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
© 세븐일레븐
스포츠와 유통 협력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를 꼽으라면 단연 ‘스포츠 카드’다. K리그 파니니카드로부터 시작된 스포츠 카드 열풍은 지난해 ‘KBO 야구카드’가 등장, 300만 팩의 판매기록을 세우며 정점을 찍었다. KBO 야구카드는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KBO와 손잡고 만든 카드다. 스포츠 카드가 대중화된 미국과 달리, 국내는 별다른 아이템이 없었다. 이후 K리그 카드의 성공으로 시장성을 엿본 세븐일레븐이 국내 최대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와 손을 잡았다. 지난해 KBO 프로야구 콜렉션 카드는 출시 전부터 야구팬들 사이에서 화제몰이를 하며, 출시 직후 3일 만에 100만 팩(1팩당 3장)을 모두 완판시켰다. 해당 기간 세븐일레븐의 완구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배 가량 올랐으며,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구매 관련 인증 후기도 쇄도했다. “참지 못하고 81팩 총 8만 1,000원어치 구매했다”, “KBO 야구카드 구하려고 세븐일레븐 5군데를 돌았다” 등 KBO 야구카드를 구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박스깡(박스채로 구매해 안에 든 상품을 일일이 까보는 행위)’에 대한 후기들도 다수 올라왔다. KBO 야구카드로 인해 세븐일레븐 앱의 인근 점포 재고 확인 기능인 ‘우리동네상품찾기’ 또한 해당 기간 검색량이 전월 동기간 대비 6배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지난해 KBO 야구카드의 최종 판매량은 300만 팩에 달했다. 올해는 KBO 리그 10개 구단 선수 및 은퇴선수를 포함해 총 15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전년보다 10명가량 증가한 수치다. 세븐일레븐 생활서비스팀 담당MD는 “프로야구가 유례없는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운데 야구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상품, 서비스 등이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2025 KBO 프로야구 콜렉션 카드 © 세븐일레븐
© 무신사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4월 KBO와 함께 서울 성수동에 ‘KBO 팬 페스타’ 팝업스토어를 차렸다. 5일간 방문객 1만 4,000명이 몰리며 호응을 얻었다. 팝업스토어는 배팅, 도루, 피칭 등 체험형 미니 게임과 함께 프로야구 10개 구단 상품을 전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스파오, 킴스클럽, 뉴발란스 등 브랜드로 유명한 유통 대기업 이랜드는 산하 전시 전문회사 이랜드뮤지엄을 통해 활발한 스포츠 전시 사업을 펼친다. 특히 이랜드 뮤지엄이 모아온 스포츠 스타들의 소장품을 공개하는 ‘위대한 선수전’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데, 지난해에는 NBA 선수들의 애장품을 전시한 ‘위대한 농구선수 75인전’과, 일본의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의 소장품 특별전 ‘SHO-TIME’을 열기도 했다.
올해는 축구 관련 소장품을 활용한 전시 ‘위대한 축구선수 100인전’을 열었다. 2월에는 현대백화점 판교점, 4월에는 롯데몰 김포공항점에서 연달아 진행했다. 두 번째 전시는 첫날 오픈런과 함께 많은 관람객이 몰렸으며, 임형철 해설위원이 스페셜 도슨트를 맡아 눈길을 끌었다. 8월까지 열리는 해당 전시에는 축구 역사를 쓴 위대한 스타 선수들의 유니폼, 우승 트로피 등을 만나볼 수 있다. 1970년 월드컵 우승 트로피인 ‘쥘 리메 컵’뿐만 아니라 △브라질 축구계의 전설 펠레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박지성 △손흥민 등 과거와 현대 축구 역사를 아우르는 선수의 실착 저지를 선보인다.
‘고 팀 무신사 KBO 팬 페스타(FAN FESTA)’ 팝업스토어 © 무신사
부산 사직야구장 세븐일레븐 점포에서 롯데 자이언츠 ‘마! 응원’ 콜라보 상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선 팬들 © 세븐일레븐
롯데 자이언츠는 아예 자체 빵을 선보였다. 롯데웰푸드, 세븐일레븐과 함께 ‘마! 응원 콜라보’ 제품을 내놨다. 빵, 과자, 맥주 등으로 구성됐고, 빵과 과자에는 롯데 자이언츠 선수, 유니폼, 캐릭터 등이 그려진 스티커를 넣었다.
단일 구단 상품이지만 인기는 매우 높다. 5월 2~5일 부산 사직야구장에 위치한 세븐일레븐 점포에 롯데자이언츠 콜라보 ‘마! 응원’ 상품을 구매하려는 고객들이 몰리면서 준비 수량 4만 개가 모두 팔려 나갔다.
‘마! 응원’ 상품은 출시 전부터 소비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세븐일레븐 모바일앱에서 롯데자이언츠 콜라보 상품 검색량이 폭증하면서 ‘롯데’, ‘자이언츠’, ’꼬깔콘’, ‘빵’ 등 관련 상품 검색 키워드가 10위권 안에 모두 들었다. 인근 점포 재고 찾기에서도 ‘세븐셀렉트 마! 거인단팥빵’이 전체 검색 상품 1위에 올랐다.
SNS에서도 소비자들의 뜨거운 관심이 상당했다. 세븐일레븐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조회수 320만 회, 좋아요 10만 개를 기록했으며, “당장 달려갑니다”, ”제발 전국 세븐일레븐으로 판매 확대해달라”등 SNS 및 각종 커뮤니티에서 크게 회자됐다.
롯데 자이언츠의 ‘마! 응원’ 상품 © 세븐일레븐
모기업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특정 구단과 협업하는 사례도 나온다. 두산 베어스와 손을 맞잡은 CU가 대표적인 예다. CU는 두산 베어스 팬들의 별명인 ‘먹산’을 활용한 상품들로 재미를 봤다. 두산 베어스 팬들은 경기가 있는 날에 좌석 매진이 아닌데도 야구장 매점 음식을 매진시켜 ‘먹산’(먹성 좋은 두산)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3월 18일 ‘연세 먹산 생크림빵’을 처음 공개했는데 한 달동안 45만 개가 팔리며 높은 인기를 자랑했다. 5월까지 하이볼, 닭강정, 치킨, 라이스볼, 나초 등으로 협업 범위를 늘리고 있다.
이랜드월드의 패션 브랜드 ‘스파오’도 두산 베어스와 협업한 컬렉션을 출시한다. 약 6만 명이 참여한 ‘2025년 스파오 컬래버레이션 선호도 조사’에서 고객들이 애니메이션 캐릭터 외 카테고리로 스포츠 분야를 가장 선호한다는 의견을 적극 반영한 결과다. 컬렉션은 데님 셔츠 유니폼, 라이트 패커블 윈드브레이커 등 의류부터 키링, 경량 백팩, 볼캡 등으로 구성됐다. 이랜드 스파오 관계자는 “패션과 스포츠에 모두 관심이 많은 팬들의 취향을 반영해 상품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산산기어와 삼성 라이온즈의 협업도 눈길을 끈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산산기어는 최근 1020세대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인 업체다. 지난 2월 18일 산산기어가 삼성라이온즈와 협업해 만든 유니폼, 모자, 바람막이, 슬리브, 가방 등 제품이 공개되면서 야구팬의 관심이 집중됐다. 산산기어만의 감각적이고 독특한 디자인으로 호평이 이어졌다.
래퍼 빈지노의 브랜드로 유명한 아이앱스튜디오는 지난 2023년 KIA 타이거즈와 스폰서십을 맺고 3년째 야구 관련 패션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시즌 중 내놓은 특별 유니폼과 굿즈가 야구팬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특히 지난해 스타로 떠오른 김도영 특별 유니폼은 일주일간 약 100억 원어치가 팔리며 열풍을 일으켰다. 지난 시즌 KIA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아이앱스튜디오도 큰 홍보 효과를 얻었다는 후문이다.
프로야구뿐만 아니다. K리그 역시 선수카드 상품 ‘파니니 카드’로 인기를 몰았고, 최근에는 ‘산리오’와 협업해 저변을 넓히고 있다.
그렇다면 왜 유통가가 스포츠 구단과의 협업에 진심으로 나서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압도적인 ‘팬덤’ 덕분이다. 이들은 합리성보다는 ‘팬심’으로 구매를 결정한다. 또, 해마다 새 상품이 나올 때마다 모으는 재미를 느끼며 상품을 사들인다. 유통업계 입장에선 끊이지 않는 소비자층이 생기는 효과를 얻는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스포츠 협업 상품의 가장 큰 특징은 ‘띠부씰’이다. 팬덤을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 상품의 재미요소를 끌어올리는 굿즈 개념으로 띠부씰이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재미 요소를 갖춘 상품으로 소비자를 모으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스포츠 구단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전략이다. 구단에서 상품을 판매하면 유통망 등에 한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유통업체와 손잡는다면 골목 곳곳에 구단과 협업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이는 곧 홍보효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또한, 젊은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구단의 이미지를 ‘젊게’ 만드는 것도 긍정적인 효과 중 하나다. 한 프로야구 구단 관계자는 “특히 MZ세대 관중이 급증해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와 협업이 더욱 활발해진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