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은경
미디어랩 나무 대표. 외국계 홍보대행사와 공공 홍보대행사를 거쳐 공기업 홍보전문위원으로 근무하며, 언론홍보, 공공캠페인, 이슈 매니지먼트에 이르기까지 20여 년간 다양한 홍보 경험을 쌓아왔다. <한권으로 끝내는 공공홍보 이론부터 실전까지> 저자
요즘 세대가 말하는 ‘나다움’이란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고, 타인과 구별되는 독특한 개성을 표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은 자연스럽게 소비 패턴에 반영되어, 결국 브랜드를 선택하는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점에서 구글과 젠틀몬스터의 협업은 기술이 구현한 개성 표현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젠틀몬스터는 이미 ‘개성’과 ‘자기표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매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단순한 안경점이 아닌 예술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여기에 구글의 압도적인 기술력이 더해졌다. 구글은 AI 스마트 안경과 같은 차세대 디바이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기술 혁신을 지속해 왔으며, 실제로 2019년부터 젠틀몬스터와 증강현실(AR) 스마트글래스 개발을 위한 협력을 진행했다. 심지어 젠틀몬스터 운영사 지분을 인수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 최첨단 기술력과 독보적인 디자인, 그리고 ‘나다움’을 표현하는 젠틀몬스터의 강력한 브랜드 가치가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요즘 세대에게 스마트 안경이 단순한 기능성 기기를 넘어, 젠틀몬스터 특유의 감성을 통해 ‘힙’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패션 아이템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기술로 무장한 미래 디바이스에 ‘나다움’이라는 가치를 입히는 것, 이것이 다음 세대를 사로잡는 마케팅 전략의 핵심이 될 것이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소비 트렌드는 ‘물건 구매’에서 ‘경험 소비’로, 나아가 ‘행복 소비’로 진화하고 있다. 도파민이 주는 긍정적인 경험과 순간적인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도파밍(Dopamine + Farming)’이 그 증거다. 브랜드들은 이러한 소비자의 변화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단순히 제품을 진열하는 것을 넘어, 몰입감 있고 ‘플레이어블(playable)’한 경험을 제공하는 마케팅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올리브영의 팝업스토어 사례는 이러한 경험 중심 마케팅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지난 7월 한 달간 진행된 ‘트렌드팟 바이 올리브영 홍대’는 산리오캐릭터즈와 협업한 ‘바캉스’ 콘셉트로 꾸며져 성황을 이뤘다. 또한 ‘올리브영 홍대 타운’에서는 헬로키티가 더마 스킨케어 브랜드를 소개하고 상담하는 이색 팝업스토어가 운영되며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특히 3만여 명이 참여해 대성황을 이룬 올영 페스타는 ‘체험이 곧 마케팅’임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3,500평의 한강 노들섬에서 펼쳐진 ‘보물섬’ 콘셉트 축제는 108개 화장품 브랜드 체험, 원데이 클래스, 뷰티 큐레이션 존, 인디 뮤지션 버스킹 등 오감 체험 요소로 관객들의 몰입과 호응을 이끌어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달리기 커뮤니티 앱 ‘롱기스트 런’을 통해 ‘환경 보호’와 ‘건강 관리’를 동시에 잡았다. 사용자가 앱을 켜고 실제 달리기를 하면 GPS로 거리가 자동 측정되는데, 누적 거리가 일정 기준을 넘으면 현대차가 환경단체 ‘트리 플래닛’과 협력해 실제 나무를 심는 ‘숲 조성 프로젝트’에 기부하는 방식이다. 2024년 기준으로 총 50만 그루 이상의 나무가 심어졌으며, 최근에는 전기차 충전소와 연계해 ‘탄소 배출 제로 숲’ 조성을 목표로 한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혼자서도 즐길 수 있지만, 친구와 함께 ‘가상 마라톤’에 참여해 실시간 랭킹을 겨루거나, 유명 마라톤 선수가 출연하는 ‘30일 챌린지’ 영상을 통해 동기부여를 받을 수도 있다. 올해는 메타버스 기능을 도입해 가상 공간에서 아바타로 달리기 대회를 열고, 우승자에게는 NFT 인증서와 현대차 대리점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등 ‘디지털 경험’과 ‘현실 보상’을 결합한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 현대자동차그룹 뉴스룸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사업’이라는 명확한 철학을 바탕으로 지속가능성 경영의 모범을 보여준다. 이들은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는 제품 생산 방식을 고수하며, 낡은 옷을 수선하여 오래 입도록 장려하는 ‘수선 캠페인’을 펼친다. 심지어 블랙 프라이데이에는 “Don’t buy this jacket(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역설적인 광고를 통해 무분별한 소비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파타고니아는 매출의 1%를 환경 보호 활동에 기부하고, 공정 무역 인증을 받은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며 사회적 책임까지 다한다. 이러한 일관되고 투명한 실천은 소비자들이 파타고니아를 단순한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가 아닌, 환경 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파타고니아의 이러한 마케팅은 제품이 아닌 신념을 파는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 파타고니아
요즘 세대의 소비 트렌드를 관통하는 네 가지 핵심 키워드는 ‘정체성 표현’, ‘긍정적 경험’, ‘커뮤니티 연결’, ‘가치 소비’이다. 프로스포츠 산업이 이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혁신한다면, 단순한 경기 관람을 넘어 팬들의 삶에 깊숙이 스며드는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구글과 젠틀몬스터의 협업처럼, 프로스포츠도 첨단 기술을 활용한 몰입형 경험으로 팬들을 사로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팬들은 VR 기기를 통해 마치 경기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360도 카메라로 촬영된 경기 영상은 관중석의 함성, 선수의 숨소리, 코트의 질감까지 재현해내며 현장감을 전달한다. 또한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선수 아바타가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가상 팬 미팅을 개최한다면, 해외 팬들도 물리적 거리 없이 스타 플레이어와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은 단순한 편의를 넘어 새로운 차원의 감동을 선사하며,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관심을 끌어모을 것이다.
올리브영 팝업스토어의 ‘플레이어블’ 경험처럼, 프로스포츠도 직접 참여하는 경험으로 팬심을 자극해야 한다. 경기장에서만 느낄 수 있던 열기를 일상 속에서도 경험할 수 있도록, 선수 훈련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자. 팬들은 프로 선수들과 함께 드리블, 슈팅, 수비 훈련을 받으며 자신의 실력을 비교하거나, 선수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 또한 모바일 앱에서 가상 경기 시뮬레이션을 개발해 팬들이 자신의 선택으로 경기 결과를 바꿀 수 있게 한다면, 단순한 관람을 넘어 게임처럼 즐기는 참여형 콘텐츠가 될 것이다. 여기에 경기 종료 후 선수와의 즉석 Q&A 세션이나 사인회를 결합하면,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팀과 더욱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차 ‘롱기스트 런’은 달리기 커뮤니티를 통해 개인의 목표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달성했다. 프로스포츠도 팬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초대해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먼저 팬 참여형 앱을 개발해 누적 관람 횟수, 응원 메시지 작성, 현장 이벤트 참여 등 활동을 포인트로 적립하고, 이를 NFT 인증서나 한정판 굿즈로 교환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하자. 또한 메타버스 내에 가상 응원 광장을 만들어 경기 중 팬들이 아바타로 모여 실시간으로 응원가를 부르고, 승리 시 축하 폭죽이 터지는 인터랙티브 환경을 조성한다면, 오프라인 경기장의 열기를 디지털 공간에서도 재현할 수 있다. 이런 참여형 활동은 팬들이 자발적으로 SNS에 공유하며 바이럴 효과를 일으키고, 팀과 팬이 함께 만들어가는 스토리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할 것이다.
파타고니아의 지속가능성 철학처럼, 프로스포츠도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마케팅 전략에 녹여내야 한다. 경기장을 친환경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어떨까? 태양광 패널 설치, 재활용 소재 활용, 일회용품 금지 정책을 도입해 탄소 중립 경기장을 만들고, 이를 홍보 포인트로 삼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청소년 스포츠 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사회와 상생하는 모델을 구축하자. 브랜드의 철학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MZ세대의 마음을 얻는 지속가능한 마케팅이 완성된다.
요즘 세대는 ‘나’의 개성을 중시하지만, 동시에 연결과 공감을 갈구한다. 그들은 기술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즐기고, 직접 참여하며, 사회적 의미를 찾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주체다.
프로스포츠 마케팅이 이들의 니즈를 선제적으로 포착해낼 때, 미래의 팬덤은 더욱 강력하고 지속가능해질 것이다. 경기장을 넘나드는 디지털 경험, 함께 만들어가는 가치 있는 스토리, 그리고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하나로 뭉치는 커뮤니티. 이것이 바로 요즘 세대가 열광할 프로스포츠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