2K가 명확한 트렌드로 정착하게 된 구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Y2K 트렌드를 굳이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당신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청춘을 누린 당사자라면 더욱 더 그걸 비판할 이유가 없다. 당신이 즐겼던 것들을 현재의 세대가 완전히 새롭게 향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할 때 Z세대는 역으로 유선 이어폰을 사용한다. 왜냐고? 그게 현재의 세대이고, 지금의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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