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찾은 NFT*시장, 스포츠에 눈 돌린다

글. 임유경

컴퓨터 및 정보통신 뉴스 지디넷코리아 소프트웨어·블록체인팀 기자. 가상 자산과 화폐와 관련된, 다양한 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사례를 파고들고 분석함으로써 독자의 시야를 넓히는 기사를 쓰고 있다.

* NFT는 대체불가토큰(Non-Fungible Token)의 약자로, 블록체인 위에서 발행할 수 있는 토큰(코인)의 한 형태다.

지난해 2월, 미 프로농구(NBA) 간판스타 르브론 제임스(LA레이커스)는 경기 중 묘기 같은 ‘리버스 윈드밀 덩크’를 선보였다. 몇 달 전,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한 코비 브라이언트를 추모하는 의미로, 코비의 전매특허인 리버스 덩크를 오마주한 것이었다. 21세기 농구 황제의 이 덩크 장면은 그의 스타성과 고난도 덩크가 주는 예술성, 여기에 헌정의 의미까지 더해져 팬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르브론의 이 코비 헌정 덩크 장면은 올해 4월, 무려 40만 달러, 우리 돈 약 4억 6,000만 원에 판매됐다. 스포츠 하이라이트 영상이 이처럼 경이로운 금액에 판매될 수 있었던 것은 NFT라는 새로운 기술 때문. 대체 NFT는 무엇이길래 이런 변화를 가져왔을까.

소유권 생기는 유일무이한 디지털 파일

NFT는 대체불가토큰(Non-Fungible Token)의 약자로, 블록체인 위에서 발행할 수 있는 토큰(코인)의 한 형태다. 각각의 NFT에는 고유번호가 붙어 있다는 점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비트코인과 다른 점이다.

1비트코인은 내가 가진 것과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교환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같은 1비트코인일 뿐이라 상호 대체가 가능한 것이다. 반면, 고유번호가 붙어 있는 NFT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이 서로 달라 맞교환할 수가 없다. 이처럼 상호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대체불가토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런 특성을 가진 NFT는 디지털 파일과 결합하면 파일에 유일무이성이 부여되고, 소유권을 나타낼 수 있다. 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질 수 있는 기본 요건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NBA가 르브론의 헌정 덩크 영상을 잘라 NFT와 결합시키고 딱 50카피만 발행한다고 생각해 보자. 발행된 50개의 덩크 영상 NFT는 각기 다른 일련번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상 속 장면이 같더라도 각각 별개의 상품이 된다. 또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위에서 발행된 만큼, NBA가 이 NFT의 발행 주체이자 최초 소유권자라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검증 가능하다. 이들 NFT가 판매·재판매될 때의 모든 양도(전송) 이력도 블록체인에 남는다. 즉, 일련번호가 다른 NFT 각각에 대한 발행 정보, 거래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 소유권과 진품 여부가 명확해지는 구조다.

NFT가 혁신적인 이유는 이렇듯 스포츠 하이라이트처럼 경제적 가치가 분명히 있지만 그동안 시장에서 거래되지 못했던 것들을 상품으로 만들어 준다는 데 있다. 다양한 디지털 영상 외에도 할인 쿠폰, 마일리지, 게임 캐릭터 등은 모두 NFT와 만나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는 아이템이다.

NBA탑샷으로 본 스포츠NFT 시장

©NBA탑샷

해외에서는 이미 4~5년 전부터 프로스포츠가 NFT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다양한 시도가 일어나면서 NFT를 이용한 비즈니스 모델도 다각화되는 중이다.

이 중 ‘디지털 스포츠 카드’는 가장 많이 시도되고 있고, 팬들의 호응도 가장 높은 NFT 사업화 사례다. NBA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을 판매하는 ‘NBA탑샷’은 확실한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NFT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른 올해 2월 마지막 주 NFT탑샷의 주간 거래량은 1억 2,500만 달러(약 1,400억 원)에 이르렀다. 단 1주일 만에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연평균 중계권 수익을(약 760억 원) 가볍게 넘긴 것이다.

NBA탑샷은 무엇이길래 이런 인기를 끈 걸까. 이 서비스는 2019년 7월 캐나다 밴쿠버에 기반을 둔 블록체인 회사 대퍼랩스와 NBA, NBA선수협회가 합작해 만들어졌다. NBA가 경기 하이라이트를 짧은 영상으로 자르고, 대퍼랩스가 각 하이라이트를 몇 카피씩 판매할지 결정하고 등급을 매긴다. 인기 스타의 플레이나 멋진 장면일수록 더 적은 수량만 찍어내고 상위 등급을 매긴다. 이렇게 선별된 하이라이트 영상은 모먼츠(moments)라고 불린다.

NBA탑샷에 열광하는 이유도 트레이딩 카드 수집과 동일하다. 좋아하는 선수의 카드를 수집하는 취미 생활을 즐기면서 재판매 시 차익을 볼 수 있어 재테크도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이다. 여기에 NFT 기반 디지털 수집품이 주는 장점도 더해져 인기를 높였다. 개발사 대퍼랩스의 캐티 테드만 마케팅 책임자는 한 인터뷰에서 NBA탑샷의 모먼츠가 “100년 제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스포츠 카드를 수집하다가 훼손되거나 분실하는 경우가 많은데, NFT는 그런 염려에서 자유롭다. 그는 또 “지금 신인 선수의 카드가 미래에 더 큰 가치가 있을 수 있다”며 초기 시장 참여자들이 가지는 메리트도 강조했다.

©NBA탑샷

카드부터 굿즈까지… NFT 판 커진다

NBA탑샷의 성공은 전통 트레이딩 카드 업체에도 상당한 자극이 됐다. 메이저리그(MLB) 라이선스를 보유한 전통 트레이딩 카드 업체 탑스(Topps)는 올해 4월 처음으로 MLB 카드를 NFT로 발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70분 만에 준비한 7만 5,000팩을 완판시켰고, 판매 후 24시간 동안 170만 달러(약 19억 4,000만 원) 규모의 재판매가 이뤄졌다. 이는 그동안 MLB NFT에 대한 수요가 상당했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단순 카드 수집을 넘어 카드를 활용한 게임 서비스도 등장했다. 축구 카드 판타지 게임 서비스 소레어(Sorare)가 이 분야 대표주자다. 축구 팬들은 소레어에서 좋아하는 선수의 카드를 수집하고, 가상의 공간에서 자신의 팀을 꾸릴 수 있다. 실제 선수의 활약에 따라 게임 내에서 점수를 얻는다. 내 카드의 선수가 잘하면 게임 내 대결에서도 승리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레어에서 거래된 가장 비싼 카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FC)로 29만 달러(약 3억 3,000만 원)를 기록했다.

스포츠 스타 카드나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 이외에도 NFT를 접목할 영역은 많다. ‘디지털 굿즈’도 아이디어만 잘 내면 무궁무진하게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

실제 LA다저스는 ‘2020 월드시리즈 챔피언십’을 기념하는 디지털 굿즈를 NFT로 발행하기로 했다. 다저스는 32년 만에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백금에 블루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로 화려하게 장식한 우승 반지를 제작했는데, 이번 디지털 굿즈는 이 우승 반지를 3D 이미지로 세심하게 재창조한 것이다. 단 한 점 제작해 경매를 통해 판매할 예정이다. 낙찰자에게는 실물 버전의 반지와 다저스 스타디움 시구 기회도 함께 제공할 계획이다.

©탑스

©소레어

©LA다저스

국내 프로스포츠도 NFT 도입 시작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 세계적으로 NFT가 주목받으면서 최근 들어 국내 프로스포츠도 NFT 도입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가장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는 분야는 축구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해 6월 ‘소레어’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K리그 모든 선수의 카드를 출시했다. 지난해 소레어에서 K리그 선수 카드는 총 28만 달러(약 3억 2,000만원) 규모로 거래됐다. 가장 비싸게 판매된 카드는 2020년 득점왕인 주니오(당시 울산)의 유니크 카드로, 3,000달러(약 340만 원)를 기록했다. 그 뒤를 이어 김진수(당시 전북)의 유니크 카드가 2,820달러(약 320만원)에 거래됐다. 아직 한국 스포츠팬들에게 NFT가 생소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흥행 성적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소레어는 올해도 ‘K리그 2021시즌 디지털 선수 카드’를 출시했다. 이런 지속적인 노력이 국내 축구팬들에게 색다른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K리그의 국제적 인지도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경남제약 계열사로 바이오 사업에서 NFT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블루베리NFT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블루베리NFT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케이비엘과 퍼블리시티권 계약을 체결하고, 이들 프로선수에 대한 NFT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회사가 스포츠 지적재산권(IP)을 다수 확보하고, NFT 마켓플레이스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국내 스포츠팬을 대상으로 한 NFT 서비스가 늘어날 전망이다.

한풀 꺾여도 이제 진짜 유망 분야 가려진다

NFT 열풍은 올 2월 정점을 찍은 후 진정 국면에 들어간 모양새다. 블록체인 정보제공 업체 댑레이더에 따르면 6월 첫째 주 NFT 시장 주간 거래량은 3,500만 달러(약 400억 원)로, 2억 달러를 찍은 2월 최고점 대비 82% 이상 하락했다. 같은 기간 NFT 마켓플레이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는 65만 명에서 12만 8,000명으로 80% 감소했다.

그렇다고 NFT를 벌써 한물 간 트렌드로 보면 안 된다. 오히려 이제 시장이 이성을 찾고, 진짜 가치 있는 NFT가 무엇인지 신중하게 판단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게 맞다. 블록체인 전문가들은 그동안 음악·미술·게임·스포츠에 이르기까지 카테고리가 전혀 다른 분야가 NFT라는 시장으로 묶여서 평가돼 왔는데, 시장을 보다 정확히 전망하려면 이를 나눠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스포츠 분야를 특히 유망하게 전망하는 전문가가 많다. 블록체인 전문 매체 디크립트의 다니엘 로버츠는 칼럼을 통해 전미대학체육협회(NCAA)가 7월부터 대학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이름, 이미지, 초상(NIL)’을 이용해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학 스포츠계의 큰 변화로, 곧 대학 운동선수의 NFT가 홍수처럼 쏟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AP통신이 선정한 올해의 남자 대학농구 선수인 루카 가르자(아이오와 대학)는 NCAA 토너먼트에서 패하고, 일주일 만에 자신의 NFT 판매에 나서기도 했다.

NBA 스타이자 암호화폐 지지자인 스펜서 딘위디는 NFT에 관심을 갖는 선수들이 늘수록 빅리그도 NFT를 적극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어떤 리그도 그들이 제어할 수 없는 곳으로 선수들이 앞질러 달려가는 상황이 발생하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라는 그의 주장이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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