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기반 마케팅 전문가. X세대의 영향력에 대해 분석하고 <영 포티, X세대가 돌아온다>를 집필했다.
세대 분석과 트렌드로 데이터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MZ세대에 집중하던 시장이 더 넓은 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X세대 담론이 다시 등장하는가 싶더니 ‘A세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글로벌 광고회사 TBWA코리아는 2020년 12월 ‘시니어랩’을 출범시켰다. 시니어랩은 높은 구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평가절하됐던 시니어 세대의 특징을 연구한 결과, 새로운 시니어 세대를 ‘A세대’로 정의했다.
시니어랩이 정의한 A세대는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고, 역동적이고 도전적인 삶에 대한 욕구가 강하며, 오피니언 리더로서 주변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등 기존 실버세대와는 다른 ‘에이스’적 면모를 보이는 소비자”를 말한다.
A세대는 경제·교육 수준이 높은 45~65세의 소비자를 일컫는다. 기존에 해당 연령대를 가리키던 ‘실버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시니어랩은 이 A세대의 특징을 7개 키워드로 정리했다. ▲Ageless(늙지 않는) ▲Accomplished(성취한) ▲Autonomous(자주적인) ▲Attractive in my own way(나의 방식대로 매력적인) ▲Alive(생동감 있는) ▲Admired(존경받는) ▲Advanced(성숙하고 수준 높은 취향)가 그것이다. A세대를 상징하는 7개의 키워드에서는 자신감과 적극성이 느껴진다. ‘시니어’나 ‘실버세대’라고 하면 떠오르는 소극적이고 병약한 노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A세대의 자신만만함은 탄탄한 경제력에서 비롯된다. 2021년 통계청이 발표한 가구당 순자산 보유액을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9세 이하 8,590만 원 ▲30대 2억 8,827만 원 ▲40대 4억 3,162만 원 ▲50대 4억 6,666만 원 ▲60세 이상 4억 3,211만 원으로 나타났다. 40대 이상 연령대의 보유 자산 규모가 MZ세대로 분류되는 20~30대의 2~3배에 달한다. 2021년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50대 이상 연령대의 순자산 또한 30대의 3배에 달했다. 게다가 A세대는 베이비부머 세대와 오버랩 되며 막강한 인구수를자랑한다. 1955~1974년생을 가리키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2022년 7월 기준으로 1,500만 명을 넘기며 우리나라 인구의 31%를 차지하고 있다. A세대는 경제적으로나 인구수로나 강력한 힘을 가진 세대인 것이다.
▶ 시니어랩이 정리한 A세대의 7가지 특징
탄탄한 경제력에 파워풀한 인구수를 갖춘 A세대는 기존 시니어 세대와는 전혀 다른 특징을 보인다. 고학력의 A세대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발전의 주축으로 ‘내가 하면 무엇이든 된다’를 경험한 세대다. 글로벌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한 현재의 대한민국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부모 세대보다 부유한 첫 번째 세대였으며, 자녀 세대보다 부유한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기술 발달의 가장 큰 수혜자도 이들이다. 건강에 있어 A세대는 ‘치료’가 아니라 ‘관리’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첫 번째 시니어 세대다.
이러한 특징은 시니어랩과 한국리서치센터가 A세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응답자의 42.3%는 스스로를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했다. 53.9%는 인생에서 “도전, 새로움, 변화를 추구한다”라고 답했으며, “새로운 기술이나 디지털 제품은 주저 없이 구매하는 편”이라는 응답도 24.3%로 MZ세대의 23.7%보다 높았다. 또한 44.8%가 ‘몸무게를 빼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라고 응답했으며, 아름다워지기 위해 성형을 해도 괜찮다는 응답자(50.1%)도 절반이 넘어 MZ세대(50.9%)와 비슷한 성향을 보였다. 이들은 자신의 나이를 생물학적 나이보다 젊게 인식하고 있으며, 자신만만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도전적인 성향을 가진 새로운 시니어 세대다.
▶ 시니어랩과 한국리서치센터가 A세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A세대가 강력한 소비자 집단으로 주목받는 건 막강한 구매력을 갖춘 데다 기존 시니어 세대와는 차별화된 소비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전의 시니어 세대와는 달리 자기를 위해 쓸 줄 아는 세대다. 시니어랩이 실시한 FGI(Focus Group Interview) 응답자의 49.9%는 ‘나를 위한 투자가 아깝지 않다’고 대답했다. 동일한 질문에 20~30대의 51.5%가 같은 대답을 한 것과 거의 유사한 수치다.
코로나19로 인해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이 구조조정과 폐점 등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유독 백화점만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도 A세대 소비자다. 2021년 국내 주요 백화점은 70곳 중 11곳에서 1조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고른 성장을 기록했다. 이들 백화점의 매출 성장을 견인한 상품군은 명품, 아웃도어, 골프로 특히 명품은 전년 대비 29% 이상 매출이 증가했다. 실제로 국내 주요 백화점 3사의 VIP 고객의 대다수는 40대 이상이 차지하고 있는데, 롯데백화점에서 연간 6,000만 원 이상을 쓰는 VIP 고객의 80%, 신세계백화점에서 연간 800만 원 이상을 쓰는 고객의 67%, 현대백화점에서 연간 1,000만 원 이상을 쓰는 VIP 고객의 71% 이상을 A세대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그저 돈을 많이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트렌드에도 민감한 경향을 보인다. 현대자동차가 출시한 전기차 아이오닉5의 고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50대(31.1%), 40대(27.6%), 60대 이상(20.6%), 30대(16.8%), 20대(3.8%) 순으로 나타났다. 40~60대의 비중이 80%에 육박한다. 구매력이 높고 환경을 생각하는 A세대 소비자가 전기차를 선택한 것이다. 흔히 환경에 대한 관심이 MZ세대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또한 A세대는 2000년대 초반 웰빙 열풍을 일으켰던 주부 세대이기도 하다. 식품업계에서는 친환경·유기농 시장을 주도하는 소비자로 A세대를 꼽는다. 친환경·유기농 식품을 판매하는 오아시스 마켓의 A세대 소비자 비중은 63%에 달하며, 연령대가 높을수록 친환경 유기농 제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A세대는 MZ세대 못지않게 IT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MZ세대를 겨냥한 온라인 명품 쇼핑몰 발란에 따르면 45세 이상 고객이 2021년 하반기 결제액의 53%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금융연구소의 ‘세대별 온라인 소비 행태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50대의 배달앱 결제액은 전년 대비 163%, 60대는 142% 증가했으며, OTT 서비스 결제액도 50대에서 181%, 60대는 166% 증가했다. 스마트폰이 도입되던 청·장년 시기에 왕성히 사회생활을 했던 A세대는 온라인과 모바일 환경에 익숙하고 새로운 IT기기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두려움이 없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달라진 A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선 예전과 같은 시니어 마케팅, 실버 마케팅이 통하지 않는다. 이케아는 자신들의 타깃을 ‘Young People of All Ages(모든 연령대의 젊은 사람들)’로 정의한다. 생물학적 나이에 고객을 가두지 않고, 나이가 몇 살이든 젊은 취향을 가지고 있다면 모두 이케아의 고객이라고 말한다. A세대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할 때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지점이다. 나이를 잊게 하라는 것.
조선일보와 SM C&C가 50~60대 1,0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23.8%는 “실제 나이보다 다섯 살 정도 어리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열 살 정도 어리다고 느낀다”고 답한 이들도 14.9%나 됐다.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실제 출생 연령보다 5~10세가량 더 젊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이러한 A세대 소비자들의 변화에 발맞춰 기업들도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최근 롯데백화점 본점은 ‘시니어 존’으로 명명됐던 중장년 여성 의류 코너를 없애고 ‘여성 패션 의류’로 이름을 바꿨다. 50대 이상 여성 고객이 시니어로 불리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최근 마케팅 업계에선 소비자 나이에 0.8을 곱하라는 원칙이 불문율이다. 60대 고객이라면 48세 정도로 상정해야 한다는 뜻이다.“나도 이제 할머니 다 됐어”란 말에는 ‘나는 아직 할머니는 아니지’라는 속내가 깔려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아직 자신이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것을 마음속에선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A세대를 겨냥한 제품에 ‘실버 푸드’, ‘시니어 전용’ 같은 단어를 붙이면 시장에서 외면 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기업의 마케팅 메시지가 나를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인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반감을 가지는 것이다.
시니어랩은 앞서 제시한 A세대의 특성 7가지를 바탕으로 기존 광고의 메시지를 수정하는 실험을 했다. “나이 때문에 뭐든 새롭게 시도하는 게 어렵다”는 기존 광고 메시지를 “우리 나이에도 바꾸고 싶은 게 많지”라는 내용으로 수정하는가 하면, 은퇴한 시니어를 소극적이고 쉬어야 하는 존재로 묘사한 광고의 메시지를 “아버지, 요즘도 매일 운동하세요?”, “힘이 어디서 나세요?”와 같은 대사로 수정해 생기 있는 시니어의 모습을 그렸다. 그 결과, 수정한 광고에 대한 호감도는 6.6%, 메시지 공감도 17.7%, 이해도 10.4%, 제품 관심도 15.9%, 정보 공유의향 20.2%, 구매의향 22.2%, 이미지 개선 정도 19.1% 등 모든 항목이 기존 광고 대비 상승하며 긍정적인 결과를 나타냈다.
위 실험은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자기주도적이며, 생기 있는 삶을 살고 싶은 A세대의 욕구를 반영한 마케팅 메시지가 A세대에게 효과적으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A세대는 더 이상 시장의 변방에 머무르던 소극적이고 병약한 노인 세대가 아니다. 모든 세대 중 가장 강력한 구매력을 자랑하고, 건강하며, 나를 위해 소비하고, 트렌드에도 민감한 파워풀한 소비자 집단이다. 이들은 여전히 젊고 활력있으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로 가득하다. 이러한 A세대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고 긍정하는 마케팅 전략만이 새로운 소비자, A세대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