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희선
일본 트렌드 칼럼니스트이자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생활에 밀접한 소비재와 리테일 산업에 대한 칼럼을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도쿄 리테일 트렌드>, <공간, 비즈니스를 바꾸다> 등의 책을 썼다.
오시카츠 굿즈 엑스포 전경 © 전시회 홈페이지 영상 캡처
2025년 7월, 일본의 도쿄 빅사이트에서는 ‘오시카츠 굿즈 EXPO’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열렸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 오시카츠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던 이 행사는 지난해 7월에 처음 열린 이후, 반응이 좋아 올해도 다시 개최된 것이다.
오시카츠는 일본어로 ‘좋아하는 대상’을 의미하는 ‘오시(推し)’와 ‘활동’을 뜻하는 ‘카츠(活)’를 합친 말로,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애정과 지지를 보내는 활동, 즉 ‘덕질’을 의미한다. 연예인·캐릭터·상품 등 응원하고 싶은 대상을 중심으로 한 활동으로, 한국어로는 ‘최애 활동’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오시카츠는 일부 열성 팬들만 하는 활동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크게 늘었다. 오시의 대상 역시 점점 다양해져, 이제는 연예인뿐 아니라 음식점, 브랜드, 특정 캐릭터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모양새다.
일본의 광고 대행사인 하쿠호도가 2024년 2월 발표한 <오시노믹스 리포트>에 따르면, 일본인 3명 중 1명(34.6%)이 ‘오시’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조사에 응한 10~69세의 응답자 1,380명이 소득의 37.4%, 여가시간의 38.8%를 오시카츠에 쏟고 있다는 점이다.
오시카츠는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본의 시니어 여성 잡지 <하루메쿠>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50대 이상 여성의 46.1%가 ‘오시가 있다’고 답했으며, 이들의 연간 평균 지출액은 10만 엔(약 94만 원)을 넘어섰다. 이들이 지지하는 대상 역시 아이돌·배우·운동선수 등으로 다양하며 응원의 방식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이제 ‘좋아함’과 ‘응원’이라는 감정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소비의 중요한 동기가 되고 있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오시카츠 활동은 행복감을 높이는 데도 기여한다. 오시카츠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행복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았는데, 이는 지지하는 대상을 통해 타인과 연결됨으로써 ‘사회적 욕구’가 충족되고, 자신의 응원이 인정받을 때 ‘승인 욕구’도 채워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업계 전반에서도 오시카츠를 마케팅 전략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쓰비시 UFJ 은행은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해 인기 아이돌 캐릭터를 자사 모바일 앱에 도입할 예정이다. 금융이라는 전통적이고 딱딱한 영역에 캐릭터를 접목시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려는 전략이다. 이온 은행은 ‘서브컬처 론’이라는 이름의 이색 대출 상품을 출시했다. 콘서트 원정, 굿즈 구매, 티켓 구입 등 팬 활동 자금을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 상품은 최대 700만 엔(약 6,6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며, 실제 이용자의 약 70%가 오시카츠 관련 활동에 자금을 활용하고 있다.
JR의 누마즈 게스트 오시 캠페인 2025 © JR
일본 철도회사들도 오시카츠 트렌드에 주목하고 있다. JR 도카이는 2023년부터 ‘오시타비(推し旅, 팬 여행)’라는 관광 캠페인을 본격 전개하며, 인기 애니메이션과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팬과 지역을 연결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누마즈시는 애니메이션 <러브라이브! 선샤인!!>의 실제 배경이 된 지역으로, 작품속 장소들을 직접 방문하는 ‘성지순례’로 팬들을 끌어모았다. 특히, 누마즈시는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을 현실 공간에 접목한 테마 장식과 스탬프 랠리를 마련해, 약 3만 명의 팬을 지역으로 유치했다.
© shutterstock
최근 일본에서는 오시카츠를 더욱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응원 광고를 게재하거나, 응원 활동에 따라 포인트를 보상받는 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이나 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휴대폰 충전 스테이션 ‘차지 스폿(ChargeSPOT)’은 최근 ‘치어 스폿(CheerSPOT)’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개인이 손쉽게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 전자 광고판)에서 응원 광고를 송출할 수 있게 한 것으로, 팬은 전용 웹사이트에서 아티스트를 선택하고, 이미지와 광고의 위치와 시간을 설정하면 된다. 지하철역 스크린 광고, 편의점 전자메뉴판 등 전국 약 4만 5,000개의 디지털 사이니지에서 원하는 장소를 선택할 수 있고, 광고비는 462엔(약 4,300원)부터 시작한다. 팬은 적은 비용으로 광고를 게재할 수 있고, 수익금의 일부는 아티스트에게 환원된다.
이러한 팬 광고 문화는 원래 한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최근 일본에서도 아티스트의 생일 등을 기념해 지하철역 등 공공장소에 광고를 게재하는 방식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JR 동일본기획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일본의 응원 광고 시장은 약 377억 엔(약 3,500억 원)규모에 이른다. 그러나 기존의 응원 광고는 비용이 많이 들고 허가 절차도 까다로워 진입 장벽이 높았다. 최근에는 인포리치(INFORICH) 같은 기업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면서 팬들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있다.
오시카츠는 이제 단순히 아티스트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지적재산권(IP)을 넘어서 화장품이나 일반 생활용품 등 일반 소비재 분야로도 확장되고 있다. SNS 동영상 마케팅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NEL은 ‘오시나(osina)’라는 서비스를 운영 중인데, 소비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상품을 SNS에 소개하면 보상을 제공하는 구조다. 브이로그(Vlog) 문화와 결합해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자신이 애정하는 브랜드를 홍보하고, 기업은 이를 마케팅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자발적인 콘텐츠 생성(UGC)을 통한 입소문은 열정과 진정성이 담겨 있어, 브랜드 마케팅에도 큰 시너지를 낸다.
인포리치가 개발한 치어스폿과 응원 방법 설명 이미지 © INFORICH
지금 일본에서는 ‘팬심이 있는 곳에 소비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오시카츠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경기 침체기에도 오시카츠 소비는 쉽게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팬들은 경제 상황과 무관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위해 지출을 지속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에는 ‘오타쿠’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회와 동떨어져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듯한 부정적인 이미지의 사람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덕질’이라는 단어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열정적인 태도를 의미하는 긍정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젊은 세대는 자신의 덕질 경험을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공유하며, 개인의 취향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오시카츠를 실천하고 있다.
젊은 세대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시니어들은 최애 소비의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수 임영웅의 팬덤인 ‘영웅시대’는 지역 팬덤을 중심으로 모임을 갖고, 봉사활동, 팬미팅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시니어 팬덤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유통업체인 마루이 그룹의 아오이 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좋아함’이 경제를 움직입니다.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아이돌, 여행, 스포츠 등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물건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그곳에 집중해서 돈을 쓰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의 말처럼 지금 오시카츠는 팬덤을 넘어 문화로, 그리고 소비의 중요한 동인으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