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SA 한국프로스포츠협회

Vol. 18 2025

글.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

축제를 기억에 남기는,
아이덴티티 디자인

축제의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축제는 단순히 놀고 먹는 일탈 행위가 아니다. 언제나 공동체의 안영을 위해 열렸고,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또 권력자들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민중들에게 잠시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하게 해주는 당근 같은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축제는 산업과 결합했다. 특히 영화, 음악, 예술, 음식과 같은 문화행사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단발적인 행사로 끝나는 게 아니라 며칠에 걸쳐 이어지면서 대규모 군중을 흡입하며 거대한 지역 행사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오늘날의 축제는 단기간에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사라지는 순간적인 행사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무형의 축제도 마치 기업의 구체적인 상품처럼 하나의 형태를 부여해야 한다.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가방은 그 물리적인 상품 자체가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강력한 요소다. 반면에 축제란 물리적인 상품이라기보다 서비스에 가깝다. 서비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축제 기간 동안 경험하게 될 각종 물리적 요소들에 일관된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적용해 참여자의 기억에 남기는 것이 축제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역할이다.

축제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축제의 고유한 성격을
시각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첫 번째 과업이다.

축제를 브랜드로 만드는
디자인의 힘

이것은 서비스라는 경험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음식축제로 예를 들어보자. 음식축제는 음식을 시식하고 그 맛을 음미하는 것이 주요 경험이다. 그 경험은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참여자에게 이런 경험을 선사하려면 많은 물리적 요소가 필요하다. 시식 공간, 음식을 먹는 도구들, 축제 기간에 동원되는 특별한 무대나 차량, 축제 장소의 경계를 만드는 담벼락, 그리고 행사 진행 요원들이 입는 유니폼 같은 것들이다. 바로 이런 물리적 요소들을 통해 참여자는 축제를 기억한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토마토 던지기 축제로 유명한 ‘라 토마티나(La Tomatina)’에서는 축제 참여자들이 올라타 토마토를 던지는 트럭이 아주 중요한 물리적 요소다. 이 트럭은 늘 표면이 붉은색으로 칠해지는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런 여러 물리적 요소들을 일관되게 하나의 이미지로 만든다면, 통일된 이미지의 힘으로 축제는 하나의 브랜드로 각인되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로 묶으려면 기본적인 아이덴티티 요소가 모든 물리적 대상에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한다. 기본 아이덴티티 요소로는 로고와 컬러 시스템, 타이포그래피, 기본 그리드와 레이아웃, 마스코트를 비롯한 상징물과 패턴, 그래픽 모티프 등이 있다.

축제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잠재적인 고객도 있다. 따라서 인터넷 홈페이지나 모바일 앱, SNS와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도 일관된 디자인을 적용해야 한다. 축제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이와 같은 일련의 작업을 통해 축제의 고유한 성격을 시각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첫 번째 과업이다. 그 다음은 브랜드의 인지도와 파급력을 높이는 것이다.

스페인의 토마토 던지기 축제의 트럭은 늘 표면이 붉은색으로 칠해져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 Google 이미지

롤라팔루자 축제의
아이덴티티 디자인

2016 롤라팔루자 로고 ⓒ Lollapalooza

아이덴티티 디자인이 축제에 어떻게 일관된 이미지와 형태를 부여하는지 롤라팔루자(Lollapalooza) 축제의 사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롤라팔루자는 미국의 대형 음악축제다. 1991년에 투어 형식으로 시작되었고, 2005년부터 시카고가 영구적인 개최지로 결정되었다. 2023년에는 4일간 45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얼터너티브 록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지만, 다양한 음악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음악축제로 발전했다.

독특한 이름 롤라팔루자는 ‘굉장히 인상적인 사람, 사물 또는 사건’을 의미하는 고어다. 동시에 ‘매우 큰 막대 사탕(lollipop)’이라는 뜻도 있다. 발음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 맞게 로고 디자인도 기계적인 활자를 쓰지 않고 손으로 짜깁기 한 듯 높이와 폭이 들쭉날쭉하다.

이는 세련된 주류문화에 맞서고자 투박하더라도 직접 자기 손으로 할 것을 요구한 DIY 펑크 문화를 반영한다. 이름과 로고만으로도 대안적이고 자유분방한 롤라팔루자의 정체성을 잘 전달한다.

2023년의 큰 성공에 고무돼 2024년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이 음악제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했다. 디자인은 롤라팔루자의 오랜 파트너인 섬오디파일럿(Someoddpilot)이 맡아 인디 밴드 문화를 반영하여 거칠게 색종이를 오려 붙여 만든 듯한 구성으로 시각 이미지를 디자인했다. 이 메인 이미지를 축제 장소인 그랜트 파크의 펜스, 무대 위의 대형 스크린, 포토존, 배너, 명찰, 손목밴드, 안내 책자, 그리고 웹사이트까지 일관되게 적용했다.

시각 이미지들은 조금씩 다르게 변주되었지만 누구나 뚜렷하게 하나의 정체성을 느낀다. 페이퍼 컷아웃(종이를 오려 붙이는 미술 기법) 스타일, 잉크젯 프린터에서 나온 듯한 굵은 선, 거친 사진, 원시미술 같은 기호, 그리고 세련되기보다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컬러의 조합이 그것이다. 이로써 음악축제가 지향하는 대안 록문화의 정체성을 적절하게 표현했다. 이는 축제의 관객은 물론 먼 곳에서 온라인을 통해 이 축제를 간접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의 이미지를 남김으로써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2024 롤라팔루자 ⓒ @Lollapalooza

축제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효과

#1. 정체성 확립과 차별화 #2. 인지도 향상 #3. 경험 효과

#1
정체성 확립과 차별화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이 해당 축제에는 어떤 효과를 낳을까? 첫 번째는 정체성 확립과 차별화다. 특정한 축제의 로고나 그 축제의 컬러 시스템을 보면 다른 축제와 분명히 차별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이는 패키지를 인식하는 것과 비슷하다. 신라면이나 진라면은 그 이름으로 식별하는 것이 아니라 패키지의 색채로 단숨에 인식된다. 축제 역시 로고라는 압축된 상징 체계와 고유한 컬러 시스템으로 인식될 수 있다.

2023년 선댄스 영화제의 로고는 16:9 비율의 스크린을 모티프로 한 메인 이미지를 다양하게 변형하여 축제의 여러 장소에서 사용했다. 강렬한 색채와 영화 축제라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차별화된 아이덴티티를 창조했다.

2023 선댄스 영화제 아이덴티티 ⓒ portorocha.com

#2
인지도 향상

두 번째는 인지도 향상이다. 축제 브랜드의 로고는 행사 기간에 여러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공식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 SNS에서는 언제든지 볼 수 있다. 또한 행사 기간에는 참가자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현장 사진을 업로드 함으로써 바이럴 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로고는 더욱 독특하게 디자인될 필요가 있다.

영국의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은 연극, 음악, 무용 등을 포괄하는 예술축제다. 매년 다른 컬러 조합으로 메인 이미지를 제작하지만, 노란색 바탕에 검정색 로고의 결합이라는 정체성은 언제나 지키고 있다. 이러한 지속성으로 인해 커다란 노란색 바탕에 검정색 글자만 봐도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이 연상되는 효과를 낳는다.

노란색 바탕에 검정색 로고의 결합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홈페이지

#3
경험 효과

세 번째는 ‘경험 효과’다.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체험하는 환경’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무대, 안내 사인, 티켓, 굿즈까지 동일한 톤앤매너로 관객은 하나의 세계 안에 들어왔다는 몰입감을 느낀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는 1810년 바이에른 왕국 왕세자의 결혼을 기념하는 것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지역축제로 지속되었다. 지금은 맥주를 중심으로 한 음식과 바이에른주 문화축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 축제의 정체성은 바로 축제가 열리는 거대한 맥주 텐트(Festzelte)다. 축제에 참여하는 맥주 회사들이 자사의 정체성에 맞게 축제 기간에 지었다가 축제가 끝나면 해체하고 자재를 보관하고 있다가 다음해에 다시 조립해서 짓는다. 목재로 만든 텐트는 수천 명을 수용하는 연회장과 공연을 하는 무대로 구성되어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한 공간 안에서 건배하고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집단적인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면서 그런 경험을 했던 공간인 맥주 텐트를 영원히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트 ⓒ Wikipedia

주목받는 축제 아이덴티티 디자인 트렌드

#1. 유연성 겸비 #2. 지역성·문화적 개성 강조 #3. 디지털 친화

#1
유연성 겸비

다음은 최근의 축제 아이덴티티 디자인 트렌드를 알아본다. 첫째는 유연성을 겸비한 아이덴티티 디자인 시스템이다. 21세기 초반까지도 기업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완고할 정도로 철저하게 획일화된 디자인을 지켰다. 하지만 2000년대 구글이 올림픽과 같은 행사나 국가 기념일, 또는 위대한 인물의 탄생 같은 날을 축하하고자 로고를 변형하는 구글 두들(Google Doodle)이 본격화되었다. 이때 구글의 로고는 어떠한 변형도 수용할 정도로 관대하다. 이런 변형은 소비자들에게 구글 로고를 권위적으로 보기보다 친근하게 여기는 태도를 만들어주었다. 이것인 기업 브랜드에도 영향을 주어 로고를 변형하지는 않더라도 유연한 어플리케이션을 수용하게 된 것이다. 축제 브랜드에서는 이를 더욱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선댄스 영화제는 로고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매년 다양한 색상 팔레트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로고 자체도 자주 변형된다. ⓒ 선댄스 영화제

#2
지역성·문화적
개성 강조

둘째는 지역성과 문화적 개성을 강조하는 디자인이다. 축제는 지역에 바탕한 경우가 많다. 옥토버페스트처럼 수백 년 동안 지역의 전통이 된 축제도 있지만, 역사가 짧은 축제도 현지 고유의 문화 요소들을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각 지역 축제는 자신만의 로컬 스토리와 전통을 시각화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한다.

인도네이사의 최대 음악 축제인 싱크로나이즈 페스티벌 2022는 주제를 ‘로컬, 목소리를 내다’로 정했다. 이에 부응하고자 그래픽 디자이너가 인도네시아인의 일상 생활 모습을 활용한 일러스트레이션에 원색의 강렬한 색감을 입혀 활기찬 시각 아이덴티티를 만들었다. 그 이후로도 싱크로나이즈 페스티벌은 화려하고 야한 컬러와 인도네시아 토착 문화를 상징하는 사물들을 결합한 이미지를 활용해 지역성과 정체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싱크로나이즈 페스티벌 2025 아이덴티티 이미지 ⓒ synchronizefestival.com

#3
디지털 친화

마지막으로 디지털 환경과 인터랙티브 디자인의 활용 사례가 늘고 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축제가 온라인 홍보와 가상 경험을 강화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디지털 친화적인 아이덴티티 디자인이 중요해졌다. 웹사이트, 모바일 앱, SNS에서 움직이는 그래픽 모티프와 모션 로고 등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코첼라(Coachella)는 캘리포니아 인디오에 있는 엠파이어 폴로 클럽에서 열리는 음악예술축제다. 이 클럽은 코첼라 밸리에 위치한 콜로라도 사막에 자리잡고 있다. 2026 행사 홍보를 위해 주최측이 만든 애니메이션은 코첼라가 열리는 장소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행사장의 상징과도 같은 관람차, 사막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의 특성을 반영한 선인장, 야자수, 열기구, 그리고 음악을 상징하는 음표와 기타를 포함시켰다.

사막 속 자연 환경을 암시하는 거대한 야자수 나무와 코첼라를 대표하는 작품인 ‘스펙트라(Spectra)’를 형상화했다. 이런 요소들이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으로 축제를 알리고 축제가 열리는 장소성을 반영하고 있다.

2026 코첼라 음악 축제의 모션 그래픽 이미지 캡처 ⓒ @coachella

축제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단순히 ‘보여주는 것’을 넘어,
참여자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경험을
설계하는 일이다.

지속가능한
축제를 위한
아이덴티티 디자인

축제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단순히 ‘보여주는 것’을 넘어, 참여자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경험을 설계하는 일이다. 그 디자인은 축제의 철학과 개성을 담아내며, 현장은 물론 온라인 공간에서도 일관된 이미지를 통해 브랜드를 완성한다. 지속가능한 축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처럼 디자인이 만드는 정체성과 경험의 힘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