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프로스포츠의
내러티브 전략
글. 류청, 염용근, 이창섭
#1 축구 : 꿈의 극장 만들고, 노래를 부르면 충성심이 보인다 - 류청
국내 축구 전문 웹사이트의 편집장이자, 스포츠LAB 운영자다.
<축구는 사람을 공부하게 만든다> <유럽 축구 엠블럼 사전-상징과 기록으로 보는 명문 클럽의 역사와 문화> 저자
#2 농구 : 미래 보는 가치투자와 구단 철학 유지로 성공에 도달하다 - 염용근
NBA 칼럼니스트. 네이버 스포츠 농구 섹션에서 ‘오늘의 NBA’ 칼럼을 연재하며,
유튜브 ‘일리걸 스크린’라는 채널에서 농구 관련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3 야구 : 지역사회와 공생하며, 영화 같은 현실로 감동을 주다 - 이창섭
메이저리그 전문 해설위원으로 한겨레신문에 ‘이창섭의 MLB 와이드 연재’를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메이저리그 전설들 1> <메이저리그 전설들 2>가 있다.
해외 프로스포츠에서는 내러티브 전략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해외 프로스포츠 리그 및 구단의 내러티브 사례를 전문가의 글로써 생생하게 알아본다.
#1 축구
꿈의 극장 만들고, 노래를 부르면 충성심이 보인다.
충성심을 만드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순간이다. 상징성이 강한 이야기는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다. 전 세계적인 팬덤을 구축한 구단은 자신만의 문화적인 자산을 활용하는 방법을 안다.
영광과 아픈 과거를 함께, 꿈의 극장으로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구장
가끔씩 표현은 현실보다 강력하다. 그런 표현은 전통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축구팬이라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좋아하지 않아도 꿈의 극장(The Theater of Dreams)은 가보고 싶을 가능성이 크다. 올드 트래포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구장, 7만 5,957석)는 그 자체로 꿈이고 상징이며 역사다. 잉글랜드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지금까지는) 월드컵을 선사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도 수많은 트로피를 안겼던 보비 찰턴 경(꿈의 극장이라는 표현을 정착시킨)은 골을 넣는 법과 함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알았던 게 분명하다. 그는 공이나 골이 아니라 꿈을 좇는 선수였다.
꿈의 극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콘텐츠다. 경기가 없는 날도 팬을 만족시킬 수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 극장이 지닌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장치를 오랜 시간을 두고 추가했다.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지닌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 경기장 전면에는 구단 중흥기를 이끌었던 ‘유나이티드 성 삼위 일체(The United Trinity)’ 동상이 있다. 팀 전성기를 이끌었던 보비 찰턴, 데니스 로, 조지 베스트가 꿈의 극장에 온 걸 환영한다. 경기장 주변을 따라 걸으면 동쪽 스탠드 앞에 선 한 신사를 만날 수 있다. 매트 버스비 경이다. 버스비 경은 구단을 잉글랜드 최고로 만들었던 이다. 그저 좋은 감독이 아니라 뮌헨 비행기 참사를 극복하며 구단과 팬 모두에게 영감을 줬다. 동쪽 스탠드 바깥에는 뮌헨 비행기 참사를 기리는 시계(당시 사고 시간에 멈춰서 있다)와 희생자 명단이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영광과 함께 아픈 과거까지 경기장에 새겼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승자의 역사에도 아픔은 있다.
꿈의 극장에서 경기를 관람한다면 좌석표도 주의 깊게 볼 수밖에 없다. 북쪽 스탠드는 알렉스 퍼거슨 경 스탠드이고, 남쪽 스탠드는 보비 찰턴 경 스탠드다. 감독과 선수로 구단을 최고로 이끌었던 이와 함께 지상 최고의 쇼를 보는 셈이다. 이 극장에서 경기를 보거나 주변을 관람한 이들은 메가스토어에 들러 충성심으로 쇼핑할 가능성이 크다. 꿈의 극장은 웅변하지 않고도 마음을 잡아 끌 수 있는 거대한 콘텐츠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현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를 꾸몄다.
꿈의 극장 ©shutterstock
강력한 You’ll never walk alone - 리버풀 응원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절대로 가까워질 수 없는 리버풀도 강력하고도 매혹적인 상징을 지녔다. 바로 노래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이도 유튜브나 다른 영상을 통해 ‘소름 돋는 You’ll never walk alone 떼창’ 영상을 봤을 수 있다. 그만큼 이 노래와 이걸 부르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강렬하다.
‘You’ll never walk alone’은 얼마 전까지 공식 응원가가 아니었으나, 모두 이 노래를 리버풀과 동일하게 여겼다. 리버풀과 이 노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장면이 있다. ‘2004-05 유럽축구연맹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AC밀란이 보여준 압도적인 경기력에 0-2로 지고 있을 때, 누가 봐도 승산이 없는 시점에 누군가가 노래를 시작했다. 한 사람이 시작한 노래는 경기장에 물결을 일으켰고, 결국 큰 파도가 됐다. 노래 덕분인지는 몰라도 리버풀은 경기를 원점으로 만들어 승부차기에서 빅이어를 들어올렸다.
이 경기 내용과 이 노래는 리버풀을 상징하는 일종의 뮤직 비디오가 됐다. 리버풀이 최근 이 노래를 공식 응원가로 받아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You’ll never walk alone은 그 자체로 리버풀이고, 힘 있는 영입 제안이다. 게다가 이 노래가 주는 메시지는 전통적으로 잉글랜드와 리버풀 축구를 받쳐온 노동 계급에 보내는 절절한 연서이기도 하다. ‘언젠가 네가 폭풍 속을 걸어도 내가 함께 하겠다’는 위로다. 리버풀은 축구와 함께 메시지를 판다. You’ll never walk alone은 그 최전선에 있다.
2004-05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 리버풀 ©류청
연고지 뮌헨의 지역색을 살리다 - 바이에른 뮌헨의 비어 샤워
유럽 대륙으로 바바리안의 땅에도 유구한 역사를 바탕으로 지역색을 강하게 보이는 팀이 있다.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 최강자이면서 마케팅적으로도 뛰어나다. 바이에른은 연고지 뮌헨이 지닌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뮌헨은 역사적으로 수도승(무니헨)과 관련이 크고, 수도승은 맥주를 담갔다. 뮌헨에서 세계 최대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를 개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바이에른 선수단은 시즌 전에 바바리안 전통 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고, 이 옷을 입고 옥토버페스트에 참여한다. 한국에서는 선수가 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뮌헨은 지역적인 특징을 살리는 걸 택했다.
주변에 분데스리가 우승팀은 모두 서로 맥주를 끼얹는 ‘비어 샤워’를 하는 줄 아는 이가 꽤 있다. 바이에른이 워낙 우승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최근 리그 10연패를 달성했으니 그렇게 생각해도 무리는 아니다. 이들은 우승하면 스폰서인 파울라너 맥주를 큰 잔에 담아서 서로 뿌리며 자축한다. 지금은 모두 팀을 떠났으나 프랑크 리베리와 다비드 알라바가 서로에게 맥주를 부으려고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불씨는 이미 구단 안에 있다 - 한국 프로스포츠의 발전을 위하여
전통과 그에 따른 스토리는 중요하지만, 정답은 없다. 뛰어난 명장도 자신이 보유한 선수들의 특징을 바탕으로 전술적인 뼈대를 만들듯이, 각 구단은 지닌 자산이 다르다. 먼저 구단이 가진 강점을 천천히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작업을 시작하는 게 좋다. 뿌리가 없는 이야기는 빠르게 시들 수 있다. 그리고 고객(팬)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불씨는 이미 구단 안에 있다.
예를 들어 K리그 최다 우승팀 전북이라면 레알마드리드와 같이 트로피만으로도 차이를 줄 수 있다. 레알마드리드 박물관에 있는 챔피언스리그 트로피 12개는 그 자체로 웅변이다. 또한 인천유나이티드는 리버풀과 비슷한 무기를 지녔다. 이승철의 ‘새벽’을 창단 초기부터 불렀다. 경기 막판에 팬들이 “저 바다를 넘어 기찻길을 따라 새가 날아오르는 하늘을 보라 커다란 날개를 펴고 가까이 가려해 우리가 살아온 날보다 내일이 더 길 테니”라고 노래 부르면, 가끔 소름이 돋는다.
“축구는 죽고 사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과 구단은 빌 샹클리 전 리버풀 감독이 한 말을 새길 필요가 있다. 축구로 각자의 삶이 조금이나마 즐겁고 윤택해진다면, 축구 시장은 저절로 커질 것이다. 선수들이 펼치는 공놀이가 지역과 사회에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지 계속해서 관찰해야 한다. 거기서 얻은 조그만 눈덩이를 굴려야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커다란 스노볼을 만들 수 있다. 꿈의 극장도, You’ll never walk alone도, 비어 샤워도, 레알마드리드 트로피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2 농구
미래 보는 가치투자와 구단 철학 유지로 성공에 도달하다
세계 최고 프로농구리그인 NBA에서 정상에 등극하긴 쉽지 않다. 설령 정상에 오르더라도 수성이라는 또 다른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성적 유지와 이윤 창출, 장기적인 구단 가치 상승으로 구성된 세 가지 목표 동시달성은 모두가 꿈꾸는 이상향이다. 물론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팀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마이애미 히트다. 그리고 이 두 팀은 본인들만의 내러티브를 끊임없이 쌓아 올려 성공에 도달했다.
세 마리 토끼를 잡다 - 골든스테이트와 마이애미의 내러티브
뉴욕 닉스와 시카고 불스 등은 거대한 시장(market)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하위권에 머물렀다. 높은 이윤 창출과 구단 가치가 성적 반등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또한, 2010년대 대표 약체 새크라멘토 킹스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등은 다수 드래프트 최상위 지명권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미래 설계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졌던 탓이다.
물론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팀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다. 근래 북미 지역 모든 프로스포츠 프랜차이즈를 통틀어 가장 우수한 집단이라고 표현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팻 라일리 사장 & 에릭 스포엘스트라 감독 콤비가 건재한 마이애미 히트 역시 주목할 만하다. 마이애미 특유의 ‘히트 웨이(heat way)’는 무려 25년 이상 흔들리지 않고 계속된 철학이다. 그렇다면 두 팀 공통점은? 본인들만의 내러티브를 끊임없이 쌓아 올려 성공에 도달했다. 몇몇 경쟁자는 그들의 성공을 행운이라고 깎아내린다. 실패한 자들은 여전히 모른다.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NBA 2021-2022 시즌 우승한 골든스테이트의 퍼레이드 ©shutterstock
신축 구장, 샌프란시스코에 건립 - 골든스테이트의 가치 투자
골든스테이트는 201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부컨퍼런스 동네북 중 하나였다. 실제로 1977-2010시즌 구간 누적 승률은 41.5%로 신생팀들을 제외하면 리그 밑바닥이다. 2000년대 역사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매드 사이언티스트 운영’. 풍운아 돈 넬슨 감독이 주창한 농구는 분명 신선했지만,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컸다. 패배에 익숙해진 구단 수뇌부도 별다른 제동을 걸지 않았다. 실패하는 집단의 전형적인 행보를 노출했던 모양새다.
변화는 구단주 교체와 함께 시작되었다. 투자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조 레이콥이 등장해 혁신을 일궈냈다. 그가 가장 강조했던 부문은 명확한 미래 계획이 동반된 가치 투자다. 긴 호흡의 리빌딩(rebuilding)을 설계한 후 흔들리지 않고 밀어붙였다. 특히 꾸준한 재투자가 더 큰 이윤 창출로 연결된다는 업계 철학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공적 자금 지원 없이 자체 투자만으로 탄생한 신축 구장인 체이스 센터(Chase Center)가 대표적인 사례다. 신축 구장이 낙후된 오클랜드 지역이 아닌, 구매력 좋은 다리 건너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건립되면서 흥행 날개를 달았다는 평가다.
신축 구장 체이스 센터 ©골든스테이트
오리지널 트리오 커리·그린·탐슨 유지 - 골든스테이트의 과감한 투자
구단주들이 꺼리는 징벌적 사치세(repeater tax) 납부 역시 개의치 않는다. 시계를 2019년 플레이오프 파이널 종료 시점으로 되돌려보자. 골든스테이트는 파이널 3연패 도전에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에이스 케빈 듀란트가 FA 자격을 획득했고, 스테판 커리와 드레이먼드 그린, 클레이 탐슨 등 나머지 주축 선수들마저 노쇠화 구간인 30대에 접어들었다. 누가 봐도 고액 연봉자들을 정리해 사치세 라인에서 벗어날 기회이자 리셋(reset)에 나설 적기였다. 그러나 레이콥 구단주는 역대 최고 사치세를 지출하면서까지 선수단을 유지했다. 오히려 더욱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그 결과, 올해 파이널 무대에서 권토중래를 이루게 된다. 맥스 규모로 재계약한 오리지널 트리오 커리·그린·탐슨이 플레이오프 기간 내내 분전했음은 물론이다.
2010년 당시 리그 전체 12위에 머문 구단 가치가 2022년 들어 2위로 상승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젠 캘리포니아 지역 터줏대감인 LA 레이커스의 지위를 위협하는 존재로 우뚝 섰다. 선수단 내부에서는 밥 마이어스 사장이 구단주가 제시한 청사진에 호응했다. 에이전트 출신답게 적재적소 FA 자원 수급 & 연장계약을 이끌어냈다. 특히 데뷔 시절 당시 유망주에 불과했던 커리의 슈퍼스타 잠재력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챘다. 2011-12년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탐슨과 그린 역시 왕조 건설에 힘을 보탰다. 자체 생산 삼총사는 성적뿐만 아니라, 연고지 팬들에게 다가서는 프랜차이즈 스타 측면에서도 제 몫을 톡톡히 해줬다. 구단과 팬들 사이에서 중요한 헤리티지(heritage)를 성공적으로 형성했던 사례다.
현대 농구 흐름에 적합한 코칭스태프를 구성한 선택 역시 플러스 요인이다. 구단주가 투자 의지만 앞세우느라 선수단 내부 단속에는 실패했다고 가정해보자. 2020-22시즌 버전 브루클린처럼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이 도출되었을지도 모른다. 골든스테이트의 경우 모든 운영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 덕분에 리그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감독 중심으로 과감한 업무 처리 - 마이애미, 리더십의 일원화
마이애미는 1988-89시즌에 창단된, 비교적 역사가 짧은 팀이다. 초창기에는 다른 신생 구단들처럼 고전을 면치 못했다. 확장 드래프트 또는 신인 드래프트 지명만으로는 단기간에 플레이오프 진출권 전력을 구축하기 어렵다. 오너십(ownership) 그룹은 1995년 여름에 결정적인 선택을 내렸다. 1980년대 ‘쇼타임 레이커스’(1981-90시즌), 1990년대 ‘갱스터 뉴욕’(1991-95시즌) 선수단을 이끈 명장 팻 라일리 감독과 전격 계약했다. 검증된 사령탑 선임을 통해 돌파구 개척에 나섰던 셈이다. 단, 해당 시점에는 누구도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 그가 농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레드 아워백 버금가는 구단 운영 책임자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라일리는 마이애미 역사 자체를 바꿔 놓았다.
잘난 장군 둘보다 못난 장군 하나가 지휘하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리더십의 일원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할 때 쓰인다. 마이애미 오너십은 라일리 영입 당시 감독뿐만 아니라 사장직까지 보장해줬다. 리더가 강력한 권위를 발휘할 수 있게끔 배려했던 교통정리다. 심지어 라일리는 앞서 언급했듯이 유능한 장군이다! 우선 오랜 기간 다져진 카리스마로 조직 내부 명령 체계를 일신했다. 능수능란한 정치력도 빼놓을 수 없다. 본인과 같은 시기에 구단주가 된 미키 애리슨의 재가를 누구보다 빠르게 얻어낸다. 마이애미가 경쟁자들과 비교해 늘 한 발자국 앞서 나가는 원동력이다. 프로스포츠에서 유능한 구단 운영자가 윗선과의 갈등으로 인해 좌절한 사례는 꽤 많다. 반면 마이애미는 리더십의 일원화가 성공적으로 정착된 덕분에 과감한 업무 처리가 가능하다.
팻 라일리 감독
2012-13년 2연패 성과 ©마이애미 히트
오너십과 프런트, 선수단의 긴밀한 교감 - 마이애미 ‘히트 웨이’ 철학 유지
라일리의 강력한 권위는 마이애미를 거쳐 갔던 에이스들 면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알론조 모닝, 샤킬 오닐, 드웨인 웨이드, 르브론 제임스, 지미 버틀러 등은 에고(ego)가 무척 강하거나, 통제하기 쉽지 않은 슈퍼스타들이다. 모닝, 오닐, 버틀러 등은 다른 구단 소속일 때 불협화음을 일으켰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마이애미 선수단 구성원으로는 오직 코트 안에서만 투지를 불태웠다. 코트 밖에서는 형제임을 강조하며 라일리가 주문한 ‘히트 웨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만약 애리슨 구단주가 프런트 수장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면 원활한 통제가 이루어졌을까? 오너십과 프런트 조직 간의 긴밀한 교감이 왜 중요한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후임 감독 인선 역시 마찬가지다. 2007-08시즌 종료 후 비디오 분석관 출신인 에릭 스포엘스트라가 부임했다. 1997-98시즌 이래 마이애미 소속으로만 경력을 쌓은 지도자다. 내부 승진이 진행된 결과, 구단 운영 철학이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또한, 감독직 승계가 이루어진 후에 웬만해서는 월권을 범하지 않았다. 본인은 르브론, 웨이드, 크리스 보쉬로 구성된 ‘빅 3’ 시스템 설계 등 프런트 고유의 임무에만 집중했다. 부임과 함께 감독 권위를 인정받은 스포엘스트라는 2012-13년 플레이오프 파이널 2연패 성과로 보답했다.
1980년생 42세 노장 우도니스 하슬렘이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부문도 눈에 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라커룸 리더 역할로 ‘히트 웨이’ 철학을 더욱 뚜렷하게 다져준다. 쉽게 말해 마이애미는 구단주-프런트 수장-코칭스태프-선수단이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인다. 해당 운영 방식이 실패하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3 야구
지역사회와 공생하며, 영화 같은 현실로 감동을 주다
전 세계 모든 야구선수들의 꿈의 무대이자 세계 최고 프로야구 리그, 메이저리그. 단순히 지역 야구팀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공생하며, 야구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메이저리그의 내러티브를 소개한다.
구단과 도시가 하나되다 - 보스턴 레드삭스 ‘B Storng’
메이저리그 각 구단들은 연고지를 두고 있다.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등 구단 명칭에 도시 혹은 주 이름을 앞에 내세운다. KBO리그 구단들도 연고지를 가지고 있지만, KBO리그는 모기업의 색깔이 더 강하다. 메이저리그처럼 도시가 구단을 대표하진 않는다. 구단들은 연대 의식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지역 야구팀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기쁜 일은 함께 축하하고, 슬픈 일은 함께 위로한다.
2013년 보스턴 레드삭스는 ‘마라톤 테러 사건’이 발생했을 때 ‘Boston Strong’을 슬로건으로 발표했다. ‘B Strong’이 적힌 티셔츠와 모자, 패치까지 제작해 결속력을 다졌다. 당시 팀의 리더였던 데이빗 오티스는 “이곳은 우리들의 도시다. 그 누구도 우리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시민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해 보스턴은 월드시리즈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안겨줬다. 구단과 도시가 하나되어 아픔을 이겨낸 긍정적인 사례다.
©shutterstock
연고지 공유 팀의 라이벌 구도 - 시카고 컵스 vs 화이트삭스
대도시는 두 팀이 연고지를 공유한다. 동부의 뉴욕, 중부의 시카고, 서부의 LA다. 뉴욕은 양키스와 메츠, 시카고는 컵스와 화이트삭스, LA는 다저스와 에인절스가 위치해 있다. 이들이 맞붙는 시리즈는 별칭도 존재한다. 뉴욕은 지하철로 오고 갈 수 있다고 해서 ‘서브웨이 시리즈’로 불린다. 시카고는바람이 많이 부는 도시 특성을 따서 ‘윈디시티 시리즈’, LA는 두 팀을 잇는 5번 고속도로가 무료라는 이유로 ‘프리웨이 시리즈’다.
이들은 같은 연고지를 쓰는 것만으로도 묘한 기류가 흐른다. 선수 영입이나 팀 성적, 관중 동원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한다. 스포츠는 라이벌 구도가 있어야 재미가 더해지기 때문에 언론도 이 분위기를 부추긴다. 일례로 2016년 컵스는 ‘염소의 저주’를 깨뜨리고 마침내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무려 108년이 걸린 일이었다. 컵스에 앞서 2005년 화이트삭스도 88년 만에 우승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시카고 지역 매체 ‘시카고 선 타임스’는 ‘2005년 화이트삭스와 2016년 컵스 중 누가 더 나은 팀인가’에 대해 설문 조사를 한 바 있다. 똑같은 우승 반지라도, 그 반지의 무게를 따진 것이다.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성장해야 한다 - MLB 시티 커넥트 유니폼
지역사회와의 유착은 리그 차원에서도 추진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작년부터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와 협업해 ‘시티 커넥트 유니폼(City Connect Uniform)’을 제작 중이다. 각 도시들의 특징을 담고 있는 유니폼으로 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콜로라도 로키스는 로키 산맥, 워싱턴 내셔널스는 벚꽃,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해변이 떠오르는 디자인이다. 밀워키 브루어스는 모자에 제너럴 미첼 국제공항(MKE)과 지역 번호(414)를 결합하는 놀라운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또한 팬들이 붙여준 애칭 ‘Brew Crew’를 유니폼 앞부분에 새겨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프로젝트는 야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야구는 야구로만 자생할 수 없고,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ESPN은 시티 커넥트 유니폼에 대해 “야구 패션의 미래를 바꿨다”고 평가했다. 한편, 아직 나오지 않은 구단들의 시티 커넥트 유니폼은 내년에 모두 공개될 예정이다.
영화 <꿈의 구장> 현실로 구현 - MLB의 꿈의 구장 Field of Dreams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팬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벤트도 개최했다. 1989년에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던 야구 영화 <꿈의 구장>을 현실로 구현한 것이다. 아이오와주 다이어스빌에 있는 부지를 매입해 약 5,000만 달러(651억 원)를 투자해서 야구장을 지었다. 영화를 상징하는 옥수수밭에서 선수들이 나오는 장면도 그대로 재현했다. 영화의 주인공 케빈 코스트너가 시구자로 등장해 “이곳이 천국인가요?”를 묻는 모습은 황홀한 광경이었다.
지난해 처음 열린 꿈의 구장 경기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뉴욕 양키스가 맞붙었다. 영화에 나오는 팀인 화이트삭스가 9회말 역전 투런 홈런으로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경기에 팬들은 환호했다. 평균 587만 명이 시청한 이 경기는 2005년 이후 정규 시즌 경기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성황리에 마감한 꿈의 구장 경기는 올해도 시카고 컵스와 신시내티 레즈의 경기로 장식됐다.
MLB의 꿈의 구장 ©MLB
셀릭이 만든 ‘재키 로빈슨 데이’ - 야구 발전 위한 “최고의 스승은 경험”
메이저리그 역사상 이러한 마케팅에 가장 뛰어났던 인물은 버드 셀릭 커미셔너다. 밀워키 구단주에서 리그 커미셔너로 선출된 셀릭은 흥밋거리를 찾는 감각이 남달랐다. 그의 업적 중에서도 최고로 불리는 건 역시 ‘재키 로빈슨 데이’다.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기리기 위해 그가 달았던 등번호 ‘42번’을 전 구단 영구 결번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로빈슨이 데뷔한 4월 15일(현지 시간)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지정했고, 켄 그리피 주니어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날은 모든 선수들이 42번을 달고 뛸 수 있도록 허락했다. 덕분에 팬들은 매년 4월 15일이면 로빈슨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이는 메이저리그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평소 셀릭은 “최고의 스승은 경험”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최대한 많이 보고, 최대한 많이 들었다. 야구도 야구에만 머무르지 않으려면 야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접하고 포용해야 한다. 그것이 공생의 길이고, 야구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