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의 지지 얻을
프로스포츠 내러티브 전략

글. 이현우

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광고홍보학회 회장, 한국 PR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새로운 설득>, <광고와 언어>, <한국인에게 가장 잘 통하는 설득전략 24>, <오메가 설득이론>, <사과의 공식>, <거절당하지 않는 힘> 등의 책을 저술했다.

스포츠 팬들은 스포츠 경기 관련 수많은 이야기들을 기억한다. 스포츠 경기나 스포츠 구단의 스토리는 스포츠 팬들의 관람 경험에 기억되며, 팬들이 자신과 스포츠팀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충성도 높은 팬덤 구축이 성패를 좌우하는 프로스포츠. 내러티브 경제 시대, 이러한 팬덤을 구축하기 위해 프로스포츠만이 가질 수 있는 내러티브 전략에는 무엇이 있을까. 팬들에게 기억되며, 절대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프로스포츠만의 내러티브 전략을 고민해본다.

스토리텔링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

바야흐로 스토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스토리가 지배하는 세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것은 5,000년 전의 일로, 문자 이전의 세상은 스토리텔링의 시대였다. 인류가 공식적으로 언어를 구사하기 훨씬 이전인, 기원전 1만 5,000년 전부터 동굴벽화에 사냥과 동물에 관한 스토리를 기록해왔던 사실에 비추어보면, 스토리텔링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또한 가장 오래되고도 막강한 영향력의 도구가 스토리텔링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책 중 하나인 성경 역시 예수가 ‘우화’라는 스토리텔링 형식을 즐겨 사용해 종교적인 가르침을 깨우치게 한 것이다.

“사실을 내게 말하면 나는 배울 것이다. 진실을 말하면 나는 믿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스토리를 말해주면 그것은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인디언 속담 역시 사실이나 진실보다 스토리가 우리에게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있다.

각본 없는 드라마에서, 각본 있는 드라마로

스포츠 세계도 스토리텔링이 지배하고 있다. 스포츠 세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 중의 하나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3점 차로 뒤지고 있던 프로야구 팀의 타자가 9회말 투 아웃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만루 홈런을 쳐서 역전에 성공하는 등의 극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의 스포츠 세계는 ‘각본 있는 드라마’를 요구하고 있다. 각본 없는 드라마가 스토리라면, 각본 있는 드라마는 내러티브라고 말할 수 있다. 달리 표현해서, 스토리가 재료라면 내러티브는 요리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러티브란 개념은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말 국어사전은 내러티브를 ‘정해진 시공간 내에서 인과 관계로 이어지는 허구 또는 실제 사건들의 연속’으로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내러티브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과 내용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누가 하면 ‘꿀잼’인데 누가 하면 ‘노잼’인 경우가 있다. 같은 이야기인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이야기의 내용은 같지만 전달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러티브는 플롯(plot), 사건의 인과 관계, 시공간의 배열 등 다양한 요소의 선택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의 스토리를 어떠한 플롯으로, 어떠한 인과 관계로, 그리고 어떠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내러티브가 가능해진다. 참고로, 내러티브란 단어는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쉽지 않다. 내러티브는 일반적으로 ‘서술’ 혹은 ‘이야기’ 등으로 번역되고 있지만, 내러티브의 풍부한 뜻을 다 담기엔 부적절하다.

팬이 팀과 동일시하게 만드는 내러티브 전략

미국의 심리학자 치알디니 교수는 그의 명저 <설득의 심리학>에서 스포츠 팬의 심리에 대해 “스포츠 게임은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스포츠 팬에게 스포츠는 바로 자기 자신을 의미한다. 때문에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승리는 곧 자신의 승리를 의미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자신의 프랜차이즈 팀이 승리하면 TV 중계 카메라에 비춰진 관중들이 엄지손가락을 높이 쳐들고 ‘우리가 일등이다!’라고 외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지 않은가?

따라서 스포츠에 있어서 성공한 내러티브 전략은, 프로스포츠 구단과 스포츠 팬을 동일체로 만들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한편, 프로스포츠 구단의 성공적인 내러티브 전략은 구체적으로 내러티브 콘텐츠의 개발과 관리라는 2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 내러티브 콘텐츠 개발

스포츠 팬은 자신이 사랑하는 팀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스포츠 팬에게 감동을 주는 내러티브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다음의 4가지 대표적인 플롯을 참고해서 내러티브 콘텐츠를 개발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❶ 다윗과 고릴라 유형 : 프로스포츠에서는 ‘언더독(underdog)’ 매치가 종종 발생한다. 전력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있던 팀이 예상을 뒤집고 강자에게 승리하면, 그것도 극적인 역전승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면, 스포츠 팬은 열광하게 된다. 1972년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결승에서 창단 4년차 군산상고는 야구 명문 부산고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것도 8회에 3점을 내주고 4대1로 뒤지고 있던 9회말에 4점을 얻어 4대5로 극적인 역전승을 했다.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군산상고 야구팀에는 ‘역전의 드라마’라는 명예로운 내러티브가 함께하고 있다.

❷ 신데렐라 유형 : 미국 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의 유년 시절은 매우 불행했다. 그의 어머니는 16살에 르브론을 낳았고, 철길 가의 먼지와 소음으로 가득한 집에서 4대가 함께 생활했다. 르브론은 유년 시절 집도 없이 떠돌아다녔으며 몇 개월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녀야 했다.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르브론은 미국 NBA 최고의 스타 자리에 올랐다. 개천에서 용이 나온 대표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다.

❸ 반지의 제왕 유형 : <반지의 제왕>이라는 3부작 영화는 절대 반지를 차지하기 위한 끝이 없는 탐험의 길을 보여준다. 프로스포츠도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가는 무한한 과정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라는 말처럼 기존 기록을 깨기 위한 스포츠인의 무한한 노력은 감동적인 스토리로 전해진다. 필자도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역사상 최고의 점수로, 우리나라 선수로서는 최초로 여자 피겨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다음 시상식에서 흘렸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❹ 컴백 유형 :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주인공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I will be back(나는 돌아올 거야)”라고 말했다. 컴백을 선언하는 대표적인 대사다. 프로스포츠 세계에서는 컴백의 주인공이 허다하다. 대표적으로 미국 NBA 스타 플레이어 마이클 조던은 화려한 경력을 쌓은 후에 은퇴했다가 다시 컴백해서도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10wallpaper

©10wallpaper ©10wallpaper

한편, 내러티브 콘텐츠는,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이케아 효과’를 기대하면서, 스포츠 팬과 공동 작업을 통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케아 효과란 물건을 직접 만든 사람들은 자신의 비전문적인 작품을 전문가의 작품과 비슷한 가치로 평가한다는 사실을 지칭한다. 또한 심리학자들은 다른 사람과 공동 작업을 통해 무언가를 창작한 사람들은 그들의 창작물뿐만 아니라 공동 창작자에게도 특별한 친밀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를 응용해 보면, 프로스포츠 구단은 그들의 프랜차이즈 팬에게 그들이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유, 스포츠 게임에서 느끼는 감정, 구단의 머천다이징 굿즈를 이용한 소감 등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해서 내러티브를 구축할 수 있다. 이처럼 스포츠 팬과 내러티브 콘텐츠를 공동 개발하는 작업은 한마디로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돈 줍고’ 식의 해피엔딩을 보장한다.

2단계: 내러티브 콘텐츠 관리 (공유와 활용)

2015년 당시 미국 NBA 커미셔너 아담 실버는 NBA 게임의 하이라이트를 대중에게 무료로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아담 실버는 “게임이 메인 식사라면, 하이라이트는 간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는 팬들이 메인 식사 전에 간식을 하고 오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스포츠 팬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게임 전에 게임 하이라이트 등의 다양한 ‘간식’을 제공받고 있다.

앞으로 디지털 내러티브 콘텐츠로 스포츠 팬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지 못하는 프로스포츠 구단은 어쩌면 심각한 곤경에 처할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21세기의 프로스포츠 구단에게 디지털 자산 관리(Digital Asset Management, DAM) 프로그램은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다. DAM은 내러티브의 핏줄과 힘줄의 역할을 하고 있다. DAM은 디지털 자산의 효과적인 활용을 위한 모든 도구, 표준화 작업, 처리 과정을 통칭한다.

방대한 물량의 디지털 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게 만드는 DAM은 최소한 두 가지 측면에서 스포츠 구단에 커다란 도움을 준다. 첫째로, DAM은 새로운 수익 창출 과정을 돕는다. 스포츠 게임은 대략 25시간에서 40시간 분량의 시각 자료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팀 당 연간 게임 수를 감안하면 엄청난 물량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방대한 시각 자료를 업로드하고, 필요한 디지털 자료를 검색하고, 효과적으로 공유하게 만드는 과정을 최적화하는 DAM은 스포츠 구단의 수익 창출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미국 NBA 커미셔너 아담 실버 ©NBA

둘째로, DAM은 스포츠 팬의 충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DAM 라이브러리를 검색하던 한 스포츠 팬이 경기장에서 파울볼을 캐치하는 자신의 모습을 DAM에서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팬은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 것이며,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영상을 업로드하여 자신의 기쁨을 확산시킬 것이다.

이처럼 기억할만한 디지털 내러티브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더 나아가서 팬들과 공유하게 만드는 DAM을 구축하는 것은, 우리나라 프로스포츠 발전을 위한 당면 과제라 할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내러티브 전략

코로나19 이후 프로스포츠 리그는 관중 감소라는 커다란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올해 2월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의 통계에 의하면, 2016년까지 매년 꾸준히 성장해 왔던 야구·축구·농구·배구 등 4대 프로스포츠 관중은 2017년부터 하락 및 정체를 이어오고 있다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이다. 성공적인 내러티브 전략을 통해 우리나라 프로스포츠 구단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프로스포츠 구단을 위기에서 구해줄 제갈량의 비단 주머니는 바로 우리 곁에 있다.

©unsplash

“방대한 시각 자료를 업로드하고, 필요한 디지털 자료를 검색하고, 효과적으로
공유하게 만드는 과정을 최적화하는 DAM은 스포츠 구단의 수익 창출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PROSVIEW THEME : EXPERT INSIGHT I

이 페이지 공유하기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