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기자로 국제부·사회부·경제부 등을 경험했다. 대학에서는 수학을 전공했다. 사회 현상을 숫자로 풀어내는 데 관심이 있다. 현재는 산업팀에서 자동차 분야 취재를 하고 있다. 전기차(EV)와 배터리, 자율주행을 위한 소프트웨어 등이 관심 분야다.
음식점, 쇼핑몰 등의 공간에서 심심치 않게 로봇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음식을 배달하고 상품을 로봇이 활약하고 있다. 여러 업계에서 앞다퉈 로봇 개발과 확산에 속도를 내는 지금에 이어 앞으로의 로봇 사업은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최근 경기도 성남시의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 방문한 적이 있다. 이 식당은 식사 가격을 올린 대신, 내부에 요리를 할 수 있는 로봇을 설치했다. 손님이 먹을 만큼 면을 담으면 사람 팔처럼 생긴 로봇이 이 접시를 가져가 펄펄 끓는 육수에 내용물을 삶아 주는 식이다. 삶은 면과 국물에 배추와 고수를 넣으니 먹음직스러운 쌀국수 한 접시가 금세 완성됐다. 3년 전 이 식당을 방문했을 때는 직원들이 하루 종일 서서 뜨거운 육수를 처리하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이기도 했다.
이 레스토랑에는 요리 로봇 외에도 서빙 로봇도 식탁 사이로 돌아다닌다. 고객이 있는 자리까지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주고, 식사를 마친 빈 그릇을 주방으로 옮기는 이 서빙 로봇엔 자율주행 기술과 장애물 회피 기술이 적용됐다. 서빙 로봇이 움직일 때는 조용한 음악이 나와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다. 과거엔 직원들이 뜨거운 접시에 담긴 스테이크를 조심스럽게 옮겼는데, 이젠 서빙 로봇이 더욱 안정적으로 옮길 수 있을 것 같다.지난해 싱가포르의 한 게임 회사를 방문했을 때는 1층 로비에서 로봇 팔이 움직이는 카페를 구경할 수 있었다. 자판기처럼 신용카드로 값을 지불하면 맛있는 카페라테를 만들어줬다.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로봇 팔이 커피를 만들어 주는 서비스를 만났다. 24시간 운영되는 점, 1분 안에 커피가 나올 수 있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다시 문을 연 식당에 일손이 달리면서 주방 요리와 홀 서빙 로봇이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19 직후 떠나보낸 종업원들을 다시 채용하기가 쉽지 않아 로봇을 고용하는 식당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식당 로봇은 카메라와 레이저 센서를 활용해 주방에서 식탁으로 음식을 나르면 웨이터가 음식 접시를 고객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로봇 사용료는 설치비와 유지비를 포함해 월 999달러(약 134만 원)다. NYT는 종업원들이 음식 접시를 치우기 위해 주방과 식당을 분주하게 오가는 노동력을 로봇이 대신한다고 전했다.
국내 유통기업이 스마트 창고를 운영할 때도 배송·물류 로봇을 이용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컨베이어 벨트와 스캐너 기술을 이용해 이제는 사람이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창고에 물류를 모아 다시 소비자에 전달한다. 물류 창고 데이터를 이용하면 소비자가 앞으로 살 물건들도 미리 예측해 모아 둘 수 있다.
일본 방송 NHK에 따르면 무거운 짐을 옮기는 물류 시설에서 장착형 로봇 도입이 늘고 있다. 허리 부분에 착용하는 장착형 로봇은 뇌가 보내는 미약한 전기신호를 센서가 포착해 모터를 작동시켜 짐을 들어 올리거나 운반하는 작업을 돕는다. 하네다 공항에서는 2016년부터 벤처기업이 개발한 장착형 로봇을 버스 승차장에 도입했다. 가방을 끌고 오는 외국인 여행자 증가에 맞춰 승객의 화물을 버스에 싣고 내리는 직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손정의 회장은 지난해 9월 스마트 로봇이 경제를 되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 월드 2021 컨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수년 전 선보인 인간형 로봇 페퍼보다 더 나은 기능을 갖춘 스마트 로봇 시대가 올 것”이라며 “로봇 한 대가 인간보다 10배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최근에는 로봇이 인간의 언어를 보다 잘 인식하게 하는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매체 워싱턴포스트(WP)는 인공지능(AI)을 사용해 더 넓은 범위의 일상에서 사람을 돕는 로봇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구글의 한 연구원은 로봇에 “배고픈데 간식을 줄 수 있겠니”라고 말하자 로봇이 서랍을 열고 과자 봉지를 가져다 줬다. 구글은 언어 모델이 로봇에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서비스 로봇 시장 규모는 2019년 310억 달러(약 42조 원)에서 2024년 1,220억 달러(약 164조 원)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량 기준으로는 연평균 29% 성장률을 나타낼 전망이다.
이 중 PR로봇 시장 규모가 지난해 5억 5,000만 달러에서 2024년 75억 달러 규모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PR로봇은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고객 식탁으로 가져다주는 기능을 하는데, 최근 서울시내 대형 병원에도 PR로봇이 도입됐다. 수시로 운반해야 하는 혈액 검체나 처방약, 수액을 로봇이 대신 옮기는 것이다.
배송·물류 로봇의 경우 미국 아마존이 지난해 20만 개를 도입할 정도로 글로벌 유통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경기도 수원시 광교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에서 배송·물류 로봇이 시범 운행되고 있다. 국내법상 로봇은 안전상의 이유로 아직 횡단보도를 이용해 스스로 차도를 건너지 못한다. 정부에서 광교와 같이 일정 구간에서만 규제를 풀어줘 운행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지난 7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국제모터쇼에서 현대자동차가 로봇 물류와 관련된 시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개인 서비스 로봇 시장 규모는 지난해 96억 달러에서 2024년 270억 달러로 연평균 23% 성장이 예상됐다. 로봇 청소기나 자동 잔디깎이 등이 개인 서비스 로봇에 해당된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최근 로봇청소기 업체 아이로봇을 17억 달러(약 2조 2,831억 원)에 인수했다. 아이로봇은 로봇청소기 ‘룸바’를 생산하는 업체로 로봇 걸레와 수영장 청소기를 내놓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최근 전원주택이 늘어나고 단독주택 등 주거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자동 잔디깎이 로봇이 등장했다. 정원의 나무나 돌 같은 장애물을 감지하면 속도를 늦춰 제품 손상을 방지하고 방향을 전환하는 보호기능도 작동한다. 비가 올 때 잔디깎이 작업을 계속하면 땅이 패거나 잔디가 상할 수 있어 센서가 빗물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충전대로 복귀한다.
▶ 세계 연간 산업용 로봇 공급량
자료 : 국제로봇연맹 ※2019년부터는 추정치
하지만 로봇이 장밋빛 미래만 그려주는 것은 아니다. 로봇이 소비자의 말을 구체적으로 듣지 못하거나, 해킹의 위험에 노출됐다는 점이 공개됐을 때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기도 한다.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살상용 로봇은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직까지는 사람이 조작하는 드론으로 폭격이 이뤄지고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데이터를 모아 스스로 판단하는 전차나 전쟁용 로봇이 나올 수 있다.
자율 무기 시스템 개발을 막자는 국제적인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NYT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회의에서 무기금지협약(CCW)에 가입한 125개 국가 대다수가 킬러 로봇 억제를 원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로봇이 편의를 제공하며 하루가 다르게 우리 일상과 가까워지는 만큼 다각도의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 6월 경기 수원시 광교의 주상복합 아파트 광교 앨리웨이에서
실외 자율주행 배달 로봇이 움직이고 있다.
싱가포르 게임회사 레이저 1층 본사에 로봇 팔로 커피를 만들어 주는 카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