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민아
동아일보 산업1부 기자
1인 가구가 대한민국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가족 중심의 소비 시대는 저물고, 혼자 사는 소비자가 유통 시장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국내 1인 가구 수는 사상 처음으로 1,000만을 넘어섰다. 3~4인 가족 가구 수를 합친 것보다 1인 가구 수가 많다. 1인 가구는 이제 가장 흔한 가구를 넘어 우리 사회의 ‘대세’가 됐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인구 구조의 전환을 넘어, 유통 산업 전반의 판을 새롭게 짜고 있다. 과거에는 ‘4인 가족 기준’으로 제품과 서비스가 기획됐다면, 이제는 ‘1인 맞춤형’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소용량, 개인화는 이 시장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하고 있다.
출처: 통계청, 2025 인구총조사
1~2인용 미니 밥솥 ⓒ 쿠쿠
식품과 가전 시장에서는 ‘1인분’ 기준 제품이 빠르게 보편화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JAJU)’는 1인용 요리컵 시리즈를 통해 시장의 호응을 얻고 있다. 전자레인지 하나면 솥밥, 계란찜, 국 등 다양한 요리를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어 혼자 사는 소비자들의 일상에 밀착된 제품으로 평가된다.
가전 업계도 흐름을 같이한다. 가전 브랜드 미닉스는 미니 식기세척기 올해 상반기(1∼6월)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약 200% 증가했다고 밝혔다. 미니 식기세척기는 1~2인 가구를 겨냥해 출시한 제품이다. 쿠첸, 쿠쿠, 신일전자 등은 기존 대용량 중심의 제품에서 벗어나 1~2인용 미니밥솥을 내며 시장의 호응을 얻고 있다.
초소형 정수기 출시도 잇따르고 있다. SK매직은 협소한 공간에도 설치가 가능한 ‘초소형 플러스 직수 정수기’를 선보였으며, 독일 친환경 브랜드 브리타는 1인 가구 맞춤형 미니 정수기 ‘리켈리’ 신규 컬러 모델을 1인 가구가 많은 한국, 일본에서만 냈다.
편의점 업계는 1인 가구 증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통 채널이다. 이마트24는 올해 7월 국내 과일 프랜차이즈 ‘오롯’과 손잡고 신선한 커팅 및 소용량 과일 등을 구매 가능한 무인 과일냉장고 ‘핑키오’를 도입했다.
한편, 냉동 과일은 팬데믹 이후 수요가 급증하며 편의점의 새로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상 기후로 생과일 가격이 오르면서 1인 가구를 중심으로 냉동 과일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냉동 과일 수입량은 2019년 대비 약 70% 증가한 7만9436t으로 역대 최대치였다. 1인 가구 이용 비중이 높은 편의점에서 냉동과일 판매 증가가 두드러진다. GS25는 지난해 냉동 과일 매출이 24% 늘었고, CU는 같은 기간 냉동과일 매출이 176% 증가했다.
커피 프랜차이즈 역시 컵빙수 형태로 1인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메가MGC커피는 ‘망빙 파르페’, ‘팥빙 젤라또’ 등으로 누적 판매량 270만 개를 기록했으며, 할리스, 컴포즈커피, 이디야 등도 잇따라 컵빙수 제품을 선보이며 여름철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소용량 과일 구매 가능한 무인 과일 냉장고 ‘핑키오’ ⓒ 이마트24
최소 주문금액을 없앤
‘한그릇’ 카테고리 홍보 이미지
ⓒ 배달의민족
배달 시장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배달의민족은 지난 4월 ‘한그릇’ 카테고리를 통해 BBQ 치킨 1인 세트를 선보이며, 전통적으로 여럿이 나눠 먹던 음식을 1인 메뉴로 재해석했다. 혼자 먹기 편한 메뉴 구성이 늘어나면서, 1인 전용 배달 서비스는 전국 단위로 확산되고 있다. 최소 주문금액을 없애, 굳이 추가 메뉴를 주문해야 했던 불편함을 개선하고 주문 과정을 간소화해 편의성을 크게 높였다. 이후 70여 일 만에 사용자 1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가구업계도 1인 소비자 중심으로 재편 중이다. 한샘은 원룸과 오피스텔에 적합한 미니 암체어 ‘도도 부클 패브릭’을 출시했으며, 소파, 침대, 수납장 등 다양한 제품들도 공간 효율성과 조립의 간편함을 강조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소형 주거 트렌드에 맞춘 실용적 제품군은 이제 가구 시장의 필수 라인업이 되고 있다.
원룸과 오피스텔이 적합한 미니 암체어 ⓒ 한샘
통계청은 2030년 전체 가구의 35.6%, 2050년에는 39.6%가 1인 가구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전통적인 4인 가구 비중은 2022년 14.1%에서 2052년에는 6.7%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유통업계가 기존의 ‘가족 중심’ 전략을 유지한 채 살아남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유통산업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제품의 소형화, 유통 채널의 세분화, 마케팅의 개인화는 이제 유통업계의 새로운 기본값이 되고 있다. 1인 가구는 더 이상 ‘특수한 타깃’이 아니라, 일상의 중심 소비자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의 소비는 작지만 분명하며, 때로는 더 깊고 세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