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SA 한국프로스포츠협회

Vol. 18 2025

글. 강성엽

프리랜서 에디터. 예술잡지, 리빙잡지, 라이프스타일 잡지 등에서 에디터로 일했다. ‘라이프스타일’이라 부르는 동시대 현상을 취재하고 가공해서 정보 형태로 만든다. 2025년 현재 <노블레스 웹 매거진>, <월간사진예술>에 정기 기고 중이다.

AI가 창조하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중간중간 스마트폰으로 SNS 숏폼을 보는 일이 잦다. 현대인의 흔한 습관처럼 스크롤을 정처 없이 내리다 보면 유독 자주 보이는 영상들이 있다. 요 며칠 동안 유리 과일 자르기, 용암 먹방, 키보드 타자 소리 같은 ASMR 기반 시청각 영상이 눈에 띄게 늘었다. 조회수와 ‘좋아요’ 반응도 꽤 높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보니 대부분 구글이 최근 공개한 동영상 생성 AI 도구 ‘비오3(Veo3)’로 만든 가상의 영상이었다. ‘이걸 왜 보고 있나’ 싶으면서도, “서걱서걱” 잘리는 소리와 단단한 유리가 칼로 싹둑 잘리는 장면이 은근한 쾌감을 줘서 끝까지 보게 된다.

“이거 AI 영상이네” 아직까지 대중의 평가는 AI가 만든 실사화 영상이 어딘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표현 때문에 티가 난다고 말한다. 유리 과일도 용암도 실제를 흉내낸 듯한 인상은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야 할 지점은 ‘용암이 실제처럼 생겼네’가 아니다. ‘사람이 용암을 먹으면 진짜 저런 소리가 나겠구나’ 하는 데 있다. AI는 이제 현실을 모방하는 수준 이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나 소리를 그럴듯하게(더 나아가 착각할 만한) 수준으로 창조하기 시작했다.

구글 제미나이를 이용해 만든 유리과일 ASMR 예시 이미지 AI로 만든 용암 먹방 영상 © @lucy.ai07

AI가 바꾸는
영상 제작 생태계

그사이 실사화 표현 완성도도 상당 수준 발전했다. 용암 먹방 영상을 처음 봤을 때, 용암에만 시선이 쏠린 나머지 그걸 먹는 사람까지 AI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다시 보면 어색하지만 무심코 보면 정말 사람 같다. 제주도청이 도정 정책과 소식을 전하는 영상 뉴스에 도입한 AI 아나운서 ‘제이나(J-NA)’도 비슷하다. 챗GPT가 작성한 원고를 AI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가상 인간이 실제 아나운서처럼 말하고 움직이는데 자연스러운 표정과 발화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AI는 이렇게나 빠르고 조밀하게 우리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난다는 건, 곧 새로운 기회의 확장이다. 디테일한 연출이 필요 없는 숏폼 촬영, 기초적인 편집 기술로 제작 가능한 비디오 클립의 경우 AI는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다. 여기서의 실력 지표는 속도. 인간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양의 산출물이 몇 초 만에 나온다. 영상 제작에 필수 인력이었던 PD·작가·카메라·조명 감독 등 필요한 거의 모든 역할을 AI 혼자 수행하는 셈이다. AI별로 특기가 다르니 소라·베오·지니3 등 각자 다른 AI에게 각기 다른 과업을 주는 경우도 많다.

제주도청 AI 아나운서 제이나(J-NA) © 제주특별자치도 유튜브

AI 영상은 이제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닌
브랜드와 소비자가
소통하는 새로운 언어다.

선택 아닌 필수,
AI 마케팅 성공의 비결

AI 생산물을 하나의 장르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AI 자체를 일종의 툴(Tool)로 보는 견해도 있다. 가상현실이나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영상은 이미 CG로 구현할 수 있었으니까. AI는 그 과정에서 시간과 수고를 크게 줄여주는 도구로써 역할하는 것이다. 그 결과, 시각적으로 재밌고, 주목도 높은 콘텐츠가 대량 생산될 수 있었고 이는 콘텐츠 제작 관점에서 효율성과 비용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했다. 대중의 관심과 집중이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마케팅 업계에서 AI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스포츠 산업에서도 선수 하이라이트 영상, 팬 참여 이벤트, 가상 경기 해설 등 팬 경험을 확장하는 데 AI 영상은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팬 경험을 넓히고, 구단과 스폰서 모두에게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어줄 수 있다.

AI 영상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기업도 있다. 2024년 빙그레는 옥중 순국해 죄수복 차림으로 남은 87명의 독립운동가 사진을 AI로 복원해 한복을 입혔다. 한복 전문가와 협업한 실제 맞춤 제작 한복을 입고 광복을 맞이하는 장면을 담은 캠페인 ‘처음 입는 광복’이다. 이 영상은 공개 보름 만에 조회수 350만 회를 돌파했고,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PR 부문 금상과 이노베이션 부문 동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당시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함성’을 AI 기술로 재현한 캠페인도 선보였다. 빙그레의 캠페인은 기술 혁신과 감동을 모두 담아낸 대표적인 AI 마케팅 성공 사례로 꼽힌다.

2024 빙그레+국가보훈부의 ‘처음 입는 광복’ 캠페인 포스터 © 빙그레

2025 빙그레+국가보훈부의 ‘처음 듣는 광복’ 캠페인 포스터 © 빙그레

AI 콘텐츠,
기술보다 중요한 건 ‘진정성’

AI 영상은 이제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닌 브랜드와 소비자가 소통하는 새로운 언어다. 중요한 건 기술의 진보 자체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신뢰’와 ‘가치’로 연결하느냐이다. 소비자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 여전히 재미와 감동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찾는다. AI 콘텐츠는 기술의 완성도뿐 아니라, 메시지의 진정성과 브랜드의 정체성을 어떻게 담아낼지가 핵심이다. 윤리적 경계와 창의적 도전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브랜드만이 앞으로의 AI 영상 시장에서 신뢰와 주목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