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브랜드의 내러티브

글. 황교정

황교정 책임 컨설턴트는 인터브랜드 한국 법인에서 다양한 브랜드 개발 프로젝트의 수행 및 인사이트를 전하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그룹 인터브랜드는 국내외 기업/브랜드의 Iconic Moves를 위해 최적의 브랜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내러티브, 즉 서사를 가장 잘 수식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오늘날에는 진부한 표현이 되었지만, 10~15년 전만 해도 영화·드라마·도서 등의 홍보를 위해 ‘감동의 대서사시’라는 표현이 꽤나 많이 사용되었다. 그만큼 서사는 보는 이에게,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이러한 서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브랜드들이 있다. 소비자들을 사로잡는 서사에는 어떠한 유형이 있을까.

신화가 된 브랜드, 신이 되어버린 창립자

첫 번째 유형은 ‘신화가 되어버린 브랜드’이다. 주로 창립자나 CEO를 ‘우상화’ 혹은 ‘신격화’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많이 언급되지만, 가장 전통적이고 대표적인 케이스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일 것이다.

애플이 경쟁 브랜드들 대비 지니고 있는 가장 차별적인 역량은 무엇일까? 물론 많은 강점이 있겠지만, ‘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간결함은 궁극의 정교함이다)’으로 대표되는 애플의 디자인일 것이다. 애플은 2020년 포춘지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현대 디자인 100선에 1위 ‘아이폰’, 2위 ‘매킨토시’를 포함해 총 8개의 제품을 올려놓았다. 디자인을 향한 애플의 진심은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라는 문구를 통해서 느낄 수 있다. 애플은 제품을 ‘Make’ 하는 것이 아니라 ‘Design’한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다. 어떤 이에게 좋은 디자인이, 어떤 이에게는 나쁜 디자인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듯 주관적인 영역인 디자인에서 애플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바로 스티브 잡스와 그가 지니고 있던 인문학적 배경이다. 스티브 잡스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고, 동양철학에 심취해 있었으며, 독실한 선불교 신자였다는 서사는 ‘애플의 디자인은 인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정당성을 부여했다. ‘신이 되어버린 창립자’는 브랜드의 핵심 역량의 뿌리가 되어, 브랜드가 신화가 되는 데 일조하였다.

©apple

“내러티브는 보는 이에게,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내러티브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브랜드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Welcome to the UNIVERSE, SM과 KB국민은행

두 번째 유형은 세계관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서사를 쌓아 나가는 방식이다. 세계관을 통한 서사를 가장 잘 활용하는 브랜드 중 하나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이다. 사실 SM은 ‘세계관’이라는 단어가 트렌드가 되기 전부터 세계관을 통한 서사를 선도적으로 시도한 브랜드 중 하나였다. 2012년 ‘초능력을 지닌 아이돌’ EXO를 통해 세계관을 처음 선보였고, 이러한 세계관의 활용이 NCT를 거쳐 SMCU(SM Culture Universe)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에스파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SMCU는 SM의 모든 아티스트들이 연결되는 하나의 세계관으로, 인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자아인 ae(아이)와 이들이 살아가는 가상세계가 존재한다는 설정을 지니고 있다.

SMCU(SM CULTURE UNIVERSE) ©SM

세계관을 활용한 서사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고유성’, ‘지속성’, ‘개방성’이라는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고유성’은 소비자에게 나와 브랜드가 남들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차별적 소속감을 주고, ‘지속성’은 소비자를 브랜드의 장기적 팬으로 남게 한다. 또한 ‘개방성’은 세계관을 중심으로 브랜드 자산을 응집시키거나, 브랜드 자산을 확대해 나갈 수 있게 한다. 세계관을 통한 서사를 활용하는 브랜드들 중에서도 SM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개방성’ 때문인데, 타 브랜드들이 브랜드 내에서의 개방 및 확장을 시도하는 ‘1차적 개방성’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SM은 타 브랜드에 나의 세계관을 개방하는 ‘2차적 개방성’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KB국민은행은 그들의 모델인 에스파가 속한 SMCU를 활용하여 웹드라마 <광야로 걸어가>를 제작해 선보였다. ‘KB광야점’이라는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KB국민은행을 쓰는 사람들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각자의 아바타 Ke(케이)가 살고 있다는 설정의 웹드라마이다.

이러한 2차적 개방성이 가지는 장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세계관을 빌리는 외부 브랜드는 기존 브랜드의 팬덤을 우리 브랜드로 유입시킬 수 있다. 실제 <광야로 걸어가>는 SM과 에스파 팬덤의 유입으로 매 에피소드가 150만이 넘는 뷰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기존 브랜드는 세계관이 외부로 확장될수록 세계관의 메인 플레이어로서 존재감을 키워 나갈 수 있다. 너도 나도 사용하고 있는 세계관, 지겹지만 나만 하지 않을 수 없다면 이제는 ‘2차적 개방성’에 주목해보는 것은 어떨까?

KB국민은행 모델 <에스파>

KB국민은행 웹드라마 <광야로 걸어가>

©KB유튜브

“세계관을 통한 서사를 활용하는 브랜드 중 SM은
타 브랜드에 나의 세계관을 개방하는 2차적 개방성을 시도한다.”

같이 좋아하는 가치 파타고니아, 컨티뉴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한다’ 이러한 사실만큼 강력한 유대감을 줄 수 있는 수단이 또 있을까? 브랜드는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이야기하고, 이러한 가치에 공감하는 소비자와 유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한다’는 고백에는 진정성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진정성이 수반되지 않은 고백은 마음을 얻기 위한 수작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서사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브랜드가 사용하는 서사의 세 번째 유형은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보여주는 서사이다.

오늘날,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모두 다른 답변이 나올 수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포함될 만한 답변은 사회적 가치일 것이다. 그만큼, 최근 소비자들은 기업 혹은 브랜드가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고 있는가를 매우 중요한 구매요인으로 고려한다.

사회적 가치를 진정성 있게 전달하기 위해 서사를 가장 잘 활용한 브랜드 중 하나는 파타고니아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파타고니아의 서사 대신, 파타고니아와 똑 닮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기업 ‘모어댄’의 브랜드 컨티뉴를 소개하고자 한다.

컨티뉴는 “가방이 된 자동차”라는 슬로건을 지니고 있다. 자동차 생산과정과 폐자동차에서 수거한 천연 가죽시트, 안전벨트 및 에어백 등을 업사이클링하여 제품을 생산한다. 파타고니아의 창립자인 이본 쉬나드가 자신이 생산했던 피톤이 암벽을 훼손하는 것을 보며 친환경 장비인 알루미늄 초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파타고니아의 시작이었듯, 창립자인 최이현 대표이사가 유학시절 구매했던 중고차를 폐차할 때 시트 가죽 등이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이 브랜드가 시작되었다. 파타고니아가 “Don’t Buy This Jacket” 캠페인이나, 매출의 1%를 지구환경 보존과 복구에 사용하는 ‘지구세(Earth Tax)’를 통해 진정성 있는 서사를 쌓아온 것처럼, 컨티뉴는 탄소중립 및 물 발자국 0을 달성한 생산공장인 ‘생태 공장 021’과 90% 이상의 자원 재사용으로 만들어진 ‘컨티뉴 업사이클링 스토어’ 등을 통해 컨티뉴만의 진정성 있는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에 SK의 최태원 회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BTS 등이 공감하고,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컨티뉴는 연매출 30억을 넘어서는 브랜드로 성장하였다. 이렇듯 시간이 지나며 진정성 있게 쌓인 서사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파타고니아 광고 ©파타고니아

©컨티뉴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보여주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서사.
시간이 지나며 진정성 있게 쌓인 서사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컨티뉴

프로스포츠에 내러티브 입히기

그렇다면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서사’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신화가 된 브랜드’들이 CEO나 창립자와 같이 브랜드의 전설적인 인물들을 통해 서사를 써 내려갔듯, 전설적인 선수들을 활용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뭉쳐야 찬다>, <뭉쳐야 쏜다>,<전설끼리 홀인원> 등 은퇴한 스포츠 스타들이 출연하는 콘텐츠들은 이미 인기를 끌고 있다. 아쉬운 점은 정작 전설적인 선수들이 지닌 유산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고, 그러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는 프로스포츠 리그에서 이러한 콘텐츠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퇴한 전설들을 중심으로 한 서사는 올드 팬에게는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요즘 세대에게는 리그와 더욱 깊은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전설적인 선수를 활용하고, 리그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관 정립 등 서사를 활용한다면
프로스포츠 역시 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리그오브레전드

©레스터시티

두 번째는 리그 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세계관을 정립하는 것이다. 프로스포츠 중에서 이러한 세계관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은 e스포츠, 그 중에서도 리그 오브 레전드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1년에 한번 각 리그의 상위권 팀들이 참여하는 월드 챔피언십을 개최하는데, 매년 월드 챔피언십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관 기반 서사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제공한다. 자칫하면 단막극으로 끝날 수있는 각 팀의 경기들을 이러한 서사를 통해 연속극으로 만들어 줌으로써,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팀의 경기만이 아니라 챔피언십 전체를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마지막은 리그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보여줄 수 있는 서사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리그는 English Premier League(이하 ‘EPL’)이다. EPL이 정의하는 EPL의본질적 목표는 ‘가장 경쟁적이고, 강렬한 리그(The Most Competitive and Compelling League)가 되는 것이다. 특히 가장 경쟁적인 리그가 되기 위하여 모든 팀에게 방송사나 커머셜 수익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지향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서사가 2015-2016시즌의 레스터 시티이다. 13-14시즌 2부리그 소속, 14-15시즌 1부리그 잔류 싸움을 벌이던 팀이 15-16시즌 프리미어 리그를 우승하게 된다. 물론 프리미어 리그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는 아니지만, 전형적인 언더독의 우승 스토리는 EPL이 이야기하는 ‘경쟁적’이라는 지향 가치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고, 이 사건을 다양한 콘텐츠로 재생산하며 EPL만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한국의 프로스포츠 역시 우리 리그가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일지, 이러한 가치를 어떠한 서사로 전달하여 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mbc every1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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