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SA 한국프로스포츠협회

Vol. 17 2025

글. 전미영

트렌드코리아컴퍼니 대표. 2009년부터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리서치 애널리스트와 서울대 소비자학과 연구교수,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을 역임했으며, 트렌드코리아컴퍼니에서 다수 기업과 소비트렌드 기반 신제품 개발 및 미래전략 발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나이 장르 불문,
무해함 전성시대

나의 이름이 곧 제목인 영화가 상영되고, 내 사진으로 만든 이모티콘이 판매 1위에 등극하고, 심지어 해외 팬들이 오직 나를 만나고자 비행기를 타고 찾아오는 정도라면, 해당 인물은 어마어마한 인기 스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누굴까? 바로 대한민국 ‘국민 아기’란 별명이 붙은 판다 푸바오다. 에버랜드에서 태어나 2024년 4월 중국으로 떠난 푸바오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이런 인기는 푸바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은 백팩에 귀여운 키링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닌다. 심지어는 몇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가방에 몇천 원짜리 인형을 매다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의 인형 사랑이 뜨거워지면서 주로 찍는 사진도 ‘인생샷 대신 인형샷’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귀여운 것’들에 대한 인기는 나이를 불문하고 심상치 않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인형 키링 소품숍 이용 건수는 2022년 대비 약 112%가 증가했고, 심지어 소품숍 구매고객 중 4050세대의 이용률도 2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귀엽고, 작고, 순수한 것들에 열광하고, 애정을 쏟고, 몰입하는 모습을 ‘무해력’ 트렌드라 부른다. 사람들이 따르는 준거력을, ‘무해(無害)한’ 존재들이 갖는다는 의미다.

© 에버랜드 © 셔터스톡

출처: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

무해력의 3대 특성

귀여워서 무해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특성에서 무해함을 느낄까? 첫째, ‘귀여운’ 것을 무해하다고 말한다. 요즘 소셜미디어 인기 콘텐츠는 ‘동물’이다. 강아지, 고양이, 앵무새 등 다양한 동물들이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사람 못지않은 팬덤을 누리는 중이다. 사람들은 이들을 보면서 “아, 귀여워!”를 연발하며,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관련 제품을 구매하며 응원을 보낸다. 이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대체로 얼굴이 크고, 몸은 통통하다. 궁금한 표정을 짓는 등 때로 사람이 할 법한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그 반응이 사람과 유사할수록 귀엽다.

서울 성수동과 부산 해운대에 매장을 두고 세계 각국의 치즈와 와인을 큐레이팅하는 치즈 가게 ‘유어네이키드치즈’는 예쁘고 아기자기한 플레이팅으로 유명하다. 너무 예뻐 먹기가 아까울 정도다.

© 유어네이키드치즈 © 유어네이키드치즈

작아서 무해해

다음으로, ‘작은’ 존재를 무해하다고 느낀다. 앙증맞기 짝이 없는 물건을 판매하는 회사 ‘미물즈’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작게 표현해 화제가 되고 있다. 햄버거, 콜라 등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사물을 초미니 핸드메이드 작품으로 만드는데, 성인들의 애착인형으로 제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4년 2월, 잠실에 오픈한 뽑기 매장 ‘가샤폰’은 산리오·짱구·먼작귀(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들) 등의 미니키링과 말랑말랑한 소형장난감 스퀴시를 판매하는데, 4월에는 홍대점까지 연이어 오픈하기도 했다.

© 미물즈 © 미물즈

서툴러서 무해해

마지막으로 약간 ‘서툰’ 행동을 볼 때도 ‘무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유튜브에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외국 음식을 요리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슬기로운 할매생활’ 채널의 콘텐츠가 인기다. 중동 음식 ‘후무스’, 이탈리아 파스타 ‘뇨끼’와 ‘라자냐’, 중국 요리 ‘멘보샤’ 등 어르신들께서 평생 처음 들어보는 메뉴를 요리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제주방언을 쓰며 라자냐 레시피를 읊는 모습이나, 메뉴 이름을 발음하기도 익숙지 않아 몇 번을 되물으시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어 즐거워하시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귀엽다.

© 슬기로운 할매생활 유튜브 © 슬기로운 할매생활 유튜브

부드럽고 순박하면 아저씨도 무해할 수 있다. 김석훈 배우는 ‘나의 쓰레기 아저씨’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쓰저씨’로 활동하며 무해력을 펼치는 중이다. 또 뭔가 부족한 듯, 그냥 대충 만든 듯, 그러면서도 친근한 것들도 무해하다. 카카오 이모티콘샵에서도 대충 그린 것들이 더 인기다.

© 나의 쓰레기 아저씨 유튜브
© 카카오 이모티콘샵

무해함의 3가지 속성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 존재’라는 점이다. 가령, ‘작은’ 사물들은 나보다 왜소해서 내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무해하다고 느낀다. ‘귀엽다’는 속성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귀여움이란 강자가 약자에게 느끼는 권력감정”의 측면이 있음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서 미니어처와 같은 작고 귀여운 대상을 볼 때, “우월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행복감을 느끼며, 그 애정은 이들이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안도감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무해력에 열광하는가

인간으로서의 본능

무해한 존재들을 단지 ‘부정적인 것의 부재’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중요해지는 시대적 배경과 그 특성을 적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무해력을 활용한 효과적 대응이 가능하다.

사람들이 이처럼 다양한 면면을 가진 ‘무해력’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무해함에 끌리는 이유는 이것이 인간으로서 느끼는 당연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존재가 무엇일까? 바로 ‘아기’다. 아기는 작고, 귀엽고, 순수하다는 점에서 ‘무해함의 끝판왕’이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기들만 보면 ‘귀엽다’는 감각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우리는 왜 아기를 본능적으로 좋아하는가? 진화심리학에서는 부모의 양육을 더 필요로 하는 종일수록 새끼의 모양이 귀엽다고 한다. 모습부터 귀여워야 어른들의 보살핌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잘 살펴보면, 우리 주변의 다양한 귀여운 것들은 아기를 닮았다. 예컨대 디즈니의 미키마우스나 밤비, 심지어 최근 유행하는 하츄핑 같은 캐릭터들은 모두 아기와 유사한 외모를 자랑한다. 한 마디로 말해, 아기처럼 무해한 존재는 인간적 호감을 일깨운다.

© 프레시플러시 © 프레시플러시

암울함의 반작용

한편, 경제가 정체되고, 우리를 둘러싼 정치 사회적 갈등은 최고조에 달하면서 사람들은 이를 피해 무해함으로 도피한다. 우선 경기가 좋지 않다. 고물가·고금리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내수부진이 이어지고 특히 자영업의 어려움이 너무나도 크다. 어쩌면 일시적인 경기침체의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저성장이 굳어지면서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낙관이 쉽지 않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가 불길에 기름에 끼얹듯 상황을 크게 악화시켰다. 3년 동안 인간적·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면서 코로나 블루라고 불리는 우울함이 커졌는데, 최근에는 코로나 레드라고 일컬을 정도로 우울함이 분노로 악화되고 있다. 이런 분노의 근저에는 최근 급격히 커지고 있는 나라의 갈등이 자리한다. 세대나 빈부의 격차가 이미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 고질적인 정치적 이념대립은 날이 갈수록 더 격심해지고, 최근에는 남녀 간의 반목도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암울함의 반작용에서 사람들은 귀엽고 순수하고 단순한 대상을 찾아 나선다. 나에게 해를 끼치지도, 위해를 느끼게 만들지도 않는 무해한 존재들은 어쩌면 우리의 긁힌 상처를 아물게 해 줄 안전지대인 것이다.

프로스포츠에도
무해력은 기회요소

무해력 트렌드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무해함의 개념을 확장하는 것이다. 가령, 누군가에게 무해력 열풍은 일부 젊은 세대들의 작고 귀여운 취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원하는 무해함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면밀히 탐구할 필요도 있다. 무해한 식품, 무해한 패션, 무해한 마케팅, 무해한 콘텐츠, 무해한 기술 등은 단지 ‘귀엽다’는 특성 이외에 새로운 개념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스포츠 마케팅의 관점에서도 ‘무해력’을 단순한 트렌드로 소비하기보다, 그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고 확장할 필요가 있다. ‘무해력’은 더 이상 누군가에게 위협적이지 않고, 감정적으로 소모되지 않는 관계를 중시하는 시대적 감수성을 반영한다. 전통적으로 스포츠는 리그 경쟁과 승부 중심의 서사를 통해 열광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제 팬들은 승패의 결과보다 한 선수의 성장 과정, 경기 뒤의 진심 어린 인터뷰, 예상치 못한 인간적인 순간들에서 더 큰 감동을 느낀다. ‘잘 싸웠다’는 말이 박수받을 수 있는 분위기, 그리고 이기지 않아도 충분히 응원 받을 수 있는 서사가 점점 더 힘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무해력’ 관점에서 스포츠를 승리에 대한 열망이 아닌, 감정적으로 안전하고 관계에 기반한 취향의 장으로 전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겨도 좋고, 져도 괜찮다”는 태도를 새로운 팬덤의 기준으로 삼는 등 무해력 관점에서의 스포츠 정신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둘째, 기업 이미지와 브랜딩 차원에서도 무해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갈등의 시대에 우리 조직의 무해한 이미지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전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최근 광고모델로 디지털 휴먼, 사랑스런 아이, 예쁜 동물 등이 자주 등장한다. 음주운전이나 마약 복용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을 ‘무해한’ 모델들이다. 최근 소비자들은 냉혹하다.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엄청난 악플을 쏟아부어 바로 ‘나락’으로 보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무해한 모델에 대한 선호는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무해력은
생존의 비결이 됐다

갈등과 리스크에 민감한 시대, 스포츠 분야에서도 단순히 뛰어난 경기력이나 화려한 스타성만으로는 지속적인 팬덤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제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없고, 음주운전이나 폭력, 비윤리적 행동 등에서 자유로운 ‘무해한 이미지’를 가진 선수와 구단이 더 큰 신뢰를 얻고 오래 사랑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팬들이 감정적으로 안전하고 불안 요소가 없는 존재에 끌리는 현상과 맞물려 있으며, 팬덤 역시 단순한 응원이 아닌 감정적 유대를 기반으로 한 지속적인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스포츠 조직 역시 브랜드 전략의 일환으로 ‘무해함’을 관리하고 진정성 있게 전달하는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와 소비자가 무해함을 그토록 강조한다는 사실은 앞에서 말했듯이 어쩌면 그만큼 우리를 해치려는 것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무해력은 단지 귀여운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다. 무해력은 이제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살아남는 생존의 비결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