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SA 한국프로스포츠협회

Vol. 17 2025

#1 일본
귀여움과 친근함을 넘어선 일본 무해력 스포츠 상품 성장의 비밀

글.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과학부 교수.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서 스포츠 담당 기자로 근무했으며, 영국 레스터 소재의 드몽포트대(DMU)에서 스포츠 문화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스포츠 문화사> <야구의 나라>가 있다.

일본은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나라다. 애니메이션 팬이 만화를 읽고 독자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는 인기 굿즈 상품이 된다. 전 세계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 시장도 매우 크다. 2021년 기준으로 유럽 최대의 만화책 시장인 프랑스에서는 전체 매출액 중에서 40%를 일본 만화가 차지했을 정도다.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인기를 누리다 보니 일본 사회는 마스코트가 지배한다는 얘기도 있다. 학교, 병원, 지방자치단체 등은 모두 마스코트를 전면에 내세워 기관의 홍보를 한다. 스포츠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팀의 마스코트를 게임사 닌텐도의 히트작 포켓몬스터의 대표 캐릭터 피카츄로 선정했을 정도다. 이런 일본 특유의 문화는 일본 프로스포츠의 마스코트가 가지고 있는 대중적 인기와 상품성을 높이는 요인이었다. 이 같은 일본 스포츠의 무해력 상품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 구단 매출 상승의 견인차가 됐다. 일본 무해력 상품의 성장 비결을 살펴보자.

희망과 눈물의 상징이 된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마스코트 ‘카프 보야’

일본 최초의 프로스포츠는 1936년에 출범한 프로야구다. 현존하는 일본 프로야구 구단의 마스코트 가운데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마스코트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이하 히로시마 카프)의 ‘카프 보야’다.

카프 보야는 1975년에 만들어졌다. 만년 하위 팀이었던 히로시마 카프는 1975년 구단 사상 최초로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히로시마는 당시 MLB(미국 메이저리그)의 최고 팀인 신시내티 레즈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기 시작했고 팀의 마스코트 ‘카프 보야’도 탄생시켰다. 히로시마는 붉은 헬멧 구단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1979년과 1980년에 일본 시리즈 2연패를 달성했다. 1984년에도 정상에 올라 히로시마 카프의 마스코트 카프 보야는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카프 보야가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단순히 팀 성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카프 보야는 환하게 웃고 있는 귀여운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카프 보야를 본 사람들이 희망과 기쁨을 떠올릴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특히 히로시마 카프가 1950년대 재정난을 겪었을 때 시민들의 모금을 기반으로 구단을 운영했던 전통과 연고 도시 히로시마가 제2차 세계 대전 말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이었다는 점도 카프 보야 마스코트가 전국적인 사랑을 받게 된 계기가 됐다.

카프 보야가 일본에서 다시 한번 큰 화제가 된 건 2016년이었다. 히로시마 카프는 이 해에 1991년 이후 25년이나 애타게 기다렸던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MLB 구단으로부터 거액의 연봉 제안을 뒤로 하고 2015년 친정 팀 히로시마에 복귀한 ‘의리남’ 구로다 히로키가 당시 팀의 우승을 확정 짓는 경기에 나서 의미를 더했다. 히로시마 지역의 우승 확정 경기 시청률은 45%에 육박했을 정도로 지역 팬들은 열렬하게 기뻐했다. 히로시마 카프는 이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엠블럼을 발표했다. 이 엠블럼에는 구단의 마스코트 카프 보야가 두 손을 높이 들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새겨졌다.

프로스포츠 팀을 응원하는 팬들은 늘 팀의 우승을 염원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팬들은 늘 기다림 속에서 응원 팀의 경기를 지켜보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운다. 그런 점에서 이 우승 기념 엠블럼은 25년 동안 우승을 기다려 왔던 히로시마 카프 팬들뿐 아니라 다른 팀을 응원하는 팬들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귀여운 어린 아이의 꿈이 실현되려면 오랜 기다림이 있어야 하고 그 꿈이 이뤄졌을 때 흘리게 되는 기쁨의 눈물은 모든 팬들의 로망이라는 점이 잘 나타난 엠블럼. 이 엠블럼이 새겨진 기념품이 날개 돋힌 듯 팔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카프 보야 마스코트를 활용한 굿즈 ©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16년 센트럴 리그 우승 기념 제작된 카프 보야 마스코트를 활용한 상품 © amazon.co.jp

스케치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캐릭터
‘츠바쿠로’와 ‘도알라’

카프 보야는 구단의 유니폼이나 굿즈에만 나타나고, 인형의 형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일본 프로야구 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주니치 드래건스의 캐릭터인 츠바쿠로와 도알라는 특별하다.

이 두 캐릭터는 그저 경기장에 인형의 모습으로 나타나 응원을 펼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캐릭터들은 팬들과 스케치북 메시지를 통해 직접 대화한다. 어찌 보면 최근 한국 프로야구 경기장에 팬들이 펼치는 스케치북 응원과도 맥이 닿아 있는 부분이다.

귀여운 외모를 지니고 있는 츠바쿠로와 도알라는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스케치북 필담으로 팬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한다. 지난 2017년 츠바쿠로는 “나의 매력은 친숙한 부드러움”이며 “이게 내가 야쿠르트 구단에서 오래 뛸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츠바쿠로와 도알라는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인 메시지를 팬들에게 전달하는 경우가 꽤 있다. 유머와 풍자가 섞여 있는 자유분방한 독설 캐릭터로 유명한 츠바쿠로와 도알라는 각종 굿즈 상품은 물론 서적 출판과 TV 출연도 하고 강연이나 디너쇼까지 연다. 이 두 캐릭터가 참가하는 디너쇼는 보통 2만 엔(약 20만 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늘 대성황을 이룬다. 구단의 최고 인기 선수의 굿즈 상품 이상으로 이 두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매출이 높은 이유다.

츠바쿠로와 도알라는 야구 팬의 외연을 넓히는 데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캐릭터들의 스케치북 메시지가 야구가 아니라 정치나 연예계 스캔들처럼 뜨거운 감자가 되는 이슈까지 다루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이 남기는 모든 메시지는 초등학생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체로 이뤄진다.

사실 프로스포츠의 마스코트와 인형 캐릭터 문화는 1960년대 MLB에서 시작해 1970년대 일본 프로야구로 전파됐다. 하지만 이제는 프로스포츠의 마스코트와 캐릭터 문화는 오히려 일본이 미국에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2023년 MLB 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유명 캐릭터 패너틱은 일본 야구 스타 오타니 쇼헤이의 그림을 스케치북에 그려 그에게 보여주며 대화를 시도했다. 패너틱은 2018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홈구장을 방문해 츠바쿠로를 만나 경험했던 스케치북 메시지를 오타니에게 그대로 사용한 셈이었다.

야쿠르트 스왈로즈 마스코트 츠바쿠로의 스케치북 메시지
© 스왈로즈 인스타그램
TV에 출연한 주니치 드래건스의 마스코트 도알라 © 도카이 TV

“내가 우리 팀의 마스코트”
닛폰햄 파이터스의 괴짜 감독
‘신조 츠요시’

MLB를 호령하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와 다르빗슈 유를 배출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는 2006년과 2016년 일본 프로야구 정상에 등극했다. 하지만 두 선수가 순차적으로 미국으로 떠나면서 팀은 리빌딩이 필요했다. 이때 닛폰햄 파이터스는 신조 츠요시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단 한 번도 프로야구 감독을 해보지 않았던 그에게 팀의 지휘봉을 맡기는 도박을 한 셈이었다.

신조가 지휘봉을 잡은 2022년과 2023년 팀의 성적은 퍼시픽 리그 6개 팀 가운데 최하위였다. 하지만 홈경기 관중 숫자는 2023년부터 리그 정상급 수준으로 수직 상승했다. 2024년 닛폰햄이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 관중 숫자는 더 상승했다.

닛폰햄은 팀 성적 이상으로 관중들을 경기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마스코트가 있었다. 그 마스코트는 다름 아닌 신조 츠요시 감독이었다. 신조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가끔은 팬들이 선정하는 선발 라인업도 검토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글을 남겼다. 이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글이 게시된 지 불과 이틀 만에 ‘좋아요’만 10만 회를 훌쩍 넘겼다. 팬들은 “신조 감독은 팬이 뭘 원하는지 안다”며 환호했다.

그는 노란 머리와 자주색 양복을 입고 등장했고 자신의 슈퍼카 앞에서 찍은 인증샷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심지어 2022년 유니폼 뒤에 자신의 이름을 ‘빅 보스(Big Boss)’로 새겨 넣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이뿐만 아니었다. 그는 “우승은 목표가 아니다”라고 말했으며 “경기 중에 인스타 라이브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저 심각한 표정으로 선수들에게 사인을 내는 야구 감독 만을 지켜보던 팬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이 순간 그는 팀의 마스코트 그 자체가 됐으며 관중 동원과 구단 매출을 책임지는 최고의 마케터가 된 셈이었다.

올 시즌 신조 감독은 활화산 같은 공격야구를 위해 되도록 번트를 시도하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실제로 닛폰햄은 개막 후 15경기 동안 단 한 번도 번트를 대지 않았다. 이는 한 베이스를 더 진루하기 위한 작전 야구로 정평이 난 일본 프로야구의 스타일에서 벗어나겠다는 그의 의지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괴짜 신조 감독의 기행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활동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건 사람 그 자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신조 감독은 단조롭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현대인들의 일상생활에 가장 무해한 치료제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점도 함께 제시해 줬다.

닛폰햄 파이터스의 인간 마스코트가 된 ‘신조 츠요시’ 감독 © X 캡처

일본 프로야구의 대표 무해력
굿즈가 된
야구 배트 재활용 젓가락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의 캐릭터와 마스코트가 만드는 무해력의 효과는 대단하다. 특히 희망과 눈물이 교차하는 카프 보야의 상징적 의미, 츠바쿠로, 도알라의 스케치북을 통한 팬과의 소통과 신조 감독의 파격은 무해력을 초월해 캐릭터의 매력을 완성시켜 주는 요소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류가 처해있는 기후 위기 상황은 각 분야에서 ‘무해력 굿즈’가 만들어지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전 세계인 모두에게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기후 위기는 산림 황폐화와 관련이 깊다. 1년에 10만 자루 이상의 나무 배트를 사용하는 일본 프로야구도 이 지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기에 착안해 일본의 나무젓가락 제조업체 효자에몬은 2000년부터 부러지거나 못쓰게 된 나무 배트를 활용해 젓가락을 만들고 있다. 효자에몬은 매년 1만~2만 자루의 나무 배트를 수거해 제품을 만든다. 보통 한 자루의 나무 배트를 통해 5벌가량의 나무젓가락을 만든다. 그 가운데 일부 제품은 일본 프로야구 구단의 명칭이나 로고가 새겨져 있다.

효자에몬의 나무 배트를 재활용한 젓가락이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무해력 굿즈’가 되기까지는 어려움도 있었다. 효자에몬은 프로야구 구단 관계자들과 의기투합해 이 같은 계획을 현실화시켰지만 과연 나무 배트를 재활용한 젓가락이 시장에서 잘 팔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제품 판매 수익의 일부분을 나무 배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물푸레나무 숲을 조성하는 기금으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은 일본 프로야구 팬이나 일반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곧 판매 수입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효자에몬의 젓가락을 구매하는 게 일본에서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물푸레나무 숲을 살리는 데 기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무 배트를 재활용 젓가락을 만드는 효자에몬 © 효자에몬 홈페이지

일본의 무해력 마스코트, 굿즈가 한국 프로스포츠에 주는 시사점

K리그는 일본의 캐릭터 업체 산리오와 협력해 다양한 상품을 내놓으면서 호평을 받고 있다. 헬로 키티를 비롯한 수많은 히트 상품을 선보였던 산리오의 무해력 캐릭터들의 매력이 K리그 구단 상품 매출 증대와 다양화에 큰 힘이 되고 있는 셈이다.

무해력 굿즈는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확장성이 매우 크다. 특별한 상징성을 갖거나 팬과 특별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마스코트를 활용한 제품은 물론 환경 문제를 고려한 굿즈 제작도 충분히 가능하다.

마스코트와 캐릭터들은 굿즈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이들은 서적 출판, TV 출연, 디너쇼 등 각종 이벤트의 주인공이 돼 구단의 매출을 상승시키기도 한다. 파격적이지만 무해한 신조 츠요시의 사례처럼 선수나 감독도 구단의 마스코트로 한 역할을 담당하며 구단의 브랜드 가치 향상에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무해력을 표방하는 유무형의 일본 스포츠 상품의 출발점은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의 캐릭터였다. 하지만 팬의 지갑을 열게 하는 무해력 스포츠 상품은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했다. 이처럼 무해력 스포츠 상품의 무한한 확장성은 한국 프로스포츠가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이다.

어쩌면 무해력은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유해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조금 이나마 마음의 평안을 갖기 위해 찾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무해력은 미래에도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될 가능성이 짙다.

프로스포츠는 팬들의 공감 속에서 발전할 수 있다. 팬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소통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제 무해력은 스포츠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 때 구단이나 리그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필수 요소다.

#2 미국
문화적 맥락이 만드는 새로운 기회, 미국 프로스포츠 시장의 ‘무해력

글. 이현우

텍사스 A&M교수.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스포츠매니지먼트 박사 학위를 받은 스포츠 전문가. 스포츠 관중 심리를 중심으로 감성과학을 기반으로 한 융·복합연구를 수행 중이다.

전통적으로 치열한 경쟁과 드라마가 교차하는 전장으로 일컬어지는 미국 스포츠에서, ‘귀여움’과 ‘무해함’이 과연 통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다 큰 어른이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것에 대한 편견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남성이라면, “쿨해야 한다”는 압박이 전통적으로 강하다. 여성 역시 바비 인형으로 대두되는 쿨한 이미지가 주류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귀여움은 어린 시절의 전유물 혹은 여성적 속성으로 치부되곤 했다. 미국 사회에서 ‘귀여움’은 종종 유치함(childish)과 동일시되었고, 이는 곧 미성숙함, 책임감 부족, 심지어 사회적 신뢰 상실로 이어졌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무해하고 귀여운 콘텐츠를 보면 우리 뇌의 측좌핵 부분이 긍정적으로 반응한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성인들의 수집 문화와 힐링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전문가들은 이제 ‘유치한 행동(childish behavior)’과 ‘어린이 같은 행동(childlike behavior)’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자는 미성숙과 자기중심성을, 후자는 호기심과 경이, 순수함을 의미한다. 미국과 한국의 스포츠 팬덤이 무해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 시대에서 미국 프로스포츠 시장이 무해함을 받아들이는 문화적 차이를 알아보고, 이를 활용할 해법을 모색해본다.

고맥락 vs. 저맥락, 풀뿌리 vs. 소비
문화적 DNA와 팬덤의 구조적 차이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의 문화적 맥락 이론은 동서양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한국은 전형적인 고맥락(high-context) 문화다. 상황과 관계, 암묵적 의미, 상징을 중시한다. 반면 미국은 저맥락(low-context) 문화로, 명확하고 직접적인 메시지, 객관적 사실, 논리적 설명을 선호한다.

이 차이는 스포츠 소비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한국 팬들은 선수의 일상, 귀여운 굿즈, 마스코트의 행동 등 무해한 요소가 소비자의 입장에서 스포츠를 경험하는 방법에 대한 자연스러운 확장으로 받아들인다. 야구장에 가서 사진을 찍고, 굿즈를 사고, 선수의 SNS를 팔로우하는 것이 즐거움을 찾는 방법이 된다. 반면 미국 팬들은 승부, 기록, 지역 정체성 등 ‘본질’에 집중해왔기 때문에, 이들에게 무해한 콘텐츠는 때로 맥락 없는 장식처럼 보일 수 있다.

미국 스포츠는 풀뿌리 기반이다. 누구나 스포츠에 직접 참여했거나 가족 구성원이나, 친구, 지역 유망주가 참여하는 것을 직접 보며 자라는 게 일반적이다.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지역적·정체성적 소속감을 느낀다. NFL 피츠버그 스틸러스 팬이라면 단순히 팀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강인함과 노동자 정신을 대변한다. 미국 팬의 팬덤은 “나는 곧 이 도시”라는 정체성의 확장이다. 특히, 스포츠는 신체 기술의 응집체이자 삶의 철학으로 자리 잡으면서 가장 높은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프로스포츠는 쿨한 것이지, 귀여운 것이 아니다.

반면 한국 스포츠 문화는 운동선수와 소비자 사이의 이원화가 뚜렷하다. 우리나라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운동 부족은 사회 문제로 대두된다. 풀뿌리에 기반해 프로스포츠로 진출하는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엘리트 스포츠와 참여 스포츠가 철저히 구분된다. 엘리트 스포츠 참여 인원은 줄어드는 반면에 간접 소비로 대두되는 스포츠 팬들은 흥미롭게도 증가 추세다.

패션 아이템 vs. 팬의 표현
MLB 모자를 대하는 한국·미국의 차이

KBO 리그가 1,000만 관중을 돌파한 데에는 20~30대 여성 팬들이 큰 역할을 했다. KBO 관중의 54.4%가 여성이라는 점은 미국이나 호주와는 대조적이다. 이들에게 야구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의식이 아니라, 전체적인 소비 경험의 일부다. “야구장에 가서 사진 찍고, 굿즈 사고, 선수 SNS를 팔로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이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MLB 모자 현상이다. 한국에서는 뉴욕 양키스나 LA 다저스 모자를 쓴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 팀의 팬이 아니다. 패션의 완성을 위한 액세서리일 뿐이다. MLB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K-POP 아이돌과의 협업, MLB Kids 라인 출시 등으로 모자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미국에서 양키스 모자를 쓴다는 건 곧 양키스 팬이라는 선언이다. 미국 야구팬이 양키스 모자를 쓴 한국인을 본다면 양키스 팬인지 물어올 것이다. 이때 수많은 한국인들이 그저 패션으로 야구 모자를 소비한다는 것을 안다면, 미국의 야구 문화 배경에서 이는 맥락 없는 소비행위로 여겨질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와 미국은 스포츠 소비의 동기와 맥락이 다르다.

하지만 이러한 소비문화도 세계화의 물결 속에 융합되며, 한국도 변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KBO 팀 모자를 패션으로 쓰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이제는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 두산 베어스 모자를 쓴 이들을 서울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풀뿌리 기반 팬덤 문화의 형성이다. KBO의 관중 기록, 인플루언서와의 협업,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진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MLB도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한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의 여파로 MLB가 중단 되었을때, 수많은 미국 야구 팬들이 한국 야구를 시청했다. 한국 야구 문화에 영향을 받아 이제는 MLB에서도 Bat flipping(빠던)에 대한 금기가 완화되고, 더 많은 개성과 감정 표현이 허용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국경과 문화의 경계에 덜 얽매인다. 미국 Z세대와 밀레니얼은 동양의 귀여움과 감성, 한국의 K-pop, 일본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소비한다. ‘귀여움’은 이제 국경을 넘어, 세대와 문화를 아우르는 새로운 언어가 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의 무해력 콘텐츠와는 다소 결이 다르지만, 미국에서도 보편적으로 무해한 콘텐츠들이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Behind the Braves’ 시리즈로 선수들의 가족, 애완동물, 커뮤니티 활동을 공개하며 팬과의 거리를 좁혔다. 로스앤젤레스 차저스는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해서 젊은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전통적인 미국 스포츠 소비 방식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선 액세서리이지만, 미국에서 양키스 모자를 쓴다는 건 곧 양키스 팬이라는 선언이다. © 셔터스톡

미국 프로스포츠 시장의 무해력 콘텐츠가
한국 프로스포츠에 주는 시사점

미국 프로스포츠 시장의 무해력을 한국 프로스포츠 시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독특한 세리머니나 개성을 적극 활용한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이러한 브랜딩에 무해한 일러스트나 상징을 결합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본다. 또한 단순한 경기장 엔터테인먼트를 넘어선 독립적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마스코트 활용이 가능하다. 각 구단의 마스코트를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로 육성하는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펀코의 ‘Pop! Yourself’와 같은 개인화된 상품 개발이나 팬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디지털 콘텐츠 확대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제조기술과 결합될 수 있다면, 그 응용범위는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캐릭터 산업이나 K-POP과 연계한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각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마스코트와 굿즈 개발을 통해 지역 팬덤을 강화할 수 있다. 특히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디지털 네이티브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무해력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세대와 문화를 잇는 전략적 도구다. 고맥락과 저맥락, 풀뿌리와 소비 문화, 이 모든 차이가 무해력이라는 공통분모 앞에서는 서로 융합될 수 있다. 글로벌라이제이션과 세대 변화 속에서, 무해력은 스포츠 소비 문화에 새로운 양념이 될 것이다.

한국 프로스포츠는 이 글로벌 트렌드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각 구단은 정체성과 팬 감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무해한 바람’을 창출할 때다. 이는 마케팅을 넘어 스포츠를 더욱 포용적이고 접근 가능한 문화로 만드는 전략적 선택이다.

미국 프로스포츠 시장의 무해력 콘텐츠 실제와 성과

01. 선수 중심 무해력
개성과 춤의 힘

몸 동작으로 표현되는 춤은 스포츠와 어울리는 보편적 콘텐츠다. NFL 미네소타 바이킹스의 선수 저스틴 제퍼슨의 ‘그리디 댄스’가 이러한 무해력 콘텐츠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저스틴 제퍼슨은 2023년 시즌을 위해 그리디 댄스의 5가지 새로운 버전을 개발해 팬과 함께 즐기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리디 댄스란 제자리에서 또는 걸을 때 발꿈치를 번갈아 두드리며 팔을 앞뒤로 흔드는 댄스 동작으로, “전 세계가 내 터치다운에 맞춰 그리디를 추길 바란다”는 그의 바람은, 팬과 선수의 경계를 허무는 무해력의 힘을 보여준다.

대학 스포츠에서도 BYU(브리검 영 대학교)의 학교 운동경기 마스코트 코스모 더 쿠거가 치어리딩 팀과 함께한 댄스 영상은 팀 성적과 무관하게 전국적 관심을 받았다. 코스모 더 쿠거는 이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마스코트 중에 하나가 되었다.

02. 마스코트의 진화
엔터테이너에서 인플루언서로

마스코트의 무해한 영향력은 경기장뿐만 아니라 소셜미디어로 확장되었다.

WNBA 뉴욕 리버티의 마스코트 ‘엘리’는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7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리며, Z세대의 문화 아이콘이 됐다. 패션과 댄스, 유머를 결합한 엘리는 “이제 진짜 스타는 코트 위가 아니라 코트 옆에 있다”는 농담까지 만들어냈다.

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마스코트 ‘스윙잉 프라이어(Swinging Friar)’는 성직자를 마스코트화했다. 팀 이름인 파드리스(Padres)가 스페인어로 ‘신부’를 뜻하기 때문인데, 이는 프란치스코회 사제들이 1796년 샌디에이고에 수도회를 세운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스윙잉 프라이어는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켜 종교적 상징을 유쾌하게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다. 샌디에이고의 프라이어가 이렇게 귀여울 줄은 몰랐다는 반응과 함께, 이 유쾌한 무해력은 지역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잡았다.

WNBA 뉴욕 리버티의 마스코트 ‘엘리’ 틱톡 계정 © tiktok@bigellieliberty 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마스코트 ‘스윙잉 프라이어’ © 셔터스톡

03. 수집 문화의 진화
투박함과 정교함의 공존

미국의 바블헤드(Bobblehead)는 한국·일본의 정교한 피규어와 달리 투박하지만, 팬들은 이 단순함을 사랑한다. (바블헤드란 목 부분이 스프링으로 되어 있어서 살짝 건드리면 인형 얼굴이 건들건들하는 형태의 인형 혹은 피규어를 말한다. - 편집자 주) MLB LA 다저스의 ‘바블헤드’ 증정 경기는 평균보다 24.8%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는데, 2024년 오타니 쇼헤이 바블헤드 행사에는 무려 53,527명이 몰렸다.

반면 한국·일본의 정교한 피규어에도 익숙한 젊은 세대는 펀코팝(Funko Pop)을 선호한다. 2024년 10억 5,0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한 펀코(Funko, 미국의 문화산업회사로, 대중매체 캐릭터를 라이센싱한 피규어와 수집품들을 판매하는데, 특히 피규어 라인인 펀코 팝이 유명하다. - 편집자 주) 시장에서, NFL과의 협업으로 출시된 ‘Pop! Yourself’는 개인화와 팀 정체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상품이다. 아직 우리나라의 피규어에 비하면 투박해도, 융합적 가치는 그 잠재력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3 유럽
축구는 생활, 친근함은 필수 유럽 축구 리그의 무해함

글. 류청

축구 전문 미디어 ‘히든K’ 편집장 겸 네이버 스포츠 공식 스토리텔러, 스포츠LAB 운영자.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 프랑스 리그앙을 비롯해 프랑스 축구 전문기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축구는 사람을 공부하게 만든다>, <유럽 축구 엠블럼 사전>, <프리미어리그 가이드북> 저자

“훈련하고 경기하면서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게 어렵지 않나요?” 한국 축구국가대표팀과 독일 분데스리가 소속 마인츠05에서 뛰는 미드필더 이재성에게 물었다. 그는 국내 포털사이트에 거의 매일(365일 중 360일 정도) 글과 사진을 포스팅한다. 프로축구선수로 활약하면서, 그것도 유럽과 한국을 오가는 선수가 이런 일을 하는 게 쉽지 않다. 글 쓰는 걸 업으로 삼는 필자도 같은 플랫폼에 글을 매일 쓰기는 어렵다. “루틴이 돼서 괜찮아요. 그리고 제 일상을 공유하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 줄 알게 됐어요. 많은 분이 제 반복되는 일상에도 기뻐하시더라고요. 제가 글 마지막에 항상 쓰는 것처럼 ‘기록이 쌓이면 뭐든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처럼 이재성의 크게 특별하지 않은 일상에 관심을 두는 이는 적지 않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프로축구선수가 슈퍼카와 명품 그리고 값비싼 음식에 관한 포스팅을 올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재성처럼 잔잔하고 친근한 일상이어야 매일 만나도 질리지 않을 것이다. 그의 블로그나 SNS 게시물은 항상 ‘뜨뜻미지근’하나 팬들의 반응은 뜨겁다. “저는 프로축구선수가 아니라 그냥 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랍니다.” 유럽 사람들은 축구를 공기처럼 느낀다. 이게 과장 같다면 한발 물러설 수도 있다. 축구는 생활이다. 일상이 자극적이면 어렵다. 최근 유럽 축구계는 친근함을 내세운 접근과 마케팅을 자주 보인다.

‘국민 만화’의
익숙함 더한
유로 2024 벨기에 원정 유니폼

유럽은 다른 곳과 스포츠, 특히 축구를 소비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유럽은 축구가 일상이다. 그래서 마케팅 방향도 다른 대륙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일상에서 주제를 찾는 일이 많다. 한 맥주 회사가 ‘응원하는 팀이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르는데 직접 관람할 기회가 생겼다. 연인에게 거짓말을 할 것인가?’라는 상황을 특정해 만든 광고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2020년대 들어서는 이런 흐름에도 변화가 생겼다. 바로 조금 더 자극이 덜한 소재를 찾는 이가 늘어났다. 대표적인 게 벨기에 국가대표팀과 아디다스가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2024(이하 유로 2024)’를 앞두고 내놓은 유니폼(원정 유니폼)이다. 벨기에는 유니폼을 하늘색 상의와 갈색 바지로 구성했는데, 출시 때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벨기에의 ‘국민 만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유로 2024 벨기에 원정 유니폼 © 아디다스

벨기에는 물론 프랑스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땡땡의 모험(Les Aventures de Tintin)>에서 주인공 땡땡이 입는 옷을 오마주했기 때문이다. 이 만화는 1929년부터 1976년까지 연재됐으나 여전히 많이 읽히고, 영화(한국에서는 2011년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나 애니메이션 <땡땡의 위험한 휴가(1972)>로도 재탄생할 정도로 유명하다.

벨기에축구협회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인 마누 르루아는 이 유니폼을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홈 유니폼은 항상 빨간색을 중심으로 한 고전적인 디자인입니다. 하지만, 원정 경기 유니폼에는 몇 년 전부터 좀 더 창의적인 시도를 했습니다.”

익숙함을 내세운 벨기에와 아디다스의 시도는 어떤 반응을 낳았을까? 유년 시절에 <땡땡의 모험>을 어떤 방식으로든 경험한 이들은 열광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었고, 이는 수치로도 증명되었다. 르루아는 인터넷 판매만 하고 있을 당시에 “홈보다 원정 유니폼이 더 잘 팔립니다”라고 했다. 아디다스 담당자는 벨기에 국내에서는 홈과 원정 유니폼 판매 비율이 비슷해질 수 있지만, 해외에서는 더 잘 팔릴 것이라 확신하기도 했다.

<땡땡의 모험> 주인공 모습 © 넷플릭스

유럽 사람들은 축구를 공기처럼 느낀다. 이게 과장 같다면 한발 물러설 수도 있다. 축구는 생활이다. 일상이 자극적이면 어렵다. 최근 유럽 축구계는 친근함을 내세운 접근과 마케팅을 자주 보인다.

캐릭터에 진심인 분데스리가,
‘베르니’ 보톡스 논란까지도

2023년 7월, FC 바이에른 뮌헨이 김민재를 영입하면서 집으로 보낸 선물이 화제가 됐다. 김민재의 딸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과 바이에른 뮌헨 유니폼을 입은 곰돌이 인형이 그것이다. 바이에른 뮌헨 곰은 그냥 곰이 아니다. 이름은 ‘베르니(Berni)’이고, 2004년 5월 1일에 ‘태어’나서 바이에른 뮌헨 마스코트로 활약 중이다.

바이에른 뮌헨은 팬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베르니를 만들었고,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베르니의 유명세는 해프닝을 만들기도 했다. 2022-23시즌을 앞두고 베르니 얼굴을 조금 바꾸었는데, 팬 사이에서 논쟁이 일었다. ‘사랑스럽다’, ‘신선하다’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저건 더 이상 우리의 베르니가 아니다’, ‘베르니가 보톡스를 맞은 것처럼 됐어요’라는 거부감도 나왔다. 베르니는 논란을 딛고 여전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 중이다.

FC 바이에른 뮌헨 홈페이지에 소개된 ‘베르니’ © FC 바이에른

분데스리가 소속 팀 대부분은 마스코트 캐릭터에 큰 노력을 쏟는다. 바이에른 뮌헨의 라이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별칭은 꿀벌인데, 마스코트도 꿀벌인 ‘엠마’다. 엠마는 처음에는 어린이들만을 위한 마스코트였으나 현재는 구단 전체를 대표한다. VfL 볼프스부르크는 늑대 ‘볼피(Wölfi)’, 바이어 04 레버쿠젠은 사자인 ‘브라이언 더 라이언(Brian the Lion)’, 헤르타 베를린은 곰 ‘헤르티뇨(Herthinho)’를 마스코트로 활용 중이다.

가장 인기 있는 마스코트는 1. FC 쾰른의 숫염소 헤네스(Hennes)인데, 실존하는 모델도 있다. 현재 마스코트는 헤네스 9세(Hennes IX)로 헤네스 8세가 노령으로 은퇴한 2019년 8월 1일부터 활동 중이다. 역대 헤네스는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전 세계 방송에도 수 차례 출연했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엠마’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볼프스부르크의 ‘볼피’ © 볼프스부르크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브라이언 더 라이언’ © 바이어 04 레버쿠젠 헤르타 베를린의 ‘헤르티뇨’ © 헤르타 베를린

8인치 이강인과 ‘제르멩’,
선수들의 아이들로 무장해제

많은 구단이 선수들을 피규어로 만들어 파는 것은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이런 흐름에 더해 선수를 아예 귀여운 모양의 봉제 인형으로 만들어 파는 구단도 있다.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트레블(리그, FA컵,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을 달성한 파리 생제르맹 FC(PSG)가 그렇다.

PSG 온라인 팬숍에 가면 이강인을 살 수 있다. 왼쪽 눈가에 점이 세 개 박힌 8인치 이강인을 한국돈 4만 6,8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8인치 이강인을 혼자 들이기 외롭다면 8인치 우스만 뎀벨레와 8인치 PSG 마스코트 살쾡이 ‘제르맹’도 같이 데려갈 수 있다. 주의할 점이 하나 있는데, 제르멩의 가격(5만 5,700원)이 두 선수보다 조금 더 비싸다.

왼쪽부터 파리 생제르맹 온라인 팬숍에서 판매 중인 이강인, 우스만 뎀벨레, 마스코트 ‘제르맹’ © 파리 생제르맹

아예 아이들을 영상이나 사진 콘텐츠 주인공으로 만들어 전 세계 팬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방식도 많이 쓴다. 라민 야말(FC 바르셀로나)의 동생이 나오는 콘텐츠를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에 리버풀 FC 모하메드 살라의 딸이 리버풀 팬들 앞에서 골 넣는 장면은 또 어떤가. 무시무시한 ‘콥(리버풀 팬 별칭)’도 살라의 딸에게는 마음이 녹았다.

명품 브랜드도 이런 흐름에 동참 중이다. 영국 브랜드 버버리는 2025년 아버지의 날을 기념해 영상 광고를 하나 만들었다. 잉글랜드 대표팀과 맨체스터시티에서 뛰는 필 포든이 아이들과 햇살을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내용이다. 격렬하게 경기하는 축구 선수 이미지보다는 부드럽고 따뜻한 이미지를 가져다 쓴 것이다.

라민 야말과 그의 동생 © FC 바르셀로나

축구는 뜨겁게, 일상은 평온하게
피로하지 않은 무해한 콘텐츠 인기

축구는 특별하고 뜨거워야 좋지만, 일상은 평온해야 좋다. 유럽 축구는 이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시도를 계속해서 진행 중이다. 마케팅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마케팅 전략은 더 복잡해지기에, 친근함을 넘어선 편안함과 무해함이 더 주목받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무엇보다 유럽은 축구와 함께 생활한다. 생활이 매번 짜릿한 것도 이상하지 않나. 매일매일 돌려봐도 피로하지 않은, 도파민을 과다 생산하지 않을 콘텐츠가 사랑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